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87)
EP.88)동아리 # 7
088 – 모험 동아리 # 7
마르마르가 내게 건넨 책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모험 동아리 5기 활동보고서 : 태오 가스펠 및 프리가 나이트폴 저.」
태오 가스펠?
내 이름인데?
물론 태오라는 이름은 평범한 편이라서 나와 동명이인일 확률을 배제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그 옆에 적힌 프리가 나이트폴은, 내가 기억하기로는 아마….
내가 재빠르게 사고하고 있는 사이 칼리라가 먼지 묻은 표지를 바라보며 답을 말했다.
“프리가 나이트폴, 광염교단 성녀의 이름이군요. 이건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요?”
칼리라 영애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묻자 마르마르가 화들짝 놀라 반응했다.
“성녀님? 동지랑, 성녀님이랑 오래 알아왔다는 사이라는 거야? 역시 동지는 대단하구나! 평범한 사람 같지는 않았는데!”
마르마르의 추측은 나름 일리가 있는 것이었다.
나의 몸의 원래 주인인 ‘태오 가스펠’과 성녀인 프리가가 이곳에서 연관이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
그렇지만 성녀는 입학식의 그날 나를 처음 만나는 것처럼 행동했는데.
하물며 이건 20년 전 기록이잖아.
어떻게 된 거지?
“일단 다른 책들을 더 찾아보죠. 제 이름이 적힌 게 있으면 제게 가져와주세요.”
어쩌면 내가 철창의 노예로 깨어나기 전의 기억들이 여기에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태오 가스펠이라는 이름은 앙그마르 내부에서 어떠한 정보도 없었던 순백의 종이 같은 상태였었는데. 그 미지수에 대한 힌트가 이렇게 머나먼 외국에서 발견 되었을 줄이야.
“동지, 여기에도 동지에 이름이 적혀 있어. T.G. 이거 태오 가스펠이지 않을까?”
“여기도 있네요.”
이 모험 동아리의 방에는 나의 이름이 적힌 책과 문서들이 꽤 있었다.
그것들을 여기서 하나하나 펼치고 읽어보는 것도 좋겠지만 아쉽게도 오늘은 시간이 부족하다.
휘오오오오─.
나는 지하실의 열린 문으로부터 스산한 저녁 공기가 불온하게 불어오고 있는 걸 깨달았다. 오늘 밤을 이런 지하실에서 보내고 싶은 마음은 없다.
“일단, 챙길 수 있는 것만 챙기고 내일 또 오자.”
일단 내 이름과 성녀의 이름이 적힌 책만을 챙기고 이곳에서 빠져나가기로 마음먹었다.
* * *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자 어느덧 해가 너울너울 저물어 곧 저녁이 올 것 같은 시간이었다. 대략 오후 5시 정도 되었으려나.
조금만 더 지하에서 지체했다간 정말 이곳에서 꼼짝없이 하루를 보내야 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폐허에서 하루를 보내는 것만큼 바보 같고 멍청이 같은 일이 또 있을까?
저녁이 되면 환상이 아닌 진짜 거미들이 우글우글하게 나타날 것 같은 폐건물이라니.
“일단 숲 밖으로 벗어나서, 저녁이나 함께 먹죠. 마르마르, 너도 오늘은 혹시 모르니까 숲에서 자지 말고 칼리라 아가씨의 숙소에서 자. 칼리라 아가씨, 괜찮죠?”
“저야 분부대로, 시키는 대로 따라야죠.”
칼리라가 익살스러운 느낌으로 고개를 숙일 때 마르마르는 쯧-하고 혀를 찼다. 칼리라 영애랑 하루 같이 묵는 것이 싫은 모양이다.
나는 그런 마르마르에게 말했다.
“그리고 마르마르. 앞으로는 숲에서 지내지 말고 내가 거처를 정해줄 테니까 거기서 지내도록 해. 환각 풀 같은 거 먹고 살다간 정말 큰일 나겠다.”
“내 집을 떠나라는 소리야? 이제 막 적응하기 시작했는데…. 열심히 내부도 꾸몄고….”
