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462)
EP.463)골탕의 대축제! # 4
외전 – 사탕과 골탕의 대축제! # 4
앙그마르 왕궁의 납골당.
화려한 대리석 건물로 정갈하게 지어져서 꽤 운치가 있었지만.
솔직히 죽음을 꺼려하는 사람의 특성상 찾아가고 싶은 곳은 아니었기에 발걸음이 뜸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왕궁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아이라를 보조했던 나라고 해도 납골당에 대해서는 그저 ‘그냥 죽은 왕실 가문의 뼈를 안치해 놓은 곳입니다. 왕궁의 고즈넉하고 조용한 구석에 지어져 있어요.’라는 설명 정도만 할 수 있을 뿐.
그곳에 어떠한 비밀이 있고 또 어떠한 비밀문이 설치되어 있는 건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납골당에 모두가 알지 못하는 비밀문이 존재한다는 것을 미르나가 발견한 모양이었다.
“여기에요.”
미르나가 가리킨 곳은 납골당의 정 중앙.
꼭짓점이 여섯 개인 별이 그려져 있는 바닥이었다.
내게는 특이한 별이 그려져 있을 뿐 아무 이상 없는 대리석바닥처럼 보이지만, 그걸 본 나르미가 “호.”하고 흥미로운 눈빛을 띄었다.
“이거 다비드의 별이지? 육망성은 시초자 다비드의 상징이잖아.”
무릎을 꿇고는 손바닥을 바닥에 가져다대는 나르미.
바닥을 텅텅 두드려보거나 한다.
통, 통-.
“이 바닥 너머, 확실히 공간이 비어있네. 언니 말대로 입구일 확률이 있겠어. 혹시 이 납골당 근처의 건축 도면 같은 건 살펴봤어?”
나르미의 물음에 미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우리 앞에 얇은 종이 몇장을 촤르르 풀어 바닥에 늘어놓는다.
“여기 보고서를 보면 알겠지만. 납골당의 바닥에는 단단한 암반이 있어서 지하시설을 만들지 못한다고 적혀 있어. 그렇다고 수도시설이 통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할 리 없는 지하.
그것을 미르나가 발견한 모양이었다. 미르나의 날카로운 영적 감각이 실력을 발휘한 것이겠지. 요즘 느낀 것이지만 나는 모험하는 걸 꽤 좋아했기 때문에 제법 흥미가 생겼다.
있어선 안 될 지하시설이라니.
흥미가 넘친다.
모두들 그랬던 모양이다.
“그럼 얼른 바닥을 부숴보는 것입니닷…! 저 펀치노이의 꿀주먹 한 방이면, 이런 대리석 바닥 정도야 벌꿀 비스킷처럼 부서지는 것입니닷…!”
펀치노이가 동그랗게 쥔 주먹을 높이 들어 올렸다. 하지만 미르나가 그것을 황급히 막아 세운다.
“펀치노이, 잠깐만요. 납골당을 그렇게 함부로 부숴선 안 돼요.”
“어째서 그런 것입니까?”
“이곳은 망자들의 안식처. 오늘처럼 음기가 가장 짙어지는 망자의 날에 망자들의 안식처를 함부로 훼손했다가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요.”
고대의 피라미드를 함부로 도굴했다가 왕가의 저주를 받았다는 모험가들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이곳도 모양만 다를 뿐이지 고대 왕들의 무덤이라는 면에서는 그 피라미드와 다를 바가 없었다. 왕들의 안식을 방해하면 저주 같은 것에 걸려도 이상하지 않지.
“그럼 저 펀치노이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죽은 왕들이 살아있는 펀치노이의 주먹을 막다니…! 몹시도 굴욕적인 것입니닷…!”
몹시도 분한 느낌으로 부들부들 떠는 펀치노이에게 미르나가 간단히 답한다.
“일단 제사를 지내야 해요. 사과와 배 등을 준비하고, 망자들이 흠연할 수 있는 향초와 향불과 술도 가져와야 하구요. 또─.”
“아이, 참. 언니. 지금 언제 그런 거 일일이 하고 있어? 요즘은 동부 종가의 가문들이나 그렇게 제사지내지! 그냥 태오가 부수자!”
나르미의 이야기에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향한다. 갑자기 나는 왜? 내가 퍽 얼떨떨해하고 있자니 나르미가 설명을 보충한다.
