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smanship Genius of the Knight School RAW novel - Chapter 130
용궁은 밖에서 봐도 커다랬지만 안에서 보니 더 컸다.
체감 규모의 차이가 아니었다.
진짜로 더 컸다.
“이게 뭐죠? 감각혼란진?”
“그런 단순한 게 아니라 진짜로 공간을 압축해 놓은 거다.”
진법을 이용해 실제 물리력을 행사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에 반해 감각을 어그러뜨리는 것은 신경계에 작용할 약간의 힘만으로 충분했다.
기사들의 진법 대응법이 대부분 ‘부수고 본다’인 것도 그 때문.
‘하지만 이렇게 거대한 땅을 압축해서 공중에 띄워놓을 정도라니…….’
적어도 나이트레이보단 큰 것 같았다.
그것도 부지가 남아돌아 드넓은 교내 뿐 아니라 교외 도시까지 합친 크기로.
아무리 소수민족이라도 종족 전체가 한곳에 모여 있으면 엄청난 숫자가 된다.
그 숫자를 전부 커버할 수 있을 정도의 거대한 대지를 진법 속에 넣어둔 것.
“이건 거의 진법으로 작은 세상을 만들어놓은 수준이네요.”
“단순한 진법이라고 하기도 뭐하지. 인간이 사용하는 진법은 수인족 선술의 기초일 뿐이니까.”
티우의 말에 레지나가 답했다.
진법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티우도 용궁의 모습에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구름이 안개처럼 서려 있는 용궁은 산과 들, 호수와 동산이 어우러져 마치 무릉도원을 연상케 했다.
허나 기사들의 시선에서는 그러한 외견보다도 내부의 오러 흐름이 더 감탄스러웠다.
공간을 구성하는 오러의 흐름이 시계장치 수준의 정밀도로 짜 맞춰져 있었다.
그런 정밀도를 이만큼 넓은 공간에 적용한 것이다.
‘이걸 사람이 했다는 게 믿기지가 않네.’
“기사님들이시니 따로 여독을 풀 필요는 없겠지요? 일단은 신산 님께 인사부터 드리도록 하지요.”
소요의 말에 모두가 동의했다.
기사들은 일반인과 달리 장기간 기차여행을 하면 힘들기는커녕 몸이 근질근질하기 마련이었다.
걷자는 말에 반대할 사람은 없었다.
‘1000년이나 살아온 사람이라고 했었지. 어떤 사람일지 궁금한걸.’
그쯤 되면 별다른 일 없이도 그냥 모은 오러가 재해급을 뛰어넘었으리라.
나이가 있어 모든 일을 소요에게 맡겨놓고 지혜만 빌려주고 있다곤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평범한 사람은 아닐 터.
하지만 그렇게 마음의 준비를 마친 노아조차도 신산을 마주한 순간 굳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인사하시지요. 신산 님이십니다.”
소요는 양손으로 공손하게 대야를 떠받쳤다.
그녀가 든 대야에는, 물에 반쯤 잠긴 손바닥만 한 거북이가 눈을 끔뻑이고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노아와 티우는 거북이에게 고개를 숙이는 레지나의 모습을 보고서야 따라 인사할 수 있었다.
“신산 님께서도 영웅을 다시 만나 반갑다고 하시는군요.”
“과찬이십니다. 저는 일개 기사 나부랭이일 뿐, 그런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여전히 은인보다 친구로 대하는 것이 편하다면 그렇게 하시겠답니다.”
소요는 계속해서 신산의 말을 대신 전달했다.
노아는 대야에서 일어나는 오러의 움직임을 통해 어떻게 된 일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말을 못 하시는 건가.’
거북이의 구강구조는 인간과 다르다.
그렇다고 말을 모르는 건 아니었으나, 신산은 인간의 기술인 전음도 사용하지 못했다.
대신 전음과 비슷한 고대 수인족의 소통 방식을 사용했는데, 그렇게 전달할 수 있는 건 고대 수인어뿐이었기에 소요가 그걸 번역해 주고 있는 것.
고대 수인어는 이미 인간화가 많이 진행된 현대에는 사용하지 않는 언어라, 용왕 정도나 따로 익혀두는 사어(死語)였다.
“마인 판별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라십니다.”
“저희가 이곳에 온 이유를 이미 알고 계셨습니까?”
레지나는 그렇게 말하며 소요를 바라보았다.
마인 판별에 대한 것은 기밀이기에 소요를 부를 때도 정확한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았다.
만나고 나서야 이유를 설명한 것.
그러니 용궁에 남아 있던 신산이 그걸 알고 있을 리는 없었다.
“이미 카인의 부하가 다녀갔답니다.”
