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13)
EP.14)자유를 꿈꾸는가? # 2
014 – 양은 자유를 꿈꾸는가? # 2
앙그마르 중앙 궁정은 세상에서 손꼽힐 정도로 아름답다.
반짝이는 대리석 바닥과 붉은 융단 카펫.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우뚝 솟은 천장과 그것을 바치고 있는 기둥.
세련된 가구들은 모두 백향목으로 짜여져 하나의 예술품 같았고.
하얀 상아들을 갈아 만든 조각상들은 당대의 위대한 앙그마르 왕들을 칭송하기 위해 만들어진 헌사품이다.
그런 아름다운 것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바로 왕좌에 앉은 여왕 그 자신이었다.
“…….”
여왕 아이라는 왕좌에 앉아 나른히 팔짱만을 낀 채 모든 것을 그저 고고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일이었으나.
여왕의 안색을 슬금슬금 살피고 있는 궁정의 고관대신들에게 있어서 오늘은 영 최악의 날이었다.
커흠-.
크흠-.
모두가 서로의 눈치만을 살피고 있던 도중, 공식 궁정 서열 5위-재상 파르가스가 기침을 하며 앞으로 나섰다.
“쿨럭, 쿨럭. 저, 그럼 정기 궁정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랜 폐병의 가래소리와 함께 마침내 궁정 회의가 시작 되어 버렸다.
시작 되었는데.
아무것도 진행되질 않는다.
“저기. 그래서 오늘 회의 순서와 안건은?”
궁중의 금융과 재무를 담당하고 있는 벨모트 경의 질문에 재상 파르가스는 그때서야 긴 두루마리를 바닥까지 펼치며 그것을 유심히 들여 본다.
촤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어디 보자. 그러니까, 첫 번째 안건은. 요새 귀족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있는 불량도당, 검은 로브단에 대한 동향과.”
“롭단이 아니라, 로브단이 아니오?.”
“아하. 로브단. 검은 로브단에 대한 동향과, 음. 어디보자. 음. 글씨가 왜 이리 작아.”
“허어-.”
“흐음-.”
오늘내일하는 노신하의 말에 모두들 끄응-하고 앓는 소리를 낸다.
재상 파르가스가 뛰어난 남자였긴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20년 전의 이야기.
이렇게 오늘내일 하는 남자가 회의를 진행해서야-. 그러나 그렇다고 선뜻 파르가스 대신 그 자리를 이어줄 사람이 궁중의 대신들에게는 없었다.
그럴 배짱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적어도 어제까지는 그랬다.
금융대신 벨모트는 주변을 슥슥 둘러보며 한 남자-, 아니 소년의 모습을 찾았지만 그의 특색있는 얼굴은 그 어디에도 보이질 않았다.
그때 누군가가 벨모트의 등을 슥슥 잡아당긴다.
고개를 돌려보니, 대머리에 애꾸눈의 대신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교활하게 줄을 타며 살아남는 남자 외무대신 필라프였다.
“벨모트 경. 그의 모습이 어디에도 보이질 않소. 태오 가스펠 말이오. 그대는 어찌 된 일인지 아시오?”
“왜 그걸 나한테 물어보시오, 필라프 경.”
“왜냐니. 그야 태오 그 놈을 제일 싫어했던 게 벨모트 경, 그대 아니오. 혹시, 그대가 뒤에서 꾸미고 있던 음모들로 그놈을 마침내 실각시킨 거요?”
“음모라니. 입 조심하시오. 나는 이제 여왕폐하의 심복, 왕당파 일원이오.”
“헹-. 그러시겠지.”
외무대신 필라프와 재무대신 벨모트는 궁정회의야 아무래도 좋다는 것처럼 자신들끼리 이야기를 나눴다.
어차피, 태오 가스펠 그 남자가 없는 회의야 허울뿐인 빈껍데기니까.
실제로 여왕 아이라조차 생각에 잠긴 것처럼 눈을 감고 있을 뿐.
