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56)
제 55화
20화. 세상 밖으로(3)
셈버는 그길로 곧장 안채로 달려 들어가며 이렇게 생각했다.
‘진 룬칸델! 열다섯에 5성 기사가 되었다는 절세의 천재이자, 내 생명의 은인. 그분께서 이 야밤에 나 따위를 찾아와 도움을 요청하실 줄은!’
감격, 또 감격이다. 예전에 자신을 구해 줄 때도 룬칸델의 수호기사들까지 데려온 장본인이 아닌가. 돈이 아무리 많아도 쉽게 누릴 수 없는 호사였다.
대체 무슨 일일까? 룬칸델의 공자라면 돈이 썩어 넘칠 텐데, 혹시 비밀 임무를 수행하는 도중에 급히 필요해진 것일까?
‘뭐가 됐든 앞으로 그분이 이룰 위업에 작게나마 동참한 셈이다. 언젠가 역사가들이 진 님을 위한 평전을 만들 때, 빌가의 셈버도 한 줄쯤 서술될지 모르게 됐다고.’
돈을 챙기는 10분 남짓한 시간에 오만 가지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다.
다시 돌아온 셈버의 커다란 가죽 가방엔 온갖 귀중품과 금화가 들어 있었다.
“헉, 헉. 진 님. 여기 있습니다!”
너무 많다. 얼추 봐도 30킬로그램은 너끈히 넘을 것 같은 보물이라니. 이걸 다 챙겨 여정을 떠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가방을 솎아 한 줌 정도의 금붙이와 오백 개 정도의 금화를 챙겼다. 그 정도만 해도 범인들은 평생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액수다.
“이 정도만 가져가지. 만나서 반가웠다, 셈버 빌.”
“저야말로 영광이었습니다. 진 님, 무슨 임무를 수행하고 계신지 모르나 부디 몸 성히 마무리하시길……!”
“그래, 나중에 보자. 아, 그리고 내가 여기 들어오면서 입구 경비들을 좀.”
“무슨 말씀인지 다 압니다. 깔끔하게 정리해 둘 테니, 염려 마십시오. 그리고 오늘 일은 진 님께서 허락하실 때까지 입 꾹 닫고 있겠습니다.”
처음 쟌 남부 국경 지대에서 우연히 셈버를 구했을 땐 별생각이 없었건만. 진은 이제 셈버를 꽤 괜찮은 친구로 분류하기로 했다. 은혜를 잊지도 않고, 눈치도 좋은 인물.
‘나중에 좀 챙겨줘야겠어, 뭐라도.’
셈버는 진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 * *
룬칸델 예비 기수들은 보통 첫 두어 달 정도를 극히 가난하게 보낸다.
태어나서 배운 것이라곤 사람을 패고, 찌르고, 베는 법밖에 없는 검술명가의 자제들이란 대개 금전 감각이 극히 희박한 법이니까. 돈이란 걸 한 푼이라도 벌어 본 적 없이 세상으로 나가게 되니 당연한 일이다.
때문에 마미트 거두들의 목을 주렁주렁 달고 비먼트 수사대를 찾아가거나, 용병 생활을 해 돈을 모으기까진 가난한 삶을 강제로 체험할 수밖에 없다.
우걱, 우걱.
그러나 예비 기수 사흘 차. 진, 길리, 무라칸 세 사람은 지금 쟌 왕국 최고의 요릿집을 온통 거덜 내고 있다. 수십 가지 요리를 시켰지만, 그들의 돈 가방엔 흠집조차 나지 않는다.
“무라칸, 넌 너무 많이 먹지 마라. 한 시간 후에 이동 관문 타러 가야 해. 너 그때처럼 또 토하고 그러면.”
“시끄럽다, 꼬마. 결국 다 토해 내더라도 일단은 먹는 게 나 같은 포식자의 삶이다.”
“어련하시겠어.”
“도련님, 이것도 좀 드셔 보세요. 쟌 왕국 요리들도 나쁘지 않군요.”
“크하하, 딸기파이여. 어제는 진에게 ‘그건 금품 갈취에 속하지 않을까요? 도련님’이라고 말했으면서 잘도 먹는구나.”
세 사람이 무라칸을 타지 않고 이동 관문을 이용하는 이유는 길리의 고소 공포증 때문이 아니다.
그들이 향하는 아킨 왕국은 암흑 조직 테싱이 개판을 치는 나라지만, 그래도 엄연히 ‘루테로 마법 연방’의 소속이다. 루테로 마법 연방은 모두 지플의 관리 하에 놓여 있고.
그리고 현재 활동하고 있는 용 8할이 지플과 함께하고 있다. 그런 곳에 함부로 무라칸을 타고 들어가는 건 전쟁 선포나 다름이 없는 행위였다.