“태오는 왕가의 후손이잖아! 왕가의 후손이면 납골당 바닥 좀 부순다고 다들 쩨쩨하게 저주 내리거나 하지 않겠지. 안 그래?”
미르나는 말도 안 된다는 것처럼 “망자들에게 그런 억지가 통용 될 리 없잖니.”라고 말했다만 나는 나르미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선조님들이 후손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겠지. 그래서 결국 내가 이 육망성 바닥을 부수기로 했다. 미르나는 무언가 걱정스러운 듯이 한숨을 내쉬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연기만 두르죠.”
긴 장죽의 파이프를 꺼낸 미르나. 그 끝의 구멍에 난생 처음 보는 마른 약초들을 털어 넣은 뒤 불을 붙이고는 한 모금 빨아들인다.
미르나가 흡연하는 건 또 처음 본다고 생각해 신기해하고 있을 즈음. 그녀는 작은 입술로 빨아들인 연기를 우리에게 후-하고 내뱉었다.
화아아아아.
곧 상쾌한 애플민트향기가 우리를 감싼다.
“잡귀들을 쫓아주는 연기 결계에요. 이게 있으면 어지간한 일이나 저주는 피할 수 있겠죠. 그렇다고 무적은 아니니까 모두들 조심해야 해요.”
“그럼, 부숴보도록 하겠습니다.”
매끈한 대리석 바닥에 손을 가져다댄 나는 가볍게 읊었다.
“붕괴!”
쩌적, 우르르르르.
바닥이 생각했던 것보다 쉽사리 무너졌다. 곧 우리는 아래로 향해 있는 계단과 통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스산한 공기가 감도는 지하계단의 통로라.
미르나의 추측과 의견이 맞았어.
스륵.
품에서 푹신푹신한 것을 꺼내 코를 가리는 미르나.
“음기가 너무 강해서 숨쉬기 거북할 정도군요. 제가 느낀 게 맞았어요.”
━잉잉야잉.
미르나의 손수건 대용이 된 클라우드링 잉잉이는 귀찮은 듯이 몸을 떨었다.
* * *
우리는 횃불이나 마법으로 빛을 밝힌 채 지하를 걸었다.
지하에는 생각보다 많은 해골들이 잔뜩 있어서 굉장히 으스스했다. 그 규모가 장례문화에 어두운 내가 보더라도 상당히 크다.
미르나가 평가했다.
“앙그마르의 궁전 부지와 버금갈 정도의 크기네요. 깊은 지하에 이런 무덤이 있었을 줄이야. 이건, 납골당이 아니라 납골궁(納骨宮)이라 이름 붙여도 되겠어요.”
망자들의 왕국인가. 충분히 붙여도 될 법한 이름이다. 한 편으로는 내가 아무렇지 않게 살고 있었던 궁전의 아래에 이런 대규모 무덤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으스스하네. 마력 농도가 굉장히 짙다. 여기서는 자그마한 불꽃 마법이라도 다이너마이트처럼 큰 폭발을 일으킬 수 있을 테니 주의해야겠지.
내가 파르르 떨고 있으려니 모르모르가 신이 난 것처럼 소리친다.
“아앗-! 여기에 보석들이 잔뜩 있는 것이야…!”
“저 펀치노이도 귀중해 보이는 물건들을 잔뜩 찾은 것입니닷…!”
“가르르르, 가르르르…!”
님프와 임프들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보석이나 금화 따위를 주워가며 기뻐했다.
이 지하의 납골궁에는 정체 모를 뼈들과 함께 묻힌 귀중품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앙그마르 왕국의 초기 때만 하더라도 이렇게 망자와 함께 재산을 묻는 것이 전통이었기 때문이라고 그랬다.
그렇게 미르나의 뒤를 따라 한참 으스스한 통로를 걷던 우리는 마침내 크리스탈로 만들어져 있는 석관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많은 관들을 봤지만, 이것만큼 화려하고 멋진 관은 본 적이 없네요. 분명 가장 중요한 사람의 관이겠죠.”
미르나의 이야기에 우리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이것이 시초자 다비드의 무덤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높은 사람의 무덤이고, 어딘가 화려하면서도 으스스한 기운이 뿜어지고 있다는 것은 확실히 알 것 같았다.
