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smanship Genius of the Knight School RAW novel - Chapter 68
실버 팽을 꺼내 든 펠릭스는 눈앞에 존재하는 마수들을 아예 갈아버리면서 전진했다.
물론 전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렇게 오러를 소모해 대는 건 좋지 않은 판단이었지만, 지금만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항구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게 느껴져요. 저곳에 합류할 수만 있다면 오러를 전부 써도 돼요.”
“여기서 거기까지 탐지할 수 있다니 굉장한 감각이시군요.”
초승달 군도의 4번섬은 어지간한 대도시 못지않은 크기를 자랑했다.
애초에 항구도시와 산중의 본단 주변도시, 두 개의 도시가 들어설 정도의 섬이다.
그런 이곳에서 한쪽 끝단에 위치한 항구까지 감각이 닿는다는 건 베로니카의 오러 감응력이 괴물 같은 수준이라는 뜻이었다.
‘괴물황녀라는 별명도 마냥 농담은 아닌 건가.’
태어날 때부터 마안을 타고난 베로니카다.
오러를 다루는 일에는 마스터 나이트에 준하는 실력자였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여기서부터 항구까지의 거리를 생각하면 좀 빠듯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괜찮아요. 그 전에 합류할 수 있을 테니까요.”
“……?”
의문은 머지않아 펠릭스의 감각에 감지된 오러로 인해 풀렸다.
“베로니카 님!”
베로니카를 발견한 레오가 가장 먼저 뛰어왔다.
그들이 마주친 건 달의 사원 본단으로 향하던 우르슐라 일행.
“다치신 곳은 없습니까?”
“네. 펠릭스 님이 활약해 주신 덕분에. 그보다 저희가 보호하고 있는 분들을 항구까지 엄호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그런 거라면 괜찮습니다. 저희가 여기까지 오는 길에 보이는 마수들을 전부 정리해 뒀으니까요.”
베로니카와 펠릭스가 이곳까지 오면서 구한 인원은 천을 넘었다.
7번섬 방면으로 갔던 탑 소드 참가자와 관계자들부터 시작해, 4번섬에 들어온 이후에도 계속해서 사람들을 구하며 이동한 것.
애초부터 대인원이었으니 몰래 이동하는 것도 불가능해서, 생존자든 마수든 그들에게 모여들 수밖에 없었다.
“항구로 가시면 배를 탈 수 있을 겁니다. 하바나로 가면 안전합니다!”
펠릭스의 외침에 피난민들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러분은 어디로 가시던 거죠?”
“달의 사원 본단입니다. 아무래도 현재 마수 출현의 진원지는 바로 그곳으로 보이니까요.”
도대체 제국에서 손꼽히는 기사들의 본거지에서 어떻게 마수들이 우르르 튀어나올 수 있었는지 알 순 없었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초기 상황이나, 마수들의 분포를 봤을 때 본단이 진원지라는 것은 틀림없었다.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어쩌면 이 상황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저도.”
베로니카와 펠릭스는 동행을 청했다.
우르슐라는 그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한 실력자인 두 사람이 더해진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전력이 늘어난 조사팀은 빠르게 본단을 향해 이동했다.
그 과정에서 다수의 인간형 마수들을 접해볼 수 있었다.
“이 녀석들, 전부 본단이 있는 쪽으로 가고 있는 것 같은데?”
벤자민이 쓰러진 즈음부터 그간 멀뚱히 서 있기만 하던 인간형 마수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놈들이 무슨 행동 원리를 가지고 움직이는 건진 아직 확실치 않았지만, 모든 개체가 본단 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답은 거기에 있다는 건가.”
확신을 얻은 그들은 발걸음을 서둘렀다.
본단에 가까워질수록 마수의 밀도가 높아졌지만, 놈들은 옆에서 싸움이 일어나도 신경 쓰지 않는다.
일행의 전투력이라면 돌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이 입구에 도착했을 때,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구구구구!
“지, 지진?”
“잠깐, 뭔가가 밑에서 온다!”
콰아아아아!
지면이 폭발하며 토사가 하늘로 솟구쳤다.
지반을 뚫고 튀어나온 것은 바로 리나리아.
피와 흙으로 뒤범벅된 그녀의 손에는 기절한 로젤리아가 붙들려 있었다.
