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922)
제 999화
230화. 침공과 습격(4)
파엘리토의 뒷모습을 마주하는 것만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검이 없어도 만물을 벨 수 있는 검객이었다. 검술이라는 무학의 극지에 다다른 인물이며, 의심할 여지 없이 창성이었다.
검마.
진마계에서 단 한 사람, 지토를 제외한 수십억 마족 전부를 내려다보는 존재.
허공을 채운 마기 속에서 언제든 갑자기 검기가 쏟아질 수 있었다. 일행은 그에 대비하며 검을 뽑은 채 감각을 곤두세웠다. 무라칸조차 묵묵히 영기 보호막을 강화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격 떨어지는 기습은 불필요하다는 듯이, 파엘리토는 진이 입을 열기를 천천히 기다렸다. 여전히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검마, 파엘리토 벨가시움. 나를 바로 알아보는군.”
“그럴 수밖에. 인세에 올라오자마자 내가 가장 먼저 절감한 것은, 지하에서 그토록 오랜 시간 바라온 진짜 태양의 환한 빛이 아니라…… 더 이상 이 세상엔 사키엘 그로쉬에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자를 많이 아낀 모양이지.”
“진마계를 위해 없어선 안 될 사람이었다.”
억눌린 슬픔이 묻어나는 무거운 목소리.
파엘리토는 잠시 켈리악이 자신에게 한 말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내 보기에 경은 아직 마음을 다 가라앉히지 못하였소.
이 슬픔을 어찌 모두 지운 채로 싸울 수 있다는 말인가.
창성에 오른 그조차 견딜 수 없는 상실감이 있었다. 파엘리토는 그 사실을 인정하며 담담한 눈으로 탈라리스의 대결계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사키엘의 마지막은 어떠했나?”
“비굴하지는 않았다.”
“그런 당연한 걸 물어본 게 아니다. 진 룬칸델, 그녀는 최후의 순간에 무엇을 원하는 듯 보였는가?”
“파엘리토. 내게 사키엘은 그저 침략자일 뿐이다. 지토를 위해서라면 수백만, 천만, 억에 달하는 부하를 제물로 쓸 수 있고, 심지어 자신마저 희생할 수 있는 끔찍한 괴물에 불과하지. 그래서 죽였다. 나더러 지금 그런 광인의 심정이 어떠했는지를 묻는 것이냐? 내가 그딴 걸 어떻게 알겠나? 설령 안다 하더라도, 적을 위해 지껄일 생각 따위는 없다.”
“아, 그래…… 내 잠시 잊고 있었군. 너흰 아직 고통으로 맑아지지 않은 족속이라는 걸.”
쩌적……!
별안간 파엘리토가 보고 있는 탈라리스의 대결계 한가운데에 균열이 일었다. 파엘리토의 기운이 대결계를 찢기 시작한 것이다.
“사키엘을 기리는 건 잠시 미루도록 하지. 오늘 이곳, 성국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질 것이다.”
이어 파엘리토가 검을 뽑은 순간.
가장 먼저 진이 쇄도하며 그의 등으로 검을 찔러넣었다. 거의 동시에 무라칸이 숨결을 토했고, 단테와 헤도도 좌우로 퍼지며 검기를 쏘았다.
처커엉-!
그러나 파엘리토가 대결계를 깨뜨리는 속도가 더 빨랐다. 일행의 공격은 허공을 지났고, 파엘리토는 이미 아율라의 보호막과 탈라리스의 대결계를 지나 강하하고 있었다.
‘비궁주의 대결계를 이토록 쉽게 부수다니!’
‘빠르다, 진보다도 더. 움직임을 읽을 수가……!’
성국 전체를 감싸느라 밀도가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는 하나, 분명 탈라리스는 만빙의 힘을 최대로 개방하고 있었다.
그런 대결계가 준비 동작도 없이 내지른 일격에 한지처럼 찢겨나가는 모습.
그 아래로는 성국의 신관과 성기사들, 그리고 신민들이 있다. 그리고 파엘리토는, 병사와 일반인을 구분하여 죽이고자 성국을 찾은 게 아니었다.
이대로라면 잠시 후부터 만 단위의 인간들이 무참히 죽어갈 것이다. 성국의 기사들은 그중 가장 뛰어난 자라 할지라도 파엘리토를 상대로 1분을 버틸 수 없다.
