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937)
제 999화
232화. 각성(6)
흉신이 고개를 들어 진을 올려보았다.
진에게 휘감긴 빛이 역광을 형성하고 있어서 그저 검은 형체가 서 있는 듯 보였다. 그림자가 그대로 일어선 것 같았다.
[사라져……? 내가?]그렇게 대답하기는 했으나 이미 흉신의 몸은 서서히 형체를 잃어가고 있었다.
복잡한 무늬를 가진 오팔처럼 육신의 색이 마구잡이로 변하고, 곳곳이 투명해지다가 다시 진해지고 있었다. 자폭을 실행하기 위한 붕괴가 시작된 모습이었다.
[나는, 소멸하지 않는다. 세상 모든 곳에 나의 흔적이 남을 것이다. 역병과 저주가 되어 영원토록 너희를 잡아먹으리라.]“걱정 마라. 마지막까지도 뜻대로 되는 건 아무것도 없을 테니.”
흉신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진은 놈의 안에 남아 있을 파엘리토 벨가시움에게 말하고 있었다.
진이 흉신의 머리 위로 손을 뻗었다. 이제 흉신은 흉측한 살덩어리 같은 형체가 된 채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꼬마, 나는 이 녀석들 데리고 빠져 있으마. 다른 쪽 상황도 좀 살펴봐야 하니.]무라칸이 탈라리스와 룬티아를 등 위로 올리며 말했다.
“그래, 이따가 보자고. 두 분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탈라리스와 룬티아는 진이 달성한 위업에 축하를 건네지 않았다.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기 때문이다. 오늘 전투에서 죽은 이들의 원혼이 성국 전체에서 울부짖고 있을 터였다.
두 사람은 생각했다. 진이라면 마침내 창성에 오른 감격보다, 지켜주지 못한 이들의 절규에 더 귀를 기울이는 중이리라고.
“바멀 연합의 총수가 되고, 검가의 소가주가 되고, 창성에 도달했어도 내 눈에 넌 그 시절 어떻게든 홍인들을, 너와 아무 관련 없는 사람들을 구하려던 소년일 뿐이다.”
이 전쟁과 죽음은 너의 책임이 아니다, 너는 최선을 다했다.
탈라리스는 그런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대신 진과 눈을 맞추며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 소년은 여전히 눈부시게 빛나는군. 끝나고 보자꾸나, 진.”
무라칸이 영기 장막을 뚫고 밖으로 날아올랐다.
직후 흉신의 혼기가 오그라들며 하나의 점이 되었다. 이제 폭발이 시작될 터, 진은 뻗어둔 손에 기운을 집중시켰다. 황금빛 기운이 보호막처럼 혼기를 원형으로 감쌌다.
콰아아아……!
폭발과 함께, 흉신은 최후를 맞이했다.
황금빛 기운 안에서 폭발한 흉신의 마지막 혼기는, 본래라면 눈 한 번 껌뻑일 찰나에 성왕성 일대를 흔적도 없이 증발시켰을 것이다.
그리고 사방으로 빛처럼 빠른 속도로 나아가 성국 전체를 집어삼켰을 것이며, 인근 영해가 썩은 기름처럼 혼돈으로 검게 물드는 일 또한 십여 분도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흉신의 유언처럼, 혼기는 그때도 멈추지 않고 과거의 글리엑과 마찬가지로 전 세계를 피폭시켰어야 했다.
진이 지금 자폭하는 흉신을 가로막고 있지 않았다면 말이다.
‘불완전한 상태임에도 흉신은 흉신이군.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다면 위험할 뻔했어…….’
크직, 크즈즉! 콰아아아-!
혼기를 감싼 보호막에 균열이 번졌다.
그 사이로 갇혀 있던 혼기가 미친 듯이 분출되고 있었다. 하지만 보호막을 뚫고 밖으로 나가더라도, 혼기가 맞닥뜨리는 건 무라칸이 형성한 영기 장막이었다.
