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299)
299화 악령 (3)
바바리안의 작명 방식은 굉장히 쿨하다.
낳은 자식이 아들이라면 친부의 이름을 성으로 쓰고, 딸이라면 친모의 이름을 성으로 쓴다.
그렇기에 부족 내엔 가문이랄 게 없으며, 모든 바바리안들은 서로를 가족처럼 여긴다.
뭐, 지금 그게 중요하겠느냐마는.
‘얀델 쟈르쿠.’
동명이인일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야 ‘쟈르쿠의 세 번째 아들 얀델’이 얼마나 되겠는가.
사실상 생물학적 친부라 보는 게 옳다.
하지만…….
“하하핫! 언제까지 내 손을 무안하게 할 건가!”
그래, 우선 정신부터 차리자.
친부라고? 근데 그게 어떻다고?
놀라고 당황할 순 있지만, 이렇게까지 넋을 놓을 건 아니다.
내가 진짜 비요른 얀델인 것도 아니고.
“아, 잠깐 딴생각을 했군.”
일단 악수에 응하며 뒤로 물러났다.
이거로 자기소개는 끝.
칼톤이 어색하게 웃으며 본론으로 들어갔다.
서로 다른 소속인 탐험가가 균열에서 만났다면 응당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하하, 소개는 이만하면 됐고. 앞으로 계속 같이 다녀야 할 테니, 전리품을 어떻게 처분할지부터 상의해 봅시다.”
전리품 배분이 언급되자마자 아멜리아가 내 손목을 잡고서 뒤로 이끌었다.
“잠시 동료와 상의 좀 하지.”
응? 상의라니?
나는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순순히 따라갔다.
그리고 둘만 있게 되자 조용히 물었다.
“상의는 갑자기 왜 하겠다고 한 거냐? 전리품 배분을 어떻게 할진 아까 다 정해 뒀을 텐데?”
“전리품 때문에 부른 게 아니다.”
“아니라면?”
내 물음에 아멜리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너는 괜찮은 건가……?”
그제야 얘가 나를 왜 따로 부른 건지 이해됐다.
하긴 얘라고 내가 굳었던 이유를 모르진 않겠지.
“괜찮다. 조금 놀라긴 했지만, 네가 걱정하는 사고 같은 건 치지 않을 테니.”
“나는 사고 같은 걸 걱정해서 묻는 게…….”
응? 그게 아니면 뭔데?
내가 빤히 바라보자 아멜리아가 말꼬리를 흐렸다.
“됐다, 괜찮다니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겠지. 그럼 돌아가지. 배분 문제는 아까 정해둔 대로 하겠다.”
그렇게 상의를 끝마친 척 중심부로 돌아간 우리는 본격적으로 전리품 배문 문제를 다뤘고, 별다른 분란 없이 신속하게 끝났다.
그야 우리는 정수를 먹으러 온 게 아니거든.
“정말 마석만 가져가도 괜찮겠소……?”
나오는 정수를 모두 저쪽에게 주는 대신, 나머진 전부 우리가 갖기로 결정됐다.
“마석만이 아니라 넘버스 아이템과 균열석도 포함이다.”
“하지만 수호자를 우리가 잡을 수 있을지도 확실치 않지 않소?”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할 문제니 신경 쓰지 마라.”
“음, 그렇다면야.”
칼톤은 자신들에게 너무 유리한 조건에 얼떨떨한 얼굴이었으나, 가타부타 말을 더 해오진 않았다.
그럼 이거로 전리품 안건도 끝.
“……얀델, 이리로 오시오!”
후, 저거 진짜 적응이 안 되네.
이름이 불릴 때마다 괜히 내가 움찔하게 된다.
“어? 난 저자들과 좀 더 얘기를…….”
“그건 나중에 해도 되지 않소. 아까 보니까 도끼 날이 무뎌졌던데, 숫돌로 갈고 계시오.”