곧 품에서 무언가를 뒤적뒤적 꺼내는 미르나.
“이 관만 정화하고 저희도 얼른 올라가서 무도회에 참가하도록 하죠. 큰 것을 처리하면, 작은 것들은 알아서 해결되기 마련이니까.”
그녀가 잘랑잘랑 소리 나는 방울을 꺼내들었을 때였다.
━크르릉…!
━크르릉…!
미르나의 품에 찰싹 달라붙어있던 클라우드링 잉잉이가 자신의 굼실굼실한 털을 곤두세우며 으르렁거렸다. 동시에 내 안의 종이거미 바엘도 위협하듯 앞다리를 세우는 게 느껴졌다.
드르르륵.
내가 의아함을 느끼던 그 순간, 크리스탈로 만들어진 듯한 석관의 뚜껑이 서서히 열린다. 그 모습을 바라본 나르미가 묻는다.
“태오야, 네가 지금 마법으로 뭐 하고 있는 거야? 염동력?”
“제가 아닌데요.”
손을 와락 드는 모르모르.
“유령이 깨어나는 모양인 것이야…!”
우리는 이미 유령과 해골들을 잔뜩 봐 왔기 때문에 이 상황에 놀랄 필요도 없었다.
다만 모든 뚜껑이 열리고 펑-소리가 났을 때.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유령도 아니고 해골도 아닌, 그저 텅 빈 공허 함 뿐이었다.
“관이 비었잖아?”
나르미가 의아함으로 고개를 갸웃했을 때였다.
우리들 주변에 하나 둘, 푸른 불꽃이 번뜩이기 시작했다. 문자 그대로의 푸른 불꽃이었다. 도깨비불 같은 것들이 점점 늘어나는가 싶더니 우리 주변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태오야, 이건 무슨 마법이야?”
나르미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제가 한 것 아닌데요.”
파아아아앗-!!!
하나 둘 늘어가던 불꽃들은 마침내 근처에 놓여 있는 뼈다귀 무리에 하나둘 뛰어들기 시작했다. 달그락, 달그락. 움직이기 시작하는 수많은 해골 무리를 보며 경악하는 미르나.
“무언가, 무언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려고 하고 있어요!”
미르나의 당황에 나는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 손바닥을 펼쳤다. 하지만 이 납골궁 전역에 감돌고 있는 짙은 마력에 손을 쥐고 영창을 멈춘다.
여기서 큰 마법을 사용하면, 전부 날아가고 말 거야.
그런 망설임을 느꼈던 찰나였다.
━그아아아.
━기에에에.
푸른 불꽃이 깃든 해골들이 몸을 움직이더니 하나 둘 납골궁의 바깥, 지상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모두 당황하고 말았다!
* * *
지상은 어느덧 한껏 어두워져 있었다.
달조차 떠오르지 않는 망자의 날.
그 음산한 기운 때문인지 바닥에는 기묘한 안개가 감돌고 있다. 사방에서 호박 등이 번쩍거리고 여기저기 떠들썩하게 구는 사람들과 악기소리가 울렸다.
━여기도 츄파카브라. 저기도 츄파카브라. 왜 리오네스 사람들은 망자의 날만 되면 전부 다 츄파카브라 분장만 하는 거냐?
━나도 몰라. 그러는 너도 츄파카브라잖아.
무도회가 시작된 것이리라. 동시에 누군가의 비명이 귓가에 들린다.
━히에엑…! 해골이 있는 것이다…!
임프나 님프의 비명? 저쪽 무도회장에서 들려오고 있다. 우리는 황급히 무도회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있다.
그런 우리들의 시선을 가장 사로잡은 것은 멋들어진 망토나 낡은 관 따위를 뒤집어쓰고 있는 해골들이다.
━분장이 사실적이네. 매년 츄파카브라만 보다가 이런 분장 보니까 생생하다 야.
━그렇긴 한데. 이건 분장이 아니라 진짜 해골 아냐?
━설마.
온갖 다양한 괴물 분장이 넘쳐나는 무도회장에, 해골들의 존재는 익숙하게 녹아들어 있었다. 다들 자신들 사이에 진짜 망자들이 섞여있다는 걸 눈치 채지 못한듯하다.
미르나가 말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 저도 모르겠어요. 해코지를 하려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그래도 무도회를 중지하는 게 옳지 않을까 싶어요.”
