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Bireido, a parody RAW novel - Chapter 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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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신(雷神)
동굴에서 빠져나오자 하늘이 약간 흐렸다.
오후라서 날씨가 흐린 건 아니었다. 곧 비가 온다. 왜냐하면 무신마가 싸울 때도 비가 왔기 때문이다. 사람은 몰라도 기상이 달라질 리가 없었다.
쏴아아아 –
아니나 다를까, 해가 진 어둠을 타고 비가 쏟아졌다. 지난번에는 무신마와 팔왕의 대결이 결판났을 때즈음의 시간이다. 나는 결과를 확인하고 싶은 맹렬한 호기심에 휩싸였지만 참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권강한을 만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예전에 연화가 연화불창을 꺼냈던 화산봉을 향해 날듯이 질주했다. 여기저기에서 나를 지켜보는 이목이 눈에 띄었지만, 그들은 나를 공격할 생각은 하지 않는 듯 했다.
스르륵
내가 화산봉에 오른 것은 약 3다경이 지나서였다. 천천히 봉우리에 내려앉았지만, 역시 사방에 쏟아져 내리는 비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 역시 여기에 가만히 남아있을 리는 없는 건가?’
어쩌면 벌써 화산규약지회에 흥미를 잃고 사천당문으로 돌아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빗방울에 도복이 적셔지자 약간 불쾌감이 들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머리를 굴려서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을 생각하기로 했다.
그 때였다.
인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굳이 뒤돌아보지 않았지만 제법 강대한 기세였다. 익숙한 기도라서 누구인지 짐작이 갔다. 나는 그 인영이 내 범위의 4장까지 들어올 때까지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았다.
” ……”
비를 맞으면서도 내게 다가온 자는 이내 망설이더니 검을 뽑았다.
나는 뒤돌아보지 않은 채 그저 기다리기만 했다.
침묵이 흘렀다.
고요가 길었다.
나는 일 다경이 지나도록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자, 천천히 입을 열었다.
” 검은 뽑았는데 어째서 아무것도 하지 않나, 모용휘?”
모용휘는 내 말에 움찔했지만 출수하지 않았다. 그것은 딱히 내 말에 주눅이 들어서가 아니었다. 내 검계(劍界)를 살피고, 그 빈틈을 찾아내고 있는 것이다. 바늘같은 빈틈만 있어도 즉각 치고 들어올 생각이었다.
모용휘가 검기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 두 걸음.”
그렇게 말하면서 왼쪽 발로 일보를 내딛었다.
별것 아닌듯한 잔동작. 하지만 나는 그 움직임에 살짝 놀랐다. 모용휘가 은하개벽류 필살기를 썼다고 해도 이보다 놀라지는 않았으리라.
‘ 놀랍군. 그 사이에 간합을 이 정도로 읽어낼 정도로 성장했단 말인가?’
나는 예전에 모용휘에게 가르침을 줄 때보다 두 배는 강해졌다. 혼원의 경지에 도달했을 뿐만 아니라 종남파 검술의 극의, 천둔검까지 얻었다. 그에 따라 내 범위와 결계는 한층 깊고 강해져서 – 잘못 파고들면 초절정고수라도 일격에 목숨을 잃을 정도가 되었다.
구름처럼 복잡하고 정해진 형태가 없는 내 원검의 결계.
모용휘는 헤어진지 얼마 되지도 않는 시간에 그 간합을 정확하게 읽어 낸 것이다!
지금 모용휘는 공격과 방어가 최고로 적당한 위치를 선점하고 있다. 처음에는 쉽게 쓰러뜨릴 수 있었지만, 저 위치를 점한 이상 나도 모용휘를 쉽게 상대하지 못한다.
나는 궁금함에 물어 보았다.
” 무엇이 너를 강하게 만들었지?”
” 나를 도와준 사람이 있었소.”
모용휘는 긴장을 풀지 않으며 말했다.
” 암왕(暗王)이 내게 가르침을 전해 주었소.
그리고 내게, 여기서 기다리며 당신을 시험해 보라고 말했소.”
” 당산이.”
나는 상황이 어떻게 된건지 알 수 있었다.
권강한은 그 사이에 발전하는 모용휘를 자극해서 한단계 높은 경지로 끌어올려버린 것이다. 본신의 실력이 어떤지 몰라도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에는 특출난 재능이 있는 것 같았다.