마르마르가 기뻐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아무래도 자신의 시간과 애정을 담았던 베이스캠프가 버려지는 것이 조금 아쉬운 듯했다.
“거기는 이제 우리들의 활동기지로 사용하지 뭐. 주변에 사람도 없고. 조용하고. 비밀기지로 삼기엔 딱 좋으니까.”
“흐응, 그럼 좋아.”
그때서야 고개를 끄덕이는 마르마르.
그런 마르마르의 머리칼에 하얀 실타래 같은 것이 자꾸만 떨어져 내렸다.
“이건 뭔데 이렇게 자꾸 날 괴롭히지?”
마르마르는 끈적거리는 실타래를 이리저리 헤치며 자신의 몸에서 떨어트리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끈끈한 실은 마르마르의 머리칼과 옷을 더욱 엉망으로 만든다.
“자꾸 위에서 떨어지는 것 같아! 거미줄인가? 나한테만 보이는 거 아니지? 이거.”
“나한테도 보이는데. 뭐지?”
슥-.
“아니-.”
무심코 고개를 들어 올렸던 나는 건물의 외벽, 그 위에서 거꾸로 매달린 채 가느다란 앞발로 실타래를 만들어내고 거대한 거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크기는 다 자란 호랑이처럼 커다랗고 무늬도 노란 바탕에 검은 줄무늬가 무섭게 새겨져 있어서 그야말로 호랑이 같은 거미였다.
━크르르릉…!
녀석은 끔찍한 입을 벌려서 맹수처럼 포효했다.
그 모습을 보며 깔깔 웃는 마르마르.
“아직도 환각이 덜 풀렸나 봐! 커다란 거미가 보이네!”
마르마르가 이내 낚시 줄에 걸린 물고기처럼 거미의 앞발을 향해 휙 끌려 올라간다. 덕분에 거미의 앞발에 붙잡혀서 버둥버둥 거리게 됐다.
“환상이 너무 실감나는데? 얘, 봐, 엄청 무섭게 생겼다!”
마치 스크린 너머로 공포영화를 감상하듯 깔깔 웃는 마르마르. 다만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환상이라고?
아까 해독제를 맞는 것으로 환각 현상은 끝난 게 아니었나?
내가 침착하게 사고하는 사이에 내 옆에 있던 칼리라 영애가 자신의 허리춤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길고 가느다란 채찍이다.
“물러나세요, 태오님. 저건 환상이 아닙니다. 진짜 거미에요!”
“진짜 거미요?”
“아마도 호랑거미의 일종 같네요! 독니가 약재로 쓰이는 녀석인데, 저렇게까지 커다란 개체는 저도 처음 봐요!”
환각이 아니라니.
그 말을 들은 것인지 방금까지 깔깔 웃고 있었던 마르마르가 기겁하여 발버둥을 친다.
“살려줘! 나는 환상인 줄 알았는데! 왜 나만-.”
그러나 그런 마르마르는 이내 거미의 앞발에 돌돌 말려서 고치가 되어버리고 만다. 거미에게 붙잡힌 나비 신세가 되어버렸다 이 말이다.
─파이몬-!
파아앙-!
나는 마르마르를 구하기 위해 재빨리 마법을 사출했다. 나의 마법은 산탄총의 총알처럼 날아가 건물의 외벽과 거미의 몸통을 후려 갈겼다.
━크르르릉-!
그것으로 더욱 화가 난 것처럼 쩌렁쩌렁한 울음소리를 내는 거대 호랑거미.
녀석은 마르마르의 고치를 놓친 것에 정말 화가 난 것처럼 바닥으로 풀쩍 뛰어내려서 나를 향해 덤벼들었다.
그 속도는 거대한 몸체에 걸맞지 않게 정말 빨랐다.
몇몇 거미는 바퀴벌레를 사냥할 만큼 빨리 움직이는 놈이 있다던데, 저 녀석이 그런 종류일지도 모르겠다.
“어엇-!”
덕분에 나는 뒷걸음질을 치다 바닥으로 넘어졌다.
스릉-!
그런 나를 향해 녀석의 칼날과도 같은 앞다리가 높이 솟았을 때.
휘리릭, 짝-.