벨모트가 여왕의 안색을 살피며 말했다.
“이번 일과 나는 진실로 상관이 없소. 오히려 나도 어찌된 일인지 알고 싶을 정도요. 내가 심어두었던 손발은, 저번 날에 태오 그 자에게 다 잘려나갔으니까.”
“그렇구만. 내가 듣자하니, 어제 여왕과 태오 그놈이, 밤중에 몰래 궁정 담을 넘어 시내를 돌아다녔다고 하던데.”
“시내를?”
“나가서 무언가 실수라도 했겠지.”
“그렇구만.”
그렇구만-하고 벨모트는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벨모트는 그 남자, 태오 가스펠이 절대 실수 따위 하지 않을 놈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제 갓 약관에 달할까 말까 싶은 그 남자는 벨모트가 오랫동안 준비해오고 있었던 음모를 단박에 파악해 단 하루만에 진흙탕으로 쳐 박았다.
심지어 비밀 은신처에 숨겨두었던 딸마저 데려와 궁중의 시녀라는 명목 하에 인질로 붙잡아두고 있는 상태.
대체 어떻게 알았지?
‘클라라를 숨겼던 은신처는 나조차도 모를 정도로 비밀스러운 곳이었을 텐데?’
덕분에 여명회를 주축으로 한 반란의 씨앗은, 미처 점화되기도 전에 짓밟혀졌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소름 끼칠 정도의 수완가다.
정말로 요승이라는 별명답게 예지능력 같은 것이라도 있단 말인가?
정말로 노예출신?
하물며 놈의 과거나 정체에 대한 정보조차 하나도 없다니.
파악할 수 있는 것은 가스펠이라는 이름에서 오는 교단과의 연결고리와 리오네스 가문에 노예로 구매되었다는 이력 뿐.
그 더욱 전은, 그야말로 까마득한 공백이다.
적어도 인간이라면 살아왔던 흔적이 남아있어야 할 터인데.
산에서 야생 들개처럼 살아오다 뒤늦게 사회로 편입되지 않은 이상 기록이나 사람들의 증언이 하나 이상 있어야 할 터인데.
태오 가스펠에게는 그런 게 없었다.
말살형이라도 당한 것처럼 완벽한 무(無)
소름이 끼친다.
‘사교계에 익숙해 보이고. 어색한 점이 있긴 해도, 격식과 언행 모두 매우 고상한 놈이었어. 야생에서 부랑민처럼 살던 놈은 아냐. 아마도 몰락 귀족 같은데….’
매우 야망 있는 몰락 귀족.
그것이 벨모트가 예상한 태오 가스펠의 정체였다.
그런 몰락 귀족이 궁중으로 들어와 여왕을 현혹시키고 이리저리 조종하고 있으니.
나라가 휘청거리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어쩌면, 자신의 가문을 몰락하게 만든 나라에 대한 복수가 아닐까-라고 벨모트는 어제까지만 해도 생각했으나.
오늘로서 알게 된 일이 있었다.
“이야기가 도통 진행되질 않는군. 그놈을 그리워하게 될 줄, 몰랐소.”
“그러게 말이올시다. 이러다 일이 잘못되면 다 벨모트 경 탓이오.”
“필라프 경, 이게 왜 나 때문이란 말이오?”
“태오 그놈에 대한 이간질을 제일 열심히 한 게 벨모트 경 아니오? 그놈이 요승이다 뭐다, 저잣거리에 소문을 낸 것도 그대고.”
“…그때는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지 않소. 거사를 위해선, 태오 그놈과 여왕의 사이를 떨어트려 놓아야만 했었으니….”
“그럼 실패하지 말았어야지. 덕분에 이렇게 태오 그 놈이 여왕의 눈 밖에 나서 처벌을 받았으니. 축하라도 드려야겠소.”
“…….”
벨모트는 외무대신 필라프의 비아냥에 딱히 대답할 게 없었다.
