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smanship Genius of the Knight School RAW novel - Chapter 4
단적으로 말해 랭킹전은 불가능했다.
“아니, 이게 무슨……!”
자신의 앞에 놓인 물건들을 보고 노아는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이건 외국어 교재, 이건 국사 교재, 이건 의학 교재, 이건 세계사 교재, 그리고 이건…….”
“교과서가 뭐 이렇게 많아요?”
노아의 절망 섞인 한탄에 교과서를 배부하던 직원은 웃으며 말했다.
“그야 여긴 기사를 양성하기 위한 학교니까. 검술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교양부터 임무 수행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가르친단다.”
“망했다.”
검술에는 자신이 있었다.
검술에는 말이다.
하지만 평범한 공부까지 이렇게 해내야 한다고 하면 솔직히 막막했다.
“마지막으로 공부해 본 게 언제더라……?”
산속이라고 노아도 완전 놀고만 있던 건 아니었다.
어릴 때는 할아버지가 집안일을 도맡아 했기 때문에 그동안 기초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제법 머리가 굵어지고 난 뒤에는 돈을 벌어야 하니 셈법이나 상법에 대해서도 공부한 적이 있긴 했다.
“그래봐야 수박 겉핥기 수준이었는데 이건 척 봐도 수준이 다르잖아?”
“저런. 이 학교가 아무리 검술지상주의 학교라곤 해도 이거 다 합격해야 졸업할 수 있는데.”
“다른 방법이 없나요?”
“없어. 나이트레이를 졸업한다는 건 정식기사 작위를 받는다는 것. 최소 조건을 모두 채우지 못하면 랭킹 1위라도 졸업은 못 해.”
직원은 거기에 더해 손가락 두 개를 펼쳐 보이며 말했다.
“덤으로 낙제를 받으면서 영원히 학교를 다니게 해줄 수는 없으니 같은 과목을 2번 이상 낙제하면 퇴학이야.”
“젠장, 이거 한 학기에 듣는 과목 수를 반토막내야 하나?”
과목 수를 반으로 줄이면 어떻게든 다른 녀석들의 진도를 따라갈 수 있을지도 몰랐다.
물론 그러면 졸업까지 걸리는 시간도 두 배가 되겠지만 말이다.
“큭큭, 저 망나니 자식 좀 봐. 레지나 님을 쓰러뜨린다더니 고작 필기에서 낙제 걱정을 하고 있네.”
“결국 입만 산 놈이었던 거지.”
노아가 머리를 쥐어뜯고 있자 다른 신입생들이 그를 보고 수군거렸다.
티우는 그런 그들이 못마땅하다는 듯이 말했다.
“저 녀석들, 입학식에선 입도 뻥긋 못 했던 주제에. 노아 혼자만 당당히 나섰다는 건 벌써 기억에서 지워 버린 거야?”
“내버려 둬. 그 교장선생님 엄청 존경받는 기사라면서? 건방지게 말하긴 했으니 밉보일 만도 하지.”
“하지만…….”
“한번 밉보이면 어떻게든 안 좋은 면만 보게 되는 법이야. 저런 소리는 실력으로 누르면 돼.”
그보다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앞으로 수업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알바를 계속하기도 힘들겠네. 혹시 기숙사 신청은 어떻게 하면 되나요?”
노아는 학교를 다니면서 생활비도 벌어야 했다.
“기숙사도 랭킹제라서 최하위 랭킹에서 시작하는 신입생은 바로 들어가기 힘들어. 물론 신입생을 위한 기숙사도 있긴 한데…….”
“한데요?”
“거긴 경쟁이 심해서 말이야. 신입생 기숙사를 노리는 녀석들은 여기보다 거길 먼저 갔을걸?”
* * *
신입생 기숙사를 노리는 이들은 입학식이 끝나자마자 교과서 대신 기숙사부터 찾으러 갔다고 한다.
이제 와서 달려가 봐야 늦었다는 소리.
“그런 소리를 듣긴 했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야 없지.”
“허억! 허억! 노아! 같이 가!”
노아는 곧장 신입생 기숙사로 달리기 시작했다.
티우는 그런 노아를 헉헉대며 겨우 쫓아가고 있었다.
‘저 녀석, 강체술이 뛰어나다는 건 알았지만 무슨 체력이 저래?’
한 달간 노아와 같은 여관에서 연습을 계속한 티우는 그의 강체술이 심상치 않은 수준임을 알아보았다.
강체술의 강력함은 크게 두 가지 요소로 결정됐다.
얼마나 많은 오러를 가지고 있나?
또한 그 오러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하는가?
전자의 경우에는 시간과 돈의 문제였다.
아무리 영약을 퍼먹어도 더 오랜 시간 동안, 더 많은 영약을 퍼먹은 사람을 따라잡진 못한다.
결국 오러량은 나이에 비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효율은 다른 문제였다.
오러는 근육과 달리 한 부위에 집중하는 게 가능하다.
쓰지 않는 부위의 오러를 필요한 부위에 몰아주면 같은 양의 오러로도 더 큰 힘을 낼 수 있었다.
