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450)
제 444화
129화. 무라칸의 위엄
비먼트에서 달려온 것은 지룡 라부스와 운티엘, 그리고 그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마법사들.
지플에서 달려온 것은 화룡 테오, 청룡 라라마쿠아와 그들의 힘을 받고 있는 마법사들이었다.
총 네 마리의 용과 여덟 명의 마법사들이 영기에 물든 하늘과 무너진 흑왕산채, 무라칸을 쳐다보며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있었다.
특히 네 마리의 용들은 모두 전성기의 무라칸을 겪어본 적 있는 이들이다.
마법사들은 각자 탑승한 용들의 등으로부터 미친 듯이 빨라진 심장 박동이 전해지는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용들께서…… 겁을 먹고 있다고!?’
‘이런 적은 처음이다. 괜찮은 건가!’
극도의 긴장감.
용들이 바짝 굳어 있으니 마법사들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최근 드러난 룬칸델 12기수의 수호룡이 강력하다는 건 검황성 테러 사태 등에서 이미 일반에도 알려진 사실이었다.
당시 무라칸은 거의 혼자서 상공을 방어했으니까.
게다가 12기수의 파격적인 행보와 무위까지 미루어보면, 마법사들이 이런 오해의 나래를 펼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룬칸델 12기수가 자신의 수호룡과 함께 흑왕산채를 공격했다…….’
‘그리고 승리했다!’
꿀꺽, 마법사들이 동시에 굵은 침을 삼키며 생각했다.
‘힘을 되찾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벌써 흑왕산채를 혼자 정리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온 건가?’
‘옛 힘을 되찾는 속도가 예사롭지 않아. 몇 년 전에 만났을 때만 해도 퀴칸텔 언니한테 쪽도 못 썼는데.’
라부스와 운티엘은 한껏 무라칸의 눈치를 살피며 헛기침을 했다.
라부스와 운티엘이 점잔을 빼며 말했다.
예비 기수 시절, 진도 만나본 적이 있는 용들이었다.
‘퀴칸텔 님을 처음 본 날 만난 그 용들이로군. 그때도 체면치레를 하더니.’
무라칸이 두 용과 눈을 맞췄다.
정확히는 무라칸만 라부스와 운티엘을 쳐다보았고, 그들은 감히 무라칸과 눈을 마주치지도 못했다.
두 용은 전성기 무라칸에게 가장 많이 맞은 이들에 포함되었다.
[라부스, 운티엘. 그대들은 무슨 일로 왔는가?] [우린 그저 비세 왕국에서 심상치 않은 기류가 감지되어 찾아왔다네.] [큰 싸움이 있던 것 같은데, 그. 괜찮다면 자세한 사항을 우리에게 알려줄 수 있는…… 음!]펄럭-!
운티엘이 말을 끝맺기 전에 무라칸이 한 차례 크게 날갯짓을 했다.
사람에 빗대면 주먹을 쾅 내리친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는, 불쾌감을 나타내는 용들의 제스처였다.
[하찮은 지룡들이여, 감히 지금 내게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너희들에게 보, 고, 하라고 말하는 것인가?] [아니, 오빠. 그게 아니라.] [무라칸, 오해야, 오해! 아이, 우리가 어떻게 너한테 그런 요구를 하겠어? 그냥 우리는, 혹시, 가능하다면, 이야기를 좀 해달라는 것이지…… 물론 네가 싫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고.]곧장 말투가 바뀌었다. 창피해도 어쩔 수 없었다. 만일 무라칸이 옛 힘을 ‘모두’ 되찾은 것이라면, 세상에 그를 가로막을 존재는 없는 것이다. 적어도 지룡들의 인식은 그랬다.
막말로 그럴 경우 무라칸이 자신들을 반시체로 만들고, 마법사들을 모두 죽여도 오히려 눈치를 봐야 하는 쪽은 제국이었다.
[그런가? 저번부터 느낀 것인데, 세월이 흐르긴 많이 흘렀나 보군. 날 대하는 동족들의 태도가 예전만큼 조심스럽지 않음이니, 이 심히 불쾌한 마음은 나날이 커지기만 하고 있도다.]후우웅!
하늘을 뒤덮은 영기가 더욱 짙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특히 네놈들은 죽고 싶어서 환장을 한 모양이로구나.]순식간에, 검은 하늘에서부터 영기로 이루어진 송곳들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라부스와 운티엘은 식겁한 채 고개를 마구 저었다.