만약 파엘리토가 일행에 맞서 싸워주지 않고 우선 신민들을 상대로 그저 학살과 파괴를 행한다면, 그것을 완벽하게 저지하는 건 그 누구에게도 불가능한 일이다. 설령 진 일행이 아니라 시론과 원정대가 이 자리에 있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아율라는 이런 때를 대비해 성국에 자신의 권능을 남겼다. 아율라가 펼친 보호막은 단지 외부 침입만을 막는 데 그치지 않았다.
츠아아아악-!
파엘리토가 아율라의 보호막을 뚫고 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별안간 그의 근처 허공에 황금빛 창들이 형성되고 있었다.
‘아율라 님의 창……!’
현현한 아율라가 지토와 싸울 때 무기로 사용한 스무 자루의 금빛 창.
신의 무기가 침입자를 꿰뚫기 위해 날카로운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 창은, 지토조차 고통에 전율하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쩌엉-!
파엘리토가 정면으로 날아든 창을 쳐냈다. 일순 충격에 밀려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슬아슬하게 보이는데도 사각으로 날아드는 모든 창을 남김없이 쳐내고 있었다. 튕겨 나간 창들은 한동안 허공을 휘젓다가 다시 파엘리토를 노렸다.
창 때문에 파엘리토의 속도가 더뎌지고 있었다. 일행은 그 틈에 파엘리토에게 달려들어 공격을 퍼부었다.
신의 스무 자루 창과 창성을 목전에 둔 세 자루의 검, 무라칸의 영기까지.
그 모든 게 완벽하게 어우러져 파엘리토를 압박하고 있건만, 그는 전혀 몰리는 기색이 없었다.
진은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아율라 님의 창이 아니었다면, 벌써 성국의 도시가 하나쯤은 사라졌을 것이다.’
상공에서 터지는 충격파만으로도 이미 일행의 시야에 들어온 산맥들이 무너지고 있었다. 바다에선 끊임없이 해일이 몰아쳤고, 구름은 형체를 잃은 채 흩어졌으며, 도로와 작은 마을들이 사라지고 있었다.
다행히 아직은 그에 휘말려 죽은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진은 전투 도중 계속 지상 쪽으로 감각을 뻗어 그 사실을 확인하고 있었다.
전장의 고도가 빠르게 낮아지고 있었다.
아율라의 창이 원하는 바는 명확했다.
‘창은 몰이를 하고 있다, 파엘리토가 민간 지역에 떨어지지 않도록. 그리고 그건 곧, 아율라 님이 보호막에 남긴 무기만으론 파엘리토를 결코 죽일 수 없다고 판단하셨다는 뜻이겠지. 이런 경로라면 전장은 곧 벨리엄 대평원이 될 거다.’
벨리엄 대평원 정도라면 적어도 전투 중 충격파에 성국의 신민들이 휩쓸려 죽을 일은 없을 터.
파엘리토도 진 일행과 아율라의 뜻을 얼추 짐작하고 있었다.
‘과연 지토 님과 정면으로 싸울 수 있다는 불멸자의 의지인가, 성가시군. 창을 모두 없애기 전엔 본격적으로 성국을 치기 어렵겠어.’
그렇다면 창을 없앤다.
그렇게 판단한 파엘리토는 순순히 창이 자신을 모는 흐름을 받아들였다. 이제 그는 창보다 진 일행의 공격에 집중했다.
“진 룬칸델. 너는 내게 사키엘을 아꼈느냐 물었지. 이번엔 내가 물으마. 네게 이곳 성국에 사는 벌레들은, 소중한 존재들인가? 자꾸 그들을 신경 쓰는군. 나를 상대로 그만한 여유를 부리는 점은 놀랍구나.”
파엘리토는 진이 계속 민간 지역을 확인하는 걸 알아보고 있었다.
놀랍다는 건 진심이었다. 파엘리토는 진이 자신의 살기를 견디며 다른 것까지 신경 쓸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토록 강인한 ‘인간’을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다. 세상에 고통의 질서가 필요한 이유를 다시 한번 상기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힘을 가진 자들끼리의 전쟁에 그들이 희생될 이유는 없을 뿐이다. 부하조차 거리낌 없이 제물로 쓰는 네놈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겠지만. 네놈은 사키엘을 아낀다 말했으나, 결국 지토의 명이라면 사키엘을 얼마든지 소모품처럼 사용했을 것이다.”
