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461)
EP.462)골탕의 대축제! # 3
외전 – 사탕과 골탕의 대축제! # 3
우리는 궁정의 정원에서도 가장 양지가 바른 나무 아래로 향했다.
높은 상수리나무 밑쪽을 발로 슥슥 문지르더니 나르미가 말했다.
“여기 이쪽에 한 명 잠들어 있네! 그런데 작은 묘비도 하나 없어서, 이래서야 누가 잠들어 있는지 구분도 안 되잖아. 일단 파보자!”
“가르르르, 가르르르르!”
나르미의 명령에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임프 가르가르가 마치 모래사장에 산책 나온 강아지처럼 자신의 두 손으로 땅을 마구 파헤치기 시작했다.
파스슥, 파스슥.
맨 손으로 삽시간에 땅을 그 솜씨는 인간이라기보다는 짐승에 더 가깝다.
그 신묘한 기술에 한참 감탄하고 있으려니 어느덧 구덩이가 깊게 파이고 그 안에서 무언가 달그락거리는 것이 가르가르의 손에 부딪힌다.
“가르르르, 가르르르…!”
“금방 팠네!”
나르미는 가르가르가 파낸 구덩이 안에서 자그마한 항아리를 하나 주워들었다.
크기를 설명하자면 메론 정도 되는 항아리로, 색깔이 황토빛으로 탁하고 먼지나 흙이 잔뜩 묻어 있었다.
엄청 낡았네.
고대의 골동품 같은 느낌.
나르미가 항아리를 흔들어본다.
달그락, 달그락.
“음, 이 정도면 한 삼 백년 정도 됐으려나? 오래도 방치되어 있었네. 이런 걸 오래 내버려두면 궁정에 유령이 나타날 거야.”
“궁정에 유령이 나타난다구요?”
“그래! 사람이 죽었을 때 영은 흩어지지만 혼은 그릇에 남거든. 그릇이라는 건 육신이나 뼈를 말하는 거고. 유령은 그 혼이 여러 사념과 얽혀 생기는 거야.”
예전부터 느끼는 것이지만 나르미와 미르나의 강령술 강의는 이해하는 게 쉽지 않았다. 마법에 대한 것은 척척 알아냈는데 말이다.
내가 마법에는 천부적 재능이 있지만 강령술에는 딱히 재능이 없어서 그런 것이라고 그러던 것 같다.
아무튼 내가 이해한 것은 이 정도다.
사람의 육신은 매우 중요한 것으로.
죽은 뒤 움직이지 못하게 된 육신이라도 그 중요함은 달라지질 않아서, 잘 관리해주지 않으면 까다로운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 정도?
간단한 예시로는 시체가 살아서 움직이거나 유령이 나올 수 있다고 하는 모양이다.
“강령술도 그 육신에 남은 혼들을 이용하는 것이거든. 진짜 살아난 것은 아니고, 혼이 기억하고 있는 바에 따라 행동하는 인형이라 해도 좋지만.”
“그렇군요. 강령술로 이 유골을 살려봤자, 그게 진짜 이 사람은 아니라는 소리겠네요. 죽은 자는 돌아올 수 없는 것이 절대적 법칙이니까.”
말하자면 혼은 기억이다. 강령술은 그 기억을 담은 그릇을 테이프 삼아서 그 행동 등을 일시적으로 재생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것이 일단 강령술 학계의 주장.
나르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우리 할아버지인 유다스 드레이코 시절에 강령술 연구가 정말 활발했거든. 죽은 사람을 살려내기 위해서. 마왕 솔로몬도 함께 했었고. 근데 실패했어.”
그래, 실패했었지.
죽은 자는 돌아올 수 없다.
그것이 모든 것이 변하는 이 세상의 유일한 규칙. 뛰어난 강령술사였던 유다스도, 10위계에 달했던 마왕도 심지어 광염의 신조차도 죽은 것은 되돌릴 수가 없었다나.
그렇기에 우리는 단 한 번뿐인 삶을, 지금의 순간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그때 나르미가 말했다.
“물론 예외적인 게 하나 있기는 해. 바로 임프들인데. 발란 교수나 스텔라 교수의 말을 들어보면 임프들의 꼬리에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비밀이 있어서─.”
“가르르, 가르르르…!”
나르미가 무어라 설명을 하려 할 때 가르가르가 으르릉거렸다. 정신을 차리자 나르미의 손 안에 들려 있는 유골함이 갑작스레 달그락거리며 요동을 부리고 있었다.
“나르미 님,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거죠…!?”
“오랫동안 정화되지 않은 그릇이라, 폭주하려는 가 봐! 모두 조심해!”
나르미의 외침과 함께 펑-! 무언가 폭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르미 손에 들려 있던 항아리가 깨지고 뿌연 폭발연기와 함께 큰 충격이 내 몸을 화악 감싼다.
파아아아앗-!
“큭!”
나르미가 주의를 주었긴 했으나 생각보다 더 강한 압력에 나는 정신이 조금 붕 뜨는 듯했다. 그렇게 한바탕 불어 닥친 폭풍이 잠깐 잠잠해졌다고 생각할 즈음이었다.
