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028)
제 1111화
247화. 라프라로사 해방 전쟁(17)
콰아아아……!
진이 말한 직후 통로의 한쪽 투명한 벽이 허물어지며 갑자기 검은 기운이 쏟아졌다.
혼기였다. 진과 무라칸은 곧바로 검과 날개를 휘둘러 폭발한 혼기를 밀어냈으나, 묘한 위화감에 휩싸였다.
[꼬마, 이거…….] [로키아의 혼기가 아니야, 무라칸.] [역시, 그렇지? 아오, 어떤 놈이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혼기를 쓰는 다른 놈들이 여기로 침입했을 리는 없는데.]그 말대로였다. 내내 전장을 뒤덮고 있던 명왕군림검의 뇌기를 뚫고 진 몰래 균열로 들어설 수 있는 적은 없었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로키아조차 진이 직접 묶어두고 있었으니 말이다.
[마녀의 혼기인가? 흠, 그렇게 보기엔 순도가 너무 떨어지는데, 그리 위협적이지도 않고. 혼기와 관련이 있는 잔챙이들조차 이것보다는 순도가 낫잖냐.]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마녀의 것일 수도 있지. 혹은, 솔더렛의 영기가 퇴색된 것이거나.] [뭐? 솔더렛?]진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지금 차원의 벽 속에서 빠져나온 혼기는, 솔더렛이 명왕족을 이 아공간으로 옮길 때 사용한 영기일지도 모른다고.
[솔더렛이 명왕족을 살릴 때 마녀가 그를 방해하다 남은 부산물일 수도 있다는 뜻이야. 스리비, 마살룬, 카르마슈. 이 혼기에선 그 3인방의 기운도 전혀 묻어나지 않으니까.] [흠,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네. 그 말대로라면, 이 차원을 만든 게 애초에 솔더렛이 아니라 마녀일 수도 있겠군.] [그것도 맞는 말이지.]솔더렛, 그리고 마녀 헬루람.
진은 두 초월자의 관계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확실하게 아는 건 영기와 혼기 사이엔 분명 공통점이 있고, 극에 달하면 거의 유사한 성질을 띤다는 사실뿐이었다.
회귀 후 온갖 시련과 사건을 헤쳐 나갈 때마다, 진은 그들이 모종의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 느끼고 있었다.
[무라칸, 솔더렛과 마녀, 그리고 로키아에 대해서 혹시 더 기억난 건 없어?]무라칸이 고개를 저었다.
[없어. 케이탐의 그림에서 내 최후의 순간을 너도 봤잖냐. 내가 그때 흑해에 있던 마녀를 어떻게 찾아갔는지도 모르겠군… 뭐, 로키아의 그 새로운 얼굴이 묘하게 낯익기는 했다.]이번에 그들이 본 로키아의 얼굴은 천 년 전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나도 낯이 익었어. 이제 생각해 보니, 테마르를 닮았기 때문이군.] [아, 맞네! 그 자식, 왜 테마르를 닮은 얼굴을 하고 있던 거지? 지금 가진 능력이라면 자기 얼굴을 얼마든지 유지할 수 있을 텐데. 탈라리스보다도 더 젊어 보일 수 있을 거고. 게다가 완전히 테마르도 아니고, 닮은 얼굴이라니? 하여간 악취미가 있어.] [……테마르의 자식. 그 얼굴이 아닐까?]무라칸이 날개를 멈췄다.
[어……? 자식?]무라칸은 자기 자신에게 충격을 받고 있었다. 천 년 전 전쟁에서 패한 이후 테마르의 핏줄은 한 번도 끊긴 적 없이 이어졌건만, 어째선지 그런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는 것이다. 테마르가 자식을 낳았다는 생각을.
[어 씨, 일리 있어. 누, 누구랑 낳은 거지!? 그 녀석 좋다는 여자가 한둘이었어야…… 아이 씨, 설마 로키아는 아니겠지!?] [네가 생각하기엔 그 경우도 가능성이 있어? 상당히 끔찍한 이야기인데.] [아니, 아니야. 르엣…… 당시 분위기만 보면 르엣이 가장 유력해. 모두가 언젠가는 르엣의 짝사랑이 결실을 맺으리라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르엣은 계속 녀석의 무덤에 갇혀 있었고…… 대체 누구…….]무언가 떠오른 듯 무라칸이 눈동자를 휘둥그레 떴다.
