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360)
360화 심문 (2)
계단을 타고 갑판으로 올라온 레이븐은 서둘러 함선의 장교실로 이동했다.
도착한 곳에는 이미 먼저 보낸 부보관은 물론, 병단 내의 소대장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레이븐 부단장님! 무사하셨군요! 다행입니다! 안 그래도 복귀가 늦어져 저희끼리라도 지원대를 꾸리려 하는 중이었는—”
“보고를 올려야 하니 모두 자리를 비워 주세요.”
“…예? 아아, 예!”
급해 보이는 레이븐의 명령에 모여 있던 간부들도 의문을 버리고서 명령에 따랐다.
불과 몇 초 만에 싹 비워진 장교실.
“…….”
레이븐은 복잡한 얼굴로 선실 내에 비치된 군용 메시지 스톤에 손을 올렸다.
“니아 라프도니아. 제3 마도병단의 부단장 아루아 레이븐입니다. 부대원들의 퇴로 확보를 위해 이동이 지체되어 이제 복귀했습니다. 현 전황에 대해 공유 부탁드립니다.”
[니아 라프도니아. 제3 군단의 참모장 엘토라 테르세리온이오. 혈기사를 막으러 갔다는 얘기는 듣고 걱정했네마는 무사해서 다행이구려.]“…실례지만, 어째서 군단장님이 아니라 참모장님께서 연락을……?”
[전시에 최고 명령권자가 부재 시, 그 자리를 이어 받는 제2 명령권자가 나이기 때문이오.]“부재… 말씀이십니까?”
[라므레온드 소백작님께서 전사하셨소. 전 부대에 집결 명령을 내리고 이동하는 중에 반역자, 리카르도 뤼헨프라하를 주축으로 범죄자 무리들에게 기습을 당하셨지.]“그럴 수가…….”
[전 병력이 호수 위로 퇴각한 뒤로는 습격이 멈추었으나, 추후 어떻게 될지는 확신할 수 없으니, 별도의 지시가 하달될 때까지 그대는 부대를 통솔해 주변을 경계하시오.]이후로는 현재 파악된 피해 규모와 이번 습격을 자행한 적들에 대한 정보들이 짧고 명료하게 공유가 됐다.
그리고…….
[이 정도면 알아야 할 것은 다 전달한 듯하군. 이제 그대가 해보시오. 정말로 혈기사였소?]상관의 물음에 레이븐은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군더더기 없이 정리해 보고를 올렸다.
혈기사를 막기 위해 남은 것.
몰아붙이던 중 적들의 지원군이 가세한 것.
그리고 전투 중 ‘등대지기’를 살해하고서 다중 순간이동 마법을 통해 후퇴한 것까지.
과정은 몇 마디로 생략한 채 정말로 간략하게 결과만을 보고했다.
단순히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그랬다면 이 말에 어색하게 입을 다물 일은 없었을 테니까.
[등대지기를 처리했다라… 듣던 중에 실로 반가운 소식이군. 잘해주었소. 혈령후에게도 이후 전공에 대한 포상이 있을 거라 전달해 주고.]상관은 이번 전공이 혈령후의 기여로 이루어졌다 여겼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리헨 슈이츠.
악명 높은 혈기사에게 어느 누구도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있던 것은 그 남자 덕분이었으며, 마지막에 등대지기를 처치한 것도 그였다.
하지만…….
[그럼 이만 끊으리다.]레이븐은 마지막까지 그 말을 하지 못했다.
아니, 어디 그뿐인가?
‘아멜리아 레인웨일즈.’
전투 중에 혈령후만큼이나 활약한 그 여자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았다. 그때 파루네섬에서 만났던 노아르크 출신의 그 여자인 게 분명함에도.
의도적으로 정보를 감췄다.
거짓을 말하진 않았다고는 해도, 군인으로서의 의무를 저버린 것은 틀림없는 사실.
“하아…….”
언제나 성실하게 자신의 역할을 해나갔던 그녀는 깊은 가책을 느꼈다.
그러나 뭐 어쩌겠는가.
일단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을.
‘리헨 슈이츠…….’
그런 이름으로 스스로를 소개한 남자.
이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그 남자가 에르웬이 그 사람과 닮은 사람을 구해 데리고 다닌다고 생각했다.
다만 [거대화]를 보고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만약 닮은 사람이 아니었다면.
에르웬이 ‘아저씨’라 부르던 것도 그게 이유였던 것이라면.
정말로, 사실 그 사람이 살아 있었던 거라면.
“……모르겠어.”
혼란스럽다.
그 무엇도 확신하기가 어렵다.
정말 그 사람인가 싶다가도, 그저 닮은 점이 많은 사람인가도 싶다.
명백하게 다른 점들도 많았으니까.
‘키와 얼굴.’
그리고.
[당신… 드, 드, 등이……!]자기도 모르게 상처로 손을 뻗었을 때, 만져진 피는 뜨겁고 끈적했을 뿐이었다.
