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300)
EP.301)# 2
301 – 집 # 2
옷장 뒤의 그림을 매만져 본다.
새와 구름 해와 달.
꽃과 나비 그리고 손을 잡은 여자와 작은 아이. 낯익은 그림들이다. 마치 어린 시절에 그렸던 스케치북을 들여다본 것처럼 낯이 익은….
아니, 정확한 비유겠지. 이것은 내가 어린 시절에 그렸던 그림들이니까.
내가 아직 훨씬 더 작고 어린 나이였을 때, 나는 종종 집안 구석구석에 이런 낙서를 하곤 했었다.
그래, 어린 시절의 나는 이것저것 만들거나 그리기를 좋아했었지. 집 안에서만 지내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런 것 정도뿐이었으니까.
━나무야? 잘 그렸네.
아니.
무언가 잔뜩 그린 후 받았던 칭찬이 사실 더 좋았던 것 같다.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커다란 손바닥이 머리를 긁어주는 것….
슥.
나는 낡은 오두막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한층 높아지는 시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아 손바닥까지 바닥에 가져다 댄다.
“역시.”
늑대처럼 4족 보행을 하게 되니 낮아진 시야에 더욱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를테면 낡은 테이블 아래에 그려져 있는 수많은 낙서라든가.
다만 기이한 것은 이렇게 낙서를 하는 습관이 본디 나였던 ‘이성음’의 기억이었다는 점이다.
옷장 뒤에 숨어 낙서를 했던 것도 쓰다듬어지던 것도 모두 나 ‘이성음’의 기억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어째서….
“태오 군, 아까부터 뭘 하는 거야?”
그때 내 모습을 한참 지켜보고 있었던 스텔라가 질문을 해왔다.
십 분 정도 오두막을 이리저리 살피는 날 향해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것이니, 제법 인내심 깊게 기다리고 있었다고 해도 좋으리라.
그녀에게 “어렸을 적 내가 살았던 집 같다.”라 사실대로 말해도 좋은지 어떤지 가늠하고 있을 쯤. 나의 눈에는 오두막을 빙빙 둘러싸고 있는 늑대무리가 보였다.
기이익.
일단 오두막 바깥으로 나가서 늑대들을 향해 말을 걸어보기로 한다.
“이 집은 대체 뭐지? 여기 원래 살던 사람들을 알아?”
내 물음에 늑대들이 서로의 얼굴을 보며 무어라 숙덕거렸다. 내 귀에도 들리지 않는 것을 보니 엄청나게 작은, 늑대들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은어 같은 게 아닐까.
그러다가 바닥에 배를 깔고 여유롭게 엎드려 있었던 거대 늑대 쿠빌라이가 슬그머니 눈을 뜨고 말했다.
━나는 그곳에 누가 살고 있었는지 안다.
“그게 누군지 말해줄 수 있어?”
━하지만 네게 말해줄 의무는 없지. 앙갈라 님을 뵙고 왔다 하던데? 그분을 뵙고도 멀쩡히 살아 돌아왔음에는 무언가 이유가 있을 터.
스륵.
늑대가 거대한 몸체를 일으킨다.
━내게 그 이유를 보여 봐라.
놈의 얼굴은 늑대보다는 악어처럼 주둥이가 길었다. 그 주둥이가 송곳니를 드러냈을 때 나는 녀석이 뭘 원하는 건지 알 수가 있었다.
굳이 그러지 않더라도 옆에서 스텔라가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으니까.
“뭐야, 지금. 싸우려는 거야? 갑자기? 어째서?”
다만 그녀에게 설명해줄 시간이 없었다.
거대한 늑대의 앞발이 나를 향해 쇄도해 오고 있었으니까. 그건 마치 부실한 건축 현장에서 떨어지는 철골처럼 육중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요정의 발!
나는 몸을 뒤로 뛰어 녀석의 공격을 피했다.
쿠우우웅-!
방금까지 내가 서 있던 자리에 앞발이 떨어지자 대지가 울린다. 땅이 뒤흔들린다는 것이 결코 과장이 아닌 것처럼 뒤흔들리는 것이다.
“태오 군, 뭔지는 모르겠지만 싸워야 하는 거지?”
스륵, 기기기긱.
오두막의 지붕까지 풀쩍 뛰어오른 스텔라가 어느덧 활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엘프 특유의 예리한 감과 경험이 상황을 파악한 것이겠지.
“끝나고 나면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을 좀 해 줘…!”
“알겠습니다!”
━가르르르-!
그때 사방에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늑대 무리가 덤벼들었다. 족히 십 수마리는 넘을 것 같은 놈들의 공격에 나는 마나쉴드를 켜고 방호에 집중해야했다.
카각, 가가각-.
쉴드를 공격하는 놈들의 이빨과 발톱. 그 외에도 내 빈틈을 노리는 늑대들이 잔뜩 있다.
거대한 늑대 쿠빌라이가 말한다.
