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286)
EP.287)
287 – 대마법사
임프들의 꼬리는 마력을 송수신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임프들이 평소 체내에 비축해 두고 있었던 마력을 타자에게로 보내주거나. 복잡한 연산이 필요한 술식과 영창을 대신 끝내주거나 할 수 있다고.
물론 임프들의 성정은 까탈스럽고 소란스러우며 음흉한 구석이 있기 때문에 아무에게나 그런 일을 해주진 않는다고 들었다.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야? 마왕님을 자처하면서 내 자매들을 학대하고 괴롭히다니! 아주 못된 놈이네!」
내게서 방금까지의 이야기를 전달 받은 마르마르는 마치 자신이 일을 당한 것처럼 분개했다. 그 분노에 상응하는 것처럼 팔목에 휘감아둔 나의 꼬리 완드가 징징 울려댄다.
나는 생각으로 마르마르에게 물었다.
「아무튼 별 일 없지? 너는 지금 어디에 있어?」
「나는 도시 산도라에 거의 다 도착했어! 가르가르랑, 푸르푸르랑 타르타르도 잘 있으니까 너무 걱정 안 해도 돼. 발란 교수가 잘-.」
마르마르가 무어라 더 이야기를 길게 하려고 하는 것 같았는데. 길게 번지던 목소리가 이내 아주 끊겨버리고 말았다.
「마르마르?」
「……….」
혹시나 싶어서 마르마르의 이름을 몇 번 더 불러봤지만 응답이 없다. 당장 떠오르는 것은 통화권 이탈 혹은 배터리의 오링 정도.
그렇군.
어찌되었든 마르마르는 무사히 마녀들의 도시에 도착한 것 같았다. 마지막에 하려던 이야기는 발란 교수가 자신들을 잘 호위해주었다-같은 이야기였겠지.
발란은 흑마술에 있어서 뛰어난 실력자. 그녀가 호위로 따라붙었다면 오합지졸의 도적떼로부터 습격당해 봉변을 당할 걱정이 없었다.
잘 하면 마르마르를 산도라에서 만날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을 할 때 함께 도적굴을 빠져나가고 있었던 백마법사 테페르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마르마르…, 임프 이름이죠…? 여왕 콘테스트에서 3위를 했던….”
“아.”
어떻게 알았지? 내가 허둥지둥하자 테페르가 몇 마디 해명하듯 덧붙였다.
“염상(念想)의 대화는 주변에서 엿들을 확률이 있어요. 보안성 높은 이야기를 할 때는 주의해야 하는 법이에요.”
“좋은 팁이네요.”
멀리 있는 상대와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편리하지만, 그 반대로 누군가 이야기를 엿들을 수 있는 보안성의 취약이 있다는 건가?
좀 개선이 필요할 것 같다.
나는 비밀 얘기를 할 게 많단 말이야.
그렇게 우리는 토굴 바깥으로 빠져나올 수가 있었다. 우리가 토굴에 들어섰을 때는 완전 캄캄한 자정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저 먼 곳에서 여명이 터 오르고 있는 것이 꽤 운치 있다.
너비 수 십 미터에 이르는 폭포수. 햇살에 잘게 흩어지는 물보라와 무지개가 퍽 아름다워서 방금까지의 피로가 조금은 가시는 기분이다.
━드디어 지긋지긋한 도적들에게서 해방된 것입니닷…!
━모두 으뜸 임프 태오 동지의 덕분이니 감사함을 표하는 것이야…!
물론 그러한 감상은 소란을 떨기 시작하는 임프들에 의해 깨져버리고 만다. 내게로 몰려온 임프들이 나의 몸을 이리저리 들더니 높이 헹가래를 띄웠으니까.
━태오 동지 만세!
━임프들의 해방자 태오 동지 만세!
“야, 내려 놔!”
하지만 압도적인 물의 흐름을 자랑하는 폭포의 옆에서 헹가래라니. 자칫 놓쳤다간 내 시체조차 찾지 못할 것 같아서 무서움이 앞선다.
그때였다.
━아앗-! 태오 동지의 주머니에서 사탕이 잔뜩 나오고 있는 것입니닷…!
━그 왕사탕은 나 시르시르가 먼저 발견한 것이다…!
헹가래에 흔들릴 때마다 내 주머니에서 짤랑거리며 떨어진 동전과 사탕. 그것에 관심을 빼앗긴 임프들이 우왕좌왕 바닥을 헤집기 시작했다.
덕분에 힘이 어긋났는지 공중으로 내던져졌던 나의 몸은 난간을 뚫고 강물을 향해 직행.
첨벙.
━아앗-! 놓쳐버린 것이다-!
━강물에 떠내려가는 것이야-!
“히에엑…!”
* * *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만 나는 결국 살아남을 수 있었다.