그 사람 피라면 따가웠어야 했을 터인데.
또한, 차이점은 또 있다.
‘…너무 강해.’
혈기사의 오러를 막는 몸뚱이.
마법을 튕겨내던 특이한 능력.
거기에 바람을 이용해 적을 끌어당기던 이능까지.
예전의 얀델이었다면 저런 강적들을 상대로 이런 신위를 보여 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흘렀으니까.’
새 정수를 먹고 더 강해졌을 가능성도 있겠지.
칠강의 일원인 에르웬이나 본인만 하더라도 2년간 많이 바뀌었으니까.
‘그렇다면…….’
단기간에 주입된 수많은 정보들을 정리할수록 레이븐은 비요른 얀델이 살아 있었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우는 자신을 발견했다.
결정적인 것은 아멜리아의 존재였다.
결국 무엇도 밝혀내지 못했으나, 그 사람의 죽음에 납득되지 않는 의문이 남아 있던 건 사실이니까.
한데, 함께 실종됐던 사람이 멀쩡히 살아 있다?
이는 그 사람이 생존해 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나 진배없다.
다만, 문제는…….
‘정말 얀델 씨인 거면,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지?’
비요른 얀델은 악령이다.
이미 왕가에서 그렇게 정식으로 공표를 하였으며, 공표를 하기 전에도 그녀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야 그 표정을 보고 말았으니까.
[얀델 씨가 악령이란 소문이 날 거라 하셨는데, 그거… 그냥 소문이 아닌 거죠?]동료들 중에서 얀델과 가장 오래되고 깊은 관계던 미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떨리는 그 눈에는 진실이 담겨 있었다.
따각, 따각.
레이븐은 정말이지 오랜만에 손톱을 물어뜯었다.
심리적으로 몰렸을 때나 나오는 버릇이었다.
평소와 다르게 자기객관화가 전혀 되지 않았다.
그 남자가 얀델이길 바라면서도, 아니기를 바라는 나 자신이 있다.
하지만…….
“뭐, 어쩌겠어. 확인해 봐야지.”
이내 레이븐은 결심을 끝마쳤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아무리 두렵다고 해서, 해야 할 일을 미루고 도망쳐선 안 된다는 것을.
***
No. 399 침묵의 우리.
일정 반경 내로 공간 이동 계열 능력이 사용됐을 때 발동되는 트랩형 넘버스 아이템.
“그 여자… 영영 안 오는 건 아니겠죠?”
“올 거다. 그것도 아마 이제 곧.”
“어떻게 확신하세요?”
“이 철창이 언제까지고 유지되는 건 아니니까.”
정확히는 한 번 발동되면 2시간 동안 지속이 됐다.
그런 주제에 쿨타임은 엄청나게 길었고.
‘게다가 가둬 둔 상태로 패는 것도 불가능하지.’
이는 침묵의 우리의 결정적인 약점이었다.
오직 ‘구속’만을 위한 아이템이라 해야 하나?
이 아이템이 발동되면 외부에서의 공격도 전부 차단이 된다.
따라서 보통은 이걸 써서 가둔 다음에 포위 진형을 펼치고 해제가 됐을 때 다구리를 놓는 식으로 연계를 하는데…….
툭.
복도 너머에서 발소리가 울려 퍼진 순간, 간수 역할을 맡은 병사가 그 방향을 향해 군례를 올렸다.
“니아 라프도니아!”
그래, 온 거구나.
“잘 감시해 줘서 고마워요. 이들과 나눌 얘기가 있으니 잠시 자리를 비켜 주시겠어요? 아, 여기서 있었던 일은 모두 비밀로 해주시고요.”
“예!”
약 1시간 만에 돌아온 레이븐은 혼자였고, 병사까지 물리며 듣는 귀도 없앴다.
긍정적인 징조이긴 했으나, 안심하긴 일렀다.
철창 앞에 멈춰선 채로 가만히 안을 들여다보던 레이븐에게 내가 먼저 물었다.
“…우릴 어쩔 셈이오?”
“아직도 그런 말투를 쓸 생각이에요?”
허, 초장부터 세게 나오는구만?
그냥 이쯤에서 정체를 밝히고 도와달라고 설득을 해보는 게 좋으려나?
그런 고민을 하던 중 레이븐이 말을 이었다.
“…투구, 벗어봐요.”
어차피 얼굴이야 한 번 깠었기에, 순순히 등대지기의 핏자국이 묻은 투구를 벗었다.
의외로 레이븐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입고 있는 갑옷도요.”
허허, 나를 뭐로 보고.
남녀칠세부동석이랬거늘.
“부당한 성적 요구에는 따를 수 없소. 만약 내가 여자였어도 그러한 요구를—”
“아니, 지금 뭐라는 거야.”
논리적으로 갑옷을 벗을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려 했으나 레이븐은 정색하며 나를 쳐다볼 뿐이었다.