오러 효율은 경험도 경험이지만 천부적인 센스가 중요했다.
‘나랑 같은 나이인데 이렇게까지 체력 차이가 나다니. 영약을 먹은 것 같지도 않은데 이런 차이라는 뜻은…….’
강체술뿐만이 아니었다.
강체술은 결국 신체를 강화하는 기술이었다.
그렇게 강화된 신체 능력으로 원하는 동작을 해내는 것은 또 다른 문제.
노아는 기본적으로 짐승과도 같은 운동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 운동감각 덕분에 노아는 똑같은 거리를 달리고도 체력을 더 조금만 소모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삶을 살아온 거야?”
결국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도 티우는 알지 못했다.
그들이 길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숲을 가로질렀다면 이 짧은 거리조차 따라가지 못하고 뒤쳐졌으리라는 것을.
“하아, 하아, 도착했다…….”
“아무래도 그 직원분 말대로 우리가 늦은 모양인데?”
“뭐어? 이렇게 힘들게 달려왔는데?”
기숙사 건물 앞에는 이미 먼저 온 녀석들이 모여 있었다.
“랭킹전 종료. 경기의 승자는 애디 무어!”
“좋았어! 그럼 202호실은 랭킹이 더 높은 내가 가져간다!”
어디 경기장도 아니고 길바닥에서 랭킹전이 벌어지고 있는 광경에 티우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신입생들끼리 기숙사 신청은 안 하고 왜 랭킹전이래? 설마 신입생 기숙사도 랭킹 따라 들어가는 거야?”
“잘됐네. 늦었지만 우리에게도 기회가 있다는 거잖아?”
두 사람이 온 것을 발견한 기숙사 관리인이 먼저 그들에게 다가왔다.
“너희도 신입생이냐? 좀 늦었구나.”
“지금이라도 신청이 가능할까요?”
“가능은 하다만 여기도 랭킹에 따라 우선권이 돌아간다. 넌 아직 랭킹전 경험이 없지?”
노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관리인은 지금 상황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다.
“이 학교의 랭킹제는 두 구간으로 나뉜다. 1위부터 1,000위까지는 상위 랭커라 불리며, 서로 랭킹을 걸고 싸워 상대방과 나의 등수를 교환하는 스왑 방식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30위인 A와 50위인 B가 싸울 경우,
30위인 A가 이기면 랭킹 변동 없음.
50위인 B가 이기면 B가 랭킹 30위가 되고, A는 50위가 되는 방식이었다.
“반면에 1001위부터는 하위 랭커로, 이기고 질 때마다 점수를 부여해서 점수가 많은 순서대로 순위를 매기는 레이팅 방식이지.”
이쪽은 800점에서 시작해 상위 랭커를 이기면 점수를 벌고, 하위 랭커에게 지면 점수가 떨어지는 방식이었다.
이쪽은 랭킹전 외에도 학업 성적이나 대회 입상 등으로도 점수를 부여하곤 했다.
“아무런 랭킹전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 네 점수는 800점이다. 하지만 신입생 기숙사 최소 점수는 지금 920점까지 올랐어.”
“그럼 저도 여기서 랭킹전을 해서 920점까지 올리면 된다는 거죠?”
“그렇기야 한데 아마 힘들…….”
“감사합니다!”
노아는 관리인에게 인사하고 방금 전 랭킹전에서 이겼다고 들은 애디라는 녀석을 찾았다.
“네가 애디지? 나랑 랭킹전 하자!”
“싫어.”
“어?”
애디는 당황하는 노아에게 보란 듯이 기숙사 열쇠를 흔들며 말했다.
“난 이미 안전권인데 뭐 하러 랭킹전을 더 해? 방금 랭킹전을 끝내서 거절권도 있으니 다 거절할 거지롱.”
상대가 랭킹전을 받아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노아는 황급히 다른 사람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이미 충분한 점수를 벌어둔 이들은 랭킹전을 모두 거절하고 있었다.
“아무도 상대를 안 해준다고……?”
“그러게 오려거든 일찍 왔어야지.”
기숙사 관리인은 그런 노아에게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기숙사를 노리는 녀석들은 이미 여기서 랭킹전으로 다 걸러졌다. 늦게 와서 상대를 찾아봐야 기껏 획득한 열쇠를 걸고 너랑 붙어줄 녀석이 있을 리가 있나.”
“이 학교는 무슨 신입생 기숙사까지 랭킹 따라가는 거냐고요.”
“어디 기숙사뿐이겠냐? 식당이나 교재, 비품부터 시작해 모든 게 랭킹지상주의인 곳이다.”
노아는 절망했다.
“상위 랭커는 학비도, 식비도, 교재비도 모두 면제. 거기에 지원금까지 나온다. 그에 반해 하위 랭커는 그걸 전부 내고도 차별 대우를 받아야 하지.”
“아니, 그런…….”