본디 자신이 태오와 여왕 아이라의 축출을 꿈꿔오긴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여명회와 자신의 비자금이 있어서, 그들의 힘으로 하여금 나라를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을 때의 이야기.
그것들이 전부 없어진 지금.
유일하게 여왕을 통제할 수 있는 태오가 자리에서 영영 모습을 드러내지 않게 된다면, 앞으로 이 궁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지 벨모트는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
상상하기도 싫고.
필라프가 말했다.
“미친 여왕의 목줄이 풀렸소. 그렇다면, 누군가 목줄을 쥐긴 해야 할 텐데. 누가 호랑이의 목줄을 쥐고 싶어 하겠소. 정말 큰일 났소이다.”
벨모트 역시 그의 말에는 동의했다.
천년만년 영원할 것 같았던 여왕 아이라와 태오 가스펠, 그들의 사이가 어찌하여 파국을 맞이했단 말인가?
이건 몹시도 좋지 않은 일이었다.
혹시 진짜 자신이 뿌려두었던 중상모략들이 뒤늦게 효과를 발휘한 거라면 어쩌지?
‘좋지 않아.’
정말, 정말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궁정에 자신의 딸이 시녀로 붙들려 있는 한, 태오 그 남자는 궁정의 평화를 위해 꼭 필요했으니까.
“그래서 필라프 경, 경은 태오 가스펠 그놈이 지금 어디에서 뭘 하는지 알고 있소?”
“그야.”
외무대신 필라프가 식 웃는다.
이 교활한 대머리 새끼. 평소에는 멍청한 척 하면서, 뒤로는 이득을 다 보고 있구만. 물론, 자기도 그랬다.
아니, 과장되게 말하자면 여기 궁정의 모두가 일부러 바보 같은 척을 하고 있겠지. 똑똑한 척, 잘난 척을 하면 온갖 일거리를 떠맡아야만 하니까.
마치 잘난 놈이 조장을 해야만 하는 아카데미의 조별과제처럼.
그래서 바보 같은 척을 했고 지금까지 잘 통했다.
지난 1년 간, 귀찮고 궂은 일은 태오 그 놈이 스스로 도맡아 했으니….
그래서, 지금 그 놈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때 필라프가 태오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벨모트는 깜짝 놀랐다.
태오 그놈과 가장 어울리지 않는 곳이었으니까.
아니, 어쩌면 가장 어울리는 곳이라고 볼 수도 있었지만….
“…지하 감옥?”
* * *
철컹, 철컹.
“태오 가스펠, 식사입니다.”
철창 안에 하염없이 갇혀 있을 때 누군가 나를 향해 쟁반을 하나 가져왔다.
고개를 들어 올리니, 금발 머리를 뒤로 깔끔하게 묶고 머리에 헤어밴드를 쓴 시녀가 나를 경멸하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클라라 양. 오늘 제 점심 메뉴는 뭐죠?”
“양송이 버섯 수프. 흥, 그보다 꼴좋네요. 어리석은 여왕을 휘두르며 무고한 사람들을 감옥에 집어넣더니. 자기가 지하 감옥에 갇히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나보죠?”
금융대신 벨모트의 딸 클라라는 왕궁의 지하 감옥에 갇혀 있는 내게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 내가 싫은 모양이다.
싫겠지.
나 때문에 팔자에도 없었을 궁정 시녀 일을 하고 있는데 말이다.
나는 변명하듯 말했다.
“무고한 사람을 넣은 적은 없습니다. 들어갈 만한 놈들을 집어 넣었지.”
“그걸 누가 믿어요?”
“믿고 자시고, 그게 진실인데요. 믿기 싫다고 진실이 거짓이 되는 건 아닙니다.”
흥-하고 코웃음을 치는 클라라.
이야기를 나누며 클라라의 행색을 살펴보니 얼굴에는 빛깔이 돌고 어디 다치거나 맞은 흔적은 없어보였다.