다만, 나르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더 혼란스러울 수도 있잖아. 봐봐. 아직,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고 있어. 잠깐만 더 지켜보자.”
나르미의 빨간 눈동자에는 사람들과 함께 섞여서 디저트를 먹거나 임프들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해골들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다.
그때였다.
━크르릉.
“뭐야, 이건 또.”
내게 제법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머리에 동물 귀를 달고 츄파카브라로 분장한 엘가가 사람들 틈에서 기묘한 것과 마주하고 있는 게 보였다.
“이건 또 뭐야.”
엘가의 앞을 막고 있는 것은 뼈다귀였다. 네 발로 땅을 딛고 있는 뼈다귀. 강아지나 고양이처럼 작고, 모양도 네 발 짐승의 뼈 같았다.
“이거, 아무리 봐도 진짜 언데드잖아. 미르나 그 녀석이 또 무슨 사고 친 거 아냐? 언데드들은 으스스해서 싫다니까.”
엘가가 뾰족한 구둣발을 무릎까지 들어올려, 그대로 동물 해골의 머리를 밟으려고 하던 때였다.
━크르릉.
녀석이 엘가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더니 발목을 깨문다. 그에 엘가의 발이 우뚝 멈춘다. 무언가 생각난 게 있는 것처럼 엘가가 작게 말했다.
“…내 왼발을 물다니. 혹시 야옹이?”
━야오옹.
“이 울음소리는 진짜 야옹이잖아!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엘가는 뼈 고양이를 안아들었다. 뼈 고양이는 친근한 주인에게 동물들이 그러하듯 엘가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문지르며 꼬리를 붕붕 흔든다.
━야오옹.
“진짜 야옹이구나! 레오노이, 이거 봐봐! 야옹이야! 야옹이가 누구냐면, 엄마가 옛날에 길렀던 작은 사자인데….”
“갸르르.”
곧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 맛, 칵테일 마는 솜씨는, 아무리 봐도 내 삼촌이랑 똑같은데. 세상에서 이 맛을 내는 사람은 내 삼촌 테일 레오네스 밖에 없어. 하지만 분명 작년에 돌아가셨는데….
━이 기타소리…. 발드…, 내 아버지가 쳐주시던 곡조와 똑같군. 나는 이 곡조를 재현하기 위해 색소폰을 연습했던 건데…. 이봐, 지금 대체 누가 기타를 연주하고 있는 거지?
죽은 자들이 지상으로 돌아오고 있다.
그것을 사람들이 하나 둘 깨달은 모양이었다. 큰 혼란이 벌어지지 않을까 생각하여 긴장하고 있을 즈음-.
━Bul’s Jaack
기묘한 사어가 내 귓가에 울린다. 이런 특이한 사어를 들었던 적은 내 생에 있어서 몇 번 없었다. 이런 말을 하는 남자도.
그것을 미르나도 들었던 모양이다.
방금까지만 해도 긴장어린 시선으로 주변을 살피고 있던 미르나는, 마치 무언가에 이끌리듯 어딘가로 힘차게 뛰었다. 나 역시 그런 미르나의 뒤를 따라 달렸다.
━Do.
그렇게 한참 달린 미르나의 앞에는 키가 멀대처럼 큰 남자가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의 틈 사이에 있었다.
검은 로브를 입고 있었고 드러난 부분은 앙상한 뼈밖에 남지 않았지만 무척 자세가 곧다. 그 기묘한 존재감 때문인지 시끄럽게 구는 사람들도 악기소리도 모두 흐릿하게 번지는 느낌이었다.
“당신은….”
그 푸른 안광과 마주한 미르나의 눈동자가 그 표정이 천천히 구겨지는가 싶더니. 마침내 은구슬 같은 눈물들을 와락 쏟아내기 시작했다.
“정말, 가주가 된 뒤로는 안 울려고 했는데.”
소매로 슥슥 눈물을 닦는 미르나.
“…가주는 함부로 울거나 해서는 안 된다고 그랬는데.”
하지만 좀처럼 그녀의 눈물은 멈출 생각을 안 한다.
마치 터진 둑처럼 펑펑 우는 그런 그녀를 향해 남자는 천천히 다가와 앙상한 손으로 그 은빛 머리를 슥 쓰다듬는다.
━지금까지. 열심히 했구나, 미르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