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0th Regression of the Max-Level Player RAW novel - Chapter 183
만렙 플레이어의 100번째 회귀 183화
183. 명분
존 델가도는 세상에 불만이 많은 사내였다.
사지 멀쩡한 20대 후반의 나이였지만 취직도 결혼도, 이룬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게 다 세상 때문이다. 세상은 망해야 한다.’
습관처럼 빌던 그 소원은 2022년이 되자 거짓말처럼 이뤄졌다.
천사들의 생존게임.
그 안에서 존은 사령술사라는 막강한 직업을 얻었다.
‘시체의 영혼을 권속으로 부릴 수 있다고?’
영혼을 수집해 영체 언데드로 재탄생시키는 직업.
영체화된 언데드는 마법 대미지에만 피해를 보기에 죽이기도 힘들다.
한마디로 개사기였다.
애당초 마법을 쓰는 몬스터를 보긴 힘들었으니까.
‘게다가 몬스터만이 아니라 플레이어까지 권속으로 부릴 수 있어.’
비록 언데드화가 되면 기존 능력의 절반밖에 힘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그것만 해도 어디인가?
‘수십 마리를 권속으로 부릴 수 있는데.’
언데드를 부릴 수 있는 수는 사령술사의 레벨만큼.
즉, 40레벨이면 40마리, 99레벨이면 99마리를 소환할 수 있다는 뜻이다.
‘미쳤네. 완전 조폭 네크잖아?’
몸을 쓰는 건 자신 없지만, 뒤에서 진두지휘하는 것만은 자신 있었던 존은 금세 구역 랭킹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비록 전 구역 랭킹에는 들지 못했지만 말이다.
‘X발, 나름대로 해당 구역 랭킹 1위인데 왜 전 구역에는 한 번도 이름을 올리지 못하는 거야?’
존은 항상 전 구역 랭킹 4위에 걸쳤다.
그 사실이 이해되지 않았다.
소환수 수십 마리로 전장을 초토화해버리는 강력한 플레이어가 됐는데도 자신보다 더 강한 사람들이 셋이나 있다고?
특히 이해할 수 없는 건 매번 전 구역 랭킹 1위를 찍는 검은 낫이라는 존재였다.
‘저 새끼는 뭐 하는 놈이길래 레벨이 저렇게 높지? 사신은 또 무슨 직업이야?’
자신의 직업도 희귀하긴 마찬가지지만 저렇게 닉네임과 직업이 어울리는 경우는 처음 봤다.
‘더 강해져야 해. 더 강한 권속이 필요하다.’
몬스터 따위로 숫자를 채울 게 아니라 오직 플레이어로만 소환수를 구성해야 한다.
마음 같아선 보스 몬스터로만 꾸리고 싶지만, 보스는 권속할 수 없다고 하니 어쩔 수 없었다.
‘종교를 만들자. 절망교라는 종교를 만들어 플레이어들을 끌어모으는 거야.’
그러면 급할 때 권속으로 만들어 써먹을 수도 있고 괜찮은 인재들도 발굴할 수 있다.
그렇게 존은 절망교를 창시하고 가입자들을 찾아다녔다.
그 결과 같은 구역에서 몇 명 끌어모을 수 있었지만 그거론 부족했다.
‘이계에서만 찾을 게 아니라 현실에서도 찾아야 해.’
이제는 플레이어가 기득권이 되는 세상이라며, 기존의 세상을 절망 속에 몰아넣고 새로 창조해야 한다는 이념을 전파했다.
그러다 보니 사이비 내지 잡상인 취급당하며 문전박대당하기 일쑤였다.
실랑이를 벌이다 부득이하게 살인을 저지르기도 하고.
그런데도 존은 포기하지 않았다.
좀 잘 나가는 플레이어가 있다 싶으면 지역을 불문하고 찾아가 영입하기 위해 애썼다.
그러다 다른 구역의 플레이어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다.
성녀라는 존재가 있음을.