“응? 괜찮은 거 같은데…… 알았다!”
아무튼, 전리품 관련 대화가 끝나자마자 얀델 쟈르쿠가 동료에 의해 불려갔고, 우리도 딱히 접근하거나 하지 않았다.
그렇게 서로 거리를 둔 채 어색한 시간이 흘렀다.
“저기선 뭔 얘기를 하고 있나?”
“우리가 정수를 먹지 않는 게 어떤 의도일지 추측하는 중이다.”
“추측?”
별걸 다 신경 쓴다 싶기도 했지만, 생각해 보면 저들로서는 당연한 일일지 몰랐다.
정수를 먹지 않는단 말은, 우리에게 3층 균열의 정수가 필요 없을 만큼 강자란 뜻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기도 하니까.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기에 불안하겠…….
“비욘, 네 부모는 어떤 사람이지?”
그때 뜬금없이 아멜리아가 내게 물었다.
의도가 너무 뻔해서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부모는 무슨,
“내 친부에 대해서 궁금한가?”
“조금은.”
“그렇다면 미안하게 됐군. 사실 나도 잘 모른다. 내가 아주 어릴 때 미궁에서 죽었다는 것 말고는.”
대충 지어낸 말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내가 악령이어서가 아니라, 이 몸의 원주인조차 자기 아버지에 대해선 아는 게 거의 없었다.
바바리안 사회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었다.
이 종족은 99%의 구성원이 미궁 탐사를 통해 먹고살아가니까.
아무래도 사망률이 높을 수밖에 없는 것.
“이 이야기는 그만하지.”
내가 단호하게 말하자, 아멜리아도 더 캐묻지 않고 벽에 등을 기대고 육포를 씹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드르르르륵.
굳게 닫혀 있던 정면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다른 쪽도 포탈이 전부 닫힌 모양이군.”
슬슬 균열 탐사를 시작할 때였다.
***
백색신전은 경쟁형 균열이다.
보스방에 진입 가능한 건 한 팀뿐이며, 이는 선착순으로 결정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스타트가 좋았다.
5인 입장 마감이 빨리 끝난 덕분에 미리 전리품 배분 같은 문제를 처리해 둘 수 있었…….
“자, 그럼 갑시다. 아, 근데 누가 먼저 가겠소?”
거, 진형 갖고 힘을 뺄 거면 아까 해두던가.
“내가 먼저 가지.”
“아! 그럼 내가 옆에 서겠—”
“얀델!”
“……?”
“이리 오시오. 뒤에서도 몬스터가 나올 수 있지 않소.”
“아, 알았다!”
내가 앞에 서자 자연스럽게 전투 진형이 잡혔다.
맨 뒤에는 쟈르쿠가, 나머지 셋은 중심에 위치한 진형.
물론 진형이야 우리에겐 큰 의미가 없었다.
어차피 이곳은 3층 균열 아닌가.
그것도 5인 기준 난이도의.
‘귀찮은 일이 생기기 전에 얼른 클리어하고 나가자.’
그런 일념으로 문 너머로 들어서자 이전에 있던 신전과 동일한 구조의 석실이 나타났다.
평수는 비슷했지만, 석상이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솨아아아아아아.
석상의 손에 쥐어진 푸른색 보석에서 흘러나온 빛이 안개처럼 장내에 퍼져 있었다.
‘시작부터 보스 타입이네.’
색을 통해 이번 방의 특징만을 확인한 나는 목을 풀며 빛의 안개 속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칼톤이 당황하며 경고를 해왔다.
“이, 이보시오! 뭐가 나올지도 모르는데…….”
음, 그래. 너희는 그렇게까지 상세하게 알고 있는 게 아니구나.
경쟁 구조인 건 알고 있기에 혹시나 했는데.
이제 보니 백색신전이 어떤 곳인지 정도만 어디서 조금 들어 본 게 전부인 모양.
쿵.