따로따로면 몰라도 둘이 함께라면 나이트레이 최강이 아니냐는 말까지 있는 쌍둥이다.
그 쌍둥이가 저렇게 만신창이가 된 채로 튀어나왔다는 것은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뜻했다.
“도망치세요!”
“엥? 뭔데?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데?”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미호가 반문함과 동시에 리나리아가 튀어나온 구멍으로 인간형 마수가 물밀듯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뭐, 뭐야 저게!”
일일이 세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은 숫자.
상식적으로 맞서 싸워도 될 상황이 아니었지만 우르슐라는 오히려 앞으로 나섰다.
“숫자가 좀 많긴 하지만 하나하나는 지금까지 쓰러뜨린 놈들이랑 다를 거 없어. 내 정령태라면……!”
물량전이라면 오히려 이쪽이 특기.
다만 그녀는 리나리아의 말을 좀 더 진지하게 받아들였어야 했다.
“뭐 하고 있는 거예요! 도망치라니……!”
순간, 그곳에 있는 모두가 숨을 삼켰다.
지금까지 만난 모든 마수들을 다 합친 것보다도 거대한 마수의 기운.
성광갱도를 벗어난 마수가 자신의 기운을 사방으로 내뿜자, 일행은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파앗!
구멍에서 솟아오른 마수는 초승달 군도의 상공에 우뚝 섰다.
그것은 영롱하게 빛나는 거대 해파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고르곤의 변이종인가? 하지만 그건 일반 마수에 불과한데 저건…….”
수십 미터는 될 법한 거대 해파리의 몸뚱이 아래로는 무수한 촉수가 돋아나 있었다.
한 가닥, 한 가닥은 눈에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얇은 촉수가, 덩어리로 보일 정도로 수없이 뭉쳐 있었다.
상공에 떠오른 해파리는 이어서 그 촉수들을 사방으로 뻗었다.
“피해!”
피빗!
일행은 그 공격을 모두 피해냈으나, 사실 촉수가 노린 것은 그들이 아니었다.
[키이익!] [카륵!]무수한 촉수에 몸을 꿰뚫린 인간형 마수들이 순식간에 말라비틀어졌다.
놈들이 가지고 있던 오러는 촉수를 통해 해파리에게로 모여들었다.
“저 녀석, 마수들의 오러를 빨아들이고 있어!”
다른 마수를 잡아먹고 그 힘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마수들의 생태에서는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지만, 이건 차원이 다른 규모였다.
사방으로 뻗어나간 촉수는 초승달 군도 전역에 펼쳐졌다.
섬에 가득한 마수가 순식간에 양분으로 전락한다.
“한 가닥, 한 가닥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얇은 촉수가 저렇게 보이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이 있어야 하는 거지?”
몇 만?
몇 십만?
그렇다면 그 많은 촉수가 빨아들이는 오러는 얼마나 될 것인가.
“재해급…….”
마스터 나이트가 아니라면 상대할 수 없다는 전설적인 마수.
살아 있는 재해가 인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 *
한편 재해급 마수가 나타나기 조금 전, 항구의 임시사령부.
“……아 님! 노아 님!”
노아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눈을 떴다.
정신은 몽롱했고, 몽롱한 와중에도 몸은 비명을 질러댔지만, 어쨌거나 눈을 뜰 순 있었다.
“미아?”
놀랍게도 노아를 깨운 것은 베로니카의 메이드인 미아였다.
그녀 자신은 탑 소드에 참가하진 않았지만 베로니카의 메이드로서 갤러리로 따라온 것.
“큰일 났습니다. 상태가 안 좋으신 건 알지만 일단 노아 님을 깨울 수밖에 없었던 무례를 용서해 주세요.”
“무슨 일인데?”
“아르니 님이 혼란을 틈타 납치되셨습니다.”
순간 정적이 일었다.
“……자세히 설명해 봐.”
“혼란 속에서 아르니 님이 마수의 위협에 노출되자 리베리가의 친위대분들이 어쩔 수 없이 모습을 드러내셨습니다. 렉시는 그 상황에서 친위대를 공격하고 아르니 님을 인질로 삼아 도주하였습니다.”
