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 Master Healer RAW novel - Chapter 95
95
소드마스터 힐러님 095화
32장 광견의 죽음(1)
여론몰이가 시작되면서 일성 길드는 집행부를 동원하여 아무 죄 없는 선량한 헌터를 공격하는 악질 길드 이미지가 되었다.
만족스러운 결과였기 때문에 성준은 미소 지을 수 있었다.
그는 일성 길드를 향한 공격을 유보하기로 했다. 여론이 정점에 오른 순간에 그들을 향한 공격을 개시할 생각이었다.
여론몰이가 시작되고 며칠 뒤, 정철이 성준을 찾아왔다.
“일을 잘 처리해 주셨더군요.”
두 사람은 성준의 오피스텔 근처 공원에서 만났다. 성준이 먼저 정철을 칭찬했다. 그의 여론몰이는 만족스러운 결과를 낳았다.
“제가 한 일은 별로 없습니다.”
정철이 대답했다.
“한 일이 별로 없다니요? 이렇게 결과가 좋은데…….”
“분명 여론몰이의 시작은 저희가 했습니다만, 본격적인 진행은 저희가 주도한 게 아닙니다.”
정철은 제삼자의 개입을 말하고 있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자세히 설명해 주시죠.”
성준의 물음에 정철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입을 열었다.
“저희의 여론몰이를 이끌고 돕던 보이지 않는 손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조사해 보았더니 청룡 그룹에서 움직인 것 같더군요. 아니, 확실합니다.”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 것 같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성준이 말했다.
청룡 그룹이 개입했다면 설아 또는 태석이 나섰다는 것인데 누가 움직였든 간에 나쁜 의도는 없었을 것이다.
‘조만간에 윤설아를 한 번 만나야겠어.’
도움을 받았으면 감사를 표하는 건 예의였다.
“아무튼 일성 그룹에서 반박 공작을 펼쳤지만, 청룡 그룹에서 막아준 덕분에 저희 측 공작이 이렇게 효과가 있었던 겁니다.”
“청룡 그룹의 개입이 도움이 되었다는 말씀이시지요?”
“그렇습니다.”
“그거면 충분합니다.”
성준은 미소 지었다.
“공격은 언제 시작할 생각이십니까? 여론몰이는 충분합니다. 일성 그룹까지 엮는 건 불가능했지만 적어도 일성 길드만큼은 강성준 씨가 원하는 ‘악당’ 역할이 되었습니다.”
정철이 말했다.
현대 사회에서는 명분이 중요했다. 여론몰이를 통해 성준은 완벽한 피해자가 되었으며 모든 명분은 그에게 있었다.
“일성 길드가 ‘악당’이라면 ‘주인공’이 처단해야겠군요.”
“옳은 말씀입니다.”
일성 그룹까지 엮는 것은 무리였지만 일성 길드는 ‘악당’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이제 여론은 그의 정당방위를 지지할 것이다.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성 길드 집행부 소속 헌터들의 명단을 확보했습니다. 간단한 정보 정도는 기록되어 있으니까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정철은 성준에게 서류 봉투를 하나 건네며 말했다. 성준은 봉투를 열어서 서류 몇 장을 확인했다.
“확실한 정보인 것 같네요.”
“저는 불확실한 정보는 취급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주의입니다.”
정철의 대답에 성준은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그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일주일 안에 공격을 시작할 겁니다. 여론 쪽은 맡기겠습니다.”
“대량 살상 아이템을 넘겨주기로 하셨으니 저는 최선을 다해 도울 겁니다.”
성준은 정철의 도움을 얻는 대가로 일성 길드에서 확보한 대량 살상 아이템을 하나를 제외하고 모두 그에게 넘기기로 했다.
“슬슬 가봐야겠습니다.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정철과 작별을 고한 뒤, 오피스텔로 돌아온 그는 소파에 몸을 기댄 채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생각에 잠겼다.
“여기나 저기나 사방이 적이야.”
성준의 혼잣말에 거실을 서성이고 있던 리슈발트가 가까이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적이라면 베어 버리면 그만입니다.
리슈발트 다운 간단명료한 해답이었지만 성준은 고개를 저었다.