‘룬칸델이 지플과의 맹약을 깨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그 용들 때문이지.’
또한 그 용들을 빚은 신들.
룬칸델엔 신의 계약자가 진 하나뿐이지만 지플은 사정이 다르다. 수십 명의 계약자들이 가문을 지탱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시론이 죽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시론만 없다면, 눈엣가시인 룬칸델을 얼마든지 멸망시킬 수 있을 테니까.
“슬슬 시간 됐다, 가자.”
오후 세 시.
세 사람은 식사를 끝내고 쟌 왕국 이동 관문으로 이동해 수속을 마쳤다. 무라칸은 신분증이 없기 때문에 고양이로 변신해 탑승해야 했다.
“잠시 후 순간이동이 시작됩니다.”
우우웅!
한산한 특급 대기실에 자리를 잡으니 안내원이 작동을 알렸다.
시퍼렇게 빛나는 마력이 세 사람을 부드럽게 휘감았고, 잠시 후 세 사람이 다시 눈을 떴을 땐 아킨 왕국 수속대였다.
“루테로 마법 연방, 아킨 왕국에 어서 오십시오.”
가짜 신분증은 이번에도 무리 없이 그들을 입국시킨다. 이동 관문을 빠져나와 거리로 나서자 쨍한 햇빛이 눈을 찔렀다.
‘15년 만인가.’
회귀 전 마지막 1년을 보낸 아킨 왕국의 수도.
전생과는 15년이라는 시간차가 존재하지만, 이곳 풍경은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거리 곳곳에 나와 있는 노점상들, 그 옆에 쭈그리고 앉은 노숙자들, 낯빛이 어두운 거리의 사람들.
사시사철 따뜻하고 밝은 기후에, 잘 닦인 도로와는 괴리감을 자아내는 풍경이다.
‘테싱 놈들의 횡포 때문이겠지. 이 시기엔 특히 더 심했다고 들은 기억이 나.’
길리 역시 괴리감을 느낀 듯 주의 깊게 주변을 살폈다.
“묘하게 어두운 도시네요. 날이 이렇게 좋은데.”
“콜론의 마법사들이 풍경만 좋지 사람 살 만한 곳이 아니라고도 말하더군. 숙소부터 잡고, 사냥감을 물색하자고.”
“예, 도련님.”
하지만 진은 이미 숙소도 정했고, 첫 사냥감 또한 확정한 상태다.
정보상 제트.
진은 제트와 전생에서 꽤 가까운 사이였다. 아킨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제트의 도움을 받아 정착했던 것이다.
그러나 좋은 쪽으로 가까운 건 아니었다. 제트는 사람의 뒤통수를 치는 일에 일가견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 양아치 새끼. 지금쯤 자칭 특급 정보상이라며 얼간이들 상대로 사기나 치고 있겠지. 망할, 생각하니 또 열 받네.’
진 또한 첫 번째 인생에선 제트에게 얼간이로 분류되었다. 테싱의 지하 경매장을 소개시켜 주며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사기를 쳤던가.
이번엔 초장부터 단단히 놈의 버릇을 들여놓을 생각이다.
‘제트를 족쳐 놓고, 놈을 부리는 건 여러모로 유용하다. 차후 아킨에서 행동하는 동안 길리와 무라칸을 납득시키기 쉬워져.’
진은 회귀자라는 걸 앞으로도 길리와 무라칸에게 밝힐 생각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전생의 정보로 움직일 때마다 두 사람에게 그럴싸한 변명거리를 늘어놓아야 했다.
바로 지금처럼.
“꼬마, 꼭 이런 후줄근한 골목에서 숙소를 찾아야 해? 저쪽 대로변에 좋은 여관 많았잖아?”
“도련님께서 다 생각이 있으시겠죠, 무라칸 님.”
“돈도 많은데 굳이 이런 데서 지낼 필요는 없음이다, 딸기파이여.”
“미등록 마법사들이 한 묶음씩 설치는 이 동네에, 오자마자 돈 냄새 폴폴 풍기고 다니면 참 좋겠다. 그치, 무라칸?”
“하! 그깟 미물들 때문에 이 무라칸 님이, 오크도 거를 것 같은 허접한 여관에서 자야 한다고?”
진은 억지로 이유를 만들어 두 사람을 제트의 여관으로 인도하고 있었다.
매번 이럴 수는 없는 일. 하지만 제트를 수하로 부리기 시작하면 이런 문제에서 자유로워진다.
어? 도련님. 그건 어떻게 아셨어요?
꼬마, 왜 그렇게 해야 하는데? 길리와 무라칸이 그렇게 말할 때마다, 제트에게 얻은 정보라고 하면 간단히 납득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음, 여기가 좋겠군.”
