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536)
제 555화
145화. 전조(6)
태양이 그대로 하늘을 뚫고 내려온 것 같았다.
진이 형성한 화염옥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동자가 붉게 물들었다.
아군에겐 희망과 승리의 불이지만, 적들에겐 공포와 패배의 불이었다.
리올 지플이 남긴 룬 문자들이 진의 몸을 타고 빛을 퍼뜨렸다.
눈송이처럼 흩어지는 룬 문자들을, 검황성 테러를 겪은 이들은 이미 한 차례 본 적이 있었다.
그때도 진은 이 마법을 펼쳐 킨젤로의 기함 그르닐을 파괴했었다.
그리고 지금의 멸살암천화염옥 마황 최종형은, 그날 검황성에 있던 자들이 목격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형상이었다.
아직 역천에서 받은 충격에서도 헤어나오지 못했건만, 리올 지플의 유산은 그조차 아득히 뛰어넘었다.
인간의 한계를 벗어났다. 이제는 그런 표현조차 진의 마법을 설명할 수 없었다.
신적인 마법.
두 신의 의지가 함께하고 있으니, 사람들은 그 이름을 몰라도 진으로부터 그들을 느끼고 있었다. 솔더렛과 클람을.
어떤 이들은 저도 모르게 가슴에 손을 모았고, 어떤 이들은 무릎을 꿇었으며, 어떤 이들은 눈을 감았다.
그렇게 전장에 있는 거의 모든 이들은 무의식적으로 진을 향해 경배를 올렸다.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데도, 그 행위는 불가항력에 가까웠다.
존재 중 가장 격이 높은 이들을 신이라 부른다.
그리고 그 신들의 세계에서도 가장 높은 성좌에 앉은 두 존재가 진의 배후에서 그 위엄을 드러내고 있었다.
완벽한 현현은 아닐지라도, 두 신의 위엄을 느낀 미물과 자연조차 예를 표하고 있었다.
땅속의 벌레들은 몸을 떨었고, 멀리 떨어져 날고 있는 새들은 목소리를 내었으며, 바람은 잠시 이동을 멈췄다.
밤의 어둠은 솔더렛의 그림자를 피해 물러났다.
그러니 전쟁 중인 인간들 또한 경배할 수밖에.
특히 무라칸은 솔더렛으로부터 난 용으로서, 누구보다도 솔더렛의 이 옅은 현신에 크게 감동하고 있었다.
‘솔더렛……!’
한 번도 내색하지 않았으나, 친구의 검에 찔려 천 년의 긴 잠에 빠졌다가 깨어났을 때부터. 아니, 그전에 솔더렛의 목소리가 희미해지기 시작했을 때부터.
무라칸은 자신의 신을 그리워했다. 신으로부터 말미암은 존재가 신을 잃는 것은, 인간이 부모를 잃는 것에조차 비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허, 무라칸. 너 우냐?] [무슨 개소리야? 눈 똑바로 봐, 여기 눈물이 있나 없나.] [예민하게 반응하는 걸 보니 울었군.] [헹! 내가 넌 줄 아냐, 하늘의 패왕은 눈물 따위 흘리지 않지.]무라칸의 장막에도 새로이 힘이 깃들었다.
거울에 깃든 솔더렛의 의지 덕분에 벌어진 일시적인 강화였으나, 무라칸에겐 그것이 오히려 깨어난 후 옛 힘을 조금씩 되찾은 순간들보다도 더욱 충만하게 다가왔다.
어둠이 더욱 깊어지고 있었다. 암천의 영향권에 놓인 빛들은 모두 그 힘을 빠르게 잃어갔다.
횃불이 꺼지고 곳곳에서 쏘아지던 신호탄들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거품처럼 전장 곳곳에서 빛나던 보호막들도 색을 잃었고, 퀴칸텔이 펼친 시간의 권능조차 희미해졌다.
실제로 전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보였다.
어두워진 풍경 속 광원은 오직 하나, 진의 마법뿐이었다.