-저희 구역에 크리시라는 프리스트가 있습니다. 성녀로 불리는데 추종자들만 50명은 넘을걸요?
성녀라니.
존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처럼 종교를 만들고 세를 불리고 있다, 이 말이지?’
종교가 아니라는 건 나중에 알게 됐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경쟁자가 나타났다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었으니.
‘저쪽 세력을 와해시켜야겠어. 프리스트라는 소환수도 얻고 싶으니.’
존은 자신에게 정보를 준 남자에게 절망교의 추기경급에 달하는 직위를 줬다.
그리고 한가지 임무를 내렸다.
성녀의 추종자인 척 잠입해 첩자로서 활동할 것을.
-명을 받들겠습니다. 교주시여.
베르베르는 유능한 첩자였다.
들키지 않게 연기를 펼치며 라운드마다 성녀에 대한 정보를 가져왔다.
어떤 날은 특급 정보를 물어오기도 했다.
-내부에 더글러스라는 팔라딘이 있습니다. 성녀를 흠모하는 녀석인데 요즘 불만이 쌓여 있더군요. 잘만 꼬드기면 저희 편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배신자가 있으면 좋긴 하겠군. 잘 구슬려서 이쪽으로 끌어들이도록.
그렇게 더글러스까지 같은 편으로 만들고 크리스틴을 죽일 기회만 기다렸다.
구역이 달라 만날 순 없었지만, 기회는 올 것이다.
같은 미국인이라면 언젠가 구역 통합으로 만나게 될 테니까.
그렇게 200명의 신도를 모으며 때를 기다린 끝에, 11라운드가 찾아왔다.
그리고 구역이 통합됐다.
7개로 나뉘어 있던 미국의 구역이 하나로 합쳐진 것이다.
‘마침내 때가 됐다.’
존은 성녀를 죽여서 세력을 와해시키기로 했다.
추종자들도 굳이 살려둘 필요는 없었다.
‘하나하나가 소중한 포인트들이니 모조리 죽여버려야지.’
같은 미국인이라지만 엄연히 구역이 다르다.
구역별로 팀전을 하는 만큼 밟고 올라가야 할 경쟁자에 불과하다.
그러니 죽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성녀야 당연히 죽여서 내 권속으로 삼아야 하고.’
그렇게 작전이 실행됐고, 팔라딘도 배신시켰건만…….
‘빌어먹을 팔라딘 놈이 우리 교단마저 배신하고 성녀를 채갈 줄이야.’
다행히 늦지 않게 놈을 찾아 죽일 수는 있었지만 또 다른 방해꾼이 나타나 버렸다.
‘저 새끼는 뭐야?’
대형 낫을 어깨에 걸치고 있는 남자였다.
‘낫?’
낫이라 하니 떠오르는 닉네임이 있었다.
‘설마 아니겠지. 그 인간은.’
하필이면 결정적인 순간에 랭킹 1위를 마주칠 확률이 얼마나 될까?
모르긴 몰라도 검은 낫이 아닐 가능성이 더 컸다.
낫이야 상점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데다 꼭 사신만 쓰리란 법은 없으니까.
‘그렇다 해도 보통 놈은 아니다. 내 언데드를 한 방에 죽였으니.’
마법에 취약하다는 걸 알고서 그런진 몰라도 쉽게 볼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뭐 하는 놈이냐?”
“그냥 지나가던 행인.”
동양인 같은데 영어를 사용한다.
눈 감고 들으면 미국인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발음이 좋다.
‘검은 낫이 동양인이었던가?’
잘은 몰라도 녀석이 간섭하게 둘 순 없다.
“지나가던 길이면 남의 일에 참견 말고 계속 가던 길이나 가라.”
존은 검은 낫으로 추정되는 동양인에게 기회를 줬다.
제삼자와 불필요한 싸움은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솔직히 말하면 강해 보인다. 가능하면 싸우고 싶지 않아.’