━부하를 쓴다고 비겁하다 하지는 않겠지? 쓸 수 있는 건 모조리 쓴다. 다룰 수 있는 것은 모조리 다룬다. 생존이란 그런 것이니까.
“생존이란 말이지.”
생존이라는 말에 나 역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 또한 살아남기 위해 온갖 구차하고 비굴한 일을 전부 다 했었다.
목숨을 부지한다는 건 때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니까.
━요정은 좋다. 특히 님프는 자연의 기를 잔뜩 담고 있지. 잡아먹는데 성공한다면 나의 술법도 몇 갑절 이상 증가할 수 있을 터.
“네 스승은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된다는데. 보아하니 실력 차이가 많이 나는 모양이지?”
━이 놈! 떠볼 생각하지 마라!
크아아아-!
커다란 입을 벌리고 나를 향해 덤벼드는 쿠빌라이.
까각, 가가각-!
비록 그 흉흉한 이빨이 나의 마나 쉴드를 뚫지는 못했다만, 녀석의 목구멍 깊은 안쪽에서 느껴지는 강대한 기에 나의 머리가 쭈뼛 솟아나는 듯했다.
━늑대의 불꽃…!
화아아아.
곧 녀석의 목구멍으로부터 뜨거운 불길이 치솟았다. 늑대 크기가 오거처럼 큰 것도 적응이 되질 않는데 입에서 불까지 내뿜는다니.
괜히 장벽 너머를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게 아니구만.
쨍그랑.
깨져가는 마나 쉴드가 늘어간다. 이대로 있다간 모든 방호를 잃고 까맣게 그을려 늑대의 식사거리가 될지 모르는 일.
이 장소를 탈출하기 위해 침착한 사고를 발동시키며 다음 영창을 준비할 즈음이었다.
쇄애액-!
무언가 커다란 것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드는 소리가 들린다. 그것은 이내 늑대 쿠빌라이의 왼쪽 눈동자에 꽂혔다.
━구아악-!
“태오 군, 일단 도망쳐! 불 뿜는 늑대는 처음 보지만, 위험한 놈 같으니까!”
스텔라가 나를 위해 화살을 갈겨준 것. 덕분에 잠깐의 틈이 생긴 나는 준족의 마법 ‘요정의 발’을 통해 거대 늑대로부터 거리를 벌릴 수 있었다.
━그으으, 내, 내 눈…! 용서치 않겠다…!
쿠빌라이의 갈색 털빛이 점점 붉게 물든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좋은 징조는 아닌 것 같다. 이 세상에서 붉은 빛은 보통 불길함을 상징하니까.
놈이 좋지 못한 뭔가를 하기 전에 얼른 쓰러트리는 것이 좋겠지.
중앙 숲의 주인인 오거 도르도르와 비슷한 강자니. 6위계 이상의 대마법을 사용해 굴복시키는 게 옳을 터.
━큰 마법은 네 목숨을 갉아먹을 것이다.
그때 내 머리에 지난 밤 앙갈라와 이야기했던 것이 떠올랐다.
커다란 마법을 사용할 경우 나의 목숨이 깎일 것이라 경고했던 말. 그래서 잠깐의 망설임을 느꼈을 즘이었다.
“태오 군, 조심해!”
스텔라의 외침과 함께 무언가 강렬한 것이 나의 얼굴에 격돌했다.
━야수 강권!
쿵!
눈앞으로 번개가 튄 것처럼 빛이 번쩍하였다.
내 몸이 뒤로 붕 떠오르는 것 같더니 그 뒤에 이어지는 강렬한 충격에 나는 가슴에 담아두고 있었던 모든 숨결을 토해내야만 했다.
“…커헉!”
숨이 잘 쉬어지질 않는다.
횡격막이 폐부를 짓누르고 있는 건가? 《침착한 사고》가 발동하는 것이 느껴지고 있음에도 머리는 쿨러가 고장 난 기계처럼 뜨겁게 과열된다.
━지금부터 나의 모든 힘과 속도는 한 단계씩 상승 우화한다.
그런 나의 눈에는 가느다란 몸을 가진 붉은 털 결이 보였다. 인간의 모습을 닮은 늑대. 사람과 짐승의 모습을 어설프게 합쳐 놓으면 딱 저것과 같을까.
그래, 순간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아서 어울릴 표현을 못 찾았었는데 저건 늑대인간. 꼭 늑대인간과 닮았다.
━자, 앙갈라 님께서 널 내게 보내셨을 이유가 있을 터. 이대로 당하고 있을 건가, 기묘한 마법사? 네 실력은 이게 끝이 아닐 텐데?
놈은 자신의 두 팔을 펼쳐 보이며 여유를 부리기까지 했다. 나를 도발하는 것이겠지. 물론 그것에 발끈할 만큼 나는 어리석지 않다.
오히려 놈의 여유는 내가 호흡을 고르고 기세를 다지는 것에 도움이 됐다.
거대한 지네 앙갈라도 그랬고 이 녀석도 그렇고. 크기가 커다란 짐승들이란 자신보다 한참 작은 상대를 깔보는 오만이 기본적인 구성요소로 자리 잡은 건지.