“……!”
“그쪽에서도 같은 부탁을 해왔다고 하십니다.”
카인은 반역죄로 제국에 발을 들일 수 없는 상태였지만, 그는 혼자 움직이는 것이 아니었다.
용궁은 항상 중립을 유지하고 있었으므로 카인이 이쪽에도 끈을 가지고 있었다는 게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이미 준비를 마쳐뒀으니 노아가 협조한다면 며칠 안으로 완성이 가능할 거라 하시네요.”
“그렇군요.”
적당히 답한 레지나의 머릿속은 카인에 대한 것으로 가득했다.
‘이쪽의 상황을 다 알고 있다는 건가.’
카인은 한때 황실 기사단장이었던 만큼 제국 내의 협력자가 있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이번 일은 조직과의 전쟁을 선포한 제국에서 아주 중요하게 다루는 사항.
‘어쩌면 조직을 통해 알았을지도 모르겠군. 조직에 대한 정보는 우리보다 그쪽이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건가.’
국외에 있기에 알 수 있는 게 더 많을 수도 있었다.
아니면 다른 정보원을 가지고 있을지도 몰랐고.
“알겠습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이곳에 온 주목적이 정리되자 신산은 티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신산 님께선 티우 양과 대화를 나누고 싶으니 다른 분들은 모두 자리를 비켜주시길 바라고 계십니다.”
* * *
신산의 요청에 의해 일행은 티우와 통역을 위한 소요만을 남기고 모두 밖으로 나왔다.
“뭔가 의아하네요. 어차피 티우가 저희한테 말해줄 수도 있으니 따로 이야기해 봐야 의미는 없을 텐데.”
“단순히 남의 가정사를 멋대로 말해 버릴 순 없다는 걸 수도 있지. 그래도 신기하긴 하구나. 신산 님께서 저러시는 건 나도 처음 본다.”
“그럼 일단 숙소를 안내해 드릴게요.”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는데 문 앞에서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
한별과 나루는 그들을 숙소로 안내했다.
용궁의 숙소는 의외로 평범한 인간용 숙소였다.
“뭔가 아쉽네.”
“그럼 뭘 기대한 건데요? 스승은 혹시 마구간 같은 곳에서 자는 걸 더 좋아하세요?”
“아니 그건 싫어.”
가끔 마수의 내단을 팔러 산을 내려왔다가 날씨가 안 좋아지면 헛간을 빌려 잠을 청한 적도 많았던 노아였다.
솔직히 그립진 않은 추억이었다.
“그럼 필요한 일이 있으시면 불러주세요.”
용궁에 머무는 동안은 계속해서 그녀들이 수행할 예정인지 나루는 그렇게 말하며 근처의 자기 숙소로 떠났다.
반대로 한별은 노아에게 달라붙었다.
“스승! 그럼 저희는 수업을 계속하죠!”
레지나도 그게 좋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티우가 돌아올 때까진 한별이를 봐주도록 해라. 나는 잠시 옛 인연들을 만나고 오마.”
용궁에는 동해용왕 외에도 레지나와 안면이 있는 수인들이 많았다.
평소에는 만나기 힘든 얼굴들이었으므로 이참에 인사나 하고 오겠다는 것.
“다녀오세요.”
레지나를 보내고 난 후, 노아는 한별의 훈련으로 돌아왔다.
다만 훈련이라고 해도 현 단계에서 노아가 할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여기까지 내가 가르쳐 준 동작들을 자다 깨서 시전해도 완벽하게 할 수 있을 때까지 반복 연습이다.”
“넵! 알겠습니다!”
검술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원하는 검술을 펼치기 위해선 기본기가 선행되어야만 했다.
‘다행히도 체력 훈련은 따로 필요 없는 상황이지만 한별이는 이제 검술에 입문하는 단계니까 일단 몸에 각인시키는 게 중요해.’
원래는 검을 쥐기 전에 강체술만 몇 년씩 연습하는 것이 먼저였다.
검을 쥐고 나서도 처음에는 이상한 버릇이 들지 않도록 정확한 동작을 따라하는 연습만 수 년.
그렇게 기초를 다져놔야 기교를 부리든 뭘 하든 할 수 있는 것.
보통은 이 과정이 재미없어서 떨어져 나가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다행히도 한별은 검술을 배울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즐거운 모양이었다.
“하낫! 둘! 셋! 넷!”
혹시라도 신나서 정확한 동작을 안 지키고 멋대로 해댈까 걱정되어 잠깐 지켜봤으나, 한별은 성실하게 시킨 대로 했다.
“머쓱하구만.”
