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629)
629화 버려진 도시 (2)
14구역, 수용소 비프론.
원래는 ‘라비기온’의 도시 구역으로 분류됐으나, 지금은 통행 금지 구역으로 지정되며 이제는 아예 차원 광장마저도 사라진 구역.
사실 이곳도 탈출 루트 후보 중 하나였다.
일단 비프론으로 넘어간 다음에, 비프론에서 4구역으로 넘어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니까.
“하지만 비프론엔 수호마법진이 작동 중이라 일반적인 방법으로 성벽을 넘는 게 불가능해요.”
“그 문제는 괜찮다. 하수도에 있는 비밀 통로를 이용하면 수호마법진이 있어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으니까.”
“그런 게 있다고요……?”
“그래. 예전에 20일 동안 유배된 적이 있는데, 그때 우연히 알게 됐다.”
참고로 당시 통로에 대해 알려 준 게 바로 아멜리아였다.
“아! 그때! 기억난당! 엄청 걱정했었는데…….”
아무튼, 비프론까지 가는 방법이 있음에도 이 루트는 최종 채택되지 않았다.
그야 하수도에도 병력들이 바글바글했거든.
때문에 성벽을 노리는 게 차라리 낫겠다고 판단했다.
애초에 하수도를 뚫을 거면 비프론을 경유할 필요없이 그냥 도시로 향하는 게 합리적이었다.
무엇보다 비프론 자체에 문제가 있기도 했고.
“비, 비프론 말입니까?”
“……거기를 가는 건 너무 찝찝한데.”
“우리는 지금 해독약도 없지 않습니까!”
일단 탈출 계획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병력들이 필요한데, 대부분의 탐험가들은 비프론 자체를 엄청나게 껄끄러워했다.
하긴, 나라도 방사능 지역에 방호복도 없이 들어가야 한다고 하면 저럴 거 같긴 하지만.
‘……여기서 사실 마녀의 독 같은 건 없다고 할 수도 없고.’
성벽 바깥이 멀쩡하단 걸 아는 나지만, 귀족이 된 자로서 이들에게 그런 말을 할 수는 없다.
그런 소문이 도는 거랑, 귀족이 공식적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건 확연한 차이가 있다.
‘…뭐, 생각해 보면 아예 없는 것도 아닐 테니까.’
바깥은 멀쩡하다.
한데 비프론에서는 매일 마녀의 독 때문에 병을 앓고 죽어가는 이들이 나온다.
하면,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왕가에서 독을 먹이든 뿌리든 한 거겠지.’
여하튼, 그러한 이유들 때문에 비프론으로 간단 계획은 철회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때와 상황이 달라졌기에.
“베헬—라아아아아아아아아!!”
전투 함성을 내지르며 하수도를 내달린다.
천장이 낮아 [거대화]도 쓰지 못하는 탓에 모든 전력을 쏟아부을 수는 없으나, 크게 거슬리지는 않다.
지형의 영향을 받는 건 적들도 매한가지니까.
콰아아아앙-!
저쪽도 무너질 걸 우려해 파괴적인 마법이나 이능은 쓸 수 없다.
또한, 뻥 뚫린 지형이 아니라 수십 명의 공격을 한 번에 받아내지 않아도 된다.
어느 정도 스펙을 완성시킨 방패바바 입장에선 충분히 버틸 만한 것인데…….
그래도 조금 야속하긴 하다.
‘거, 비프론으로 가도 안 막는다더니.’
그 약속은 성벽에 주둔 중인 병력에 한해서였던 걸까. 아니면 서로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원할하게 돌아가지 않아 말이 전달이 되지 않은 걸까.
알 수 없지만, 하수도에 배치된 병력들은 우리가 아래로 내려가자마자 집요하게 우리를 공격했다.
“마, 막지 말고 물러서라! 거리를 유지해!”
“으아아악!”
비밀 통로까지 향하는 길은 나 혼자 도맡아서 뚫었으나 그럼에도 피해는 속출했다.
1층 수정 동굴 때와 비슷한 구도였다.
