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027)
제 1111화
247화. 라프라로사 해방 전쟁(16)
흔들리던 시마트의 검이 천천히 차분해지고 있었다. 심마에 묶인 시마트의 내면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갔다.
죗값은 이미 정해져 있다.
루나의 말대로 이 싸움에 끌어들일 필요는 없었다.
“벨 수 있는 적을 살려 준다라, 점점 더 청풍제를 닮아가는군.”
시마트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패배감이 밀려드는 와중에도, 이상하게 싫거나 굴욕적이지 않았다.
승패와 상관없는 영원한 고통이 목전에 똬리를 틀고 기다리는 중이건만, 오히려 즐거운 마음마저 들었다.
“창성에 이르자, 나는 오히려 더 선명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청풍제, 그 노인네와 나 사이엔 그래도 큰 격차가 놓여 있었지. 그러나 나는, 본질적으로 내가 그보다 강하다고 확신했다.”
“적들을 더 잔인하게 대했기 때문인가?”
“그렇다. 그자는 대체 어떻게 이 영역에 진입한 것인지, 심지어 어떻게 나보다 더 강하기까지 한 건지,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알겠군. 창성이라는 건 그저 하나의 경지에 불과한 것이다.”
루나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을 짊어지고 있는가, 어떤 면에선 경지보다 그게 더 중요하지. 그런 의미에서 내가 나와 동포들을 위한 욕망으로만 닿은 이 경지는, 그저 초라할 뿐이다.”
스스스……!
시마트의 검이 앞으로 뻗어졌다. 둘 사이에 존재하던 거리가 사실은 허상이었다는 듯이, 칼날은 갑자기 루나의 눈앞으로 날아들었다.
루나는 부드럽게 몸을 돌렸다. 그에 맞춰 크란텔도 함께 회전하며 묵직한 검풍을 일으켰는데, 시마트는 그걸 피하지 않고 다시 한번 검을 찔러넣었다.
자색 칼날이 루나의 심장으로 쇄도했다. 루나는 크란텔의 손잡이로 그 검을 쳐낸 후, 그 반동을 이용해 시마트를 밀쳤다.
“초라한 것치고는 위험하군.”
말과는 달리, 루나는 묘하게 여유를 찾아가고 있었다.
새로운 감각이 찾아오고 있었다. 무언가 내면 가장 깊숙한 곳에서 요동치는 것 같은, 왜인지 가슴을 벅차게 만드는 진동이.
‘보인다. 점점 더 선명해진다.’
시마트의 칼날이 들어서는 방향, 자줏빛 뇌기가 번지는 위치, 한 걸음, 한 호흡 차이로 벌어지는 생과 사의 경계가 계속 진해지고 있었다.
시마트의 칼날이 목을 스쳐도, 눈앞을 지나가도. 더 이상 루나는 모골이 송연해지는 감각에 휩싸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 과감하게 그와의 간격을 좁혔다. 눈처럼 새하얀 오러와 자뇌가 뒤섞여 안개처럼 퍼지고 있었다.
선체 내부의 쇳덩이들이 그 안개에 휩쓸려 고운 가루로 흩어지고 있었다. 부드럽게 맞부딪히는 기운이 두 사람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영역을 넓혀갔다.
그럴수록 루나는 익숙한 방식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파괴적으로 검을 휘두르고, 기운을 마구 발산하고, 사납게 돌진하는.
그러나 잊은 것은 아니다.
루나는 단지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마치 합을 맞추듯 시마트와 조화로운 싸움을 이어가다가, 한순간 폭발할 계획이었다.
그녀는 이제 막 내면에 움튼 새로운 힘을 느끼고 있었다. 그 힘은 지금도 거대한 심장처럼 맥동하며 언제든 바깥으로 쏟아져 나올 준비를 끝내두었다.
시마트는 그 수를 정확히 읽어내고 있었다.
다만 피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루나의 새로운 힘에 정면으로 맞설 생각이었다.
그것이 초라한 자신에게, 가만히 내버려 두어도 머잖아 알아서 소멸할 자신에게 목숨을 걸고 도전하러 온 상대에 대한 예우였다.