[오빠, 그런 거 아니야. 우리가 미안해!] [내가 실수한 것 같다, 진정하고 대, 대화를 하자고!]시커먼 송곳은 그들이 황급히 펼친 보호막을 아무렇지도 않게 뚫어버렸다.
심지어 지룡들은 제대로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무라칸이 마음만 먹었다면 이 일격으로 치명상을 입힐 수도 있었다는 의미.
애초에 영기 송곳의 목표물은, 지룡들이 아니라 그 뒤편의 화룡과 청룡이었다.
테오와 라라마쿠아는 급히 하강, 회전하며 무라칸의 송곳을 피했다.
하지만 반격을 하지는 않았다. 그랬다간 문제가 얼마나 커질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는 듯이.
무라칸이 이토록 갑자기 분노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화룡 테오.
그는 켈리악 지플의 화룡 카둔의 혈족이자 무라칸과도 안면이 있는 용이었다.
무라칸과 카둔은 옛날부터 그리 사이가 좋지 않았고, 성국 사건 직전엔 카둔의 습격에 무라칸은 모든 힘을 잃을 뻔했었다.
이제 무라칸에게 화룡이란, 보기만 해도 찢어 죽이고 싶은 족속인 것이다.
[화룡 테오. 네놈들의 왕이 그런 말을 전해주지 않았더냐? 나와 절대로 마주치지 말라고. 불행히도 마주치게 된다면, 이를 악물고 최대한 빨리 도망치라고 말이다.]다시 영기 송곳이 형성되었고 테오와 라라마쿠아, 지플의 마법사들은 당황스러운 속내를 간신히 감추고 있었다.
‘한 시간 전까지 감지되던, 그 엄청난 기운이 설마 저 미친 흑룡의 것이었나……!’
그건 물론 테오의 착각이었다.
흑왕산채를 무너뜨린 힘은 무라칸의 영기가 아니라 제피린의 마기였다.
그러나 마기는 제피린이 떠나고 폭발하며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니, 무라칸의 힘이 아니라고는 생각할 도리가 없었다.
‘얼마만큼이든, 이토록 오만할 수 있을 만큼 힘을 되찾은 무라칸과 전투를 하는 건 자살 행위다.’
‘발카스와 아멜라가 결판을 지은 것이라도 되는가 생각했건만, 이건 예상을 벗어나도 너무 많이 벗어났어. 후퇴해야 한다, 당장!’
세상의 거의 모든 용들이 그렇듯, 테오와 라라마쿠아 역시 전성기의 무라칸을 두려워했었다.
특히 테오는 카둔과 관계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화룡과 적룡들이 당하는 걸 숱하게 보아왔으니 더욱 깊은 공포를 갖고 있었다.
[대답해라, 테오. 그리고 라라마쿠아. 얼마나 듣기 좋고 합당한 대답이 들려오느냐에 따라 너희를 몰살할지, 불구로만 만들지를 정하도록 하겠다. 그리고 그 대답은 지룡들의 운명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오빠? 우, 우린 왜? 우린 잘못한 거 없잖아. 이러지 말자.] [그래, 우린 얼른 물러날게!]무라칸은 지룡들의 간절한 목소리에 답하지 않고 테오와 라라마쿠아를 노려보았다. 지룡들은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날개만 동동 흔들었다.
용들은 모두 떨고 있었다. 눈빛은 모두 불안감에 젖어있었고, 자신만만한 구석이라곤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와, 무라칸…… 이럴 땐 적응이 안 된다는 말이지.’
진에겐 춘화집 보며 허벅지를 벅벅 긁고, 딸기파이에 완전히 맛이 가 있는 추레하고 다소 비루한 느낌의 무라칸이 훨씬 익숙했다.
천 년 전의 위엄이 도드라지는 순간이면 그가 전혀 다른 존재처럼 보였다.
옛 힘을 모두 되찾았다는 ‘증거’를 확실히 보여준 것도 아니면서, 무라칸은 지플과 제국의 용들을 얼어붙게 만들고 있었다.
지룡들은 몰라도, 화룡 테오와 청룡 라라마쿠아는 결코 위상이 낮은 존재가 아니었다.
‘그나저나 저들이 만약 대항하기로 결정하면, 머리가 좀 아플 수도 있겠는데.’
사실, 무라칸은 지친 상태였다.