“이쪽 세상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
-그렇다면 용서할 생각이십니까?
“용서? 적한테 그런 건 사치야.”
제국의 전장에서 수십 년을 살아오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결코 적에게 자비를 베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성준의 대답을 들은 리슈발트는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이제야 주군답습니다.
성준도 피식 웃으며 커피잔을 비웠다.
“일찍 자야겠다. 생각이 바뀌었거든.”
-주군……?
“내일 저녁에 일성 길드 하우스를 칠 거야.”
-선전포고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리슈발트가 물었다.
선전포고는 불필요한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명분 확보에 이처럼 좋은 것은 없었다. 성준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차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공격 사실을 공지하는 게 아무래도 보기 좋겠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공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아 있는 자들은 죽여도 좋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리슈발트가 대답했다. 성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내일 바로 공지해야겠어.”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성준은 헌터닷컴을 통해 저녁에 일성 길드 하우스를 공격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며 휘말리기 싫은 이들은 피하라는 내용의 게시글을 올렸다.
게시글을 올린 지 10분이 지나기도 전에 베스트에 올랐고 수십 개 이상의 댓글이 달렸다.
[선! 전! 포! 고!] [정당방위가 진짜 칼을 뽑아 들었다!] [그냥 공격해도 될 텐데, 신사적이네요.] [쓸데없는 피해도 줄이고 좋은 듯.] [이제 길드 하우스에 남아 있는 놈들은 다 죽여도 될 듯요.]헌터닷컴 이용자들의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기습의 이점을 버리고 불필요한 사상자를 줄이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듯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호감을 끌어내는 데 충분했다.
헌터닷컴을 종료한 성준은 은주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강성준입니다.”
-성준 씨? 저에요, 은주.
“말씀하세요.”
-오늘 저녁에 일성 길드 하우스를 공격한다고 들었어요.
“소문 참 빠르네요.”
성준은 가벼운 웃음을 흘렸다.
-성준 씨가 헌터닷컴에 글 올렸잖아요. 소문 다 났어요.
모든 헌터들이 헌터닷컴을 이용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지 않은 수가 이용하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을 통한 소문 전파가 결코 느리다고 할 수 없었다.
“오늘 공격할 겁니다.”
-일성 그룹에서 지원받은 자금으로 길드에서 PMC까지 고용했어요. 혼자 괜찮으시겠어요?
던전 레이드 사태 발생 이후, 안전을 위해 대한민국에도 다수의 PMC, 민간 군사 기업이 생겨났다.
일성 길드는 그룹에서 지원받은 자금을 바탕으로 닥치는 대로 근처의 PMC를 고용하고 있는 듯했지만 쉽지는 않았다.
성준의 선전포고 때문에 S급 헌터와 대적하기를 두려워한 나머지 대다수의 PMC들이 일성 길드의 제안을 거절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이 제안을 받아들인 곳은 소수에 불과했다.
“괜찮습니다. 원래부터 혼자였습니다.”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성준 씨는 혼자가 아니에요.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말만 이러는 거 아니에요. 저도 합류할게요.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은주는 큰마음 먹고 말했지만, 성준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녀가 합류하면 명분이 다소 퇴색될 수도 있다.
-하, 하지만…….
“최은주 씨의 마음은 잘 알겠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으으…….
뜻대로 되지 않자 은주는 신음을 흘렸다. 스마트폰 너머로 그녀의 표정을 쉽게 예측할 수 있었기에 성준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저를 잘 아시지 않습니까? 일성 길드 전원이 덤벼도 저를 이길 수 없을 겁니다.”
성준의 목소리에서 자신감이 넘쳤다.
-믿을게요.
통화가 끝났다.
성준은 장비를 점검한 뒤, 저녁 6시가 되기 무섭게 움직였다. 일성 길드 인근까지 차를 타고 이동했다. 그리고 은신 스킬을 사용한 채 건물 바로 옆까지 접근했다.
‘엄청나게 깔렸군.’
여러 민간 군사 기업이 혼재되어 있는 수비대가 만들어져 일성 길드 하우스인 10층 빌딩 주변을 지키고 있었다.