[루시…… 루시다. 루시 룬칸델. 전쟁 이후, 테마르와 루시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 가문을 이어온 거야.]루시 룬칸델.
그녀는 지금껏 진이 현실에서도, 기록에서도 한 번도 직접 마주하지 못한 마지막 남은 십대기사였다.
‘……로키아가 이번에 보여준 얼굴이 정말 테마르와 루시 경의 자식이라면. 로키아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를 이용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라프라로사를 해방한 후, 로키아를 추적해서 알아내야 할 진실이었다. 로키아의 진체와 은신처에 대한 단서는 찾아두었으니 말이다.
무라칸은 충격이 큰 듯 한동안 멍하게 테마르와 루시의 이름을 번갈아 소리 냈다.
[이 자식들이…… 나한테 말도 없이. 어떻게 나한테?] [당시 가문 상황이 어두웠잖아. 무엇보다, 확실한 내용이 아니기도 하지.] [아니, 내 생각엔 확실해. 배신감이 치솟는다! 나도 조카라는 걸 가지고 싶었다고! 야, 꼬마. 넌 나중에 역사쟁이랑 결혼해서 애를 낳기라도 하면 무조건 나한테 알…….] [갑자기 뭔 소리야, 시끄럽고. 얼른 가자, 라프라로사의 형제들을 구한 다음에도 할 일이 산더미다.]이제 적명족이라는 하나의 세력을 멸했을 뿐이다. 지플, 킨젤로, 태양신교, 가네스토, 그리고 어쩌면 마녀 같은 초월자들까지.
전부 세상에서 없애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반드시 형제들의 힘이 필요하고, 특히 반이 무사해야 했다.
그 모든 전쟁을 매번 이토록 힘겹게 끝내면, 적들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었다. 놈들이 계략을 준비하고, 진이 알지 못하는 특별한 방법으로 무언가를 시도하는 그런 행위들을.
차원 폭풍이 점점 더 거세지고 있었다.
무라칸은 영기로 두터운 보호막을 형성했고, 진은 명왕군림검의 뇌기를 계속 회전시켰다. 반의 뇌기가 함께 차원 폭풍을 밀어내지 않았다면 두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만큼 속도를 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지금 진과 무라칸이 겪는 고난은, 아무런 장비도 없는 초심자가 가파른 설산을 오르는 일과 비슷했다.
두 사람 다 이런 식으로 아공간을 넘어선 적이 없고, 차원 폭풍의 충격은 앞선 적들과의 전투가 귀엽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후우, 후우…….
진과 무라칸은 호흡을 고르며 반의 뇌류를 읽어 냈다. 또한 진은, 힘을 아끼고 있었다. 어떤 불상사가 발생했을 때, 명왕군림검을 제대로 유지해야 하는 까닭이었다.
콰득, 콰지짓!
벽이 허물어지는 일이 잦아지고 있었다. 여전히 그 안에선 탁하고 조잡한 혼기가 쏟아졌는데, 때때로 로키아가 남긴 것이 분명한 혼기도 보이기 시작했다.
그건 마녀의 웅덩이, 로키아가 남긴 저주의 흔적이었다. 라프라로사로 향하던 저주가 반의 명왕군림검에 찢겨 통로 곳곳에 결정처럼 박힌 것이다.
반이 일으킨 뇌류에 가까워졌다는 의미였다.
진이 소리쳤다. 목소리는 차원 폭풍에 잘게 부서져 멀리까지 뻗어가지 못했으나, 진은 아랑곳 않고 계속 형제들을 불렀다.
크직, 크저적!
이제 몇 걸음을 옮길 때마다 무라칸의 보호막이 찌그러지고 있었다.