그 불덩이에 이끌려 진의 몸이 허공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단순 부피만으로는 남은 17개 함선이 더 우세했으나, 그저 태양 앞의 벌레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아무리 양산함이라곤 하나 지플의 함대다. 함선도 아닌 함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행 함선은 세상에 코젝 단 한 척이었다.
그르닐이 나타난 걸 필두로 양산함까지 쏟아지고 있으나, 비행 함선의 위용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전쟁에서 비행 함대는 학살과 공포 그 자체를 뜻한다.
그런 비행 함대가 단 한 사람에게 가로막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가문 최고 마법사의 유산을, 감히 룬칸델이……!] [우릴 모독하는구나!]함대의 절반을 포기해가며 얻은 포격 기회는 허무한 결과만을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이제 망령대에게 남은 것은 마지막으로 준비한 연환 마법이 전부였다.
[모독은 네놈들이 하고 있지, 무한과 마력의 신이 눈앞에서 의지를 드러내고 있건만 그조차 알아보지 못하다니…….]그러고도 마법사라 할 수 있나?
싸늘한 목소리로 뒷말을 잇는 진.
[네놈들은 그저 마력만 강한 고깃덩이고, 겁도 없이 섭리를 거스른 망자에 불과하다. 차라리 네놈들의 수장들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우선 인간으로서 그에 어울리는 경의를 표했을 터.]진의 손가락이 붉은 함대를 가리켰다.
그러자 그의 주위를 휘감고 있는 룬 문자들이 함대를 향해 나아갔다. 지상에서 올려다보면 꼭 은하수가 흐르는 것 같았다.
리올의 룬 문자들이 붉은 함대와 망령대들에게 표식을 남겼다.
동시에 망령대들의 지팡이에서도 마력이 번졌다.
망령대가 가진 마력이 아무리 크다 한들, 그에 어울리는 격은 없다.
그렇기에 그들의 마지막 연환 마법이자 망령대 전용 자폭기 ‘폭성爆星’은 본래의 날카로운 광휘를 드러내지도 못하고 꺼져 버렸다.
위력만 강할 뿐, 신들의 위엄을 침해할 그 어떤 요소도 갖추지 못한 결과였다.
폭성은 촛불처럼 작은 빛조차도 일으키지 못했다.
그아아아아……! 그저 괴물 같은 비명만을 내지르며, 그렇게 소환된 망령대들은 산화하고 있었다. 검황성의 그 어떤 것도 파괴하지 못한 채로.
다만 그들의 자폭기에 17척의 비행 함선이 함께 폭발하고 있었다.
인간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흉측한 기계들이 터지며 검은 파편들을 쏟아냈다.
[무라칸, 막아야 한다!] [아오, 뭔 파편이 이렇게 많아! 너무 넓어, 장막으로 전부 막을 수는……!]무라칸이 말을 멈추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군 진영으로 떨어지는 파편 하나하나에, 그 셀 수도 없이 많은 죽음의 조각마다.
리올 지플의 룬 문자들이 새겨지고 있었다. 아군은 한 사람도 죽거나 다치지 않게 하겠다는 진의 의지를 따라서 말이다.
[……너나 나나 괜한 걱정을 했군, 솔더렛의 의지가 현현했는데.]화르륵, 푸스스……!
아까부터 각자의 권능과 보호막을 강화시키고 있던 무라칸과 퀴칸텔의 각오가 무색할 만큼, 룬 문자는 아군의 머리로 떨어지는 파편들을 허공에서 완벽히 분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하늘에 걸린 화염옥이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수천 개의 불줄기가 화염옥으로부터 쏟아져 나와 파괴된 함선들을 묶어댔다.
추락하던 함선들은 진행을 멈추었으나, 불줄기가 붙잡지 않은 함선들은 계속 지상으로 떨어졌다.
그런 것들은 모두 황제군과 지플군 쪽으로 추락하던 함선들이었다.
“도, 도망……!”
“피해라, 피해!”
태산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
막을 생각 따윈 할 수도 없었다. 일반적인 보호막으로는 어림도 없고, 경지에 이른 초인들만이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적들은 모두 도망치라고, 피하라고 외치고 있으나 그건 달리 도리가 없기에 마구잡이로 내뱉는 말일 뿐이었다.