“궁정 일은 할 만합니까?
“덕분에요!”
시녀들은 신입에 대한 텃새가 몇몇 간호사의 태움 정도로 심한데.
어쩌면 나한테 따귀를 맞았던 것으로 선배 시녀들의 동정표를 받아 그 유별난 ‘환영식’을 넘어갔는지 모를 일.
물론, 이 클라라는 그런 사실 따위 모르겠지.
“이제 어떻게 되는 거죠? 궁정 정원사, 태오 가스펠. 아니, 이제 아무것도 아닌 태오 가스펠인가요? 사형 당하나요?”
“그랬으면 좋겠습니까?”
“거짓말은 못 하겠네요.”
할 말, 못할 말 가리지 않는 아가씨구만.
나는 시녀 아가씨에게서 수프를 건네받으며 그냥 농담처럼 말 머리를 바꾸기로 했다.
“수프에 침 같은 건 안 뱉었죠?”
“…….”
왜 대답이 없어.
내가 숟가락을 놓으려고 하니 클라라가 말했다.
“안 뱉었어요. 굳이 그럴 필요도 없으니까. 결국 여왕에게 버려져서 죽는다니. 불쌍하네요.”
“자꾸 절 모욕하고 도발하는데. 그러다 만에 하나, 제가 여기 철창을 벗어나 밖에 나가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려고 합니까? 그거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너, 나. 감당할 수 있겠냐.
영화 대사처럼 물었을 때 클라라는 말도 안 된다는 것처럼 깔깔 웃었다.
“궁정의 지하 감옥을 빠져나와요? 시체가 아니면 못 빠져나오는 것이 여기 궁정이에요. 시녀든, 죄수든. 가스펠, 당신이 더 잘 알잖아요?”
그렇긴 하지.
하지만 나의 경우는 좀 달랐다.
“뭐야. 웬 손님이 와 있네? 이야, 태오. 출세했다. 감옥에 면회 와 줄 아가씨도 있고.”
누군가 횃불을 든 채 저 멀리서 어슬렁어슬렁 걸어왔다. 그리고는 내 철창 앞에 서서, 손에 들고 있었던 열쇠로 감옥의 문을 딴다.
“당신은, 리오네스 가문의…. 당신이 왜 여기에?”
“아. 클라라 아냐? 뭐야, 시녀로 일하고 있었구나. 1년 전, 아이라 생일파티 이후로는 처음인가?”
“어, 어어-.”
“시녀복이 잘 어울리네. 그보다, 좀 옆으로 비켜 봐. 감옥으로 들어가야 하니까.”
엘가 리오네스는 클라라를 옆으로 밀어낸 뒤에, 내 감옥으로 들어와 내 팔목에 부착되어 있는 쇠사슬과 족쇄의 구속을 풀어주었다.
절그럭, 텅-. 텅-.
“지하 감옥에서 근신 한 나절. 이제 끝났으니까, 석방이다, 죄수 태오 가스펠. 나는 일단 네 신변을 인수받기로 했어.”
스륵, 스륵.
나는 일단 자유의 몸이 된 기쁨에 팔목과 다리를 슥슥 매만져 봤다. 비록 한 나절이었긴 했지만 이 감옥에 갇히는 건 존나 끔찍한 경험이었다.
여기 귀신 나온다는 소문 있단 말이야. 벌레도 존나 많아서 개끔찍하고.
“어, 어떻게.”
물론 클라라는 내가 벌써 감옥에서 빠져나오게 될 줄은 몰랐다는 것처럼 파르르 몸을 떨었다. 내게서 뺨을 맞았던 트라우마가 아직 남아 있는 것이겠지.
“내가 말했죠. 나 감당 할 수 있겠냐고.”
“흐, 흐이익.”
내가 겁을 주듯 으르릉 거리자 클라라는 바닥에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 그런 그녀를 보며 나는 이가 다 드러날 정도로 씩 웃어주었다.
“농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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