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614)
제 666화
159화. 투왕대전(2)
* * *
명왕군림검을 펼치고도 이전처럼 곧바로 탈진하지 않았다.
검황성전에서 몇 번이나 생사를 넘나들며 얻은 깨달음과 투신합일로 얻은 반의 감각이 진을 성장시킨 결과다.
단숨에 명왕족의 십이투왕을 꺾었으며 새로 익힌 영검 궁극기는 사용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진은 도무지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무의 끝에 가까운 영역을 경험했으니, 대단한 성취를 거머쥐고도 큰 감흥을 느끼기가 어려웠다.
투왕대전의 첫 경기가 종료된 이후에도 진은 계속 어딘가 넋이 나간 사람처럼 맹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나마 눈빛이 또렷해지는 순간은 오직 다른 투왕들의 싸움이 진행될 때가 전부였다. 그때만큼은 진도 분석을 위해 정신을 집중하는 것이다.
대신 경기가 끝나면 또 멍한 눈동자를 한 채 유령처럼 라프라로사 곳곳을 정처 없이 걸었다.
“이러다 진 형제가 정말로 맛이 가버리는 건 아닐까 걱정되는군.”
퐁! 탄텔이 보석주 한 병의 마개를 따며 진의 옆자리에 앉았다.
진은 투신전 근처의 첨탑에 올라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 탄텔 형제. 왔어?”
“내가 온 줄도 몰랐다고?”
“근데 방금 뭐라고 했지?”
“오, 이런.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설명 좀 해봐.”
고민이라면 고민이다.
또한, 배부른 고민이다. 투신의 감각을 경험한 탓에 자신의 무위가 하잘것없이 느껴진다는 것은.
“배가 불러도 너무 불렀군.”
사정을 들은 탄텔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형제는 나이만 생각하면 그야말로 핏덩이나 다름이 없어. 그런데 불과 며칠 전에 명왕족의 투왕을 꺾었다. 십이투왕 형제가 비록 그중 가장 약하다고는 하나, 그는 명백히 투왕이다.”
진이 테토를 꺾었다는 건, 곧 명왕족 투왕이 될 자격을 갖추었다는 의미나 다름이 없었다.
“나도 알아.”
누구보다도 진 자신이 잘 알았다.
다만 이번 수련은 거대 세력 간의 필연적인 대전쟁을 치르기 전 마지막 기회였다. 강해질수록 진은 오히려 마음이 조급해지고 있었다.
과연 자신이 돌아갔을 때 적들로부터 동료를, 가문을 지킬 수 있을지 걱정이 되는 것이다.
탄텔의 말처럼 이미 나이에 비해 이룬 성취와 세력이 대단하기는 하나, 적들은 분명 자신보다 거대했다.
당장 형제들을 인세로 꺼낼 수 있다면 순식간에 판도를 바꿀 수 있을 테지만, 그건 언제가 될지 모르는 일이다.
“알면 조심해, 진 형제. 분위기도 좀 읽고.”
“분위기?”
“질투가 안 느껴져?”
“형제들이 나를 질투한다고?”
“하아, 왜 안 하겠어?”
진은 라프라로사에서 온갖 특혜를 받아왔다. 형제가 되기 전에 이미 명왕검을 익히고 투신혈까지 수혈받은 것이다.
“물론 진 형제가 우리의 형제가 된 이상, 형제가 이뤄온 모든 성취는 우리의 자부심이다. 하지만, 다른 형제들도 사람이야. 테토 형제는 투왕이 되기까지 백 년 이상을 수련했고, 그보다 더 노력하고도 끝내 투왕이 되지 못한 형제들도 많아.”
생각해보지 못한 문제였다.
형제로 인정받은 후, 진은 언제나 명왕족들에게 사랑받기만 한 것이다. 형제들은 늘 앞다퉈 진을 돕고자 했고, 그가 이룬 업적을 가장 먼저 먹으려 했으며, 어쩌다 검은빛 부르기로 소환이라도 되면 일생의 축복인 듯 자랑스러워했다.
그런 형제들이 이제 와서 질투라니, 진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형제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군.”
“뭐, 모두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질 필요는 없어. 질투는커녕 대견하다고만 생각하는 형제들도 많으니까. 나는 그런 쪽이고.”
탄텔이 건넨 보석주를 받아 마시자 속이 알싸해졌다.
“이번 투왕대전은 형제들이 그런 시기심과 질투를 표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살인 금지라는 규칙을 가진 경기의 형태를 띠고 있기는 하지만, 참가한 형제들은 모두 정말 목숨과 온 마음을 다해 임하고 있어.”