그리고 진의 의지를 따라 휘몰아치는 황금빛 기운이었다. 그 기운은 벌써 영기 장막 안을 가득 채운 채 밖으로 나가려는 혼기를 뒤덮었다.
수천 마리의 거대한 뱀들이 싸우는 것 같았다. 진의 황금 기운과 혼기들이 띠처럼 늘어져 엉켜댔다.
혼기는 단 한 번도 그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반면 진은 점점 더 힘을 증폭시켰고, 폭발은 천천히 잦아들기 시작했다.
한 시간 후.
결국 혼기는 영기 장막과 황금 기운 아래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진은 그때서야 호흡을 고르고 땀을 훔쳤다.
현기증이 일었다.
비록 과거 로사로부터 발현한 흉신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격이 떨어지는 듯 보였으나, 그래도 흉신은 흉신이었다.
개화 직후, 가장 취약한 순간에 싸웠기에 이렇게 끝낼 수 있었다. 만일 놈이 완성된 후에 전투를 치렀다면 진도 지금처럼 타격 없이 승리할 수는 없었다.
후우우웅……!
근처에 남은 황금 기운과 영기들이 다시 진에게 모여들고 있었다. 진은 원기가 다시 차오르는 걸 느끼며 한동안 눈을 감고 힘을 갈무리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진은 혼기가 폭발한 자리에 쓰러진 한 사람을 마주할 수 있었다.
파엘리토 벨가시움, 흉신으로 변했던 진마계의 검마. 그는 상처 하나 없이 온전한 모습으로 평온한 잠에 빠진 듯이 보였다.
“파엘리토 벨가시움.”
진이 파엘리토를 내려다보았다.
“……진 룬칸델.”
파엘리토는 눈을 뜨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흉신이 죽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적에게 큰 배려를 받았군…… 그렇다면, 오늘 죄 없는 이들을 죽인 건 나뿐인가.”
“그래. 하지만 어쩌면, 나 역시 죄 없이 이용된 마족들을 죽여오고 있었겠지. 물론 마족들은 모두 지토에게 세뇌된 후 인세에서 온갖 악행을 저질렀으나, 그들로서는 지토의 세뇌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창성인 너조차 결국은 타락했고, 자신이 세뇌된 줄조차 모르고 있었으니까.”
“네가 그들을 죽이는 건 당연한 일이다. 너와 나는 입장이 달라. 너는 인간들을 지키기 위해 싸웠고, 난 세뇌되어 지토가 하라는 짓은 무엇이든 다 했다. 인간을 죽인 것도 모자라, 진마계의 마족들까지 서슴없이 죽여왔다.”
“안다. 그래서 그들에겐 죄책감을 갖지 않는다. 여전히, 너에 대한 분노도 사라지지 않았어. 다만 진실을 알고 나니 조금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정도지.”
“그래, 나 또한 지금도 네게 깊은 증오를 느낀다. 그러나 나 역시 진실을 깨닫고 후회할 뿐. 하지만 아무리 후회해도, 내가 저지른 짓들은 사라지지 않아. 게다가 나는 마지막까지 증오에 취해 세상을 위협했다. 그건…… 사키엘이 바라는 일이 아니었을 거다.”
“이제야 머리가 좀 돌아가나 보군. 그 구슬은, 누구로부터 받았나?”
“켈리악 지플에게 받았다.”
“짐작은 했다. 켈리악 지플이라…… 그자가 지옥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게 된 모양이지?”
“그자는 마녀와의 거래를 통해 지옥에 온 자다. 때문에 지토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해. 그러니 지옥에서 무언가 더러운 수를 꾸밀 수 있었을 거다. 그리고 나는 구슬 역시 마녀의 물건이라 알고 있었으나…… 그게 깨진 순간 그 불을 보았지. 그건 쉬누라는 불멸자의 힘이었다. 켈리악 지플과 하나가 된 것 같더군.”