하수도는 개미굴처럼 얽히고 얽힌 지형이었고, 측면과 후면에서도 공격이 이어지다보니 뒤따르는 이들에게서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멤버들은 아이스록 때처럼 한 명 한 명이 정예인 것도 아니니까.
3층 이하에서 활동하던 하위 탐험가들이 이런 대규모 전투에서 자력으로 살아남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두근-
생전 피워본 적도 없는 담배가 피고 싶어진다.
‘……몇이나 죽었을까.’
희생이 없을 수는 없다.
이 야만적인 세상이 그렇다.
하나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음에도 이런 결정을 내릴 땐 언제나 마음이 무겁다.
나쁜 건 전부 노아르크 새끼들이라고.
나는 아무런 잘못도 없다고.
그리 여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냥 길을 열어줬을 때 성벽을 타고 갔다면, 안 죽어도 될 사람들이었겠지.’
물론 내 결정 자체는 후회하지 않는다.
단지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싶을 뿐이다.
내가 조금 더 큰 사람이었다면, 그 무엇 하나 포기하지 않아도 됐을 테니까.
그래, 그러니까…….
꽈악-
방패를 어깨로 밀며 나아간다.
여태 수많은 고난을 겪으며 몇 번이나 반복한 일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조금 감회가 남달랐다.
쉬워도 너무 쉽다고 해야 하나?
“…이 무슨!”
“뒤로! 뒤로 가……!!”
아이기스의 장벽이 있는 이상, 일자형 통로에서 날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게, 가드가 성공하는 순간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는 바바리안이 무식하게 돌진하는데 어떻게 막을 것인가.
“얀델! 멈춰라!”
이내 한참을 내달리던 나는 아멜리아의 외침을 듣고서야 질주를 끝냈다.
“도착했다.”
정신 없이 뚫느라 다 온 줄도 몰랐네.
***
비프론으로 이어진 비밀 통로 입구에 도착한 뒤로는 한결 쉬웠다. 통로엔 대기 중인 병력도 없었고, 추격은 아예 포기했는지 뒤따라오는 놈들도 없었다.
덕분에 속도를 낮추고 한결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는데…….
“현재까지 피해는?”
전반적인 인원 관리를 도맡던 베르실에게서 피해 보고를 들었다.
물론 베르실조차 피해를 정확한 숫자로 알고 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7등급 이하 탐험가들의 피해가 가장 컸어요. 비교적 안전한 곳에 배치한다고 했는데…….”
“그렇군.”
“그래도 얀델 씨가 길을 열은 덕분에 이 정도 피해로 그칠 수 있었어요.”
추산된 숫자만으로도 씁쓸한 감정이 올라온다.
이젠 무뎌질 법도 한데.
갱년기라도 온 것인지, 나는 점점 더 그 숫자들이 단순한 숫자로만 보이지 않는다.
“…얀델, 무슨 생각 중이지?”
“아무것도.”
“…….”
아무튼, 이후 비밀 통로를 타고 한참 동안 이동하고 있자니 비프론의 하수도 구역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그리고…….
“얀델, 사람이다.”
해당 하수도 구역에 도착하자마자 낯선 인물들과 조우할 수 있었다.
다행히 노아르크의 병력은 아니고…….
“보, 보스?”
놀랍게도 내가 아는 인물들이었다.
“보스라니……? 너 설마?”
이내 당장 손을 뻗어 머리채를 쥐어뜯자, 가발이 벗겨지며 익숙한 해파리컷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니까 이름이…….
“…징징이?”
“……예, 예! 접니다! 징카사르 펠쟈인! 보스의 충실한 오른팔!”
오른팔이나, 본명은 잘 모르겠고.
몇 년 전에 비프론에서 머무를 때 내 수발을 들던 그 녀석이 맞았다.
하지만 반가운 건 반가운 거고.
“그래서 너는 여기서 혼자 뭘 하던 거냐?”
“그… 아무래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서. 비프론을 탈출할 방법을 찾고 있었습니다.”
하긴, 얘는 내 덕분에 비밀 통로 존재를 알고 있었으니까.
언제든 올 수 있으니 똑바로 살라는 뜻으로 존재를 알려준 건데, 막상 일이 바빠서 한 번도 오지 못했다.