[어지간한 용들도 단숨에 주먹만 한 살덩이로 뭉쳐지겠군. 뇌류에 가까워질수록 압력이 급격히 높아지는 걸 보니, 라프라로사 내부는 최소 이 몇 배는 된다는 건데.]진도 조금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또한, 찾아오길 정말 잘했다는 마음도 함께였다. 밖에서 가만히 해방 장치가 가동되길 기다렸다면 이 고통을 오롯이 반과 형제들끼리만 감당했을 테니까.
[형제들, 내가 왔습니다!]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아공간의 시간은 인세와 다르게 흐르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벌써 몇 시간이 흘렀을 수도 있고, 라프라로사 내에선 겨우 몇 초가 지났을 수도 있었다.
이내 진이 다시 한번 형제들을 부르려는 찰나.
돌연 저 멀리에서부터 뻗어지던 반의 뇌류가 급속도로 잦아들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설마?]무라칸이 소리친 2, 3초 남짓한 사이, 반의 뇌류는 완전히 꺼져버렸다. 진은 대답하지 않고 감각을 끌어올렸다.
‘……반 형제의 명왕군림검은 해제된 게 아니다!’
반의 거대한 뇌기는, 사라진 게 아니라 순식간에 하나의 사물로 수렴한 것이다.
진은 그게 검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명왕군림검의 뇌기 전체가 칼날에 씌어질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무라칸, 피해! 피해야 한다!] [어! 피하고 있다!]진과 무라칸이 좌우로 갈라지며 보호막을 둘렀다.
잠시 후 정확히 그들이 서 있던 자리로, 한 줄기의 시퍼런 섬광이 날아들었다. 진과 무라칸조차 정통으로 가격당하면 답이 없는, 설령 막더라도 이 차원 폭풍 안에선 치명적일 수밖에 없는 검기였다.
명왕군림검의 최종장을 일검으로 압축시킨 것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검기가 남긴 푸른 궤적을 따라 차원의 균열이 우그러지고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검기 속에 혼기가 포함된 사실을 알아볼 수 있었다. 대사막 바깥에서 로키아를 직접 상대할 때도 보지 못한, 강렬한 혼기였다.
[혼기……! 네 형제가 타락한 건 아니겠지? 아니라고 해 줘.]진이 대답해 줄 필요가 없었다.
명왕군림검에 혼기가 섞여 있는 건 어디까지나 지금껏 반이 저주를 묶어두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반이 검기를 쏜 건, 길을 열어주기 위해서였다.
“진 형제! 정말 진 형제야!?”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탄텔, 진이 라프라로사를 찾을 때마다 길잡이로서 마중을 나오는 형제였다.
[탄텔 형제!]탄텔은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야윈 얼굴이었고, 온몸엔 혼기에 물든 검은 상처가 가득했다.
[괜찮아!? 다른 형제들은……!]“좀 다쳤을 뿐 무사하니까 걱정하지 말고, 얼른 여기로 들어와! 반 형제가 통로를 오래 유지할 수 없을 거라고 그랬어!”
그 말이 끝날 때쯤 진과 무라칸은 이미 탄텔의 옆에 닿아 있었다. 막 그가 빠져나온 거대한 균열 안으로 들어선 것이다.
균열은 바로 닫히려고 했다. 이대로 균열이 닫히면, 진은 명왕군림검의 뇌기를 모두 잃은 채 라프라로사로 들어가게 될 터.
[꼬마! 내가 좀 더 붙잡을 테니까 얼른 뇌기 회수해!]다행히도 진은 혼자 이곳을 찾지 않았다. 무라칸이 두 쌍의 날개를 펼치며 균열 사이로 영기를 쏟아 넣고 있었다.
[역시 너를 데려오길 잘했다, 무라칸.]진은 바로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진의 뇌류가 균열 사이로 빠르게 밀려들어 왔다.
이윽고 명왕군림검의 뇌기가 완전히 회수된 순간, 무라칸은 헉헉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면 돌아가서 딸기파이랑 노는 데 방해하지 마라.]균열이 닫혔다. 진은 쓰러지려는 탄텔을 부축하곤,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형제들의 고향, 라프라로사의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