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094)
제 1094화
256화. 모르가니엘(3)
프스스스……!
모르가니엘의 육신이 분해되어 입자로 흩어지고 있었다. 이내 그녀는 한 줌의 가루가 되어 시론의 시선 아래 남았다.
흑해 5왕 토벌을 위한 원정.
수십 년 동안 이어진 룬칸델의, 시론의 숙원에 마침내 끝을 맞이한 순간이었다. 근처에 있던 칸을 비롯한 원정대원들은 모르가니엘의 죽음을 확인하자마자 부르르 떨며 눈물을 흘렸다.
그 강인한 전대 흑기사들조차 눈물을 참을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운 여정이었다. 루나도 다가온 원정대원들을 부축하며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그러나 시론은 무감한 눈빛으로 모르가니엘이었던 가루를 내려다볼 뿐이다. 그녀를 벨 수 있다고 확신했을 때 느낀 환희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이것이 정말 끝인가.
오히려 그런 생각이 시론의 뇌리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흑해 원정을 시작한 날부터, 모르가니엘이 이토록 허망한 최후를 맞이하는 건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설령 끝이 아니라고 한들, 당장은 할 수 있는 게 없군.”
“아버지?”
“흑해 원정은 이것으로 종료다.”
시론이 루나의 머리를 헝클며 원정대원들의 상태를 살폈다. 모두가 살아남은 게 기적이었다.
“막내야.”
“예, 아버지.”
“아니, 저는 아버지라고 호칭하자마자 나무라셨으면서 막내한테는.”
“지금은 임무가 끝나지 않았느냐, 루나.”
“그건 그렇네요.”
시론이 마성화를 벗어난 건 이제 익히 알려진 사실이나, 막상 루나를 귀여워하는 그의 모습을 직접 보니 진은 낯선 기분이 들었다. 물론 좋은 쪽으로 낯선 느낌이었다.
“네가 몰고 온 함대에 치료 시설도 포함되어 있느냐?”
“성국 이상의 시설이 구비되어 있습니다. 즉시 원정대원들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훌륭하다. 반, 술 가져온 것 있소?”
“물론, 잔도 가져왔다. 더러운 견갑을 내밀던 누구와는 다르게 말이지.”
“하여간 보기보다 속이 좁은 구석이 있소.”
한시가 바쁘다.
모르가니엘을 토벌했다고 하여 속 좋게 술이나 마실 때는 아니었다. 하지만 진은 형제들이 보석주를 가지고 함선에서 내리는 걸 말리지 않았다. 시론이 단지 감회에 젖어 하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흑해의 변화를 잠시 기다려야 하니, 가볍게 한잔하면서 회포를 풀도록 하지. 앉거라, 루나, 진. 할 이야기가 많지 않더냐.”
흑해의 변화.
그 말대로 진과 루나가 자리에 앉자마자 별안간 일대의 풍경이 변화하는 모습이 시작되고 있었다.
우선 사방에 갑자기 나무가 치솟고 있었다. 흑해 특유의 독액을 품은 가시나무가 아니라, 마치 가을 은행잎처럼 샛노란 나무들이었다.
“그간 흑해 5왕들에 억눌려 있던 생명의 기운이 폭발하는 것이다. 그리 놀랄 것 없다.”
“와…….”
“놀랄 것이 없다기엔 너무 아름답군, 시론. 이건 마치…… 감춰져 있던 한 세계가 통째로 피어오르는 것 같지 않나.”
어디선가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오고, 방금 전까지 혼기에 탁했던 공기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산뜻해졌다.
벌써 열 걸음 높이로 자란 나무들 사이에선 이름을 알 수 없는 작은 벌레들이 듣기 좋은 울음소리를 내고, 온통 푸르고 붉은 꽃과 풀이 대지를 한가득 적시고 있었다.
그 모든 변화는 시론이 첫 잔을 들어 올리기도 전에 이루어졌다. 한 모금씩 보석주가 넘어간 다음에도 변화는 저 멀리 지평선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이게 정말 흑해라고……? 허, 삼천 년을 살았는데 이런 건 정말 처음 보는군.”
