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27)
제 22화
11화. 진학, 신고식(1)
브라다만테 개방을 성공시킨 것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일대의 모든 그림자가 진에게로 빨려 들어가는 동안, 그는 온몸이 찢어발겨지는 끔찍한 고통을 체험하고 있었다.
의지와 상관없이 비명이 토해졌고 고통에 반응한 사지가 저 혼자 꺾여 댔다. 눈을 떠도, 감아도 아찔할 만큼 캄캄해 이대로 죽는 게 아닐까 싶었다.
당장 까무러치더라도 이상할 게 없는 상태.
진은 이것이 무라칸이 경고한 ‘영기 폭주’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처음 검 개방을 시도한 후, 무라칸은 불같이 화를 내다가 조곤조곤 이런 이야길 했었다.
-영기가 부족한 녀석들이 함부로 검을 깨우면, 대가를 치르게 된다. 영기 폭주를 겪으면 열에 아홉은 그냥 죽는다고.
진 또한 영기 폭주를 염두에 두지 않고 브라다만테를 개방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달리 방법이 없었을 뿐이다.
갑작스럽게 초급 훈련반으로 하달된 임무, 킨젤로와 백랑족의 등장.
아마 메사가 납치된 것까지 전부 정확히 의도된 바는 아닐 테지만, 진은 시론이 이 ‘돌발 상황’을 어느 정도는 예견했다고 생각했다.
이번 임무는 분명 초급반이 아니라 자신을 평가하기 위한 것이니까 말이다.
‘내가 만약 펜던트를 사용해 위기를 벗어났다면, 아버지는 최악의 평가를 내렸을 거다.’
시론 룬칸델, 진의 아버지는 극히 냉정한 인간이다.
지금이야 진이 솔더렛과 관련이 있고, 뛰어난 두각을 보이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관심을 주고 있지만.
단 한 번이라도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 준다면, 시론은 가차 없이 진에 대한 모든 관심을 끊어 버릴 것이다.
그건 진 또한 어느 정도는 바라는 바다. 시론의 관심이 계속되는 한, 행동반경과 마법 수련에 제약이 따르기 때문이다. 진이 가문에 큰 애착을 지닌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러나 그 시기가 지금이어선 안 된다. 진은 아직 룬칸델에서 얻어야 할 것이 많았다.
아아아아아!
수차례 허리를 꺾은 진이 또 다시 비명을 내질렀다. 그림자가 흡수될 때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지옥의 형벌이 있다면 바로 이런 느낌일까?
진은 불에 달궈지는 고통과, 내장까지 얼려 버릴 것 같은 추위를 동시에 경험하고 있었다.
‘의식을 잃으면 끝이다. 정신을 똑바로 붙잡아야 해……!’
전생에서도 이런 고통은 느껴 본 적이 없다. 당시 마법 스승이 전격 마법을 이해시킨답시고, 몇 시간이나 번개로 몸을 지져 댈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시간이 도대체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고통이 시작된 후 고작 몇 분이 지난 것 같기도, 몇 시간이 흐른 것 같기도 했다.
마냥 버티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진은 뭐라도 해서 이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는 간단했다.
‘영기 해방.’
가까스로 정좌를 튼 진이 몸속의 영기를 천천히 한곳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파르르 떨리는 입술 사이로 검붉은 피가 흐르고, 눈동자는 흰자위를 드러낸 채 제자리로 돌아가질 않는다.
컥컥대며 탁한 숨을 뿜는 매초마다, 진은 자신이 생사의 갈림길을 위태롭게 걷고 있다는 걸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 막 3성에 이른 영기 해방으로는, 이토록 사납게 날뛰는 영기를 통제할 수가 없다. 영기 해방을 시작한 진이 시커먼 핏덩이를 뱉으며 앞으로 쓰러졌다.
‘다시, 다시… 다시. 침착하게.’
현기증이 몰려오고 환청이 들리기 시작했다.
