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0th Regression of the Max-Level Player RAW novel - Chapter 106
만렙 플레이어의 100번째 회귀 106화
106. 로스트야크의 정체
매혹의 룬은 사기적인 룬이다.
플레이어의 레벨이 아무리 높아도, 인간의 명성이 아무리 높아도, 무조건 걸릴 수밖에 없으니까.
얌띠 앞에선 누구나 평등하게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안 먹혀, 몇 번을 해봐도 안 먹혀!’
아무리 쳐다보면서 매혹을 걸어도 정신 방벽에 가로막혔다는 메시지만 떠오를 뿐.
시도하면 시도할수록 매혹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만 확인할 뿐이었다.
‘어째서 안 먹히는 거지? 어째서?’
얌띠를 당황하게 만든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메시지로 나타나는 상대의 닉네임.
검은 낫.
‘지금 내 앞에 있는 놈이 로스트야크가 아니라 검은 낫이라고?’
그동안 알던 로스트야크의 정체가 검은 낫이었다니!
간부 영입 1순위였던 검은 낫이 바로 곁에 있을 줄이야 상상이나 했겠는가?
“너, 너는…….”
“아, 봤어? 내 닉네임.”
“…….”
“매혹의 룬이 참, 사기야? 현실의 닉네임도 알려주고.”
“어, 어떻게 내 룬에 대해서 알고 있지?”
“내가 몇 번이고 말했잖아.”
순간 류민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네 질문에 내가 꼭 대답해야 하냐고.”
“…….”
꿀꺽.
긴장감에 얌띠는 한동안 말없이 류민을 쳐다봤다.
‘매혹이 통하지 않는 남자라니. 그게 검은 낫이라니…….’
근래에 들어 얌띠를 이렇게까지 긴장하게 만든 남자는 처음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말만 하면 누구나 노예처럼 숙이고 들어왔으니까.
‘이제 어떡하지? 분위기로 봐선 결코 좋은 의도로 이러는 건 아닌데…….’
정황상 작전을 방해하고 회장에게 손을 쓴 건 눈앞에 있는 검은 낫이었다.
매혹 목록에 회장의 이름이 남아 있는 걸로 보아 아직 죽이진 않은 것 같지만.
‘당장 날 죽이지 않는 걸 보면 뭔가 원하는 게 있는 거야.’
힘으로는 이길 수 없다.
상대는 그 유명한 검은 낫이었으니까.
어떻게 해서든 말로 풀어야 한다.
잘하면 대화가 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얌띠가 물었다.
“거, 검은 낫. 원하는 게 뭔지 말해주면 내가 최대한 맞춰서…….”
“얌띠님. 무슨 문제 있으신지요?”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간부들이 곁으로 다가왔다.
한 명은 퇴로를 막고, 한 명은 뒤에서 기습을 준비하고, 한 명은 얌띠의 곁에서 경계 어린 눈빛을 한다.
얌띠에게 잘 보이기 위해 만약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알아서 위치를 잡은 것이다.
‘이것들 봐라?’
류민이 별안간 미소를 지었지만 얌띠는 그 모습에 왠지 모를 섬뜩함을 느꼈다.
“얌띠 님. 뭔가 안 풀리십니까? 무슨 일인지 말해주시면 저희가…….”
“닥치고, 너희는 방해만 되니까 가만히 있…….”
“얌띠.”
“예?”
“이 친구들이 너보다 눈치는 있군. 분위기도 파악할 줄 알고.”
류민이 순식간에 낫을 꺼냈다.
“다만 주제 파악은 못 하지만 말이야.”
서거거걱-!
뭔가 차례대로 잘리는 소리가 나더니.
투투투툭-
조금 전까지 서 있던 세 명의 간부가 허물어지듯 쓰러졌다.
“아.”
바닥에 피가 번졌지만 얌띠의 머릿속에 그딴 건 들어오지 않았다.
‘보이지도 않았어.’
대응할 수 있는 속도가 아님을 깨달은 얌띠는 기대감을 접었다.
솔직히 간부들이 나섰을 때 실낱같은 희망을 품었던 게 사실이다.
결국엔 헛된 희망이라는 게 증명됐지만.
‘도저히 답이 없어. 검은 낫, 이 남자를 상대론 어떤 계책도 통하지 않아.’
그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워, 원하는 게 뭐예요?”
“우선 이성현 국회의원을 매혹에서 풀어줘라.”
“…….”
매혹을 풀면 다시는 그를 이용할 수 없다.
그 사실이 얌띠의 발목을 붙잡았다.
“시, 싫다면요?”