“흑해 전체가 이렇게 변하는 건 아닙니다, 무라칸 님.”
“그래? 음, 그나저나 시론, 좀 불편하군. 꼬마는 나한테 말 편하게 하니까 자네도 그냥 그렇게 해라.”
“그러지. 한 잔 줘라.”
“어, 그래.”
함대에 대기 중인 연합원들의 눈에는 흑해의 변화가 더 뚜렷하게 보였다. 흑해에 피어오른 샛노란 나무들은, 마치 길처럼 어느 한 곳을 향해 이어지고 있었다.
“모르가니엘을 추적하고, 상대하는 동안.”
시론이 입을 열자 곁에 앉은 모두가 그를 주목했다.
“바깥에 무언가 거대한 변화가 생긴 사실은 인지하고 있었다. 명왕족의 투신이 깨어난 그날보다도 더 거대한 힘이 느껴졌으니까. 심지어 하나가 아니라 둘이더군.”
마신대의 수장, 켈리악 지플과 말루기아. 시론은 그들이 인세에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바로 그 힘을 알아보았다.
“그 힘은 켈리악 지플과 말루기아라는 태양신의 자아가 가진 것입니다, 아버지.”
“다른 세계의 켈리악 지플인가.”
“다중세계에 대한 걸 혹시 전부터 알고 계셨습니까?”
“아니, 최근에 모르가니엘이 했던 말을 통해 유추했을 뿐이다. 또한 내가 알던, 그리고 너희가 알던 켈리악 지플이 그렇게 되는 건 불가능하다.”
다중세계, 시론은 모르가니엘이 했던 몇 가지 말을 통해 어렴풋이 진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이제 알겠군, 시론 룬칸델. 이곳의 너는 특별하다. 나와 형제들이 이런 결과를 맞이하는 건, 이 세계가 유일해.]
-[너는 어느 곳에서도 나와 형제들을 하나로 묶어주지 않았구나. 무엇이 너를 계속 싸우게 만드는 것이냐?]
-[내가 지금 네 손에 죽기로 결정한 것은, 단지 그 진리를 위배하지 않기 위함일 뿐이지. 부디 네 앞에 승리가 있기를 바라마, 내 오랜 친구여.]
추적 도중, 그리고 최후의 순간에 모르가니엘이 한 말들.
시론은 그중 유언을 재차 곱씹었다. ‘죽기로 결정하지 않았다면’ 모르가니엘은 이 시점에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뜻이나 다름이 없었다.
진은 한동안 다중세계의 진실과 최근 세상에 벌어진 끔찍한 일들을 시론에게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그렇게 된 것이군. 그렇다면 모르가니엘의 유언은, 내가 이 세계에 필요하니 당해주었다는 의미인가. 어쨌거나 모르가니엘 또한 마녀처럼, 어느 분기점이 지난 순간부터 다중세계를 인지하였을 것이다.”
켈리악 지플이 이 세계와 말루기아를 처리하면, 모르가니엘이 말한 ‘공평한 죽음’은 전 차원에서 사라지게 된다.
켈리악 지플은 그 순간 영원불멸한 존재가 되니까. 그에게 저항하는 자는, 전 차원에 아무도 남지 않게 될 터였다.
“흠, 그런 의미라면, 모르가니엘은 이 세계의 편에 서기로 결정한 것 아닌가?”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 무라칸.”
“거, 이왕 편을 들어줄 거면 그냥 오르갈 녀석처럼 동맹 맺고 같이 싸우든가 하지. 왜 칼 맞아서 뒤지고 난리야? 손 하나가 급한데. 게다가 일부러 죽어줬는데도 그 정도면, 본래는 그것보다도 더 강하다는 거잖아.”
“무라칸 님, 그건 상당히 신선한 접근인데요.”
“시론, 내 말이 틀리냐?”
“아니, 맞는 말이다. 그러나 내 생각에 모르가니엘이 죽은 건, 솔더렛께서 남긴 안배 때문일 것 같군.”
“……안배라고?”
“모르가니엘은, 우리가 그 아공간에 닿기를 원하는 것 같다.”
