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216)
EP.217)숲의 결혼식 # 4
217 – 마녀 숲의 결혼식 # 4
“나도 너를 알아. 너는 광대지?”
옷차림이 달라도.
사람의 분위기나 표정 같은 것이 달라도 나는 확실히 알아볼 수가 있었다. 그녀는 아니스 언니의 결혼식에 참가했었던 17세 당시의 아이라가 확실했다.
그런 그녀가 손에 뒷짐을 쥔 채 천막 안으로 들어와서 내 주변을 빙글 한 바퀴 돈다. 마치 낯선 외부자를 발견한 고양이 같은 걸음이었다.
맨 발이라 사뿐 사뿐,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키가 크네. 내가 본 광대 중에는 제일 큰 것 같아.”
그야 크겠지.
아이라도 모델처럼 늘씬하게 뻗은 편이지만 그래도 원래의 나보다는 작을 수밖에 없다.
원래의 나는 187cm나 됐으니까. 덕분에 큰 키는 내 몇 없는 자랑거리 중 하나였지.
다만 내가 놀란 것은 아이라가 날 알아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당연한 일인가?
나는 반요정 태오 가스펠과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고 또 괴상한 광대 분장까지 더하고 있잖아.
그게 아니면 여기의 아이라는 정말 17세 그 자체로 아주 돌아가 버려서 내가 연기하고 있었던 ‘태오 가스펠’이라는 남자 자체를 기억하지 못하는 걸 수도 있다.
그래, 그럴 확률도 있겠네.
아무튼.
17세의 아이라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파릇파릇했다.
20세의 그녀가 마치 전부 피어오른 한창 때의 꽃 같았다면, 지금의 그녀는 봉오리. 그래, 봉오리. 그것 이상으로 아이라를 표현할 방도가 없을 거다.
손끝만 톡 가져다 대어도 머금고 있는 이슬을 사방으로 퍼트리며 화사하게 피어날 것 같은 싱그러움. 풋풋하고 보기 좋다.
“저기, 뭐라고 말 좀 해 봐.”
빙글, 빙글.
내 주변을 계속 도는 모양새가 내게 관심이 있는 듯이 보였다. 내가 알던 스무 살의 여왕 아이라와의 차이에 머릿속 커다란 벽처럼 괴리감이 쌓인 달까….
“너 혹시 벙어리니?”
내가 무섭지도 않은 걸까?
낯선 사람에게 이렇게 경계 없이 다가온다니. 마치 보육원 앞에 있었던 고양이를 떠올리게 만든다.
녀석도 누군가가 장난으로 돌멩이를 던져서 다치게 만들기 전까지는 사람에 대한 경계심도 없고 호기심 많은 녀석이었다.
지나다니는 사람마다 졸졸 쫓아다녔던가. 사람 무서운 줄 몰랐지. 아이라도 그랬었던 모양이다. 사실 이쪽이 원래의 아이라에 가까울 거야.
나는 잠깐 막혀있던 목을 열고 물었다.
“…제가 무섭지 않습니까?”
새삼스럽게 내 목소리가 의식된다. 나의 목소리는 원래 이렇게 두꺼운 편이었구나. 바보 같지 않았을까.
다만 공주 아이라는 그런 것이야 신경 쓰지도 않았다.
“네가 왜 무서워야 하는데? 너는 광대잖아. 광대는 재밌는 사람이고. 그럼, 이따가 봐.”
손을 흔들며 천막 바깥으로 나서는 아이라의 뒷모습에 슬슬 감이 잡혔다.
그래.
이제야 좀 알겠다.
대략 17년의 인생.
모두에게 사랑받고, 관심을 받고, 좋은 말과 좋은 소리만 들어온 아이라에게 세상은 이토록 희망적이고 밝은 것이었겠지.
누군가 자신에게 해코지를 할지도 모른다-라는 생각 자체가 머릿속에 없는 거야. 적어도 지금 순간의 아이라는 그랬다.
「침착한 상황 판단!
재능 《침착한 사고》에 의해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모든 직업 경험치 + 5」
곧 냉정한 판단이 나의 마음에 젖은 수건처럼 착 가라앉았다.
어쩌면 이 세상에서 아이라를 데리고 빠져나가는 게 생각했던 것만큼 쉽지 않을지도 모르겠구만.
* * *
릴리를 다시 만난 것은 천막 바깥으로 벗어난 뒤였다.