고대부터 이어진 어둡고 긴 삶의 마지막 싸움이다.
공중요새도 동포들도 없이 마치 일족 없는 자로서 버려진 시절처럼, 오롯이 혼자인 싸움인 만큼 시마트도 온몸으로 부딪히고 있었다.
‘와라, 루나 룬칸델. 내게 무엇을 보여줄 것이냐. 아마 내가 알지 못하는, 청풍제의 또 다른 정수일 테지…….’
시마트는 계속 엘티엇을 의식하고 있었다. 루나가 계승했을 그의 검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 검은 아름다울 것이다. 오로지 학살과 정복밖에 모르던 이 시마트의 눈에도, 분명히.’
타아아! 프즈즈즛……!
돌연 선체가 기울었다. 바깥에서 떨어진 명왕군림검의 여파가 크리를 무너뜨린 까닭이었다. 루나와 시마트가 서 있던 선체는 빙하처럼 쪼개져서 지상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선체의 갈라진 틈 사이로 진의 뇌기가 흘러들어왔다. 금뢰는 순식간에 선체 내부 곳곳에 황금빛 폭포를 형성했다.
마치 신호를 받기라도 한 듯.
두 사람은 동시에 서로를 향해 도약했다. 시마트는 찌르기로 들어왔고, 루나는 멀리서부터 크란텔을 휘둘렀다.
‘보다 느리게 보이지만, 아니다.’
시마트는 격돌 직전에 크란텔이 가속할 걸 예상했다.
‘그리고 나를 검과 함께 통째로 베어버릴 생각인가? 아니…… 그건 청풍제의 방식이 아니다.’
그렇다면 루나가 새로이 얻은 경지는 무엇인가? 일순 그런 의문이 시마트의 머릿속을 채웠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검이 닿기 전에, 그 간극 사이에 숨은 것을 발견해야 했다. 그러나 창성의 통찰력으로도 그 짧은 순간에 전부를 포착하기는 어려웠다.
‘가속은 확실하다. 가속 이후 루나 룬칸델이 전개할 검은, 아니, 가속이 아니었다! 광명검, 그것이었나……!’
‘광명검’은 전성기의 엘티엇이 시마트를 위해 준비하려던 검술이었다. 당시 적명도, 청명도 아니었던 그가 조화의 이치를 깨우친 후 쓸 수 있도록.
하지만 시마트는 광명검이 완성되기 전에 엘티엇을 떠났고, 지금껏 그 검을 잊고 있었다.
바로 어제처럼 생생하게 광명검의 형식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엘티엇은 분명 그 미완의 검술을 루나를 위해 완성했을 터.
‘나를 베기에 이보다 어울리는 검은 또 없겠군.’
시마트가 기억하는 광명검은 그 거창한 이름과 어울리는 정직한 검이었다. 갑작스러운 가속도, 변칙적인 투로 변경도 없는, 그야말로 곧은 검.
크란텔은 처음 그 속도 그대로 날아들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시마트의 검이 무조건 먼저 닿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검이 서로를 치려는 그 순간, 난데없이 시마트의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심검 특유의 붉은 검기, 그러나 그보다 더 깊은. 시마트가 이제껏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심홍색 기운이 크란텔을 휘감고 있었다.
시마트의 예상대로 크란텔은 가속하지 않았다.
대신 조금 전에 시마트가 보여준 것처럼, 마치 공간을 ‘지우듯이’ 움직이며 단번에 시마트의 계산을 우그러뜨렸다.
난 스승님이 아니다, 시마트.
그 심홍빛 칼날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것은 청풍제의 검이 아니라 룬칸델, 백경의 검이라고.
붉은 기운의 유혹을 떨쳐낸 순간부터 그녀의 내면을 울리기 시작한 힘이었다. 루나는 시마트가 계속 자신으로부터 엘티엇을 투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푹……!
시마트의 검이 루나의 가슴팍을 찔렀다.
