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666)
제 666화
169화. 원수의 성지로(5)
봉인을 이룬 빙결계 마력이 사라지자 잔존 기운이 발레리아에게 스며드는 속도가 빨라졌다.
발레리아는 순식간에 무지갯빛 거품 속에 잠겼는데, 회복되는 속도가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
움찔거리며 천천히 호흡을 내뱉는 발레리아를 본 후에도 진은 마음을 놓지 못했다.
만에 하나라도 갑자기 회복이 멈추면 어쩌나, 그런 불안감에 가슴에 돌이 얹힌 것 같았다.
베라딘은 그런 진을 보며 흥미롭다는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과거 내가 진 룬칸델과 아주 가까웠다는 것이 사실이긴 한 모양이군. 쓸데없는 말을 자꾸 하고 싶어지는 것을 보니.’
정신이 온전해진 직후부터, 베라딘은 이전과 달리 차가운 인간이 되었다.
잔혹하거나 끔찍할 만큼 비정한 성격을 갖게 된 것은 아니지만, 세상사 대부분의 일에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이다.
우정은 물론이고 가족애, 권속들을 아끼는 마음. 그런 것들조차 남지 않았다.
지금의 베라딘에게 남은 것은 오직 지플의 부흥이라는 맹목적인 목적의식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진과 대화를 나누는 게 나쁘지 않았다.
아니, 그걸 넘어 즐겁다는 마음마저 들었다.
“진 룬칸델, 너는 어떤 상황에서도 약점을 드러내는 법이 거의 없다고 들었는데.”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냐?”
“히스터가 행여 회복되지 못할까 봐 노심초사하는 마음이 얼굴에 다 드러나고 있거든. 혹시 애인인가?”
“그랬을 수도 있지.”
“이상한 대답이로군. 헤어진 모양이지?”
진은 발레리아를 지켜보느라 베라딘의 다음 질문을 듣지 못했다. 다행히도 그녀의 회복세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베라딘은 개의치 않고 품속에서 하나의 유리병을 꺼내 그 속에 무지갯빛 거품을 담았다.
병에 담긴 거품이 오팔처럼 아름다운 빛깔을 냈다.
그 마력 흔적이 지플에게 어떤 보상이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대가가 무엇이든, 진과 바멀 연합에겐 발레리아의 목숨보다 중하지 않았다.
“아……!”
마침내 발레리아가 눈을 뜨며 한 차례 크게 호흡을 토했다.
진은 저도 모르게 와락, 그녀를 끌어안았다.
하마터면 그녀의 이름을 소리칠 뻔하기도 했다.
“진…… 진 룬칸델?”
“그래, 나야.”
“어떻게…… 으윽.”
“아직 상처가 덜 아물었다. 기다렸다가 천천히 이야기해도 괜찮아.”
발레리아가 제 가슴팍을 내려다보았다.
룬티아의 검에 찔린 순간을 기억해내자 잠시 고통이 찾아왔다.
기억.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느낌과 함께, 자신이 쓰러졌던 순간의 기억들이 물밀듯이 밀려오고 있었다.
“네루…… 네루 님은!?”
“무사하다. 네루 님이 널 지키고 있었어.”
“다행이군…….”
발레리아의 시선이 베라딘에게 닿았다.
그가 쥐고 있는 유리병 속에 자신이 남긴 마력 흔적이 담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방금까진 막 깨어난 참에 정신이 없었으나, 이내 발레리아는 언제나처럼 냉철한 기색을 되찾았다.
“진, 회복이 끝났다. 어서 여길 나가는 게 좋겠어.”
그녀는 지플의 성지라는 이 땅의 힘이 자신을 회복시킨 사실을 알고 있었다.
가장 최근에 찾은 히스터의 전승지로부터 성지에 대한 기록을 본 것이다.
자세한 기록은 아니었다. 다만 성지가 완전마력체들을 치유할 수 있다는 내용이 남아 있었다.
