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Bireido, a parody RAW novel - Chapter 201
0201 / 0343 ———————————————-
원뢰(遠雷)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났다…
내게 있어서는 열 달의 시간이었다.
이토록 긴 시간동안 별다른 일은 없었다. 별다른 일이라고 해도 내 무공의 수련과는 별로 관련이 없는 일이었다. 다만 가볍게 간추리자면 두세가지 일이 있긴 했다.
첫 번째로, 화산규약지회 직후에 정천맹과 흑천맹의 최고간부가 모여서 비밀회동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주변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따라서 열흘의 하루로 추측한 결과였다. 특히 장홍의 움직임과 행동에서 많은 단서를 얻을 수가 있었다.
그 자리에는 흑천맹주 갈중천이 호위를 대동하고 직접 나온 것으로 보였다.
장소까지는 알 수 없었다.
이유는 뻔하다. 팔왕의 존재가 정면으로 알려지고, 그들의 힘에 대해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천무삼성과 동급의 고수가 여덟 명이나 된다는 사실은 도저히 간과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팔왕이 힘을 모으면 단번에 흑천맹이나 정천맹이 무너져버릴 수 있다는 뜻이다.
하은천, 금포염왕, 천무대제.
그들 셋만 해도 구파일방 따위는 흔적도 없이 소멸시킬 수 있다.
게다가 팔왕이 지닌 하위전력도 얼마나 되는지 모르는 상황. 하은천만 해도 동방무림 전체를 방대하게 거느리고 있었다. 아마 수뇌부는 지금 생존의 위기까지 느끼고 있을 것이다. 무력의 상징인 천무삼성조차 완전한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내게도 천무삼성이 직접 찾아와서 여러가지를 권유했다.
내가 준 천무삼성급 무위를 지니고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 당연할 것이다.
그 중에서도 검성이 했던 말이 제일 독특했다.
” 자네가 종남파 장문인이 되게.”
그건 내가 가장 바라지 않는 일이다. 묻어두고 있었던 고민이지만, 허울뿐인 장문인이 되어봤자 내게 좋은 일이란 없다. 수련시간만 줄어들고 사바세계의 풍진에 몸을 담글 뿐이다. 내가 침묵하자 검성이 부연 말했다.
” 지금 우리에겐 각 파의 갈등을 잠재우고 구파와 팔가를 하나로 뭉치게 할 수 있는 구심점이 필요하네. 자네가 그 일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네.”
” 그것은 천무삼성 어르신들께서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천무삼성이 천겁령 대항의 기치를 내걸고 전력을 모집하면 천하의 어떤 문파가 거절할 것인가! 내가 지극히 당연한 말을 했지만 뜻밖에 도성 하후식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우리는 늙은 피일세. 게다가 자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구파와 팔가의 알력은 심해져있네. 나와 모용늙은이조차 팔가의 모든 움직임을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형태뿐인 연맹으로는 팔왕에 대항할 수가 없네.
아마 위천무가 나타났던 초기와 같은 학살이 벌어질 걸세.”
” ……”
그 말대로다.
팔왕 하나를 상대하려면 최정예부대 진천의 1/3의 전력이 필요하다.
하위세력까지 덮쳐오면 답이 없다.
” 검후의 검각또한 무림의 세력다툼에선 다소 떨어져 있는 편.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의 영향력은 백 년 전의 절반 이하로 떨어져 있다고 보면 될 걸세.”
나는 뜻밖의 사실에 침묵했다. 일반적인 무림인들은 천무삼성이 백도를 이끌어가며 영도하고 있다고 신뢰하고 있었다. 그런데 당사자들이 이렇게 약한 소리를 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강호의 위기는 심대하게 닥쳐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 그 말은…”
내 눈이 서서히 번뜩이며 일렁거렸다.
” 당신들은 ‘또 다른’ 적을 노리겠다는 뜻이군.”
” 부정하지는 않겠네.”
” 당치도 않소.”
내 말에 검성 모용정천이 흠, 하며 수염을 쓸어내렸다. 약간 심기가 불편해진 듯 했다. 천무삼성 중에서도 가장 냉정한 성격인 검성이 그러는 일은 쉽게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느낀 것을 그대로 말했을 뿐이다.