진은 영기를 공유하는 계약자로서 유일하게 그 사실을 절감하고 있었다.
무라칸은 이미 제피린과의 일전에서 거의 모든 힘을 사용한 상태인 것이다.
그럼에도 무라칸이 이토록 자신만만하게 용들을 나무라는 것은, 단지 그의 ‘성격’일 뿐이다.
무라칸은 태어난 직후부터 3천 년이 넘는 세월을 최강의 존재로만 살아왔다.
옛 힘을 모두 되찾았든, 4할밖에 되찾지 못했든, 심지어 단 하나도 남아있지 않든. 무라칸은 자신이 전성기 시절과 전혀 다른 태도를 갖는 걸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진이 무라칸이 지친 사실을 알고도 나서지 않는 것 또한 비슷한 맥락이었다.
굳이 그의 자존심을 긁고 싶지 않았다. 행여 용들이 덤비면 무라칸과 함께 싸우면 그만이었다. 비세 왕국에선 어차피 지플도, 제국도 명분을 가질 수 없으니까.
반면 룬칸델인 자신은 방금까지 흑왕단을 도왔으므로 명분이 있었다.
‘찾아온 이들은 우리가 흑왕단을 도왔다고 생각하기는커녕, 우리가 멸망시켰다고 오해하고 있는 게 확실해 보이지만.’
오해와 더불어 팽팽한 긴장감이 형성되는 와중, 흑왕단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어쩌면 못하고 있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방금 제피린이 펼친 폭발로 인해 대장, 간부급 인원은 대부분 중상에 빠졌거나 아직까지 단원들을 구하고 있는 데다 발카스는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흑왕단으로서는 극도로 조심스러운 처신을 보여주어야 했다. 괜히 오해를 바로잡겠답시고 나섰다가 어떤 전개가 펼쳐질지 몰랐다.
무엇보다도.
발카스는 의식을 잃기 전 진에게 명령권을 넘겼다.
그렇다면 진이 나서기 전에는 가만히 있어야 했다.
이내 생각을 정리한 진은 이런 결론에 다다를 수 있었다.
‘지플과 비먼트의 용들이 이대로 물러나기만 하면, 어떤 식으로든 내게 유리하도록 상황을 풀어갈 수 있다.’
지플과 비먼트의 용들이 이대로 물러나기만 하면.
결론에 그런 군더더기가 붙은 것은, 진이 용들 사이에서 무라칸의 위상을 아직까지도 깊이 ‘체감’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수호룡이 과거 대단했다는 사실이야 여기저기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기는 했으나, 그건 천 년 전을 함께 보낸 이들이 아니면 온전히 느낄 수 없는 영역이었다.
즉, 지플의 용들은 감히 무라칸과 대적하는 걸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무라칸, 의도치 않게 그대에게 결례를 저지른 점을 사과하겠소. 나와 화룡 테오는 신속히 물러가도록 할 테니, 한 번만 노여움을 거둬줄 수 없겠소?]라라마쿠아가 말했다. 어조만 침착할 뿐, 실상 이루 말할 수 없이 비굴한 대답인지라 진은 내심 놀랄 정도였다.
물론.
무라칸은 그렇게 어영부영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다른 용이라면 모를까, 하필 화룡이 찾아왔다는 것이 그를 더욱 분노케 만들고 있었다.
그래서 불구로만 만들어주겠다고 대답하려는 찰나.
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받아들이겠소! 지플과 비먼트의 용들은 속히 본국으로 돌아가도록 하시오. 내 수호룡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그 말에 지플과 비먼트의 용들은 화들짝 놀라며 진을 내려다보았고, 무라칸은.
즉시 진의 의도를 파악하며 이성의 끈을 되찾았다. 여기서 자신이 분노를 가라앉히지 않는 것은 계약자를 위험에 빠뜨리는 행위나 다름이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지룡들은 계속 눈알만 굴렸고, 화룡과 청룡은 진과 눈을 맞췄다.
이윽고 그들은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었다.
[위대한…… 흑룡의 계약자에게, 오해를 풀어주어 감사하오. 다음엔 이보다 좋은 기회에 만날 수 있으면 좋겠군.]라라마쿠아의 대답은 ‘오늘은 그냥 물러가지만 이 치욕은 잊지 않겠다’는 내용 정도로 들렸으나, 진은 씨익 미소를 지어주었다.
“감사할 것까지야. 살펴가시오, 다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