용기를 냈다.
그 대가로 팔을 내줘야 했지만.
툭-
“아, 아아악!”
타는 듯한 고통에 얌띠가 어깨를 잡으며 주저앉았다.
당연하지만 언제 잘렸는지도 못 봤다.
“용기는 가상하다만, 상대를 잘못 봤어.”
“아으으…….”
“내가 거절이나 들으려고 여기 있는 건 아니거든.”
류민은 바닥에서 팔을 주워들었다.
깔끔하게 잘린 단면에 팔을 갖다 댔다.
“아악!”
고통도 잠시, 류민이 응급치료를 사용하자 곧이어 상처가 치유되고 팔이 원상태로 돌아왔다.
“전처럼은 아니지만 움직일 순 있을 거야.”
‘어, 저, 정말이네?’
얌띠가 내심 놀랐다.
잘린 팔을 붙이다니.
자신도 응급치료 스킬이 있지만 잘린 팔을 붙일 정도의 회복력이 아니라는 건 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같은 스킬인데 왜 회복력에서 차이가 나는 걸까?
의문을 떠올리지도 말라는 듯 류민이 다시 낫을 들었다.
“자, 팔이 붙었으니 다시 한번 말하지. 이성현 국회의원의 매혹을 풀어라.”
얌띠는 두말할 것 없이 행동에 옮겼다.
“푸, 풀었어요.”
그 말에 류민이 가만히 얌띠를 주시했다.
속마음을 읽어보니 거짓은 아니었다.
“빠르군.”
그 증거로 조금 전까지 인형처럼 미동도 없던 이성현 의원이 침음을 흘렸다.
“아오, 머리야…… 응?”
눈을 뜨니 검은 봉투로 가려져 앞이 보이질 않았다.
몸은 의자에 묶였는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앞은 보이지 않았지만, 이성현은 금세 상황을 파악했다.
“야, 너희들! 이거 빨리 안 풀어? 근처에 있다는 거 다 알아! 겁도 없이 국회의원을 납치해? 지금 실수한 거야. 알아들어!?”
그때 어둡기만 하던 시야가 확 밝아졌다.
류민이 검은 봉투를 벗긴 것이다.
“응?”
“안녕하십니까, 이성현 국회의원님. 저는 당신을 구하려는 사람입니다.”
처음 보는 구릿빛 피부의 남자가 자신을 지그시 쳐다보고 있다.
누군지 의문을 품기도 전에 뒤늦게 역한 피비린내와 시체들이 눈에 들어왔다.
“우읍……!”
“조금만 기다려주시죠. 일단 저 여자랑 담판을 짓고 오겠습니다.”
의원이 헛구역질하는 사이, 류민이 얌띠를 노려봤다.
“내가 널 살려줘야 할까, 말아야 할까?”
“사, 살려주세요.”
“살려주면, 더 이상 능력을 쓰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겠나?”
“네! 앞으로 절대! 능력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신께 맹세…….”
“신 따위한테 맹세하지 말고, 나한테 맹세해라.”
“아, 알겠어요. 검은 낫님께 맹세해요! 맹세!”
절박함이 담긴 어조로 말하는 얌띠를 보며, 류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자비를 베풀도록 하지.”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그만 가보도록.”
원하던 축객령에도 얌띠는 의심스러운 눈길로 쳐다볼 따름이었다.
“저, 정말 가도 되나요? 등 돌리자마자 목을 베는 거 아니죠?”
“속고만 살았나. 가라.”
류민이 무심하게 고개를 돌렸다.
‘무방비……?’
순간 기습할까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말 그대로 순간일 뿐이었다.
‘아, 아니야. 내가 미쳤지.’
살려준다는 데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겠는가?
검은 낫에 비하면 자신의 스탯은 비루하기 짝이 없다.
코끼리와 쥐의 격차나 다름없다.
아무리 기습이라도 이길 가능성은 눈곱만큼도 없음을 잘 알았다.
“가, 가겠습니다. 검은 낫님. 그럼 이만…….”
“가긴 어딜 가! X발 년아!”
얌띠가 오두막을 나서려 하자 이성현이 의자에서 발악했다.
“이것 좀 풀어줘! 저년 잡아야 해! 날 납치한 년이라고!”
저렇게 고함지르면 풀어줄 법도 한데, 류민은 가만히 응시할 뿐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다.
“빨리 가라.”
“아, 아, 네.”
잠시 류민의 눈치를 보던 얌띠가 도망치듯 오두막을 나섰다.
* * *
탁탁탁탁-
산길을 내려오는 그녀의 숨이 가빠졌다.