━케에에에에엑-!
무언가 바람을 찢어발기는 소리와 함께 거미가 크게 떨리며 뒤로 재빠르게 거리를 벌렸다. 칼리라 영애가 채찍을 휘둘러 나를 도와준 것이다.
“괜찮나요?”
“예, 덕분에 살았습니다!”
“이대로 시간이 끌렸다간 꼼짝없이 여기서 저녁을 보내야 할지도 몰라요. 저 거미를 쓰러트릴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내가 칼리라에게 묻고 싶었던 말인데. 이걸 보면 칼리라에게는 저 거대한 호랑거미를 쓰러트릴 방법이 딱히 없는 듯했다.
하긴, 그녀는 인간을 상대로 하는 암살자였으니까.
어쩌면 좋지?
떠오르는 것은 하나.
그냥 화력으로 쓰러트리는 것 뿐.
─파이몬-!
나는 거리를 벌리고 있는 틈을 타 거미를 향해 마법을 갈겼다. 압축된 공기가 바닥을 긁으며 탄환처럼 날아가 거미의 몸에 때려 박힌다.
━기에에엑-!
콰지직.
거미의 뒷다리 중 하나가 내 공격에 의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보며 칼리라가 감탄한 것처럼 주절거린다.
“생각보다 더 굉장한 위력이네요. 흔적도 남지 않는 바람의 마법이라니. 이렇게 깔끔한 공격마법은 본 적 없어요.”
암살자로서 여러 경험을 쌓았을 칼리라가 감탄할 정도면 나의 공격마법도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기 시작했다는 뜻이겠지.
평소라면 내 성취에 기뻐했을 터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파이몬-!
파즈즈즈즉.
다시금 발사된 나의 마법이 바닥에 자라난 풀들을 찢어발기며 거대한 거미의 몸을 향해 쇄도했다.
그러나 녀석은 보이지 않는 무색무취의 탄환을 피하는 것처럼 재빠르게 몸을 움직여 건물의 외벽에 다시 달라붙는다.
슈슈슉.
움직임이 너무 빠르다.
나는 그런 녀석을 조준하기 위해 꼬리 완드를 계속해서 겨눴다.
━크르릉…!
하지만 내 팔이 녀석을 조준하는 속도보다 놈의 몸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게 훨씬 더 빨랐다.
어떻게 잠깐 발을 묶을 수는 없나?
그러다 번뜩이는 것이 바로 새로이 얻게 된 강령주술이다. 그것으로 엘가의 몸을 10여초 정도 묶었던 경험이 있었지.
저 거미 녀석이 엘가보다 강하지는 않을 테니 분명 내 공격이 통할 터.
“칼리라 아가씨, 혹시 잠깐 녀석의 발을 묶어줄 수 있을까요? 한 3초 정도, 짧으면 2초 정도로 충분합니다!”
“그럼 마취액을 사용해 볼게요. 저렇게 커다란 거미에게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카르부스 전갈의 신경독이니 통하겠죠.”
자신의 허리춤을 뒤적여 칼리라는 황금빛 액체가 들어있는 유리병을 하나 꺼냈다. 그리고는 그것을 따고 자신의 채찍에 촤르르 흩뿌린다.
그것으로 칼리라 영애의 채찍은 거대한 전갈의 꼬리처럼 변모한다.
빌런 사냥꾼 파티를 궁지로 몰 정도였던 암살자의 솜씨를 두 눈으로 볼 수 있게 되는 건가 싶어서, 아주 약간이나마 나는 기대를 하게 되기도 했다.
─쫓아라-.
칼리라가 기묘한 명령과 함께 채찍을 휘둘렀다. 그러자 채찍은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빠르게 튀어 올라 거미의 앞발을 휘릭 휘감는다.
━기에에액-!
거미는 자신의 앞발에 휘감긴 채찍을 때어내기 위해 이리저리 날뛰기 시작했는데, 덕분에 그 채찍을 쥐고 있는 칼리라의 몸도 크게 이리저리 뒤흔들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기르르르-.
“약효가 돌긴 하는군요.”