아무튼, 일이 이렇게 되자 그게 떠올라서 혼자 막 찾고 있던 모양인데…….
“부하들은 다 버리고 혼자서만?”
한심하다는 듯 눈살을 좁히자 징징이가 손사레를 치며 항변했다.
“아니, 아니 그럴 리가요! 저도 그때와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음, 그런가?확실히 예전보다 머리가 더 빠지긴 했는데…….
“애초에 저 혼자 살아서 뭐 하겠습니까? 이제 살 날이 얼마나 남았다고……. 통로만 찾으면 밖으로 나가 소식을 확인해볼 생각이었습니다!”
“아, 그런 식으로 달라졌다고…….”
“…예? 그럼 뭐가 달라진 줄…….”
“됐고, 몇 가지 물을 테니 답이나 해라.”
하수도에서 현지인을 만난 김에 재빨리 도시 사정부터 체크했다.
혹여 노아르크 놈들이 이쪽도 이미 침공했을 수도 있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노아르크… 말씀입니까? 아, 설마 이 소란이 다 그놈들 짓입니까?”
징징이는 이번 사태가 노아르크 때문에 생긴 일이라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왕가 측에서 어떠한 말도 안 해줬다던가?
“그… 갑자기 소란이 일며 병사들이 검문소 문을 걸어잠그더니, 이후 대기하란 말을 끝으로 어떤 연락도 없었습니다. 한데 성벽 쪽에서는 막 싸우는 소리만 들리고……. 그래서 주민들이 엄청나게 불안해했습니다.”
아무리 비프론이라 해도 좀 너무한 처사였다.
전쟁이 났는데, 전쟁이 났다고는 말해줄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래서군. 탈출이 아니라 소식을 들으려 바깥에 나간다고 했던 게.”
“예……. 저는 밖이 그런 상태인 줄도 몰랐습니다. 노, 노아르크가 침공을 했다니……. 어, 얼마나 심각한 상황입니까?”
“7구역과 13구역이 놈들에게 점거당했다. 우린 지금 그런 7구역에서 겨우 빠져나온 상태고.”
“그, 그런……!”
도시 구역 두 개가 함락됐다는 말에 징징이의 입이 떡 벌어졌지만, 놀라고 있는 걸 기다려 줄 시간은 없었다.
“일단 따라와라. 얘기는 가면서 하지.”
이후 나는 이동하며 징징이에게 정보를 들었다.
최근 나타난 수상한 놈은 없었는지부터 시작해 내가 떠난 이후 도시가 어떻게 바뀌었는지까지.
“비프론 말입니까……? 아! 일단 보스의 당부대로 배급소로 들어오는 물품은 모두 공평하게 나눠 갖고 있습니다. 어른이나 아이든 전혀 다를 게 없이요.”
“잘했군.”
“또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배급소에서 물건이 남으면 다들 한 마음 한 뜻으로 경비에게 부탁해 물품을 책으로 바꾸기도 하고…….”
“책으로 바꾼다고?”
“예……. 책이 아니더라도 각자 재주가 있으면 아끼지 않고 아이들에게 알려줍니다.”
“어째서?”
“…적어도 아이들은 도시에 들어가 살 수 있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야 뭐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그 말에 나는 걸음을 멈추고 징징이를 보았다.
“…이름이 뭐지?”
“지, 징카사르 펠쟈인입니다마는?”
“징카사르 펠쟈인. 너도 많이 변했군.”
징징이는 처음으로 이름을 불러준 것에 잠시 움찔하다 자조 섞인 미소를 내지었다.
“몇 년이나 지났지 않습니까…….”
“그랬지.”
“예……. 보스만 봐도 그렇지 않습니까? 얼마 전에 남작님이 되셨다고……. 아, 여기! 여기로 가면 바로 광장입니다!”
이후 현지인이 알고 있던 지름길을 통해 지상으로 빠져나오자, 익숙하면서도 뭔가 낯선 비프론의 모습이 나타난다.
“……이곳도 많이 변했군.”
훨씬 더 깔끔해졌다 해야 하나?