대체 어디로 도망치라는 말인가.
사방이 암천의 어둠에 가로막혀 있는데.
바로 옆 사람마저 희끗하게 보이는 어둠 속에서, 적들은 죽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더 끔찍한 문제는 그들이 막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붉은 함대의 파편일 뿐이라는 사실이었다.
이미 역천이 펼쳐졌을 때부터 망령대뿐만이 아니라 지상군도 진영이 무너진 상태였다. 지휘는 그 가치를 상실했고 명령은 전해지지 않았다.
황제군에도 인물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황제의 명을 따르고는 있지만, 지휘관들은 처음부터 이 전쟁을 최소한의 피해로 끝내고 싶었다.
미치광이가 아닌 이상 누가 전쟁을 좋아하겠는가. 하물며 제국의 기둥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전쟁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지플은 몰라도, 황제군은 이제 패배를 확신하고 있었다. 때문에 황제군의 지휘관들은 자신이 죽게 되더라도 최대한 많은 부하들을 살리고 싶었다.
그건 이 부당한 전쟁에 참회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지휘관이라면 응당 그래야 한다는 신념에 더 가까웠다.
그러나 저 태양이 지상으로 떨어진다면…….
‘이대로라면 전멸이다,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다…….’
평기사와 마법사들은 물론이고, 어쩌면 최후방에 있는 황제까지도. 불줄기가 측후방으로 퍼진다면, 그곳에 남아 있는 이들까지도 모두.
수만 명이 죽는다.
그 비현실적인 숫자의 죽음은 예정된 현실이었다.
그토록 많은 수의 인간이 불과 몇 분 만에 지상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은, 황제군 누구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문제였다.
“대체…… 어떻게 해야…… 그런 일을 피할 수 있다는 말인가.”
“진 룬칸델! 우리가 졌소, 그만 멈춰주시오, 제발!”
결국 황제군 곳곳에서 항복 선언이 터져 나왔다. 지휘관들은 황제의 명령도 없이 항복을 외치고 있었다.
온갖 폭음과 굉음에 천지가 진동하고 있음에도, 진은 그 절박하고 작은 목소리들을 다 듣고 있었다.
그리고 즉시 답을 해주었다.
[그 배경과 사정이 어떻든, 너희들이 나의 친구를 짓밟고 죽이려 한 사실은 결코 변함이 없다.]형대에 선 사형수의 마음으로, 황제군은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찧으며 악을 지르고 있었다.
살려달라고, 제발 살려달라고.
“제발…….”
[그렇기에 나는 네놈들을 모조리 불태워도 시원찮을 것 같으나, 나의 신은 부족한 나와 다른 마음을 품고 있는 모양이군.]진이 천천히 주먹을 쥐자, 암천의 태양이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 대목에서 일순 엎드려 있던 황제군들은 속으로 살 수 있다며 소리를 질렀다. 짐승처럼 우짖으며 감사하다고 소리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진과 신들의 자비가 마냥 자비롭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마법은 거두어주겠다.]온 하늘을 물들이던 암천의 태양이, 거짓말처럼 한순간에 사라지고 있었다.
그때쯤 아군에게 떨어진 파편은 단 한 조각도 남아 있지 않았고, 진영은 완벽히 정돈된 상태였다.
반면 암천의 태양이 사라졌음에도 적들의 머리 위로는 계속해서 함대의 파편이 쏟아졌고, 그로 인해 곳곳에서 쉴 새 없이 폭발이 일어나고 있었다.
진과 두 신의 의지는 충분히 그것들을 모두 막아줄 수 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것이 황제군이 치러야 할 대가였다.
[그러니 살아남을 수 있는 자들은 살아남아 도망쳐라. 물러나는 자들을 잡아 죽이지 않겠다는 나의 약속은 여전히 유효하다.]진이 말을 끝맺었다.
그리고 남은 황제군들은 들춰진 바위 아래에 있던 벌레들처럼, 어디론가 마구잡이로 도망치는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