『오랜 봉인 끝에 드디어 풀려났다.』
스스스스.
서서히 걷혀가는 안개 사이로 음산한 목소리가 땅을 기었다.
내 요정안이 빠르게 주변을 파악하자 낡고 녹슨 갑주에 거대한 도끼를 착용한 해골 하나가 붉은 안광을 빛내는 게 보인다. 척 봐도 으스스한 광경이었다.
『못된 앙그마르 놈들…! 이 피의 처형자가 모조리 손 봐 주마…! 죽음도 나의 복수를 막을 수는 없다…!』
뼈만 남은 앙상한 입을 쩍 벌리는 해골 병사. 그 모습을 보며 나르미가 쯧-하고 혀를 찼다.
“못된 혼이 풀려났나보네! 생각보다 강해 보여! 물론, 문제는 없지만. 봉인술…!”
품속에서 가느다란 종이 부적을 꺼낸 나르미가 공중에 부적들을 휙 날린다. 팔락팔락 날아간 부적이 해골의 몸에 착착 달라붙고는 우우웅 기묘한 소리를 내며 빛났다.
『부적술인가. 소용없다…!』
하지만 별로 효과는 없는 듯했다. 해골의 몸에 붙어 있던 부적은 성냥을 갖다 대기라도 한 것처럼 화르륵 불타 잿더미로 흩날린다.
“칫, 역시 봉인술은 언니 쪽이 더 잘하는 모양이야. 이렇게 되면 좀 까다로워지는데 말이야. 물리적으로는 쓰러트려봤자 며칠 내로 또 정화해야 할 거고.”
음─하고 침음하는 나르미.
그때 해골이 푸른 안광을 빛내며 말했다.
『소녀야, 보아하니 너는 드레이코 가의 여식인 모양이로구나.』
“맞아! 나는 나르미 폰 드레이코! 드레이코 가문의 공동 가주야!”
『공동가주?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방에서 느껴져야 할 못된 앙그마르의 기운이 적은 것이 어째선지 궁금하다. 지금 궁정의 왕은 누구지?』
해골의 물음에 우리는 앙그마르 가문이 절멸 직전에 몰렸다는 것과 지금은 타란테라 가문이 왕위에 올랐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이야기를 전부 들은 해골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내가 복수하지 않아도 스스로 몰락했나. 이래서야 복수할 맛도 나지 않지. 거기 있는 작은 앙그마르야, 노력해서 가문을 부흥시키도록 해라. 내가 마음 편히 복수할 수 있도록.』
스스스슥.
기묘한 말을 끝으로 해골은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자리에 남은 것은 몇 조각의 뼈다귀와 오랜 고대의 금화 몇 닢 뿐.
내가 물었다.
“이제 끝난 건가요?”
“아니, 묘비를 만들어줘야지! 그래야 정화 의식이 마무리가 되는 거야. 근데 묘비를 만들려면, 생년월일이나 사망일, 원인, 이름 같은 걸 알아야 해.”
그런데 이 연고 없는 해골의 이름을 우리가 알 리 없다. 생년월일이나 사망일, 사망 원인 또한 알 리가 없다. 그때 내 머릿속에 무언가가 번뜩였다.
“그러고 보면, 자신을 피의 처형자라 하지 않았나요? 특색 있는 별명이니까. 자료를 좀 뒤적이다 보면 나올 것 같은데요. 드레이코 가문과도 좀 관련 있어 보였고.”
“그럼, 도서관으로 가보자!”
나는 나르미와 가르가르를 데리고 왕궁 도서관으로 향했다.
거기서 300년 전 정도의 자료를 조사해본 결과 그 당시의 왕 네토라르 폰 앙그마르에게 약혼자를 빼앗긴 드레이코 가문의 기사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르미가 말했다.
“복수심에 스스로 저주가 되려고 궁정 한 곳에 자신이 죽었을 때 유골을 묻어달라고 한 모양이네. 기묘한 사연이야. 이름을 알아낼 수 있어서 다행이네!”
우리는 발견한 이름과 사망일자를 간단히 나무패에 적은 후에 앙그마르의 궁정의 묘지에 잘 묻어준 뒤 제사를 지내주었다. 이것으로 정화 의식이 한 사이클 끝난다는 모양이다.
“이러면 한 천 년 정도는 또 문제없겠지! 이제 이런 연고 없는 무덤들을 사십 하고도 네 번만 더 정화하면 돼!”
* * *
『짐은 앙그마르의 12대 왕, 천마의 곤데르다. 나 때는 말이야. 왕실 납골당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이렇게 이름 없는 무덤에 서늘히 지내는 것이 낭만이었다 이 말이지.』
“이 녀석, 해골 주제에 너무 말이 많은 것입니닷…! 저 펀치노이는 이제 관심도 없는 역사 공부는 그만하고 싶은 것입니닷…! 빨리 성불이나 하라는 것입니닷…!”
수많은 무덤들을 나와 나르미 둘이서 일일이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놀고 있는 님프나 임프들의 손을 빌리기로 했다.