거대한 호랑거미는 마치 살충제에 맞은 곤충처럼 비실비실 몸을 떨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건물의 외벽에서 픽 하고 떨어져서 배를 까뒤집은 채 움찔움찔 몸을 떤다.
━히오옹….
그러고는 매우 불쌍한 소리까지 냈다. 아마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것이겠지. 우리를 방심하게 만들어서 기습을 하려는 전략일 수도 있고.
물론 나는 그런 감성적인 전법에 통할 만큼 나약하지 않다. 놈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임을 당할 수 있는 법.
그래서 나는 놈을 향해 완드를 겨누고 외쳤다.
─가미긴-!
파지지직.
기이한 분홍빛 번개가 거미의 몸에 격돌한다.
━크르릉….
그것으로 거미는 마치 담배 연기를 맡은 벌레처럼 사방으로 몸을 떨기 시작하다가 마침내 축-늘어지고 만다.
“죽은 건가요?”
칼리라 영애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잠깐 얌전해진 것뿐입니다.”
앙그마르의 피와 반요정의 마법적인 재능이, 내 주문이 어느 정도 성공해 먹혀 들어갔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닫게 만들었다.
내가 이 거대 거미를 조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시간은 대략 5분 정도 되려나?
“일어나 봐.”
내가 명령하자 거대 거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내 앞에 마주했다. 내가 녀석을 향해 손을 내밀자, 거대한 거미도 나를 향해 앞발을 내민다.
━히오옹…!
“신기하네요. 이렇게 거대한 거미를 길들인다니? 무슨 주문이죠?”
칼리라 영애는 갑자기 얌전해진 거미를 향해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는 무언가를 발견한 것처럼 붉은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여기, 이거 보세요. 이제 보니 거미의 다리에. 리본이 감겨있네요. 분홍색 리본이에요. 왼쪽 두 번째 앞다리에-.”
칼리라 영애가 말하는 대로 거미의 왼쪽 앞 다리에는 리본이 감겨 있었다.
거미가 스스로 리본을 감았을 것 같지는 않고, 누군가 감겨준 듯이 보이는 리본. 이게 의미하는 건 하나라서 나는 그 답을 말하기로 했다.
“누가 버리고 간 거미인 모양이네요.”
그에 고개를 끄덕이는 칼리라 스콜.
“호랑거미 종류는 크기가 계속 커지니까. 아마 작을 때 키웠다가 감당할 수 없어지니 이 숲에 유기를 한 모양이죠. 그래도 이렇게까지 큰 개체는 저도 처음 봐요.”
온갖 독과 약재에 대해 지식이 해박한 칼리라는 이 거대한 호랑거미에 흥미가 솟은 듯했다. 겁도 없는 것인지 거대한 거미의 다리나 몸을 슥슥 쓰다듬기까지 한다.
━히오옹…!
“이대로 죽이지 않고 길들일 수는 있을까요? 호랑거미는 잘 길들이면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 같은데요.”
나도 그렇고 싶었는데. 이 흉폭하게 야생화된 거미를 길들일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르겠다.
이 녀석에게 쓰여진 내 강령술 가미긴의 지속시간은 대략 5분 정도. 사실 지금도 주문을 유지하느라 꽤 많은 정신력을 소모하고 있는 상태였다.
내 조교사의 레벨은 6.
여러 사람들의 상태창을 확인해본 결과 5레벨부터 일종의 전문가의 영역이라고 봐도 좋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럼 이 녀석, 길들여볼만 하지 않나?
━크르릉-!
바로 그때 거미가 날카로운 포효를 내질렀다. 혹시 내 주문이 완벽하지 않았던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오싹한 소름을 느꼈던 순간에 무언가가 공기를 찢었다.
쒜애애액-! 파밧-!
재빠르게 자리를 비운 거미의 빈자리로 무언가가 파바바밧-하고 꽂혔다.
그것은 화살이었다. 아니, 화살이라기보다는 탄환에 가깝다. 쇠뇌의 탄환. 볼트라고 불러도 좋겠지.
그것을 본 순간 나의 머리털이 쭈뼛 곤두섰다.
동시에 무언가가 풀숲을 해치고 나타난다.
“…놓쳤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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