그때 안개 너머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이족 보행 형태였으며, 신장은 거진 5m에 달했다.
청갑 거신병.
원래라면 3, 4층 탐험가들이 5인 팀으로 뭉쳐 싸워서 잡아야 할 중간 보스 타입의 적.
다만, 그래 봤자 3층 균열의 몬스터다.
경험치상으로도 등급은 6등급에 불과하며…….
‘무력으로 따져도 5등급보다는 낮지.’
중간 보스라 해봤자 트롤 같은 5등급 몬스터에 비할 바가 아니다.
따라서…….
“베—”
아, 이건 하면 안 되지.
“우가아아아아아!!”
원시적인 외침을 토해내며 앞으로 대시했다.
“잠깐! 힘을 합쳐 싸워야…….”
칼톤이 뒤에서 뭐라 말했지만, 굳이 들을 이유는 없었다. 힘을 숨기는 쪽보다, 대놓고 드러내는 편이 피차 편할 테니까.
‘거대화.’
우선 상대와 체급부터 맞춘 뒤.
‘도약.’
뛰어올라 단숨에 거리를 좁힌다.
그리고…….
‘휘두르기.’
있는 힘껏 풀스윙.
콰직-!
그 기본 콤보로 청은색 갑주를 입은 거신병의 목이 기형적인 형태로 꺾였다.
“무, 무슨 힘이……!”
뒤에서 뉴비들의 찬사가 이어졌으나, 나로서는 제법 입맛이 썼다.
이게 탱커의 비애인가?
지금 근력으로도 원킬이 안 뜨는구나.
거, 쪽팔리게.
그냥 딜러한테 맡길걸.
“에밀리!”
내가 딜러를 호출함과 동시에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리고…….
푸욱.
오러가 넘실거리는 단검이 거신병의 심장부를 꿰뚫었다.
콰직-!
이내 거신병이 빛이 되어 사라지더니, 주변에 가득하던 안개가 사라졌다.
전투 시작 3초 만에 상황이 종료된 셈.
“오, 오러라니…….”
“이런 자들이 왜 3층에서…….”
20년 전의 뉴비들이 늅늅거리기 시작했다.
그제야 깨달은 모양이었다.
“뭐 하나? 어서 따라오지 않고?”
“아, 가, 가리다……!”
본인들이 고속버스에 승차했다는 것을.
***
3층 균열은 스테이지식 구조다.
방 하나를 클리어하면 다음 방이 열리고, 이를 가장 빨리 끝낸 팀만이 보스방에 들어갈 권한을 얻는 식.
콰직-!
첫 번째 방을 3초 만에 클리어한 후로도, 나와 아멜리아는 본 실력을 발휘하며 초고속으로 방들을 클리어해 나갔다.
다만 첫 스테이지처럼 몇 초 안에 전부 끝내는 일은 거의 없었다.
보스 타입이 있으면 물량 타입도 있는 법이니.
“우가아아아아아아!!”
정해진 시간 동안 몬스터들이 쏟아지거나, 함정 혹은 정신계 이능을 뿌리는 몹들이 출현하는 등.
다양한 콘셉의 방들을 넘어갈수록, 스테이지의 난이도는 점점 상승했다.
백색신전이 가진 특성이었다.
이곳은 스테이지를 클리어할 때마다 캐릭터에게 상태 이상을 부여하거나, 다음 스테이지에서 등장할 몬스터들에게 영구적인 버프를 준다.
그래서 보통은 이렇게 무작정 달리지 않는다.
“잠깐! 저 문양에 대해선 예전에 들어본 적 있소. 여기에 우리에게 걸린 저주를 풀 수 있는 무언가가 숨겨져 있다고…….”
칼톤의 조언대로, 정석적인 공략법은 각 방마다 숨겨진 요소들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애초에 그런 힌트가 대놓고 방마다 있기도 하고.
갈림길에서는 문양을 보고서 저주를 풀 수 있는 방을 찾아가기도 한다.
