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118)
제 1118화
258화. 전 차원의 포식자(8)
태양기로 형성된 차원문, 그 속에선 또 다른 태양신의 자아들이 빠져나오고 있었다.
재구축의 자아 일로아누와 파멸의 자아 아락시온. 두 자아는 모두 룬칸델을, 혹은 한때 룬칸델이었던 자를 숙주로 삼고 있었다.
[일로아누!? 게다가 아락시온까지……!]블리기에트가 소리쳤다. 이미 말루기아와 크라고스까지 임시적인 동맹을 맺고 있으니, 그들 또한 켈리악에게 맞서고자 이곳을 찾아온 것일 가능성이 높았다.
문제는 그들만 온 게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로키아……!]루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로키아 가네스토, 그녀의 일가 또한 모두 태양신 자아들의 차원문을 타고 전장에 나타난 것이다.
“아아, 너무 밉게 보지 마. 우리도 좋아서 온 건 아니거든. 잠깐 나 좀 들여보내 줄래?”
로키아는 라프라로사의 내부 시설을 꿰고 있는 듯 루시의 화면을 정확히 올려보며 말하고 있었다.
[꺼져요!]“선내로 들이는 게 찝찝하면 너희가 나오는 것도 나쁘지 않고, 어차피 보호막 안이니까. 오랜만에 딸아이 얼굴도 볼 겸 그것도 괜찮겠네.”
헤일린의 이야기가 나오자 루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천 년 전 한 번 놓치고, 얼마 전 한 번 포기한 딸은 온몸에 강렬한 태양기를 두른 채 창성들의 전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악을 쓰며 증오를 표출하고 싶었다.
그러나 루시는 이내 흥분을 가라앉혔다. 아무리 끔찍한 일이어도, 지금은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릴 때가 아니었다.
[……제가 나가죠.]동료들과 함교 밖으로 나온 루시는 로키아의 모습을 보자마자 흠칫했다.
젊음을 찾아볼 수 없는 주름진 얼굴, 함교 내 화면에는 보이지 않던 모습이었다.
“역시 넌 너무 착해, 루시. 내 모습에 놀라기만 할 게 아니라 비웃었어야지?”
[닥치고 용건만 말해요.]“용건이라…….”
그 말에 로키아는 생각에 잠긴 듯 몇 초쯤 말이 없었다. 그사이 루시는 그녀의 옆에 선 딸을 바라보았다.
마코스가 열일곱쯤 되었을 때와 똑같은 얼굴이었다. 다만 온몸이 태양기로 빛나고, 눈동자 속엔 오로지 공허한 파멸의 본능만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글쎄, 이제는 잘 모르겠네. 무엇 때문에 내가 이렇게까지 하고 있는지.”
로키아는 흑해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사실상 거의 전부를 바쳤다.
그간 창조한 수많은 자신의 세계를 이용해 지금과 유사한 상황을 재현했다. 육신이 늙어버린 건 그 과정을 반복한 대가였다. 모든 재현이 끝났을 때, 로키아는 어떻게든 전장으로 찾아가야 한다는 결과에 다다르고 말았다.
진이 지금 죽어선 안 되니까. 그렇게 되면, 결국 가네스토는 물론이고 그 누구도 솔더렛의 마지막 유산을 얻을 수 없게 될 테니까.
“내 입장에서도 계획이 너무 많이 틀어졌거든. 그래서 한마디로 용건을 정의하긴 어렵겠어. 다만, 너흴 도우러 온 것만은 확실하다고 해두지.”
[뭐라고요?]“지플은, 나도 증오해.”
[우리가 당신을 어떻게 믿고.]“믿지 않으면 뭘 할 수 있지? 용검 루시 룬칸델.”
루시는 대답할 수 없었다.
다른 때라면 로키아가 태양신의 자아를 둘이나 데려왔어도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다. 애초에 켈리악이 없었다면 연합은 마신대를 상대로도 승리할 정도였으니. 하지만 지금은 로키아가 연합을 공격하기 시작하는 순간, 안 그래도 어려운 전황은 그야말로 나락으로 치달을 것이다.