암살.
최대한 빠른 종전.
천무삼성은 백도의 통솔을 내게 맡기는 대신에 팔왕의 서열 1, 2위를 노리겠다는 뜻이다! 금포염왕이 내게 했던 말로는 – 팔왕의 두 명은 천외천(天外天)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석년의 위천무도 경시할 수 없는 절대고수라는 뜻이다.
천무삼성의 입장에서는 팔왕 모두를 쓰러뜨릴 필요는 없다. 그 두 명만 쓰러뜨린다면 구심점이 붕괴되어서, 팔왕연합은 자연스럽게 무너지게 된다. 금적금왕(擒賊擒王)의 계책을 사용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리라.
” 그 두 명은… 정말로 위천무를 상대할 각오를 해야 할 것이오.”
내 무거운 말에 도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 뭐가 문제란 말인가.”
” 지금 세 분은, 백 년 전의 혈신(血神)을 쓰러뜨릴 자신이 있단 말입니까?”
” … 흐음.”
천무삼성들은 내 말에 고민에 잠겼다. 확실히 당금 천하에서 무신마조차도 천무삼성의 합공을 당하고 살아남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 천겁혈신과 싸운다는 것과 다른 차원의 문제. 그 정도로 천겁혈신의 이름이 주는 무게는 컸다.
당대의 천무삼성은 백 년 전의 혈신을 쓰러뜨릴 수 있는가?
나는 조용히 천무삼성에게 단서를 주었다.
” 한 명은 모르지만, 다른 한 명은 누군지 알고 있소.”
” 알고 있단 말인가요?”
검후가 눈에 이채를 띄었다. 아마도 그들은 상대의 정체를 아직 모르고 있었다. 나는 권강한에게서 들었던 정보를 천무삼성에게 말해 주기로 했다.
” 무상검(無常劍)의 주인이오.”
” ……!!”
” 유검!”
” 설마, 그가 팔왕이라고?”
믿지 못하겠다는 듯 말했다. 나는 이들의 반응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차분하게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기로 했다. 오늘은 마지막 열흘 째. 내가 해야 할 일을 마친다면 내일부터는 이들과 맞닥뜨릴 일이 없을 것이다.
무당파의 유검.
배분으로 따지면 청흔보다 두 배분 정도 높은 존재다. 하지만 그의 존재는 무당파 내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현검자나 검존 정도가 유검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19세의 유검에게 100초 내에 패배했다.
그 사실은 강호에 알려지지 않았다.
유검은 약관의 나이에 강호에 출도했다. 그리고 강호를 떠돌다가 천무삼성에게 차례대로 도전했다. 천무삼성들은 유검을 일대일로 상대해서 우세를 점하지 못했다. 오직 검후만이 유검을 꺾을 가능성을 보였다. 그 사실은 강호 최정상급에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그리고 유검은 마침내 무신과 무신마에게 도전했다.
무신(武神)은 유검과 충돌한 후, 20년 내에 자신은 그의 적수가 되기 힘들 거라는 말을 했었다. 무신마는 따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 후로 천외일도의 수련에 골몰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일단 대결 자체는 유검의 패배로 끝난 것 같았지만 모든 고수의 가슴이 서늘해졌던 것이다.
유검이 그토록 강했던 이유는 오로지 그의 절학인 무상검(無常劍) 하나 때문이었다.
무상검이 어떤 무공인지는 격돌했던 자들도 몰랐다.
단지 그것은 무당파의 무공이 아닐지도 모르고, 그 연원조차 불확실하지만, 강하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권강한의 말로는 이치(理)를 다루는 수준의 무공이라고 했었다.
그리고 유검은 십수 년이 지난 지금, 팔왕의 서열 2위가 되어 있다.
아마도 전대 서열 2위를 쓰러뜨렸을 것이다. 전대 2위라고 해도 천무삼성에 뒤지지 않는 강자였을 텐데, 그런 자를 태연하게 해치울 수 있다니.