흠뻑 젖어서 감기기운이 으슬으슬 느껴지긴 했지만. 죽지 않은 게 어디야.
백색 마탑에 도착한 우리는 마도사 테페르 양의 신원을 그들에게 잘 인수해주었다.
“테페르 양이 정신적으로 좀 충격을 받은 것 같긴 하지만 다친 곳은 없어요. 또, 폭포의 동굴에는 도적들의 잔당이 묶여 있을 테니 경비들을 불러 포획을…. 흐엣취!”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간 후.
마탑의 일원들은 내게 연신 고개를 꾸벅이며 감사를 표했다.
“덕분에 봉변을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태오 경, 빅 리버에 머무르는 동안 저희가 모든 편의를 책임질 테니 마음 놓고 있으시지요.”
좋군.
별로 감사를 바라고 행동했던 일들은 아니었지만 내가 한 행동에 따른 보상을 받는 데에 굳이 거절할 필요가 없는 법.
“그럼, 저희가 데려온 임프들에게 일단 잠 잘 곳과 먹을 것들 좀 챙겨주세요.”
내 이야기에 마탑주 돌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임프들이라면, 저희 마탑에서 고용해 이런저런 심부름을 시켜도 좋을 것 같군요.”
임프들의 일자리도 마련되었군.
그 뒤 우리는 흙바닥에 굴렀던 몸을 깨끗하게 씻고 마탑의 일원들이 마련해 주는 하얀 로브로 옷을 갈아입은 뒤 연회에 참가했다.
마탑의 총아 테페르 양이 무사히 생환한 것을 기리는 파티. 정작 당사자는 얼굴을 몹시도 붉힌 채 죄인처럼 안절부절 못했지만 말이다.
“불안해 보이십니다.”
내가 다가가 묻자 테페르가 화들짝 놀랐다.
“그, 그야 저는…. 저 때문에 생긴 문제인데….”
그렇군.
테페르가 금기의 창고에 잘 보관되어 있었던 지배의 왕관을 훔쳐 달아나 벌어졌던 소동. 그로 인해 많은 피해가 발생했는데.
정작 자신은 아무렇지 않게 파티의 주인공이 되어 대접을 받는 것이 몹시 부끄럽고 미안했던 모양이다.
그래도 양심은 있는 녀석이네.
내가 말했다.
“아마 진실이 밝혀지는 일은 없겠죠.”
테페르의 실수는 묻어질 것이다. 백색 마탑에는 그럴 만한 힘이 충분히 있다. 또 차기 마탑주로 점쳐지고 있는 테페르의 과오가 세상에 드러나서 좋을 게 없다.
나와 돌체스는 그렇게 협의를 봤다.
테페르 또한 천재라 불릴 만큼 똑똑한 여성. 자신에게 선택권이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이내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래서, 그 지배의 왕관에 대한 이야기를 좀 여쭙고 싶습니다만.”
“아.”
나는 테페르에게 이것저것 물어봤다. 그녀가 어떻게 지배의 왕관을 쓰게 되었는지부터, 어째서 도적들의 굴까지 가게 되었는지까지 말이다.
“그냥, 어느 순간부터 목소리가 들렸어요. 마치 환청처럼. 저에게만 들려오는 목소리가….”
“그게 테페르 양의 몸을 조종했던 솔로몬입니까?”
내 물음에 테페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하지만, 진짜 마왕 솔로몬이라기에는 조금 그, 차이가 있어 보였는데요. 조금 더 허접하다고 해야 할지….”
내 말에 테페르는 잠깐 생각에 잠긴 것처럼 보였다. 지배의 관과 연결되어 있었던 그녀이니 만큼 생각할 거리가 많았던 모양이다.
덕분에 잠깐 생겨난 공백.
그 틈을 타 떠들썩한 파티홀의 모습을 찬찬히 살피고 있을 즈음, 무언가 결심한 것처럼 테페르가 말했다.
“그건, 잔류사념이에요.”
“잔류사념?”
“솔로몬은 자신의 생명력과 의지를 나눠 담은 물건들을 몇몇 만들었어요. 여러 목적들을 위해서 말이에요.”
“그 중에 하나가 그 왕관이었던 것이겠네요.”
끄덕끄덕.
“그런 물건이 더 있습니까?”
“그건 저도 잘…, 하지만 목소리가 저를 들여다봤듯이, 저도 아주 약간이지만 그 잔류사념의 기억을 읽을 수가 있었어요.”
솔로몬에 대한 기억인가.
“그게 뭔지 얘기해 주실 수 있습니까?”
“아기가…, 거대한 마법진 사이에 놓인 아기의 요람 같은 것이 보였는데. 그게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잘 모르겠네요.”
“아기….”