“유능한 인간과 무능한 인간은 절대 평등하지 않다. 여긴 유능한 녀석들을 기사로 길러내는 곳이지, 무능한 녀석들을 사람 구실하게 만들어주는 보육원이 아니야.”
규칙을 알고 그것을 잘 사용하는 것도 유능함의 한 가지였다.
나이트레이에서 원하는 건 검술만 뛰어난 천치가 아니라 어떤 임무라도 해낼 수 있는 만능 기사였다.
“안됐지만 이걸로 앞으로 있을 학교생활에 좋은 교훈을 얻었다고 생각해라.”
결국 노아는 포기하고 티우와 함께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나야 기숙사에 들어가면 돈을 아끼니 좋은 거였지 꼭 들어가야 했던 건 아닌데. 노아 너는 이제 어쩔 거야?”
“안 되면 알바라도 하면 될 줄 알았지. 공부할 게 저렇게 많은 줄은 몰랐다고.”
생활비가 문제였다.
생각보다 공부할 게 많았고, 덕분에 생활비를 벌 시간이 없어졌다.
“랭킹을 올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겠지만 오늘 일을 보아하니 내가 원한다고 랭킹을 막 올릴 수 있는 게 아니잖아?”
“랭킹전을 하려면 상대도 구해야 하니까.”
“이거 큰일 난 것 같은데.”
“이렇게 된 거 황녀님이라도 찾아가 보는 건 어떨까? 원래 검도 사 주시기로 했었으니까 대신 금전적 지원을 받는다거나…….”
“아니, 그게 아니라 우리 지금 어디를 걷고 있는 거냐?”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멈췄다.
“어라?”
“앞으로 어떡하나 걱정하면서 가느라 물어보질 못했는데, 우리 지금 어디 가는 중이야?”
“나는 노아 널 따라가고 있었는데?”
“나는 티우 널 따라간 건데?”
“…….”
“…….”
이쯤 되니 두 사람 모두 아침에 하던 이야기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매년 실종자가 나온다는 게…….”
“우리 이야기였다고……?”
진짜로 큰일이었다.
“자, 잠깐. 그래도 우린 지금 길에 있잖아. 길 따라가면 어딘가로 이어져 있긴 하겠지!”
“맞아, 지도도 대충 기억하고 있다고. 걸어온 시간이랑 신입생 기숙사의 위치를 생각하면…….”
갈림길마다 어느 쪽으로 길을 든 건진 기억이 애매했지만 대략적인 방향은 알고 있었다.
하루 종일 걸은 것도 아니니 예상 위치를 어느 정도 한정시킬 수 있었다.
“정문이랑은 한참 떨어진 위치 같아. 그마저도 확신할 순 없고.”
“일단 길을 따라가 보자. 뭐가 나오든 거기 있는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되겠지.”
다행히 길은 외길이었다.
불행히도 더럽게 길었지만 말이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계속 길을 따라 걸었다.
그러나 가도 가도 보이는 건 길가에 가득한 나무와 풀뿐이었다.
“더럽게 구불구불 꼬여 있네! 이거 계속 똑같은 곳을 돌고 있는 거 아냐?”
“그건 아닐걸. 정신 차린 후로 계속 외길이었잖아. 길을 잘못 들려야 들 수가 없었다고.”
“잠깐, 저기 울타리가 보이는데?”
보자마자 헐레벌떡 달려간 그곳에는 고풍스러운 저택이 자리해 있었다.
“이게 뭐 하는 건물이래?”
저택은 상당히 낡은 모습으로, 벽면을 뒤덮은 나무덩굴이나 곳곳에 가득한 거미줄이 관리가 잘 안 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무슨 침투 작전 연습용 현장 같은 건가?”
“그런 것치곤 너무 으스스한데? 완전 유령저택 같잖아. 설마 이게 그 괴담에 나오는 ‘지도에도 없는 건물’은 아니겠지?”
노아가 보기에 완전히 버려진 시설은 아닌 것 같았다.
입구로 이어진 길에는 풀도 정리되어 있었고, 결정적으로 건물 안에 불도 켜져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신입생이니?”
흠칫!
바로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두 사람은 반사적으로 몸을 던져 거리를 벌렸다.
‘이 거리로 들어올 때까지 몰랐다고?’
유령저택을 앞에 두고 바짝 긴장한 상태였는데.
풀벌레의 움직임조차 알아챌 수 있는 감각을 속이고 들어온 것은 멀끔하게 생긴 청년이었다.
“드디어 우리 기숙사에도 신입생이 들어오는 건가?”
“기숙사라고요?”
“아무것도 모르고 왔구나? 그럼 이참에 소개할게. 나는 아슬란. 검은 달 기숙사의 학생장을 맡고 있어.”
“아, 예.”
노아는 얼떨결에 그가 내민 손을 잡고 악수했다.
그러나 티우는 잔뜩 움츠러들었다.
“아, 아, 아슬란이라면 설마…….”
“네가 생각하는 그 사람이 맞아.”
아슬란은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와 함께 자신을 소개했다.
“내가 바로 현재 랭킹 1위인 아슬란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