한 시간 동안 무라칸과 옥신각신한 끝에, 마침내 진은 제트가 운영하는 여관 앞에 설 수 있었다. 그간 무라칸이 투덜대는 소릴 듣느라 열 시간은 걸은 기분이었다.
‘입구에서 제트를 찾아주세요’
오랜만에 그 간판을 마주하자, 진이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뱉었다.
하여간 그때도, 지금도 당최 이해하기 어려운 여관 이름이다. 여관이 아니라 실은 정보상이라는 점에선 괜찮은 작명 같기도.
“왜 하필 여기냐?”
“콜론 유적지의 마법사들이 말하기를… 아니다, 그냥 왠지 감이 와서.”
무라칸은 여관으로 들어서는 순간까지도 입이 삐죽 튀어나온 채였고, 길리는 어쨌거나 도련님을 믿는다는 눈치였다.
카운터에 삐죽 머리를 한 호리호리한 남자가 졸고 있다. 제트였다. 그는 인기척을 느끼지 못한 듯 쿨쿨 코까지 골았고, 술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당신이 여관 주인이오?”
“커흐으윽. 아, 손님? 어서오슈.”
굼뜨게 자세를 고친 제트가 위아래로 빠르게 흘긋대며 세 사람을 쳐다보았다. 그러곤 곧장 얼간이로 분류했다.
‘셔츠 차림 기생오라비 하나, 여행복 초보 검사 하나, 그리고 여자는 뭐야, 반반하군. 하녀인가? 딱 봐도 모험놀이 하는 귀족 일당이야.’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겉으로는 환한 미소를 보여 주는 제트.
“빈방이 있소?”
“그야… 죄다 빈방이지. 잘 찾아왔소. 내가 자부심이 있는 사람이거든. 여행자들에게 최저의 가격으로 최고의 휴식을! 자자, 방이야 둘러보고 맘에 드는 걸로 아무거나 고르시오.”
벌떡 일어난 제트가 자연스레 진 일행을 위층으로 떠밀었다. 알아서 묵을 방을 골라 내려오라는 것이다.
가격이 얼만지 알려 주지도 않고 일단 이용하게 만드는 것. 전형적인 사기꾼들의 수법이다.
한술 더 떠서, 제트는 그들이 위층에 있는 사이 재빨리 시원한 음료를 세 잔 준비했다. 어영부영 마시게 만든 다음 바가지요금을 씌우기 위해서다.
상대가 적당히 노련한 용병들이었다면 그 정도로만 끝냈을 것이다.
하지만 제트는 이 어리숙해 보이는 파티를 그렇게 처리할 생각이 없다.
‘내려와서 이 음료를 마시고나면. 셋 다 나란히 지하 경매장으로 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거야, 흐흐. 이게 웬 횡재냐!’
제트는 이들을 보자마자 결심한 것이다.
셋 다 수면제로 재워 테싱의 지하 경매장에 노예로 팔아 버리기로. 빠른 계획과 실천. 훗날 제트가 아킨의 거물 정보상이 된 배경이었다.
물론 진은 제트의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다.
‘또 그 진부한 수법으로 우릴 벗겨 먹을 생각에 잔뜩 기대하고 있겠지. 뒤질 준비해라, 제트.’
다시 1층으로 내려오자 역시나 제트가 음료를 들고 반겼다.
“아이고, 다들 여행하시느라 목이 바싹바싹할 텐데 한 잔씩 들이켜십시오, 헤헤. 우리 여관 특제 오렌지 주스입죠, 맛이 아주 그만입니다. 이걸 먹으러 종종 귀족들도 찾아올 정도지요.”
룬칸델의 축복받은 육체는 어지간한 독에도 약간의 내성이 있을 정도니, 이런 싸구려 수면제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
진은 생각했다.
한 잔 벌컥 들이켜고, 수면제 맛이 아주 좋다며 놈을 족치기 시작할까? 아니면, 먼저 먹어 보라고 압박을 해 실토하게 만들까.
그러나 진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한 가지 있었다.
“이 하찮은 미물 새끼가 머리가 돌아 버린 건가?”
무라칸은 아까부터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는 것.
무라칸은 수면제가 풀어져 주스 표면에 둥둥 떠오르는 기포들을 훤히 꿰고 있었다.
“야, 꼬마! 감이 좋다며. 내가 이거 두들겨 패는 동안, 네 감이 정말 좋은지, 과연 그런 것인지. 성찰하는 시간을 갖도록 해라.”
끼익.
무라칸이 살며시 여관 문을 닫으며 말했다. 제트는 결국 무라칸의 구타를 견디다 모든 것을 다 불게 될 운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