폐쇄된 여기 이 차원 광장만 해도 예전에 왔을 때는 정비도 제대로 안 돼서 폐허에 가까웠는데.
“다들 열심히 노력해 준 덕분이지요…….”
징징이는 그리 말했지만, 제일 열심히 한 게 이 녀석이라는 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펠쟈인 님!”
“와! 펠쟈인 아저씨다!”
“아저씨!! …어?”
광장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이 징징이를 보자마자 반갑게 인사를 해온다.
뭐, 그것도 뒤에 서있는 나, 그리고 7구역에서 온 수백 명의 탐험가들을 확인하기 전까지였—.
“무서워 하지 마라! 여기 이분이 바로 얀델의 아들 비요른, 바로 그 거인 남작님이시니까!”
응?
“와아아아, 정말요?”
“거인 남작이다! 거인 남작!!”
“와아아아아!”
어째선지 내 이름을 듣자마자 아이들이 더욱더 흥분하며 달려든다.
사실 낯선 상황은 아니었다.
도시의 어린 아이들은 ‘큰 것’과 ‘탐험가’를 전부 좋아하니까. 유명세를 얻은 뒤엔 도시 어디를 가든 이런 시선이 뒤따랐다.
하지만…….
“거인 남작님! 감사해요!”
이런 말을 들은 적은 처음인 거 같다.
“감사……?”
내 중얼거림을 들은 징징이가 머쓱한 표정으로 답했다.
“아이들에게 보스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도시를 구한 영웅이라고…….”
“쓸데없는 짓을 했군.”
“아이들에겐 희망이 필요하니까요. 게다가 틀린 말도 아니지 않습니까?”
“……?”
“비프론이 이렇게 변한 건 보스 덕분이니까요.”
“……크흠.”
얘는 변했다더니 무슨 아부만 엄청 늘었네.
예전에는 이런 쪽으로는 영 별로였는데.
“전군 정지!”
일단 목적지에 도착도 했겠다, 나는 재정비부터 시작했다.
부상자들은 광장에 뉘여 신관들에게 치료를 받도록 했고, 여력이 있는 이들에게는 주변 조사를 부탁했다.
그리고…….
“펠쟈인, 너는 날 따라와라.”
나는 징징이만을 데리고서 4구역 검문소로 향했다.
점거당한 13구역과 7구역이 아닌 만큼, 여기를 통해 도시와 접촉이 가능할 수도 있단 판단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없군.”
이게 어찌된 일일까.
앞에서 소리를 내지르고 벽을 쾅쾅 두드려도 아무런 반응도 돌아오지 않는다.
비프론 현지인인 줄 알고 무시하는가 싶어서 내 이름과 신분을 밝혀도 마찬가지였다.
“원래 이쪽 검문소는 폐쇄된 지 오래라…….”
“폐쇄된 검문소인 거야 나도 안다.”
“그런데 여긴 왜…….”
그야 상황이 상황이니까.
4구역 검문소가 평상시에는 폐쇄된 상태라 해도, 이런 상태에서는 사람을 두지 않았을까 싶었다.
“후우…….”
꽤 골치가 아파졌다.
비프론에 오면서 이 검문소를 타고 안전한 도시 구역으로 나가거나, 연락을 취하는 등의 상황을 기대하고 있었건만.
그런 쪽의 기대가 전부 빗나간 것이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단 말이지.’
애초에 왕가에서는 왜 이쪽은 그냥 방치만 하고 있는 걸까?
내가 지휘관이라면 4구역 검문소를 활성화한 뒤, 바로 비프론에 병력을 투입해 우회해서 7구역과 13구역의 전선을 최대한 늘렸을 텐데.
‘…게다가 노아르크 놈들은 또 어떻고?’
이해가 안 되는 건 이놈들도 마찬가지다.
이놈들은 7구역을 점거해 놓고서 비프론 쪽엔 병력을 전혀 배치하지 않았다.
마치 왕가에서 그쪽으로는 쳐들어올 일은 없다고 확신이라도 하는 것처럼.
“…….”
다만 의문이 커질수록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여기 이 비프론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떠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
그래, 그러니까…….
툭, 툭.
지금부터 그걸 알아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