“그저 가만히만 있어도 아름다운 선택을 했다고 자위할 수 있는, 운 좋은 신세 주제에 뭘 할 수 있느냔 말이야. 나처럼 당장 전투에 도움이 될 만한 전력을 추가할 수 있나? 아니면, 아이란의 저주를 더 빠르게 해제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어?”
아락시온과 일로아누를 전투에 합류시키고, 아이란의 저주를 푸는 속도를 높인다. 지금 로키아가 하려는 일들이었다.
루시는 이를 악물며 로키아를 노려보았다. 로키아는 그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명령을 기다리는 자신의 1기수에게 손을 뻗었다.
조슈아 룬칸델, 그는 로키아에 의해 일로아누의 힘을 얻은 상태였다.
“조슈아, 내 가장 충직한 기수. 가서 켈리악 지플을 치거라. 온몸이 산산조각 부서지고, 영혼조차 모조리 찢겨 한 줌 먼지가 되더라도… 가문을 위해.”
[물론 그리하겠습니다, 어머니.]한쪽 무릎을 꿇은 조슈아가 로키아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 로키아는 한동안 조슈아의 눈을 바라보았다.
이제 그를 기다리는 건 모독적이고 비참한 싸움일 뿐임에도, 그 눈동자엔 망설임이 없었다.
“……너는 이제, 나를 조금은 이해하게 된 것 같구나, 조슈아.”
[그것이면 저는 제 삶을 전부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로키아는 조슈아의 머리칼을 한 번 쓸어 넘겨주고는 루시에게 시선을 돌렸다.
“루시, 너도 딸아이에게 한마디 하는 게 좋지 않겠어? 이제 격전지로 향하면, 헤일린은 분명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텐데.”
치가 떨렸다. 헤일린은 조슈아와 달리 인간적인 의식이 전혀 없는 듯 보였다.
그럼에도 로키아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딸을 놓치고 포기하기만 한 어머니로서, 꼭 해야 할 말이 있었다. 헤일린은 들을 수 없더라도.
[미안하다, 헤일린. 혹시라도 다음이 있다면 그때는 더 좋은 부모 밑에서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사람이 짊어질 수 있는 만큼의 고통과 행복만 안고 살아야 한다.]차마 울 수는 없었다. 루시는 담담한 표정으로 헤일린의 어깨를, 그토록 보고 싶던 얼굴을 한번 매만지려다, 손을 거뒀다. 헤일린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어머니, 저희도 가겠습니다.]란, 뷔고, 뮤, 앤. 가네스토의 남은 기수들도 검을 뽑고 있었다. 로키아는 그들이 이 전쟁에 유의미한 도움이 될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그래, 너희에게도 불꽃이 될 수 있는 순간이 한 번은 필요하겠지. 그 누구도 감동케 할 수 없는 추잡한 불꽃이라 할지라도. 가서 틔워보아라, 나만큼은 너희를 부정하지 않으마.”
가네스토의 기수들과 아락시온이 전장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일로아누의 힘을 얻은 조슈아와 아락시온은 거침없이 적들을 밀어내며 격전지로 질주했으나, 나머지 기수들은 라프라로사의 보호막을 벗어나자마자 힘에 부치는 모습을 보였다.
[크아아……!]마신대 창성들의 마법에 사지가 찢기고, 재생해서 다시 일어서면 연합원들의 검이 그들을 찔렀다. 아직 상황이 다 전파되지 않았으니 연합원들에게 가네스토의 기수들은 하필 이 순간에 바퀴벌레처럼 또 나타난 적에 불과했다. 설령 전파가 끝나더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린 어머니의 명을 받아 너흴 지원하러 온 것이다!]그들의 외침에 대답을 해주는 연합원은 없었다. 그럴 여유도 없을뿐더러, 적으로서든 아군으로서든 그들은 전투에 별다른 반전을 만들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니 말이다.
“재미있는 일이지. 결국 저 아이들은 지금 룬칸델을 위해 싸우는군. 비록 그 의도는 룬칸델이 아닌 나를 위해서고, 누구도 저 아이들을 환영하지 않지만, 오히려 욕을 하고 침을 뱉고 칼로 몸을 쑤시는데도.”