시론이 술잔을 내려두며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켰다.
여전히 형형색색으로 물들며 변하고 있는 흑해의 모습이 보이는 와중, 길처럼 한 곳으로 이어지는 노란 나무들이 새삼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앉은 자리에서 봐도 알 수 있을 만큼 명백한, 길이었다.
“막내.”
“예, 아버지.”
“나는 확신할 수 있다. 저 길의 끝에 존재하는 것이 바로, 로키아 가네스토가 만들었다는 아공간일 것이다. 지금껏 상대한 바. 그자는 단지 근원석의 파편이 아니었다.”
“근원석의 파편이 아니라고 하심은…… 모르가니엘은 근원석이 파괴되기 전부터 존재하였다는 뜻이십니까?”
“그래. 글리엑, 키알, 스, 니르간드. 나는 흑해의 왕들이 동시에 탄생한 줄 알고 있었으나, 모르가니엘은 아니었다. 모르가니엘은, 일종의 거대한 원념 같은 것이다. 오랜 세월 세상을 떠돌다가 근원석이 탄생한 순간 그 안에 깃들었던 것이지.”
“태양신처럼 태초부터 존재했다는 건가?”
“그것까진 알 수 없소, 반. 다만 솔더렛께서 남긴 안배를 모르가니엘이 사수하고 있었으니, 그분과는 무언가 관련이 있을 테지. 그렇기에 지금 길을 열어준 것이고. 저 안에 무엇이 있을 것 같더냐?”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게 무엇이든, 이제는 열어보지 않을 수 없기에 흑해를 찾아온 것일 테지.”
“예, 아버지. 그만큼 희망이 없었습니다.”
“부디 솔더렛께서 변절하지 않았기를 기대해야겠군.”
시론이 거기까지 말한 순간, 기함 사라에서 포칼이 내려섰다.
[시론 룬칸델.]“아, 인사가 늦었습니다, 포칼 님.”
[오늘 내가 본 풍경은 이 세상을 창조한 이후 가장 아름다운 모습 중 하나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에 대한 감사를 전하고 싶으나, 우선 이걸 먼저 진과 네게 보여주어야겠더구나.]포칼은 작은 관처럼 보이는 한 상자를 들고 있었다.
테마르의 왼팔이 보관된 상자였다. 상자를 열자 테마르의 왼팔이 강렬한 자주색 빛에 휘감긴 모습이 보였다.
시론의 허리춤에 걸린 바리사다가 그 빛에 반응하며 진동하고 있었다.
[내가 통찰한 바 테마르의 육신, 그리고 바리사다. 그 두 요소가 솔더렛의 안배로 들어서기 위한 필수 조건인 것 같구나. 한데 문제가 하나 있다. 보다시피, 지금 테마르의 왼팔엔 저주가 적용되어 있구나.]아이란 비먼트, 멜카족이 테마르의 육신을 취하며 남긴 저주.
[이 저주가 있으면, 테마르의 육신은 아공간으로 들어서기 위한 인증 도구 역할을 수행할 수 없을 것이다.]“다행히도 이 몸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기는 하다.”
포칼과 함께 내려온 아메리스였다.
“따라오길 잘했구나. 왠지 초고대 지식이 필요한 순간이 있을 것 같았지.”
현재 멜카족의 저주를 역으로 해제할 수 있는 인물은 로키아 가네스토, 그리고 아메리스뿐이었다.
“아메리스 님. 저주를 해제하려면 시간이 얼마나 필요하겠습니까?”
“아무리 빨라도 닷새는 필요할 것이다.”
“티칸으로 복귀해서 작업을 해도 똑같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입니까?”
“그래. 포칼과 실키아가 흑해에서 인세로 이어지는 차원문을 쉽게 열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일단은 기다리거라.”
그 말대로 흑해의 환경이 갑자기 바뀐 만큼, 포칼과 실키아 역시 인세로 돌아가는 차원문을 열려면 여러 조정이 필요한 상태였다. 모르가니엘은 죽었으나 그 영향력이 모두 사라진 건 아니니 말이다.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