“모종의 방법으로 글리엑에게 피폭되어 생긴 자신의 혼돈을 그 구슬로 만든 건가. 지토가 켈리악이 네게 구슬을 준 사실을 모른다면, 그는 너와 더불어 지토도 함께 처리하려는 속셈을 가지고 있던 거다. 진마계를 집어삼켜 자신의 휘하에 두려는 게 아닐까 싶군.”
진은 단번에 켈리악의 진의를 읽어냈다. 그자가 끈질기게 살아남아 지옥에서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섬찟했다.
“켈리악 지플이 그 일에 성공한다면, 진마계는 또 지토 같은 괴물에게 이용될 뿐이겠어…….”
“네가 그걸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프스스…….
파엘리토에게서 먼지 같은 입자들이 빠져나왔다.
그는 이미 죽은 것이다. 한때 창성이었던 의지가 잠시 육신의 소멸을 유예하고 있으나, 이제 곧 흔적도 없이 사라질 터였다.
“그러나 이제 그 일은 내 몫이 되었군. 나는 어차피 지토를 처단해야 하고, 켈리악 지플은 본래 나의 가장 큰 적 중 하나였다.”
진마계의 수호자였던 자신이 이루어야 할 일을, 오늘 처음 본 인간에게 빼앗기는 일.
그보다 파엘리토에게 더 큰 패배감을 주는 말은 없었다.
그러나 또 그보다 더 큰 안도감을 주는 말도 없었다. 파엘리토는 자신이 사라진 뒤에도 진마계를 위해 싸워줄 거인이, 자신보다 더 빛나고 강한 사람이 남는다는 사실에 절망과 위안을 동시에 느꼈다.
파엘리토의 육신은 이제 절반쯤밖에 남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이 있나, 파엘리토.”
“나를…… 용서하지 말라고. 진마계의 사람들에게 전해다오. 그리고.”
미안하다.
파엘리토가 무거운 목소리로 뒷말을 이었다. 그의 감은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지토에게 세뇌되지 않았다면, 그가 인세로 올라와 사람들을 학살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네가 나를 멈춰준 덕분이다. 이제, 사키엘을 만날 수 있겠어…….”
그렇게 파엘리토는 세상의 먼지가 되는 최후를 맞이했다. 진은 그가 사라진 자리를 잠시 지켜보았다.
영기 장막이 걷히자 햇빛이 내려섰다.
그 아래로 파괴된 땅들이 보였다. 멸망에 다다른 성국의 영토, 그 위에서 도망치고 싸우고 기도하다 죽은 이들의 영혼이 아직 이 땅을 떠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진은 죽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중에서도, 파엘리토를 함께 상대한 동료들을 생각했다.
‘단테…… 헤도 경…….’
파엘리토는 그들이 분명 죽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진은 이 땅 어디에서도 두 사람의 기운을 느낄 수 없었다. 내내 전투가 이어지는 동안에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죽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진은 어쩐지, 그들이 살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바람일 수도 있었다. 동료들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어 그저 진실을 외면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다만 성왕, 라니 살로메가 아직 소멸하지 않은 건 분명했다. 자신이 창성에 오른 순간 그녀를 위해 그 빛을 남겨두었으니까.
이내 진은 그 빛이 있는 자리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 빛과 가까워진 진은 그쪽에서부터 전해지는 익숙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저도 모르게 신이 난 아이처럼 뛰었고, 잠시 후 진은 마주할 수 있었다.
자신이 라니에게 남겨둔 빛과, 그 근처에 모여 있는 동료들을. 죽은 줄 알았던 동료들은 바닥에 누워 앓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리고 평화의 신, 아율라가 열 쌍의 날개로 그들을 감싸주고 있었다.
“으윽, 진, 왔소? 몸이 이래서 일어날 수가 없군.”
“나도. 이번엔 정말 죽는 줄 알았군…….”
“단테, 헤도 경!”
달려와서 와락 그들을 끌어안는 진을 보며 아율라는 미소를 지었다.
[진, 네 덕에 내 가장 성실한 자녀를 살릴 수 있었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