하지만…….
“됐다, 그럴 기분이 아니다.”
“그럴 기분이 아니라니, 대체 그게 무슨 해괴한—”
“말이 많군. 따라오기나 해라.”
“…….”
조금이라도 시간이 걸리는 건 전부 스킵했다.
난이도가 올라봤자 클리어에는 딱히 문제가 없다는 판단.
그렇게 미친 듯이 균열을 돌파하던 때였다.
“에밀리, 이 문은 왜 열리지 않지?”
“금색 방의 특징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3시간 정도 기다려야 열리더군.”
“오, 그렇군?”
균열의 중간 지점에 도착한 우리는 그제야 한자리에 모여 휴식을 가졌다.
“여기서 쉴 건가?”
아까처럼 멀찍이 떨어져 있는 게 편하지 않냐는 의미를 담아 묻자, 칼톤이 멋쩍게 웃었다.
“어차피 의미도 없지 않소.”
음, 그건 그렇지만.
이렇게 솔직하게 나올 줄은 몰랐는데.
피식 웃고 있자니, 칼톤이 사과를 해왔다.
“사과하리다. 처음엔 당신들을 수상하게 여겼소. 혹여나 우리 뒤통수를 칠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건가?”
“그렇소.”
“이유는?”
“당신들이 못된 마음을 먹었다면, 이미 우리는 진작에 죽었을 것 아니오. 우리 셋이 빠진다고 둘이서 균열을 돌파할 실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논리적인 이유를 댄 칼톤은 이어서 말했다.
“무엇보다, 그런 짓을 할 사람들처럼 보이진 않소.”
“직감인가?”
“그렇소. 내가 아니라 저 친구의.”
칼톤의 시선 끝에는 우걱우걱 육포를 씹어먹는 바바리안 전사가 앉아 있었다.
이제 보니 옆모습이 나랑 닮은 거 같기도 하고.
“쉬어라.”
칼톤과 짧은 대화를 마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쟈르쿠의 옆으로 다가갔다.
“오, 여긴 웬일이냐? 아, 너도 좀 줄까?”
자르쿠는 내가 오자마자 순박하게 웃으며 육포를 내밀었다.
일단 받아서 입에 넣었다.
참고로 투구를 벗을 필요는 없었다. 이럴 때를 대비해 제작할 때 입가만 올렸다 내렸다를 할 수 있게 만들어 뒀거든.
“그거, 안 불편한가? 나라면 갑갑해서 하루도 못 버틸 거 같은데.”
“적응되면 괜찮다.”
“하하! 다들 말하는 그 인간의 적응력 말인가!”
쟈르쿠는 호탕하게 웃더니 배낭을 깔고 바닥에 누웠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질문을 던졌다.
“비욘, 너는 자식이 있나?”
“……없다.”
“그런가? 나는 있다.”
“이름이 뭔가?”
“비요른. 바로 나 얀델의 아들 비요른이다.”
그래, 진짜 당신이 이 몸의 친부인 거구나.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가 눈앞에 놓이자, 새삼 가슴이 옥죄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때 제법 괜찮은 이름 아닌가?”
“……그렇다고 생각한다.”
이후 쟈르쿠는 한참 동안 일방적으로 수다를 떨어댔다. 대부분은 자식에 관한 얘기였고, 나는 묵묵히 그의 얘기를 경청했다.
그러던 때였다.
두근-
점점 밝은 목소리로 말하는 그를 보고 있자니, 어느새부터인가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시선을 피했다.
그랬더니 저 멀리서 아멜리아가 어딘가 짠한 눈빛으로 나를 관찰하는 게 보였다.
덕분에 나는 가슴에 자리한 감정을 깨달았다.
“후후, 분명 대단한 전사가 될 걸세. 나와 그녀의 피가 섞인 아이—”
“그만!”
“응?”
“그만, 나는 이만 가보겠다…….”
그것은 죄책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