후-.
덕분에 얼추 호흡을 갈무리한 나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몸을 추스를 수가 있었다.
“쿨럭, …영창전개.”
온몸의 핏줄과 마력이 흐르는 회로들이 과열되는 것이 느껴진다.
몸 여기저기 화끈거리고 욱신거리는 것은 늑대의 주먹을 허락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대마법을 사용하기 위한 반동이 내 생명을 갉아먹는 건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방금은 잠깐 마음 속 여러 감정들이 뒤섞여 결단을 내리지 못했을 뿐. 이런 곳에서 죽거나 나자빠지면 지금까지의 모든 시간과 일들이 헛수고가 될 터.
그럴 바에야 수명이 깎이는 게 낫다.
그런 각오를 다졌을 때였다.
부글, 부글.
나의 피부 한 장 아래에서 피와 마력이 강하게 들끓는 것이 느껴졌다. 동시에 찬 물에 내던져졌던 사람처럼 나의 몸이 와들와들 떨렸다.
내가 목숨을 잃을 각오, 수명을 잃을 각오를 다진 것으로 몸이 시작해버리고 만 것이다.
자가포식을.
나의 세포들이 스스로를 잡아먹어 더욱 커다란 열과 마력을 내뿜는 게 생생히 느껴진다.
건강이 뭉텅 깎여나가는 감각. 동시에 차오르는 전능감.
이 동행할 수 없는 두 감각 사이에서, 나는 지금이라면 예전에 보았던 그것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떠올리는 것은 일점의 창, 아니 탄.
마탄.
7위계.
“타흘룸.”
마침내 짧은 영창과 함께 세상을 지울 초고온의 빛줄기가 나의 손가락에서 뿜어졌다. 그것은 일종의 죽음의 광선처럼 날아가 늑대인간의 몸통을 꿰뚫는다.
━……!!!!
녀석은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입만을 커다랗게 벌렸다.
화아아아-!
동시에 후폭풍으로 불어 닥친 열감이 나의 얼굴을 뜨겁게 데운다.
오랫동안 운동장을 달린 사람처럼 눈앞의 시야가 흐릿하고, 온몸의 관절이 삐걱삐걱, 아까 쿠빌라이에게 맞았던 상처가 더욱 욱신거리기 시작했다만.
나는 쓰러져 있는 늑대에게로 멈추지 않고 다가가 녀석의 머리에 손가락을 겨눴다.
“한 방은 더 쏠 수 있어.”
━…내가 졌다.
* * *
쿠빌라이는 치명상을 입었다.
그의 배는 초고온의 광선에 꿰뚫려 마치 용접을 당한 것처럼 지져져 있었다. 내가 했지만 보고 믿겨지지 않는 놀라운 위력이다.
이것이 7위계인가.
이야기를 들어야 했기에 죽일 생각으로 마법을 내질렀던 건 아닌데. 생각했던 것보다 위력이 훨씬 강했다. 이대로 있다간 상처로 죽을 것 같잖아.
━윽, 지독한 상처로구나. 불기둥에, 꿰뚫린 것 같다.
늑대인간 쿠빌라이는 바닥에 가부좌를 틀었다. 동시에 그 굵고 긴 손가락이 기묘한 묘리를 담은 것처럼 인들을 맺는다.
그 괴상한 손동작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내 머릿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기분이 느껴졌다.
내가 이러한 것을 어디서 봤더라.
갑자기 느껴지기 시작하는 기시감.
다만 생각에 잠겨 있을 수만도 없었던 것은 다음 장면 때문이었다.
━Yo’rrr….
늑대가 웅얼웅얼 주문 같은 것을 읊기 시작하자 그의 몸에 가득했던 상처가 슬슬 아물어 가는 게 눈에 보일 정도가 되었던 것.
그 기묘한 상황에 나도 스텔라도 서로 눈을 마주친 후에 눈을 깜빡일 뿐이었다. 그러다가 스텔라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장벽 너머에서 놀랄 만한 일을 잔뜩 봐서, 이젠 웬만한 걸로는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었는데. 이게 대체 뭔지를 모르겠네.”
“저도 모르겠습니다. 상처가 회복되고 있네요. 무슨, 자가치유 마법 같은 건 아닐지….”
쿠빌라이가 입을 연다.
━마법이라니. 그런 사악한 이계의 것과 비교하지 마라. 이것은 더욱 고상하고 자연친화적인 선술이니까. 마법처럼 뒤따르는 부작용도 없지.
부작용이 없다니.
약 파는 사기꾼 같은 이야기네.
진짜인가?
늑대와 지네가 사용했던 선술이라는 것에 흥미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다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쪽보다 오두막의 주인에 대한 이야기겠지.
“그래서 쿠빌라이, 저 오두막에 대해 이야기해줄 수 있어?”
━사실 나도 잘은 모른다. 하지만 오두막에 대해 알고 있을 만한 분은 알고 있지. 따라오도록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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