환청은 주로 전생의 기억과 밀접했다. 룬칸델의 치욕이라느니, 너 같은 건 우리 가문에서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느니. 대충 그런 종류의 환청이 집요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딴 이야기들은 지금의 진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다. 진은 환청을 완전히 무시한 채 몸속의 영기에 더욱 집중했다.
뜨거운 영기는 뜨거운 영기대로, 차가운 영기는 차가운 영기대로.
마치 자갈을 색깔별로 분류하듯 같은 성질의 영기를 자신의 내부에 좌우로 나누기 시작한 것은, 순전히 본능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뇌를 헤집고 있던 격한 통증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완전히 돌아간 허연 눈동자도 빛을 되찾았다. 진은 자신이 영기 폭주를 성공적으로 제어할 것이라 직감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진에게 흡수되었던 그림자들이 다시 제자리를 찾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폭풍성에서 무라칸이 보여줬던 것처럼 사물에 균열이 생긴 상태는 아니었다.
고통이 줄어들수록 정신을 집중하기 용이해진다. 진은 얼마 지나지 않아 몸속에 남은 영기들을 완벽히 나눌 수 있었다.
바깥 풍경도 본래의 색을 되찾았다. 불길은 영기에 사그라졌고, 타 버린 숲에서 재 냄새가 났다.
“후우.”
이내 진이 한 차례 숨을 고르자, 정돈된 영기들이 움직임을 멈췄다.
영기가 더 이상 진을 고통스럽게 만들지 않는 것이다.
‘잘 넘긴 건가? 통증이 한순간에 싹 사라지니 이건 이것대로 불안하군.’
일어서서 이리저리 몸을 풀어 보니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다만 몸속에 들어찬 영기가 너무나 충만해서, 가만히 있어도 그냥 새어 나올 것 같은 감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당장 움직이기엔 문제가 없겠어. 어서 메사를 데리고 복귀해야지.’
메사는 아직 킨젤로의 건물 입구에 쓰러져 있었다. 그렇게까지 많은 시간이 흐르지는 않았다는 의미였다.
그녀를 어깨에 걸치려는 찰나.
진이 킨젤로의 건물 안쪽으로 홱 몸을 돌렸다.
“누구냐?”
인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누군가 건물 안의 복도를 걸어 현관으로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아까 그가 상대했던 단원들처럼, 훈련된 인물은 아닌 것 같았다. 조심성이라곤 하나도 없이 발소리와 거친 숨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사, 살려 주십시오!”
문짝을 뜯어내자, 겁에 질린 얼굴로 양팔을 치켜들고 있는 한 청년이 보였다. 고생 따윈 해 본 적 없을 듯 곱상한 인상이었는데, 진으로선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넌 또 뭐야? 킨젤로냐?”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전 셈버 빌. 쟌 왕국 빌 가문의…….”
“아, 그게 너였군. 하마터면 놓칠 뻔했어, 반가워.”
진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셈버 빌. 그는 쟌 왕국의 상인 가문, ‘빌’가의 후계자였다. 초급 훈련반의 생도들이 찾고 있던 대부호의 아들인 것이다.
“다, 당신은.”
“진 룬칸델. 네 아버지의 의뢰를 받고 너를 수색하고 있었지.”
“룬칸델이라니! 하늘이여 감사합니다!”
셈버는 진의 이름을 듣자마자 눈가가 촉촉해져 소리를 질렀다.
“이 셈버 빌. 진 님께서 목숨을 구해 주신 은혜를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 천진난만한 감사를 듣고 있자니, 진으로선 어쩐지 양심이 찔릴 수밖에 없었다.
킨젤로의 습격이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셈버의 존재를 완전히 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돈 받고 하는 일인데 은혜는 무슨. 그냥 잊어. 자, 이제 그만 울고 집으로 돌아가자고.”
“으흐흑. 어흑.”
그렇게 진은 메사를 업고, 셈버와 함께 잿더미가 된 숲을 빠져나왔다. 셈버는 숲에서 한참 떨어지고 나서야 제정신을 찾았다.