전차는 없었지만, 장갑차가 순찰을 돌고 있었고 기관총 포대도 여러 곳에 설치되어 있었으며 인근 빌딩에서는 저격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다.
-하찮은 불나방들입니다. 주군의 검 앞에서 1초도 버티지 못할 자들입니다.
리슈발트가 말했다. 은신이 유지되는 중이었기에 성준은 대답하지 못했지만 속으로 동조했다.
저녁 8시가 되었고 경계를 하고 있던 이들이 교대하려는 순간이었다. 성준은 천천히, 무리 안으로 침투하며 검을 들어 올렸다.
동시에 은신 탐지 아이템이 작동하면서 경보가 울렸다.
공격이 시작된 것이다.
* * *
위급 상황, 일성의 길드장인 철민은 도혁의 호출을 받고 급히 그룹 본사 건물에 도착했다. 여러 대의 승강기가 모두 고층에 머물러 있었고 그것들을 기다릴 여유가 없었던 철민은 계단을 이용해 본부장실이 있는 층으로 이동했다.
그도 A급 헌터였기 때문에 계단을 이용하는 게 힘들지는 않았다.
“한철민입니다.”
철민은 노크와 함께 조심스럽게 본부장실의 문을 열었다. 도혁이 심각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외국 PMC 소속으로, 얼마 전에 고용된 루돌프가 도혁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철민은 그를 슬쩍 살핀 뒤, 도혁의 앞으로 다가가 입을 열었다.
“본부장님. 대량 살상 아이템을 포기해야 합니다. S급 헌터 강성준이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거절합니다. 포기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본부장님! 제 말을 듣지 못한 겁니까? 강성준이 길드 하우스를 공격하기 시작했다는 말입니다!”
철민이 언성을 높였다. 도혁의 앞에서 이렇게까지 강하게 의견을 어필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철민은 씁쓸한 표정으로 도혁을 바라보았다.
“대량 살상 아이템을 포기하면 공격을 중단하겠다고 강성준 측에서 밝혔습니다. 지금이라도 대량 살상 아이템을 포기한다면 길드원들을 살릴 수 있습니다.”
“대량 살상 아이템은 그룹에서 보관하고 있습니다. 길드 하우스를 종일 수색해도 찾을 수 없을 겁니다.”
“본부장님!”
“대량 살상 아이템만 있으면 길드는 재건할 수 있습니다. 호들갑 떨지 마세요.”
“사람들이 죽는다는 말입니다!”
철민은 답답한 표정으로 외쳤다. 언제나 그랬지만 도혁과는 말이 통하지 않았다.
“집행부는 다시 만들면 되고 PMC는 고용된 용병들에 불과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희생이 정당화되는 건 아닙니다!”
어느새 그의 손에는 검이 들려 있었고 오러가 번뜩였다. 루돌프는 도혁을 보호하기 위해 방패와 검을 들어 올린 채 철민의 앞을 막아섰다.
“지금 제 앞에서 무기 뽑은 겁니까?”
“당장 대량 살상 아이템을 포기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으면 어쩔 건데요?”
“으아아아!”
철민이 검을 휘둘렀고 루돌프는 방패를 들어 올렸다. 오러 실드와 검의 오러가 충돌하면서 마력 파편이 사방에 튀었다.
치열한 접전 끝에 철민은 루돌프에게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크흑!”
철민은 짧은 신음을 내뱉었다. 언제나 정의가 승리하는 것은 동화 속의 이야기다. 아쉽게도 철민보다 루돌프가 더 강했다.
철민의 부상으로 승기를 잡은 루돌프는 공세를 펼쳤다. 철민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목에 깊은 상처를 입고 쓰러졌다.
“구질구질하게…….”
그는 죽어가면서도 도혁을 향해 기어갔다. 그 모습을 본 도혁은 품속에서 권총을 꺼내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총성이 울리고 총알이 철민의 머리통을 꿰뚫었다. 도혁은 루돌프를 보며 입을 열었다.
“대량 살상 아이템 사용 가능합니까?”
“SS급은 마력이 부족해서 무리겠지만, S급까지는 가능할 것 같습니다.”
“비밀 금고로 가죠.”
도혁은 미친 게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