“야, 지금 너 뭐하고 있는 거야? 얌전히 기다리라고 했잖아!”
녀석은 우스꽝스러운 얼굴을 한 나를 발견하고는 내 팔을 질질 붙잡아 다시 천막 안으로 집어넣고 작게 성질을 부렸다.
“이 꼴은 대체 뭔데? 지금 무슨 꿍꿍이야?”
“네가 하도 안 와서 내가 직접 들어왔잖아. 난 지금 광대야.”
“광대? 이제 궁정 서기관은 그만두기로 한 거야? 잘 어울리네. 흐흥.”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아이라 님을 만나 봤어? 어떻게 하면 데리고 돌아갈 수 있을지 의견 좀 나눠보자.”
“…….”
릴리는 천막 바깥에서 언니오빠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아이라의 모습을 슬쩍 살펴봤다.
한참 감상에 잠겨 있는 것 같은 옆얼굴을 나른하게 바라보고 있자니. 녀석이 작은 목소리로 자신 없게 말했다.
“여기서, 타란테라 님을 현실로 데려가는 게 과연 올바른 일일까?”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여기를 봐. 다 있잖아. 왕자님들도, 또 공주님들도 다 계시고. 심지어 폐하와 왕비님까지 살아계셔. 그리고 타란테라…, 아니, 아이라 님도 웃고 계시고….”
녀석의 말뜻을 알 것 같았다.
이 장소에서 아이라는 행복해보였다. 나도 아이라가 저런 식으로 밝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인 줄은 처음 알았으니까.
포르릉 날아온 파란 새들이 팔과 머리에 앉아 부리와 날개를 비비적거리는 모습이란 정말 동화 속 공주님 같다.
그러나-.
“이건 꿈이잖아. 가짜잖아. 이대로 오랫동안 깨어나지 못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데. 얼른 어떻게 데려갈지나 생각 해.”
“나는…, 나는 모르겠어.”
안 되겠다. 이 녀석, 완전 맛이 갔구만.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해 보였다. 뭐라도 잘못 먹었나 싶었을 때 누군가 천막 바깥에서 소리쳤다.
━릴리, 어디 있어? 꽃목걸이 만들 건데. 같이 만들자.
“아, 공주님, 금방 나갈게요!”
아이라의 부름에 릴리는 밝게 웃으며 천막 바깥으로 뛰어가 버렸다. 곧 녀석은 수많은 공주들과 함께 조잘조잘 떠들며 함박 미소를 짓는다.
그때서야 이해가 됐다.
이곳은 아이라에게 있어서 행복한 낙원임과 동시에 릴리에게 있어서도 천국이었던 것. 릴리도 이곳에서 빠져나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아니, 사람을 일으켜주려 와서 자기가 같이 누워버리자면 어쩌자는 거지? 요 며칠 서로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래서야 없는 것보다 도움이 안 되는 녀석이다.
완전 트롤이잖아.
“후.”
나는 짧게 숨을 내뱉었다. 남은 풍선은 세 개.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노릇. 릴리가 어떤 판단을 했든 나는 나대로 노력하면 그만이다.
펄럭.
일단 천막 바깥으로 다시 빠져나간 뒤에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어떻게 해야 아이라에게 접근할 수 있을지. 또 이것이 꿈이라는 것을 그녀에게 자각시켜서 깨어나게 만들 수 있을지 파악해야 한다.
━태오 경, 주의할게 있어요. 타란테라 여왕의 심리가 불안해진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몰라요. 그것에 휩쓸리면 당신의 정신도 어떻게 될지 모르구요.
미르나에게서 들었던 충고에 의하면 아이라의 심기를 크게 건드리는 건 위험하다고.
예를 들어 내가 갑자기 마법을 난사하며 가족들을 전부 쓰러트리거나 한다면, 이 꿈의 주인인 아이라의 정신에 커다란 변화가 있을 게 분명할 터.
그것이 어떠한 영향과 결과를 초래해 나를 덮쳐올지 모르니, 고로 충격적인 요법의 사용은 주의해야한다.
일단 좀 더 온건하게 접근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아이라, 이것 좀 봐. 파랑새야.
━얘, 봄 딸기가 맛있단다.
하하호호.
다만 아이라는 좀처럼 혼자가 되는 경우가 없었다. 항상 그녀의 주변에는 언니오빠 그리고 시녀인 릴리가 붙어 있어서 타이밍을 잡기가 어렵다.