때문에 발레리아는 처음 스스로를 봉인한 순간부터, 진과 동료들이 자신을 구해 이곳으로 데려오는 걸 희망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진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았고, 그 직감은 정확히 들어맞은 셈이었다.
‘마수왕 오르갈, 아마 진은 이곳에 대한 정보를 그로부터 얻었을 테지. 내 선조에게도 이곳의 정보를 알려준 인물은 바로 그였으니.’
발레리아는 그간의 상황을 모른다.
검의 정원에서 대전투가 있던 사실은 물론이고, 그 때문에 3대 세력이 임시 동맹을 맺은 것도 모르며, 진이 로사의 유일한 대항마라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아무래도 세 세력도 검의 정원이 가진 힘을 알게 된 모양이군. 그래서 임시 동맹을 맺었고, 지플은 성지를 개방해준 건가…….’
그럼에도 발레리아는 빠르게 그 모든 상황을 유추해냈다.
“그러도록 하지.”
나가서 들을 이야기가 많았다. 진 역시 발레리아가 회복된 이상 단 1초도 성지에 더 머무르고 싶지 않았고 말이다.
무엇보다도 성지의 잔존 기운이 완벽하게 회복시킨 건 발레리아의 상처뿐이었다.
아문 상처 안에 남은 혼돈의 기운은 정화되지 않았으니, 티칸으로 돌아가 정화기를 사용해야 했다.
“밖으로 나가기 전에, 한 가지 더 요구사항이 있다, 진 룬칸델.”
갑작스러운 말에 진은 담담한 눈으로 베라딘과 시선을 맞췄다.
“신뢰를 빠르게 저버리는 재주가 있는 줄 몰랐는데, 베라딘 지플. 거래가 끝난 다음에 협박을 할 셈인가?”
“뭘 요구할지 알고 있으면서 괜히 날을 세우는군.”
“화룡 카둔의 치료라면, 받아들이도록 하겠다.”
화룡 카둔.
그는 1차 검의 정원 총공격과 칼드란 설원전으로 인해 막대한 혼돈에 노출된 상태다.
진은 성지 개방 회담을 할 때부터 지플이 그의 치료를 요구하리라고 예상했었다.
“그래. 티칸으로 갈 때 카둔 님을 같이 모셔 가면 될 것 같군.”
“알겠다.”
성지를 나가는 길은 처음과 같았다.
왔던 길을 되돌아 나가면, 다시금 어느 순간부터 경계를 지나 인세의 풍경이 점점 진해지는 것이다.
성지 진입로인 회랑을 지나 문이 나타났다.
그리고 문 너머에는, 성지로 들어서기 전과 달리 수많은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흰 로브를 입은 채 검을 차고 있는 수많은 마법사들이.
‘생체 골렘……!’
아니, 마검사의 한 형태일지도 모르는 개조 인간들이었다.
그 숫자가 얼마나 많은지, 저 멀리까지 시선을 두어도 끝이 없을 지경이었다.
“아주 마검사 생체 골렘을 육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내게 대놓고 광고를 하는군. 이제 와서 겁을 주려는 것인가?”
그들로부터는 베라딘과 달리 하나하나 모두 상당한 마력과 오러가 느껴졌다.
만일 전투 기술도 그에 상응하는 수준이라면, 진이라 할지라도 저 모두를 감당하는 건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특히 발레리아를 보호하며 싸워야 하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저 기운만 가지고 있는 인형들이 아니다. 호흡부터 훈련되지 않은 자들과는 전혀 달라.’
또 하나 묘한 점은, 그들의 체구가 완전히 같다는 사실이었다. 마치 예언자가 조슈아를 복제한 것처럼.
진이 가장 가까운 생체 골렘에게 다가가 후드를 벗기려 하자, 베라딘이 그의 손을 가로막았다.
“우리가 보여주기로 한 것만 봐라, 진 룬칸델.”