『그래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니 좋구나. 펀치노이야, 짐이 고안한 절명오의를 알려주마. 그 비전서가 어디에 묻혀 있냐면 왕궁….』
파스스슥.
“아앗-! 어디있는지도 알려주지 않고 성불한 것입니닷…! 님프혐오적인 성불인 것입니닷…! 빨리 다시 살아나서 알려주는 겁니닷…!”
“이 모르모르는 저쪽에 묻혀 있던 유령 공주님에게서 멋진 목걸이를 선물 받은 것이야…!”
망자들의 혼도 님프와 임프들에게는 함부로 굴지 않고 친절해서, 다들 금방금방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고 성불했다.
오랜 과거에는 작은 님프들이 지금보다 더 존중받는 세상이었기 때문이라나. 옛날 사람이라 그런가보다.
덕분에 마흔 곳이 넘어가던 무덤들에도 깔끔하게 정돈된 묘비들을 세울 수 있었다.
『그런가. 무궁할 것 같던 앙그마르의 시대도 저무는가. 그럼 작은 앙그마르야. 네게 이것을 주마. 이것은 내 조부의 인장 반지다. 가문의 상징인 양이 새겨져 있지.』
나도 여러 유령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궁정에 묻혀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앙그마르 왕가의 사람들로, 그들은 마지막 후손이라 할 수 있는 내게 호의적이었으니까.
후손은 조상을 돕고 조상은 후손을 돕고, 이게 벌초하고 성묘하는 느낌인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추석이나 설날에 묘원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이 조금 이해가 된다.
나에게도 조상과 뿌리가 있었구나. 언젠가는 레오노이나 다른 작은 앙그마르들에게 알려줄 수 있도록 역사 공부도 더 해야지.
그런 느낌으로 한창 왁자지껄 하고 있을 때 궁정 이곳저곳에서 닥치는 소란을 느낀 것인지 미르나가 우리를 찾아왔다.
“태오 경이 저를 도와준 건가요?”
“저만 혼자 한 게 아니고, 나르미 아가씨랑 앙그마르 컴퍼니 친구들도 도와줬어요. 이러면 이제 오늘 저녁에 있을 무도회에 미르나 아가씨께서도 참가 할 수 있을까요?”
아직 저녁이라기엔 이른 시간이지만 겨울이 다가오는 지금, 어느새 하늘은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깜깜해지겠지. 실제로 궁정의 시녀들이나 정원사들이 저쪽에 위치한 호박 등불을 하나 둘을 켜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곧 무도회도 시작될 터.
━성문을 열어라! 서부 7연합의 대군주인 디마이드 백작께서 행차하신다…!
━올 해의 리오네스 종친회는 한층 더 시끄럽고 떠들썩 하겠어.
━디마이드 백작님의 따님을 봐. 멋진 동물귀를 달고 계시네. 츄파카브라로 분장한 건가?
실제로 저기 왕성 입구 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리오네스 가문 사람들을 태운 마차가 궁정 안으로 마구마구 들어오고 있는 게 확실했다.
“생각지도 못한 도움에 감동적이네요.”
퍽 감격했다는 얼굴로 눈빛을 글썽이는 미르나. 덕분에 우리들 모두 기분이 좋아졌다.
고을의 큰 행사에 콩쥐를 보내기 위해 집안일을 도와주었던 동물들의 기분이 지금 우리와 같았을까?
왕자님의 무도회에 신데렐라를 보내기 위해 노력했던 요정 대모의 마음이라고 해야하나?
다만.
미르나의 밝은 표정에는 곧 약간의 걱정이 서렸다.
“아니, 아직 할 일이 남아있기는 해요. 납골당 근처에서 큰 왕릉을 하나 발견했는데. 도무지 누구의 묘인지 알 수도 없고 진척이 안 되고 있어서….”
“큰 왕릉요?”
“납골당의 숨겨진 지하에 있더군요. 굉장히 오래된 던전 형식이라, 일단 혼자 들어가 보진 않았어요. 엄청 오래된 곳으로 보이던데….”
그때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르미가 “앗-!”하고 큰 소리를 냈다.
“혹시 그거, 전설의 다비드 왕릉 아닐까? 앙그마르의 시초자 다비드! 지금까지 왕릉이 어디있는 지 발견 안 되었다고 그랬었잖아!”
그 말에 미르나가 “흐음.”하고 팔짱을 낀다. 그렇게 자매들의 이야기가 한참 무르익어갈 때 이 이야기를 들은 임프들이 꼬리를 바르르 떨었다.
“나 모르모르는 시초자 다비드의 왕릉에는 굉장하고 막대한 보물이 묻혀있다고 예전에 주인님께 들었던 기억이 나는 것이야…!”
“저 펀치노이도 고대의 왕 다비드에 대한 전설은 들은 바가 있는 것입니닷…! 어쩌면 앙그마르를 통일한 절정무공의 비급서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 얼른 가보는 것입니닷…!”
우르르르르.
녀석들은 우리가 막을 순간도 없이 납골당으로 허겁지겁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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