그러나 칼날은 그가 원한 만큼 깊숙이 들어가지 못했다. 극히 짧았다고 하나, 과거에 얽매인 대가였다.
그는 루나를 통해 계속 과거를 마주했고, 루나는 오로지 이 싸움의 미래만을 바라보았다.
운명을 바꾸는 힘.
창성의 권능이 있다고 해도, 이미 먼 옛날에 지나가 버린 과거의 운명을 바꿀 수는 없다.
그리고 창성의 권능이 없다고 해도, 때로 사람은 운명을 초월할 수 있다. 지금 루나가 시마트와의 격차를 뛰어넘어 그에게 치명타를 가하고 있듯이.
순수하게 두 사람의 무위만을 놓고 보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시마트의 검은 얕게, 루나의 검은 깊게 상대를 베어 내고 있었다. 크란텔은 시마트의 목을 스치고 가슴으로 깊이 들어선 후, 그의 광심장 왼편을 내리쳤다.
쩌엉-!
굉음과 진동, 붉은 광심장의 한편이 으깨지며 날카로운 파편이 튀었다. 그 균열 사이로 진하고 무거운 핏물처럼 적뇌가 쏟아졌다.
“큽……!”
루나의 신음이었다. 시마트가 물러나는 와중 환부에 적뇌를 폭발시킨 것이다. 루나는 이를 악문 채 거리를 벌리려는 시마트를 쫓았다.
중상을 입었는데도 몸이 무겁지 않다.
루나는 절감하고 있었다. 초월이 임박하고 있음을. 가문의 1기수로서, 흑해 원정대로서, 엘티엇의 제자로서 쌓아온 그 모든 경험과 깨달음이 미친 듯이 폭발하고 있었다.
쉬지 않고 그 모든 걸 크란텔에 담아 휘두르고 싶었다. 그렇게 하면 시마트뿐만이 아니라, 순식간에 대사막 전체를 지도에서 지워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조화.’
하지만 루나는 마침내 코앞으로 다가온 초월의 순간을 성급하게 붙잡으려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하나로 아우러지게, 무엇 하나 빠지는 일 없이, 묻히는 일 없이, 전부 빛날 수 있도록.
섬세하게 조율하며 받아들여야 했다. 루나는 곧바로 그를 위한 요소가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이건 단지 붉은 힘을 발전시킨 게 아닌, 마검이다.’
심홍빛 기운과 더불어 그녀의 근처로 잔잔한 마력의 바람이 일어나고 있었다. 루나는 그 마력을 마치 길처럼 밟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 빠른 속도가 아님에도, 시마트는 쉽사리 벗어날 수 없었다. 앞에선 심홍빛 기운이, 뒤에선 마력이 그를 옥죄고 있었다.
광심장의 파편이 심홍빛 기운과 마력 사이에서 부스러져 갔다. 마침내, 적천왕은 최후를 맞이하고 있었다.
* * *
[꼬마. 확실히, 로키아의 저주가 약해지고 있다.]라프라로사와 인세 사이, 차원의 균열. 그 내부는 마치 수정동굴처럼 투명했다. 차원의 벽에 비친 진과 무라칸의 모습이 흐려졌다 진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래, 하지만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야. 아무래도 반 형제가 저주와 차원 오류를 함께 견디느라 문제가 생긴 모양이군.]편하게 대화하고 있지만, 두 사람은 쉴 새 없이 밀려드는 차원 폭풍의 압박을 느끼고 있었다.
차원 내부로 거대한 뇌류가 흐르고 있었다. 라프라로사에서부터 시작된 뇌류와 진으로부터 뻗어나가는 뇌류가 계속 가까워지는 중이었다.
[흠, 라프라로사로 가는 차원의 길목에서 느껴지는 압박이 이 정도인데, 그 골초 놈의 해방 장치가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군. 뭐, 그 반이라는 녀석이 잘 지키고 있겠지?]진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나도 할 수 있는 일이야, 무라칸. 반 형제가 못 할 리는 없지. 그래도 속도를 조금만 더 높이자, 반 형제가 아무리 강해도 우리가 늦어서 좋을 건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