몰래 흑천 같은 거 연습하던 자신과는 딴판이라 괜히 머쓱해진 노아는 한별의 근처에 대충 걸터앉았다.
한별이 연습하는 걸 보는 동안 그저 놀고만 있을 생각은 없었다.
“마침 진법의 개념이나 효과를 검술에 접목시켜 보려 하고 있었는데 이런 걸 보면 그냥은 못 넘어가지.”
그는 지금 세계 최대, 아니, 역사를 통틀어서도 최고 최대의 진법 안에 들어와 있는 상황이었다.
“이 진법이 어떻게 생겨먹은 건지 어디 확인 좀 해볼까.”
노아는 용궁의 진법에 자신의 오러를 흘려 넣었다.
워낙 복잡한 구조인 만큼 잘못 건드렸다가 기능이 망가지는 것만은 피해야 했다.
‘최대한 신중하게.’
곧 진법을 타고 흐를 수 있게 된 노아는 기찻길을 따라 걷듯 감각을 넓혀갔다.
계속해서 진법을 탐험하고 있자니 얼마 지나지 않아 축에 도달했다.
“어라?”
낯선 용궁에서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 * *
한편 노아를 떼어놓은 레지나가 향한 곳은 인적 드문 공터였다.
레지나에게 수인족 친구라고는 소요가 전부였다.
애초에 수인족들은 자기들끼리만 어울렸고, 대전쟁에서도 수인족과 같은 전장에 선 적은 몇 번 없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친구 핑계를 대며 나온 이유는 간단했다.
“여기 있다는 거 다 들었으니까 얼른 튀어나오도록.”
그 말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수인이 아니라 인간이었다.
“레지나 님도 오랜만에 뵙네요. 거의 10년만인가요?”
“잭, 네가 카인을 따라 탈주한 후로 처음이니 20년이다.”
아까 카인이 사람을 보내왔다고 말했을 때, 소요는 레지나에게만 따로 전음을 보냈다.
그때 보내온 사람이 아직 용궁에 남아 있다고.
카인 본인도 만난 마당에 굳이 그 부하를 노아 몰래 만날 필요는 없었지만 이번만은 좀 달랐다.
“아직까지 여기 남아 있는 걸 보면 그걸 노리는 거냐?”
“저희 대장은 정식 계승자가 아니라서 그 검집이 꼭 필요하거든요.”
“월식. 역시 그걸 노리고 있었나.”
엔야는 검술을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아 마스터 나이트가 되었으나, 그 뒤로 금방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때문에 그녀는 자신의 성련검을 완성시키지 못했다.
충분한 기간이 주어지지 못했기 때문.
‘게다가 완성되지 못한 성련검은 엔야의 심검을 버티지 못해서 엔야는 성련검을 소모품처럼 썼지.’
검의 완성보다 마스터 나이트가 되는 것이 더 빨랐던 특수한 상황이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현상을 여럿 불러일으켰다.
월식도 그러한 특수 케이스 중 하나.
“그분께선 검들을 계속 교체해 가며 쓰는 와중에도 검집은 같은 것을 사용하셨죠. 그렇게 탄생한 ‘완성된 검집’인 월식을 노리는 건 피차 마찬가지인 걸로 보입니다.”
마이어 기사가 마이어 소드를 물려받아 사용하면 위력이 증폭된다.
그렇다면 기승전결을 배운 기사가 엔야의 검집을 사용한다면?
카인은 월식으로 불안정한 자신의 결을 완성시키고 싶어 했다.
반면 레지나는 월식을 노아에게 넘겨줄 생각이었다.
“싸우지 맙시다. 오히려 협력하죠. 월식을 받아내려면 피차 도움이 필요할 텐데.”
월식은 엔야의 검집이었지만 용궁에서 대전쟁 참가의 대가로 정식으로 소유권을 넘겨받은 물건이었다.
이유는 월식이라는 희대의 기물을 이용해 무너진 용궁을 재건할 축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즉, 월식을 돌려달라는 건 용궁의 격리와 보호를 포기하라는 뜻이기도 했다.
아무리 레지나가 영웅이라도 설득만으로 될 일은 아니었다.
“협력은 거절하지.”
“……!”
“이쪽은 알아서 할 테니 그쪽도 알아서 하시지.”
레지나는 잭에게 손을 흔들어주고는 그곳을 떠났다.
‘이렇게 되면 주요 부족들은 한 번씩 다 찾아가봐야겠군.’
신산과 소요는 용궁을 대표하지만, 지배하진 않는다.
용궁은 여러 수인족 부족의 집합체.
월식은 용궁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였다.
‘월식을 받아가려면 만장일치의 동의가 필요하겠지.’
일단은 정보가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