“상당히 깊은 곳에 꽁꽁 숨겨둔 기억이었던 것 같은데…. 제법 중요한 기억 같았어요. 아기는 울고 있었고….”
솔로몬의 기억에 아기가 있다니.
“그것 외에는 달리 기억나는 게 없으십니까?”
“그저, 불같은 복수심과 증오심 정도…. 왕관에 깃든 잔류사념은 증오의 화신이었어요. 살아있는 모든 것에 살의를 느끼고 있었던….”
으윽-하고 인상을 찌푸리는 테페르.
아마 지배당하던 때의 충격이 가시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휴식을 선물해주기로 했다. 내가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할 즈음, 테페르가 날 향해 묻는다.
“강물에 빠졌을 때 말이에요.”
“아.”
“그때 보였던 마법…, 그만한 것을 제게 사용하셨다면 충분히 저를 제압하셨을 것 같은데. 그러지 않으셨어요. 어째서였죠?”
강물에 빠졌던 때?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는데. 테페르의 표정이 지나치게 심각해 보여서 나는 적당히 맞춰주기로 했다.
“그야…. 대마법은 사람에게 사용하도록 만들어진 게 아니니까요.”
“그럼…? 그럼, 대마법은 무엇을 위해 필요한 거죠? 마법사들은, 어째서 위계를 더욱 높일 필요가 있는 거죠?”
테페르는 마도의 길 끝에서 혼란을 느낀 듯했다.
지금 그 답을 해줄 수는 있지만.
나는 대답을 않고 그냥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쪽에서 임프들에게 둘러싸인 채 버둥거리고 있는 나르미를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했으니까.
“태오야! 임프들이 잔뜩 있어! 바글바글해!”
━잔말 말고 어서 이 도르도르에게 그 솜사탕을 더 내놓는 것입니닷…!
“얘는 솜사탕이 아니라 잉잉이야!”
━잉잉야잉.
* * *
결과적으로 빅 리버에 머물렀던 시간은 이틀. 그 동안 꽤 많은 일이 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전부 잘 해결됐다.
도시를 떠나려고 하는 우리들에게 마탑의 관계자들은 못내 아쉬운 감정을 표했다. 며칠은 더 머물러도 되지 않겠냐고 물었다만, 우리들의 여정은 사실 시간이 촉박하다.
그래도 그들의 융숭한 대접 덕분에 체력도 물자도 풍족하게 회복할 수가 있었다.
“산도라까지 향하는 최신지도와 통행권을 받았어. 최근에 도적과 마물들 때문에 옆으로 길을 하나 더 냈다고 하더라구.”
팔락, 팔락.
지도를 흔드는 스텔라를 보며 나는 그러려니 했다.
그렇게 우리는 히포그리프 마차를 타고 다시금 여정에 올랐다. 강을 따라 기나긴 상류쪽으로 향하고 있으니 어딘가 오싹한 한기가 감도는 게 느껴진다.
그 때문인지 우리들 모두 창문 바깥을 바라보게 되었다. 뜨거운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서늘하게 느껴지는 한기의 근원. 그것을 바라보자 현실감이 느껴지질 않는 부분이 있었다.
그때 스텔라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태오 군. 저건 대체 언제 녹는 거야?”
“…글쎄요.”
스텔라는 얼어붙은 폭포와 강의 상류를 바라보며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임프들의 헹가래에 물에 빠졌던 내가 강물을 모조리 얼렸던 탓에 이 상류 부근은 때 아닌 겨울을 맞이하고 있었다.
“…저게 대마법이구나. 강물에 빠졌다고 강을 얼려버리는 짓은 태오 군이 아니면 아무도 안 할 거야.”
“위력 제어가 부족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전력을 다 한다는 것이 그만…. 제 생각에는, 그래도 햇볕이 쨍쨍하니 한 이틀 정도 지나면 다 녹지 않을까 싶네요.”
6위계의 대마법 ‘절대영도 빙결지대’는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위력이 높았다.
인간을 상대로 하는 마법이 아니었기 때문에 내 머릿속의 리미트가 해제되었기 때문이겠지.
쩌적, 쩌적.
뙤약볕 아래 꽝꽝 얼어붙은 얼음을 보며 나는 역시 대마법은 인간을 상대로 쓸 것이 안 된다는 걸 새삼스레 느끼게 되었다.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아닌.
세상을 상대하는 마법.
그것이 대마법이니까.
대마법사는 세상을 대적하는 자다.
10위계의 마왕은 말할 것도 없겠지.
“아기인가….”
“태오야, 아기가 어쨌다고?”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여러모로 머릿속에 떠도는 키워드를 차분히 정리했다. 생각할 시간은 많고 갈 길은 멀다. 당장 결론을 내리는 건 어리석은 일.
그렇게 우리들의 마차는 산도라를 향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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