“그나저나 셈버. 어쩌다 그놈들에게 납치를 당하게 됐나? 우린 자네가 그냥 실종된 상태인 줄 알았거든.”
“그게…….”
“말하기 뭣하면 안 해도 돼.”
“아닙니다. 실은 연인 때문입니다. 하지만 진 님께서 믿어 주실지 모르겠군요.”
“믿어 주지 못할 게 뭐 있겠어. 사랑의 도피인가?”
“……아뇨. 저는 2년 전에 이미 죽은 연인을 따라 남부 국경 지대까지 오게 된 겁니다.”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진이 걸음을 멈췄다.
“이미 죽은 연인을 따라왔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아무래도 납치의 후유증으로 머리가 어떻게 된 걸까? 진이 그렇게 생각하며 셈버의 눈빛을 살폈다. 맛이 간 눈동자는 아니었다.
“저도 제가 헛것을 본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만. 분명 그녀였어요.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거든요. 손목에 있는 두 개의 점까지도. 그녀가 제게 여기로 오라고 쪽지를 건넸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된 거죠.”
셈버가 진의 눈치를 살폈다.
“하하, 역시 믿지 않으시는군요. 돌아가서 이 사실을 가문 사람들에게 어찌 알려야 할지, 저도 막막합니다.”
“아니, 계속 얘기해 봐. 쪽지를 건넨 여자가, 정말 자네 연인이었어?”
“그렇다니까요. 제가 그녀를 알아보지 못할 리 없습니다. 얼굴, 목소리, 저를 바라보는 눈빛까지. 모든 게 다 똑같았어요.”
그 대목에서 진은 한 이름이 떠올랐다.
‘부바르 가스톤. 아무래도 그 변신 능력자의 짓인 것 같군.’
변신 범죄.
전생에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희대의 범죄. 후에 비먼트 제국 특임대가 발표한 놈의 범죄 중엔, 납치 관여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대부호의 아들을 납치하는 이유는 단 하나뿐일 것이다.
‘돈을 요구하려고 그랬겠지. 부바르와 킨젤로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건가?’
지금 당장은 알 수 없다. 진은 아무래도 슬슬 부바르를 찾아갈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놈과는 폭풍성을 떠난 열 살에 처음 엮였지만, 아직 성장 중이라 기회가 없었다.
‘놈이 운영하는 조각 공방이 쿠라노 공국의 수도에 있었지. 중급 훈련반에 있는 동안 기회를 만들어 봐야겠군.’
부바르를 생각하다 보면 어쩐지 위화감이 들었다. 만약 놈이 킨젤로나 지플의 극렬 추종자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면, 함부로 들쑤셨다가 역풍을 맞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직접 만나서 어떤 놈인지 살펴볼 필요는 있어. 전생의 소식지에 드러나지 않은 정보도 알아봐서 나쁠 게 없을 거고.’
이야기를 끝낸 셈버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진지하게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진 님. 사실 돌아가면 제 얘기를 아무도 믿어 주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가슴이 답답했거든요.”
“그렇다면 다행이로군.”
두어 시간을 더 이동하자 진이 품속에서 신호탄을 꺼내 쏘아 올렸다.
“지금쯤이면 본가에서 지원이 나왔을 테니, 이제 여기서 가만히 기다려 보자고.”
“허, 진 님. 설마 저를 위해 룬칸델의 수호기사들까지 부르신 겁니까?”
셈버는 무척 감동한 듯, 진이 금관 몇 짝을 추가금으로 불러도 당장 내놓을 기세였다. 진은 차마 네가 아니라 메사 때문이라고 대답하지 못하고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까 말이다.
“진 님. 오늘의 만남은 언제까지고 잊을 수 없을 겁니다. 혹시라도 제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긴다면,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룬칸델이 일개 상인 가문에게 손을 빌릴 일은 별로 없을 것 같지만.
진은 알겠다고 대답하며 셈버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