아니, 그러니까 좀 무서운데…….
“아직 당신에 대한 이야기는 보고하지 않았어요. 거기 옆에 레인웨일즈 씨에 대해서도요. 하지만, 제 요구에 따르지 않는다면 이야기가 달라—”
“벗지.”
“말이… 짧아졌네요?”
뭐래, 어차피 이미 빠져나갈 방법이 없구만.
나는 길게 대꾸하는 대신 등 뒤가 작살 난 갑옷을 벗었다.
그리고…….
“……!”
그때 처음으로 레이븐의 표정에 변화가 생겼다.
어딘가 동요한 듯한 그 시선은 갑옷 안에 숨겨져 있던 내 문신 위에 고정되어 있는 상태였다.
후, 차라리 이렇게 되니까 속이 시원하네.
“오랜만이다, 레이븐.”
“…….”
“왜 대충 예상했던 거 아니었나?”
내 물음에 레이븐이 입술을 짓무르며 나를 노려보았다.
“그래도… 아니길 바랐어요.”
“내가 악령이라서?”
“그래요. 차라리 좋은 추억으로만 남았다면 좋았을 것을…….”
레이븐이 씁쓸한 목소리로 말꼬리를 흐렸다.
이에 나 역시 심장이 조여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 너는 내가 악령이라는 것까지는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인 거구나.
“잠깐만!”
“……?”
“레이븐, 내가 악령이라는 건 오해다.”
나는 서둘러 설득 과정으로 들어섰다.
“오해?”
“그래, 나는 악령이 아니다.”
“그럼 그 꼴은 뭔데요?”
나를 보며 레이븐이 주먹을 꽉 쥐었다.
“보아하니, 아이나르 씨가 먹었던 ‘본나이트’ 같은 정수를 먹어서 키를 줄인 거 같은데……. 악령이 아니라면, 굳이 그렇게까지 하면서 정체를 숨길 이유가 없잖아요?”
그래, 그 물음이 올 줄 알았지.
“내가 돌아왔을 땐 이미 왕가에서 그런 공표를 한 후였다. 알아보니 어딘가 미심쩍은 부분이 많더군. 그래서 일단 당분간 정체를 숨기고 있던 거다.”
“……그 공표에 수상한 점이 많다는 건 인정해요. 하지만 당분간? 그리고 돌아왔다니요? 그건 대체 무슨 소리죠?”
오케이, 호기심을 끌어내는 건 성공한 거 같네.
“긴 이야기다. 기록의 파편석이라는 게 있는데—”
“잠깐!”
그간 있었던 일들을 설명하려던 차, 레이븐이 끼어들며 대화를 중단시켰다.
“구구절절 말할 필요 없어요. 이거면 충분하니까.”
그리 말하는 레이븐의 손에는 익숙한 물건이 쥐어져 있었다.
No.7234 어긋난 신뢰.
발동 시 반경 10m 내에서 결코 거짓을 말할 수 없게 하는 횟수 소모형 아이템.
“얀델 씨라면 이게 뭔지 알겠죠? 예전에 도플갱어 숲에서 파르테이안 씨에게 받았던 물건이에요. 전에 군 예산이 남아서 소모된 횟수를 채워 놨었죠.”
어휴, 준비가 철저하기도 해라.
후우우웅-!
그사이 전원 버튼까지 켰는지, 나침반 크기의 원판에 박힌 시침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자, 그럼 이제 말해 봐요. 그게 정말 오해인가요?”
레이븐이 나를 뚫어지게 응시하며 물었다.
‘…잘 되겠지?’
그리 생각하면서도 제법 긴장이 됐다.
아우릴 가비스의 ‘선물’이 제대로 작동되는지 실제로 확인해 본 건 아니니까.
나중에 ‘어긋난 신뢰’나 그 비슷한 물건을 사서 한 번 확인한 다음에야 검증대에 오를 계획이었다.
하지만…….
“레이븐, 정말로 오해다. 나는 악령이 아니다.”
그래, 이렇게 말이 나오는 걸 보니까 ‘선물’이 제대로 작동하기는 하는—
딸깍.
그때 잘 돌아가던 시침이 멈추었다.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죠?”
“어…….”
내가 말꼬리를 흐리자 시침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잠깐 오류가 생긴 건가?
“그건 나도 잘 모르겠는데…….”
서둘러 모르쇠로 일관하자, 다시금 째깍 소리를 내며 어긋난 신뢰가 작동을 멈췄다.
그리고…….
째깍, 째깍.
잠시 시간이 흐르며 다시금 움직임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왜 얀델 씨가 말할 때면 ‘어긋난 신뢰’가 멈추는 거죠?”
레이븐의 물음에 침을 꿀꺽 삼켰다.
‘아니, 앞으로 이런 물건에 영향을 받지 않을 거라더니…….’
망할 늙은이.
이런 식으로 되는 거면 미리 말을 해줬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