나는 말을 이었다.
” 유검을 쓰러뜨리려면 무신께서 직접 출도하셔야 하오. 그 생각은 불가합니다.”
” … 허어. 그가 그 정도로 성장했다니.”
검성이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도 마찬가지 생각이다. 지금 유검의 나이라고 해봤자 30대 초중반에 불과할 텐데, 그는 이미 천하를 아래에 두고 있는 것이다. 괴물이란 건 바로 그런 인간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나는 첨언했다.
” 그리고 나는 종남파 장문인 따위는 될 생각 없소.”
” 자네는 이 위기를 못본 척 지나가겠다는 말인가? 자네가 나서지 않는다면 강호는 괴멸지경에 놓일 테고, 자네의 사문인 종남파도 멸망지경에 이르게 될 걸세.”
” 아무래도 좋소.”
” ……”
천무삼성들이 동시에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사문의 멸망도 그저 보아넘기겠다는 뜻을 알아챈 것이다. 그 정도로 나는 속세에 얽어매일 생각이 없다. 사문에 대한 충성심보다는 천년검로를 향한 마음이 먼저다. 수련 외적인 것은 가능하면 배제하고 싶다.
기사멸조에 가까운 내 말을 듣고도 검후는 평정을 찾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 전부터 궁금했던 거지만, 그건 도저히 그 나이에 가질 수 있는 정신상태나 생각이 아니지요. 마치 우리 연배의 고수와 대화하고 있는 것 같군요. 어떤 수련을 쌓아왔기에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이죠?”
” 으음. 그래.”
” 나도 궁금했었네.”
” ……”
이 질문도 일단 들었었다.
나는 조용히 대답해 주었다.
” 그런 말 들어본 적 있소?”
” 어떤 말.”
” 열 배로 노력하면 천재도 이길 수 있다는 말…”
” 들은 적 있지. 그게 왜?”
도성의 반문에 나는 빙긋이 웃었다.
” 난 그 말대로 해왔을 뿐이오.”
그리고 나는 일단 타협해서 종남파의 장로와 대등한, 검군(劍君)의 지위에 들어가기로 했다. 그것은 태월하가 내게 결사적으로 설득을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의 말로는 문파 전반에 힘쓰지 않아도 되니, 일단은 명예직이라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 말까지는 수용해 주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천무학관에서 일시퇴관해서 종남파로 향하기로 했다.
천무학관은 수련하기에 번잡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사소한 일. 그것은 –
그리운 종남파에 돌아오자마자, 내게 제자가 생겼다는 사실이었다.
타다다다닷
그 녀석은 다짜고짜 달려와서는 내공을 수련하는 내게 구배(九拜)를 하기 시작했다. 스승과 제자의 인연을 맺겠다는 뜻이었다. 나는 그냥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쿵쿵쿵쿵쿵쿵쿵쿵쿵
번개처럼 구배를 마친 녀석은 또랑또랑한 눈망울을 들어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 종남파 제자 관견음(雚見音)이 인사드립니다!!”
” ……”
” ……”
다짜고짜 네 멋대로 구배를 올리면 스승이 되는 거냐.
정적이 흘렀다.
나는 관견음을 유심히 살펴 보았다. 생김새는 보기 드물 정도의 미소년이었다. 하지만 체형을 분석하는 눈으로 보게 되자, 관견음이 여자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일부러 남장(男裝)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무공수위는 딱 입문한 평제자 정도였다. 내공의 기초가 4~5년 정도 쌓였고, 손에 약간 굳은살도 배겨 있다. 하지만 강호에 나가기에는 많이 부족해 보인다. 대충 파악이 끝나자 관견음에게 말했다.
” 제자 안 받소.”
” 소용 없습니다!!”
내 소심한 답변을 끊어버리듯이, 그렇게 말한 관견음이 갑자기 날카로운 눈초리를 하며 내게 삿대질을 했다.
” 당신이 내 스승입니다! 진상은 그렇습니다!”
” ……”
뭐가 진상이란 말이냐.
이해가 안 된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본파로 돌아오자 마자 심마(心魔)에 걸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