내가 멋대로 접근하려고 해도 ━뭐야, 너 그쪽으론 가지 마. 라고 금방 경비들이나 왕자들에게 저지당하기 일쑤.
아까 전 아이라가 천막에 들어와서 내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을 때가 진실을 일깨워 줄 절호의 기회였었구나.
━그래서 내가 말이야-.
조잘조잘.
내가 아는 아이라는 주변에 다가오는 사람을 칼 같이 차단하는 분위기 같은 게 있었는데 말이지. 이렇게 보니까 그녀는 인싸 중에 인싸다.
엘가가 어째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던 아이라를 보며 원래 쟤는 저런 애였다-라고 평가했던 건지 이해가 확 된 달까.
덕분에 나는 틈을 보기 위해 주변만 빙글빙글 돌았다.
━마술 보여줘. 마술.
━재밌는 얘기 해 줘.
주변에 몰려드는 시녀들과 꼬맹이들의 리퀘스트를 받아 저글링을 돌리거나, 물구나무를 서서 걷거나 하기를 얼마나 했을까.
어느 순간에 나는 무언가 기이한 점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시간.
─시간이 가질 않는다.
이 결혼식장의 주변으로는 해가 떠오르고 다시 해가 저물어 그림자가 짙어지고 했으나.
이 결혼식장은 혼자 세계의 법칙을 무시하는 것처럼 밝은 나날을 내내 유지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시간이 어느 순간에서 못 박혀 고정된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신부’가 나타나질 않는다.
이 결혼식장의 주인공이자 아이라의 언니인 아니스 폰 타란테라.
그녀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보이질 않았다.
덕분에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결혼식이 진행되질 않고 있다. 이것은 아마 아이라의 내면심리 때문이겠지.
결혼식이 진행되고 나서 그녀의 언니가 어떻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날부터 자신들의 가족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있기에 이대로 시간이 멈춰있길 바라는 거야.
팡-!
그때 내 손목에 감겨 있던 풍선이 하나 더 터졌다. 내가 알기로 이 풍선은 나흘에 하나 씩 터질 터. 벌써 또 나흘이 지났단 말인가?
이곳의 시간이 유난히 빠르게 흐르는 기분이 든다.
이대로 있다간 모든 풍선이 다 터질지도 모르고. 그랬다간 이곳에서 빠져나갈 길조차 영영 잃어버리게 될지 모르는 일.
무엇이든 해야만 한다.
그래서 나는 과일이 올려 놓인 테이블의 그릇들을 좌르륵 치우고 그 위로 올라섰다.
촤르르르, 쨍그랑.
단지 그것만으로 하나 둘 모두의 시선이 내게 모인다. 안 그래도 혼자 불뚝 솟아 있는 것처럼 머리가 높은데, 테이블을 밟고 서니 주머니 속 송곳처럼 뾰족 튀어나온 탓이리라.
━뭐야, 뭐야.
━몰라, 공연이라도 하려나 봐.
모두의 시선이 하나 둘 내게 모일 때. 아이라도 나를 바라봤다. 아직 순진함을 잃지 않은 그 까만 눈동자에 깃 드는 것은 호기심.
“…….”
나는 말 하는 것 대신 손가락을 하나 폈다.
슥.
인형 옷을 입고 아르바이트를 했던 기억을 떠올려 보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의 주목을 이끌기 위해서는 손짓 하나만으로도 충분.
모두의 시선이 충분히 모였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두 손을 기도하듯 모았다. 손 안에 자그마한 비둘기 알이 들려 있는 것처럼 모은 후-.
━뭐야, 뭘 하려나본데?
━몰라, 안에 뭐가 있나 봐.
모두의 호기심이 슬슬 끌어 오르기 시작했을 때 두 손을 펼쳤다.
파아아-.
그러자 내 손으로부터 수많은 나비의 떼가 날아갔다. 물론 진짜 나비는 아니고, 마력으로 만들어진 형형색색의 빛 무리일 뿐이다.
━와, 나비가 많다.
━알록달록해. 예쁘다…. 마법?
모두가 색색의 광채에 감싸여 감탄했다. 다만 나의 시선은 올곧을 정도로 아이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1위계의 발광마법과, 3위계의 마력조작의 응용.
이건 아이라, 네가 알려주었던 거야.
네가 처음으로 내게 알려주었던 마법.
기억 나?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어.
“아이라, 눈을 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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