탄텔의 말을 듣다 보니 얼굴이 뜨거워지고 가슴이 확 옥죄어왔다.
부끄러운 것이다.
“그러니 형제도 좀 더 정신을 차리고 싸움에 임해. 투왕대전이 끝났을 때, 결과와 과정이 어떠했든 형제들은 분명 진 형제를 이전처럼 아낄 테지만…… 형제들도 모두 사람이라는 걸 절대로 잊지 마. 조금이라도 앙금이 남으면, 언젠가는 곪는다.”
탄텔과 눈을 맞추는 진.
불현듯, 진은 테토와의 대전이 끝난 후 자신을 향해 잡아먹을 듯 살기를 품었던 투왕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고맙다, 탄텔 형제. 덕분에 정신이 번쩍 드는군. 그런데 그 종이는 뭐야?”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래도?”
황급히 종이를 숨기려는 탄텔의 손목을 낚아챘다. 종이엔 이런 내용이 쓰여 있었다.
제7대전
지옥대검제 팔투왕 가르문드 형제 : 돌풍의 전승자 진 형제
배당률 1.5 : 7
과연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도박?”
“그, 그저 간단한 여흥일 뿐이다. 보석주를 걸고 하는 것이지. 투신 형제에게는 비밀이다!”
그러고 보니 최근 탄텔이 보석주를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모습을 본 것도 같았다.
탄텔은 제1대전 당시 진에게 베팅한 것이다.
“투신 형제가 정말 그걸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 테지.”
“아무튼 꼭 이겨야 해, 진 형제! 내 보석주를 전부 다 걸었다고, 이번에 승리하면 평생 술 걱정은 없다!”
도망치듯 호다닥 사라지는 탄텔을 보며 진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 * *
이튿날, 하늘에 뜬 본당이 또다시 시퍼런 뇌전으로 휩싸였다.
“제7대전을 시작하겠다.”
진과 가르문드.
두 사람이 마주 서자 뇌전이 잦아들었다.
진은 가르문드가 명왕족 투왕들 중 중위권 정도의 실력을 지녔으리라 판단한 상태였다.
‘그보다 아래일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테토 형제와는 분명 격이 다르다.’
본래라면 이길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의 가르문드는 몸 상태가 완전하지 않았다. 테토와의 전투 이후 쭉 휴식한 진과 달리, 가르문드는 오늘 아침에도 단체로 도전해온 평전사들과 격한 대전을 벌였다.
큰 부상을 입지는 않았으나 조금은 지친 기색이 묻어났다.
“날 얕잡아본 겁니까, 가르문드 형제.”
“마음대로 생각하게. 어차피 결과는 정해져 있으니.”
가르문드에게선 평소의 호탕한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상대를 압살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만이 가득했다.
후웅-!
반이 물러서자마자 가르문드의 대검이 코앞으로 떨어졌다. 막아내자 칼날을 타고 온몸이 부서질 것 같은 충격이 전해졌다.
그리고 진은 자신도 모르게 오러를 이용해 그 충격을 외부로 흩어버리는 모습을 보였고, 가르문드는 미간을 좁힐 수밖에 없었다.
‘그 감각이다!’
투신의 감각.
내상으로 이어져야 할 충격을 이토록 간단히 흩어버리는 건 이전의 진으로서는 어려운 경지였다.
그간 반의 감각을 깨우고자 한 수련이 본격적으로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개막전 때 투신합일 상태로 가르문드의 검을 받아낸 기억도 선명히 떠올랐다.
‘가르문드 형제는 느리다.’
당연히 상대적인 의미다. 그는 장정 몇 사람의 무게를 거뜬히 뛰어넘는 대검을 단검처럼 휘두르는 괴력을 소유했으며, 제대로 보법을 밟을 때마다 잔상을 남기지만 다른 투왕에 비해 결코 민첩하다고 할 수 없었다.
대신 가르문드는 동급 수준 상대와의 전투에서 떨어지는 속도로 인한 빈틈을 파괴력으로 대체했다. 속도의 부재로 생기는 빈틈마다 폭발적인 뇌기와 오러를 뿌려놓는 게 가르문드의 방식이었다.
‘그 부분을 파훼하면 내가 적어도 한 가지 상성은 가르문드 형제보다 우위를 차지할 수 있어.’
파훼는 이미 첫 공방에서 끝이 났다. 몸으로 전해지는 충격을 외부로 흩어버리며 파고들면 되는 것이다.