콰아아앙……!
추락이 끝났다. 진 일행이 벨리엄 대평원 한가운데로 떨어진 순간, 스무 자루의 창은 일제히 파엘리토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그러나 파엘리토는 그 모든 창을 한 번에 쳐냈다.
아율라의 창들이 튕겨서 이리저리 꽂히며 일어난 짙은 먼지 사이로, 파엘리토의 안광이 번뜩였다.
검마류 오의
황천검
일행은 순간적으로 시야가 흐릿해지는 감각을 느꼈다.
파엘리토의 마기가 일행의 육신을 묶어서 벌어진 현상이었다. 어디선가 치솟은 수백 줄기의 마기가 쉴 새 없이 일행의 눈을 찔러 들어왔다.
“큽!”
마기를 피해 산개한 직후, 가장 먼저 공격당한 건 헤도였다.
헤도는 분명 자줏빛 검기가 자신을 덮치는 순간을 똑똑히 인지했다. 파엘리토의 검이 빛처럼 빠르다고는 하나, 헤도쯤 되는 초인이 인지조차 못 할 정도는 아니니 말이다.
그러나 막았다고 생각한 찰나.
헤도의 흐릿해진 눈앞이 거꾸로 뒤집혔다. 마치 머리가 땅에 처박혔을 때처럼.
‘무슨……!’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분명 몸에 무언가 닿는 감각은 전혀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어떤 권능이나 보이지 않는 힘이 자신을 고꾸라뜨린 것도 아니며, 충격에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난 것도 아니었다.
문자 그대로 갑자기 시야가 뒤집어진 것이다.
일단 헤도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최대한 빨리 자세를 가다듬고 후속타에 대비해야만 잠시 후에도 목숨이 붙어 있을 테니까.
하지만 헤도는 넘어진 게 아니다. 땅에 처박히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자세를 다잡으려던 행동은 오히려 멀쩡한 그의 태세를 무너뜨리는 행위가 되었다.
헤도의 감각을 교란하고 있는 건 파엘리토가 펼친 황천검의 특성.
파엘리토가 닿은 검의 극지는, 그 의지만으로 상대의 감각을 비틀 수 있는 영역이다. 환술을 비롯한 정신계 마법과는 격을 달리하는, 차라리 현실 조작에 가까운 힘이었다.
헤도의 시야는 계속해서 문제가 생기고 있었다. 거꾸로 뒤집혔다가 깨진 유리처럼 분열되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모두 1초도 되지 않는 찰나의 시간이었다. 헤도는 눈을 감은 채 심안을 깨울 준비를 했다. 그조차 그가 헤도이기에 가능한 대응이었다.
파엘리토는 헤도를 지키려는 동료들의 검막을 바람처럼 지나 그의 가슴팍으로 검을 꽂았다.
푹-!
루나와 룬티아조차 인정한 강체가 마치 어린애의 살갗처럼 뚫리는 모습이 이어졌다. 선혈과 살점이 튀었다.
동료들이 파엘리토의 공격 궤도를 조금 비틀지 못했다면, 황천검은 헤도의 가슴을 완벽하게 관통했을 것이다.
검은 간신히 보법을 밟은 헤도의 어깻죽지를 찔렀다. 헤도는 파엘리토가 검을 회수하려는 순간, 장검 거력을 파엘리토의 옆구리로 찌르며 왼손으로 그의 목을 붙잡았다. 지금 쇄도하는 아율라의 창을 파엘리토가 피하지 못하도록.
그러나 헤도의 왼손은 허공을 움켜쥐었다. 파엘리토는 정확히 그로부터 한 걸음을 빠진 후, 뒤돌아서 아율라의 창을 올려 베었다.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지금 파엘리토가 해낸 일을 똑같이 따라 할 수는 없다.
스악!
완벽하게 양단된 창이 파엘리토의 양옆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심지어 파엘리토는 연달아 날아든 창을 쳐내서 오히려 달려들던 진 일행을 위협하기까지 했다.
이어 파엘리토는 여유롭게 몸을 빼내며 진 일행과 남은 열아홉 자루의 창을 노려보았다. 여전히, 그의 살기는 헤도가 아니라 진을 향하고 있었다.
오로지 진만을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