북해검왕의 외동딸을 암살하기 위해 투입된 인물이라면 그 능력이 리베리 친위대에 비해 떨어질 리가 없었다.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모를까 마수로 인해 손이 바빠진 상황.
기습을 가하고 인질을 잡는다면 친위대로서도 대응하기 힘들 수밖에 없었다.
“친위대분들의 부상이 심각한 상황입니다. 그분들께선 제게 상황을 설명하시고 도움을 요청하셨습니다만…….”
당장 자국민을 구하기도 바쁜 상황이었다.
아르니가 아무리 북해검왕의 외동딸이라 해도 제국은 절대적인 패권국가로서 원래 타국의 눈치를 안 봤다.
남의 나라 공주 따위를 구하기 위해 이런 상황에서 인원을 뺄 순 없는 것이다.
“녀석의 위치를 쫓을 수 있겠어?”
“네. 가능합니다.”
“그럼 가자.”
노아는 몸을 일으켰다.
전투를 치러도 될 상태는 아니었지만 그가 아니면 갈 사람이 없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친구가 위험하다는데 못 본 척할 순 없지.”
아르니를 이곳까지 데려온 건 사실상 노아였다.
그가 테오도르의 말을 듣지 않고 아르니의 정체를 그냥 밝혀 버렸다면.
아르니는 생텀 킵으로 돌아갔거나, 적어도 정식으로 제국의 손님이 될 수 있었으리라.
그렇다고 무슨 대단한 정의감이 든 건 아니었다.
그저 위험하다는 걸 뻔히 아는데 모르는 척하고 싶진 않았을 뿐.
“확실히 몸 상태도 안 좋고, 오러도 거의 날아갔지만 한 번이라면 괜찮아.”
딱 한 번.
한 번이라면 전력을 담아 검을 휘두를 수 있다.
그리고 지금 노아가 발휘할 전력은 이전의 자신보다 훨씬 강하다.
‘폭주했을 때의 감각이 남아 있다. 이게 있다면 가진 오러가 적어도 해볼 만해.’
또한 노아가 아직 눈치채지 못한 점도 하나 있었다.
“이건……?”
노아는 침대 옆에 기대어져 있던 자신의 검을 집어 들었다.
검집 안에 들어가 있었지만 주인인 노아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스릉.
검기를 담지 않았음에도 검게 물든 묵빛의 검신.
형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노아가 평생 특색 없는 장검들만 사용했기 때문이지 검이 제대로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마치 시원석을 다듬어 만들어진 것만 같은 색이네요. 아름다워요…….”
미아가 그 외관에 눈을 사로잡힌 와중에도 노아는 새롭게 태어난 검의 성능에 집중하고 있었다.
아주 살짝.
오러를 아주 살짝 흘려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폭발적인 힘이 솟구친다.
“……다친 지금이 오히려 만전일 때보다 강한 것 같은데?”
“완성된 성련검에는 이름을 붙여주셔야 해요.”
“이름을?”
“탈태를 마친 성련검은 오로지 주인을 위해 새로 태어난 몸. 이름을 붙이는 건 그만큼 심상을 확고하게 굳히는데 도움이 된답니다.”
성련검은 주인의 오러를 머금고 그에 맞춰 변화한다.
따라서 완성된 성련검은 주인의 검도(劍道) 그 자체였다.
거기에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자신의 검술을 돌아보는 일과도 같다.
내면에 확고한 심상을 그릴 수 있는 자가 그렇지 않는 자보다 강한 건 당연한 일.
“이름을 붙이는 것으로 진정한 힘이 깨어날 거예요.”
“이름이라…….”
검에 이름을 붙인다고 생각한 순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떠오른 이름이 있었다.
“암월(暗月).”
우우우웅!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이름을 읊조렸을 뿐임에도 검신이 진동했다.
다음 순간, 외부로 흘러나오던 기세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하지만 노아는 암월의 힘이 오히려 강해졌음을 느꼈다.
완벽한 힘의 제어.
모든 힘이 암월의 내부로 집약되자 외부에선 그 힘을 느낄 수 없게 된 것.
“굉장해.”
상상할 수가 없었다.
암월을 든 자신이 누군가에게 진다는 것을.
“검술은 오히려 강해졌다. 미아, 떨어진 체력의 보조를 부탁할게.”
“네. 부디 미아를 마음껏 사용해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