진이 곧바로 그걸 실행하자 가르문드는 다급하게 대처할 수밖에 없었다.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일이 전투가 시작됨과 동시에 벌어진 셈.
‘하! 투신 형제의 감각을 맛보았다고 해서, 벌써 체술을 이 정도까지 발전시켰다는 말인가? 아침에 평전사 형제들의 도전을 받아주는 게 아니었군.’
물론 가르문드가 당혹감을 겉으로 드러내거나, 허둥대는 기세를 보이지는 않았다. 그는 약점을 파고든 진을 능숙하게 밀어내며 새로운 전술을 짜냈다.
‘속전을 펼쳐야겠군. 단숨에 끝낸다.’
가르문드는 진이 명왕군림검을 펼치리라 예상했다. 파고드는 건 충격을 잘 분산하며 해내고 있으나, 진은 그 이상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따라서 결정적인 일격이 필요하니, 그만한 파괴력을 가진 검을 펼쳐야 한다.
명왕군림검, 업화, 혹은 영검 궁극기.
가르문드가 아는 한 진이 가진 최강의 검은 그 셋이었다.
‘업화는 테스의 부재로 제 위력을 낼 수 없고, 진 형제는 영검 궁극기를 가능한 비장의 수로 남겨두고 싶을 것이다.’
남은 건 명왕군림검뿐.
‘자신감이 붙었을 테지. 테토 형제가 제대로 손 한 번 쓰지 못하고 당하는 걸 직접 경험했으니.’
가르문드는, 현재 진이 가진 명왕군림검의 개를 정면으로 맞받아쳐 깨부술 자신이 있었다.
아니, 자신이 아니라 확신이다. 그가 가진 투왕 절기는 분명 진의 명왕군림검 1장이 가진 위력을 상회했다.
예상대로 진의 광심장에 뇌기가 모여들고 있었다.
‘이제 진 형제가 명왕군림검을 펼치면, 단숨에 투왕 절기로 깨부수고 역류 반응을 일으켜야…….’
가르문드는 그렇게 기회를 엿보았으나.
이어 공방이 30분을 넘도록 이어지는 동안에도, 진의 광심장에 모인 뇌기는 도무지 오의로 치환될 기미가 없었다.
“호오, 내 속내를 다 알고 있었군?”
뒤늦게 깨달은 가르문드의 말에 진은 미소를 지었다.
“가르문드 형제의 생각을 읽지 못할 형제는 아무도 없을 겁니다. 형제는 항상 얼굴에 다 쓰여 있거든.”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내 쪽에서 먼저 가는 수밖에!”
수를 읽혔다 할지라도 문제가 될 건 없었다. 역류를 이끌어 끝내려던 건 어디까지나 진이 최대한 덜 다치게 하기 위한 배려였을 뿐.
크저저적-!
가르문드의 기운이 한 점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진을 한칼에 쓰러뜨리고도 남을 기운이 대검을 휘감고 있었다.
“형제는 어차피 이 검을 감당할 수 없어.”
그러나 안타깝게도, 가르문드가 계산하지 못한 수가 하나 더 있었다.
가르문드는 절기를 펼치기 직전, 한층 더 속도를 높여 사각을 파고든 진을 인지하지 못했다.
지금껏 자신의 파괴력을 상쇄시킨 진의 체술과 신속한 보법이, 설마 거기서도 한층 더 빨라질 수 있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그보다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고!? 내 기운을 뚫은 채……!’
시그문드의 칼끝이 목 뒤에 닿아 있는 게 느껴졌다.
“끝났습니다, 가르문드 형제.”
가르문드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검에 모인 기운을 풀어헤쳤다.
“젠장, 이렇게 허무하게 질 줄은 몰랐는데.”
[그러게, 저 얄미운 놈한테 투왕이 또 지면 어떻게 해? 너희들, 날 압박할 땐 이 정도가 아니었잖아!]링링이 한마디를 거들었고, 반은 대전을 중지시키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진의 승리를 알렸다.
‘가르문드 형제가 생각을 조금만 깊게 했어도 반드시 졌을 것이다. 다행이군, 테토 형제 이후 또 이런 식으로 승리할 줄은 몰랐…….’
진이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
지켜보던 한 명왕족이 소리를 질렀다.
“빌어먹을! 다들 장난을 하고 있군. 십이투왕, 팔투왕 형제. 그러고도 형제들이 위대한 명왕족의 투왕이라고 할 수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