지금 모용휘의 실력은, 비유하자면 흑천맹의 검마(劍魔)급이다.
내공과 경륜은 딸리지만 틀림없이 그 정도 위치까지 와 있다. 한 번 깨달음을 얻자 거침없이 성장해버린 듯 하다. 모용휘는 천천히 간격을 재면서 다시 한 걸음을 내딛으며 접근했다.
검점(劍占)
팔괘두(八卦斗)
파바밧!
” 흠!”
순식간에 내 명검(冥劍)과 모용휘의 장검이 스치면서 허공에서 얽혔다. 이 충돌에서 다시 한 번 놀란게, 모용휘는 흘려받긴 했지만 나와 제대로 10초를 겨룬 것이다. 어쩌면 흑천맹 검마보다 더 강할지도 모른다.
검으로 팔괘방위를 점하려던 시도가 실패하자, 모용휘는 다시 두 걸음을 물러나며 자세를 잡았다. 나는 이런 곳에서 모용휘를 제대로 된 적으로 만날 줄은 생각도 못 했기에 약간 어안이 벙벙했다.
모용휘가 검을 내게 겨누며 말했다.
” 오십 초.”
” ……”
” 나를 오십초 내에 쓰러뜨릴 수 있다면 암왕이 간 곳을 가르쳐 주겠소.”
” 당산이 그렇게 말했나.”
모용휘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 그는 당신이 반드시 여기로, 자신을 찾아올 거라고 말했소.”
” 역시 놈은 뭔가 알고 있군.”
나는 약간 인상을 찌푸렸다. 역시 권강한은 이 이변에 대해서 뭔가 알고있는 것이다. 아니, 이변이 일어날 것을 예측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미리부터 모용휘를 꼬셔서 훈련시키는 짓같은 건 못한다.
나는 꽤 어려운 일에 직면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용휘의 실력은 절대 만만하지 않다. 차라리 시력을 봉하고 독고령과 싸울 때가 나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이 화산규약지회 우승을 노려도 전혀 문제 없는 실력자를 오십 초 내에 꺾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별 수 없이 명검을 꺼내들며 말했다.
” 너는 늘 좋은 스승을 얻는구나. 부러운 일이다.”
” 과분하게 생각하고 있소.”
약간 쓴웃음을 지었다.
나에게도, 제대로 된 스승이 있었다면…
그랬다면 지금과는 달라졌을까? 지금보다 강해졌을까?
속으로는 명백히 모용휘에게 질투의 감정이 몰아치고 있었다. 내가 더 높은 경지에 있는 게 확실한데도 끓어오르는 불안감이 생겼다. 유독 모용휘 앞에서는 더욱 감정적으로 변하는 내 자신을 느꼈다.
잠시 후 나는 고개를 저었다.
‘ 그냥 어리광이군, 이건.’
나같은 인간에게 스승은 필요 없다. 좋은 스승을 원하고 모용휘를 질투하는 것은, 내가 지닐 수 없었던 사제(師第)라는 관계성에 대한 부러움이다. 나는 열흘의 하루를 지니면서 그런 소중한 인연을 느낄 기회조차 박탈당한 것이다.
나는 감정을 수습하며 말했다.
” 날 이기면 네 조부를 이기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네 인생 궁극의 목표를 달성하는 거지.”
현 천무삼성인 검성을, 어찌보면 폄훼하는 말.
일부러 도발적으로 말했지만 의외로 모용휘는 긍정했다.
” 그렇게 생각하오. 당신은 아직 내가 넘지 못할 산이오.”
” 그러면 얌전히 패배를 인정하겠는가?”
모용휘는 고개를 저었다.
” 언제나 이길 마음가짐으로 싸우고 있소.”
” ……”
” 그리고… 한 가지 달라.”
모용휘가 훗하고 웃으며 기묘한 자세를 취했다. 저건 은하류 개벽검의 기수식으로 보이지만 미묘하게 달랐다. 아무래도 모용휘는 은하류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서, 자기만의 아류(亞流)를 개척하기에 이른 것이다.
” 내 목표는 이제 검성이 아니오!”
그리고 모용휘의 검기가 눈 앞으로 쇄도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