“저 후드 안에 있는 얼굴이 왠지 너와 똑같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드는데.”
“내가 그렇게 흔하게 생긴 얼굴인가? 얼마 남지 않은 일기장에 나는 너무 잘생겼다는 내용이 가득하던데.”
“무슨 속셈인지 모르겠군. 처음부터 네가 마검사화에 이르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은 것부터 이상하기는 했다.”
“공공의 적을 둔 입장에서 전력을 공유하는 차원이라고 이해해주면 좋겠군.”
이토록 많은 수의 마검사 생체 골렘이라면, 1차 검의 정원 총공격 때에도 분명히 활약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지플이 함대에서 내보낸 생체 골렘들은 저들과 비교할 수 없이 조악한 수준이었으며, ‘혼돈 제어’를 통해 강화된 존재들이었다.
칼드란 설원에서 사망한 생체 골렘들 역시 마찬가지.
진은 직감적으로 그 이유를 알아낼 수 있었다.
“……이 생체 골렘들은 모두 성지 근처에서밖에 힘을 낼 수 없는 모양이군.”
총공격 당시 마검사 생체 골렘들이 없던 이유는 오직 그것뿐이었다.
카둔과 옥타비아까지 직접 참여했으니, 당시 지플은 ‘내보낼 수 있는’ 전력을 거의 다 투입했었다.
베라딘은 숨길 필요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저들을 성지 밖으로 내보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중이다. 지금으로선 성지 근처를 벗어나는 순간 실 끊어진 인형처럼 가동을 멈추거든. 죽는다는 뜻이지. 그보다, 왜 불쾌한 눈치인지 모르겠는데. 설마 마검사는 너희 가문만의 특권이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가 너와 친하기 때문이다.”
진도 숨길 것 없다는 듯 말했다.
“그렇군.”
베라딘이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하지만, 과거형으로 말했어야지. 이제 너와 내가 다시 가까워질 일은 없다.”
진과 발레리아도 뒤따라 걷자, 모든 생체 골렘들의 시선이 기계처럼 움직이며 그들을 좇았다.
성지 바깥까지 한참 걷는 동안 생체 골렘들의 숫자는 줄어들지 않았다.
이윽고 진이 처음 도착한 지역에 이르렀고, 로닐은 왔을 때처럼 코젝을 대기시킨 채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생체 골렘들은 그때가 되어서야 사라졌다.
로닐은 돌아온 진을 보자마자 회중시계를 확인하며 놀란 기색을 드러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습니까? 로닐 형님.”
“……하루.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다.”
“성지가 히스터를 무척이나 환대했군요. 어쩌면…… 진 룬칸델을 환대한 것일지도 모르고.”
“아버지께서 널 찾는다.”
“저도 바로 찾아뵐 생각이었습니다. 이것이 궁금하기도 하실 테니.”
로닐에게 유리병을 보이다가, 베라딘이 뒤돌아 진에게 손을 내밀었다.
진은 몇 초쯤 그 손을 바라보다 맞잡았다.
“잘 가라, 진 룬칸델. 이것으로 기억을 잃기 전 내가 했던 약속은 지킨 것이다.”
기다리고 있어라, 베라딘.
진은 그 말을 입 밖으로 내지 않고 악수를 풀었다.
“티칸으로 모시겠습니다, 진 경.”
“알겠소, 로닐 지플.”
* * *
다시 창이 없는 선실, 진과 발레리아는 마주 앉아 그간의 이야기들을 나눴다.
발레리아는 몇 번이나 고맙다는 말을 했는데, 진으로서는 현생에서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보는 게 무척이나 낯설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역시 예상대로 임시 동맹을 맺었군. 검의 정원을 상대하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 그렇다면, 배에서 내리기 전에 놈들에게 알려줘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지플에게 알려줘야 할 것?”
“황실이 지플을 배신했어. 그리고 어쩌면, 네 친구. 검황성주가 위험한 상황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