[당신은 끔찍한 사람이에요. 아니, 사람도 아니겠죠. 우리를 돕겠다고 했지만, 당신 머릿속엔 그저 이 순간까지도 어떻게든 테마르의 왼팔을 취할 생각밖에 없을 겁니다.]“그렇게 보이겠지. 하지만 얽매인다는 건, 이런 거야, 루시. 사람을 초라하게 만들지. 이제 그럼, 나도 내 일을 해야겠군.”
로키아가 두 팔을 들어 올렸다.
“저주 해제는 최소한의 마력을 사용할 수만 있으면 도울 수 있어. 큰 뱀 아메리스가 라프라로사 안에서 풀고 있을 테지? 함교 내로 나를 그냥 들일 생각은 없을 것 같으니, 알아서 구속해.”
{[루시, 구속하지 말고 그냥 데려오세요.]}
함내에서 화면으로 상황을 지켜보던 르엣이었다.
“오, 르엣.”
[집사장, 괜찮겠습니까?]{[어차피 지금 우린 그자를 구속할 여력이 없습니다. 그걸 알고 한 말이에요. 결정적인 순간에 분명 뒤통수를 치려 할 테지만, 차라리 그게 낫습니다. 저 괴물을 상대로 17시간을 버티는 것보다는. 구속하지 않는 게 저주 해제에도 조금이나마 더 효율적일 겁니다.]}
“역시 집사장은 현실 파악이 빨라. 17시간? 마신대의 수장을 상대로? 심지어 이제 곧 마신석까지 전장에 도착할 테니, 여기 시론과 반이 한 명씩 더 있어도 그건 불가능한 일이야. 그 시절 테마르가 있어도 마찬가지고.”
라프라로사의 하부 출입구가 열렸다. 루시는 르엣의 말을 따라 로키아와 함께 다시 함내로 들어섰다.
르엣이 직접 아메리스의 작업실로 로키아를 안내했다. 아메리스는 작업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들어와도 전혀 의식하지 못할 만큼 저주 해제에 집중하고 있었다.
“르엣,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건 참 오랜만이네. 그 시절 룬칸델들이 이 전장에 몇 명이나 모인 거지? 나, 너, 루시, 무라칸, 베일, 그리고 여기 왼팔만 남은 테마르까지 한 명으로 치면 여섯이나 되는군. 옛날 생각에 눈물이 날 지경인걸.”
[저주 해제를 얼마나 앞당길 수 있죠?]“일단 한번 살펴보지. 음… 이 정도면, 최소 10시간은 앞당길 수 있겠어. 그래도 고대신은 고대신이군, 멜카의 저주를 이만큼이나 이해하고 있다니, 조금 놀라워.”
[최소가 아니라 최대로 말해요.]“그렇다면 12시간이라고 해두지. 단, 켈리악 지플의 공격이 이 작업실로는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할 때의 이야기야. 12시간이라고 가정해도 5시간이나 버텨야 하는군. 나보다는 그걸 걱정하는 게 좋을 거야. 일로아누와 아락시온이 합류해도, 답이 없는 건 마찬가지거든. 크라고스가 한 번에 찢기는 것, 봤지? 그 둘이 그것보단 강할 것 같지만.”
르엣은 로키아와 대화를 하면서도 기록 영상으로 격전지를 살펴보고 있었다. 크라고스가 밀려나고 진이 어렵게 발레리아와 엔야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로키아는 슬쩍 그 화면을 바라보며 속으로 헛웃음을 삼켰다. 테마르의 왼팔에 걸린 저주를 해제하고자 자신까지 모든 걸 내던지고 찾아온 이 시점에, 하필 진이 왼팔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이 그저 우스웠다.
“참 신기해, 그토록 애를 써도 웃어주지 않던 운명이… 누군가에겐 이미 정해진 퍼즐처럼 딱딱 들어맞는 게. 이제 집중해야겠어, 마신대의 수장은 알아서 잘 막아보라고.”
이내 르엣과 루시가 작업실을 빠져나왔다.
[루시, 탈라리스 경을 모셔 오세요.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비궁의 힘으로 이곳에 절대적인 봉인을 걸어야 합니다. 또한 켈리악의 공격이 라프라로사를 직접 치기 시작하더라도 이곳으로 전달될 충격을 어느 정도라도 막아줄 수 있는 봉인은, 오직 그분밖에 만들 수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