“후우, 후.”
어느 정도 내려왔다 싶은 얌띠가 뒤를 돌아봤다.
이미 오두막은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멀어졌다.
“안 따라온다고? 진짜로 날 살려주는 거라고?”
시야에 보이지도 않고 공용 스킬인 기척 감지에도 감지되지 않는다.
얌띠는 확신할 수 있었다.
미행은 없다고.
“하, 하하하, 히히히힛…… 힙!”
소리 내 웃다가도 검은 낫에게 들릴까 싶어 입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순 없었다.
“푸키흐흐히히히. 하핫, 진짜 뭐야앙.”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웃던 얌띠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날 좋아하기라도 하는 거야? 대체 뭔데? 왜 살려주는데?”
설마 능력을 쓰지 않겠다는 약속 때문에?
아니면 자신이 연약해 보이는 여자라서?
“내 미모에 반하기라도 한 거야 뭐야?”
도저히 살려준 이유가 짐작되지 않았다.
“뭐가 됐든 순진하네, 정말!”
능력을 쓰지 않겠다는 말만 믿고 보내주다니.
“내 생전 저런 호구는 처음 본다. 킥킥.”
수많은 남자를 만나봤지만, 호구도 저런 호구가 없다.
“히히히힛, 호구 새끼. 맹세? 약속? 그딴 거 고블린한테나 줘버리라지. 내가 그걸 왜 지켜야 하는데?”
애당초 얌띠는 약속을 지킬 마음이 없었다.
그저 살기 위한 입바른 소리에 불과할 뿐.
거기에 넘어간 놈이 호구고 병신일 뿐이다.
자신은 잘못이 없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뒤에야 얌띠가 다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휴우, 죽다 살아났네. 세상에 매혹에 당하지 않는 인간이 있을 줄이야.”
그게 설마 검은 낫일 줄이야.
‘게다가 로스트야크가 검은 낫이었다니. 그럼 여태 정체를 숨기고 우리를 뒤통수치기 위해 숨죽이고 기다렸다는 거잖아?’
생각할수록 무서운 사내가 아닐 수 없었다.
‘납치 작전은 실패했지만 아쉬워할 거 없어. 목숨이라도 건진 게 어디야.’
의외로 검은 낫이 호구였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삼도천을 건너고 있었으리라.
‘의외로 여자에 약한 타입인가? 그런 거면 간부로 있을 때 진지하게 꼬셔볼 걸 그랬어.’
구릿빛 피부의 근육질 남자는 그리 선호하는 타입이 아니지만 뭐 어떠한가.
그 유명한 검은 낫인데.
‘일단 살았다. 살았으니 다음을 도모하면 그만이야.’
아직 회장은 매혹 명단에서 해제되지 않았다.
얼마든지 회장을 이용해 다시 플세바를 움직일 수 있다.
그런 생각으로 얌띠가 다시 산에서 내려가려는데.
‘응?’
어느 순간 기척 감지에 걸리는 존재가 나타났다.
반사적으로 휙 고개를 돌린 얌띠는 기겁해야 했다.
“거, 검은 낫……!”
사신이 눈앞에 있었으니까.
“역시. 믿을 만한 년이 아니었군.”
“거, 검은 낫. 가, 갑자기 무슨 소리예요. 지금 뭔가 오해를…….”
“다 들었다. 중얼중얼 잘도 말하던데.”
“…….”
얌띠는 순간 검은 낫이 자신을 떠보는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못 들었기를 바랐으니까.
“호구라고 비웃는 거 다 들었다. 웃음소리가 아주 천사 뺨치게 기괴하더구만.”
“…….”
“아직도 못 믿는 모양이군. 아니, 안 믿는 건가? 뭐, 아무래도 좋다. 못 믿을 년이라는 걸 확인했으면 그걸로 된 거니까.”
검은 낫이 가까이 오자 얌띠는 다급해졌다.
“자, 잠깐만요. 저, 저를 죽일 거라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 제가 이래 봬도 여러모로 쓸모가…….”
“너의 뭘 믿고?”
“…….”
“맹세 따윈 고블린이나 줘버리는 년이.”
얌띠가 침을 꼴깍 삼켰다.
고블린을 언급하는 걸 보니 확실히 엿들은 모양이다.
“그리고 누가 죽인데?”
“예?”
“매혹의 룬이라는 좋은 능력이 있는데 아깝게 죽일 수야 없지.”
“그, 그럼……?”
얌띠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류민의 동공이 보라색으로 변했으니까.
지배권을 사용할 때의 변화였다.
“얌띠. 내 노예가 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