하지만 녀석은 그냥 지나칠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지금 저 여자가 위험해 보이는 거 같은데. 아닌가?”
“참견 말고 가라고 했다.”
“곤경에 처한 사람을 두고 어떻게 가만히 있나?”
“내 권속을 죽인 죄는 묻지 않겠다. 그러니 가라. 마지막 경고다.”
금방이라도 소환수를 꺼낼 준비를 하며 죽일 듯이 노려봤다.
‘범상치 않은 놈이다. 기세에 밀리면 안 돼.’
만약 싸우게 되면 전력을 다해 죽여버리리라.
그런 생각으로 놈의 대답을 기다렸다.
대답이야 뻔했지만 말이다.
‘불의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며 백마 탄 왕자처럼 구해주겠다고 나서겠지.’
갑작스레 끼어든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미 머릿속으론 구해줄 작정을 하고 있을 거다.
그런데 의외의 상황이 벌어졌다.
“알았다. 내가 괜한 참견을 한 것 같군. 그만 가던 길이나 가도록 하지.”
검은 낫으로 추정되는 남자가 순순히 지나가겠다고 말한 것이다.
그 의외의 발언에 지켜보던 크리스틴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 날 구해주려던 거 아니었어?’
농담이 아니었는지 남자가 무심하게 등을 돌렸다.
동시에 다급해진 그녀가 등 뒤에 대고 소리쳤다.
“도, 도와주세요! 저 사람이 절 죽이려고 해요!”
“닥쳐라, 이 년!”
남자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존은 남아 있던 언데드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 틈에 성녀를 죽여버리라고.
하지만.
파지지직-!
언데드의 공격은 미수에 그쳤다.
류민이 다시 한번 전류를 방출해 언데드를 소멸시켰기 때문이다.
“무슨 짓이냐! 분명 방해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나!”
“아무리 그래도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 꼴을 보고 싶진 않아서 말이야. 하려거든 내가 가고 나서 하지 않을래?”
“…….”
죽이려거든 자기가 자리를 피한 다음 죽여라?
‘건방진 자식!’
자존심이 상하는 말이었지만 존은 꾹 참았다.
방금의 실력으로 확실하게 파악한 것이다.
‘녀석은 마법 대미지가 상당히 높은 마법 계열 클래스다. 내 권속을 한 방에 죽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어.’
검은 낫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강자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게다가 전류의 속도도 눈으로 반응하기 힘들 정도로 빨랐다.
만일 방향이 자신 쪽이었다면 살아남지 못했으리라.
“이제 간다.”
무심한 척 등을 돌린 류민이었지만 실은 천리안으로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크리스틴을 지켜야 했으니까.
‘하지만 대놓고 도와줄 순 없는 노릇이지.’
류민이 지켜주겠다고 나서지 않는 건 다름이 아니었다.
명분.
크리스틴을 구해야 하는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위험할 때 나타난 건 우연이라 쳐. 그런데 처음 보는 여자를 구해준다? 전후 사정도 모르고 아무런 인연도 없는 여자를?’
불의를 보면 참을 수 없는 성격이라고 말할 순 있다.
이미 나이지리아에서 IS를 박멸하며 정의감에 투철한 이미지를 만들어놨으니까.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을 두고 불의인지 아닌지 알 길이 있나?’
크리스틴이 죽을죄를 지었는지 어쨌는지 제삼자인 류민으로선 알 길이 없다.
사령술사의 말마따나 지금 그녀를 구해주는 건 참견이고 오지랖이었다.
‘그러니 명분이 필요하단 말씀. 구해줘야 하는 명분이.’
명분 없이 도와준다면 오히려 의심받을 수 있다.
크리스틴과의 첫 만남이었기에 어설프게 구해줬다간 도리어 관계를 망칠 가능성이 있다.
“구해주세요! 저 사람이 이유 없이 저를 죽이려고 해요!”
크리스틴이 애절한 목소리로 부탁했지만 류민은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게 아니지. 날 붙잡으려면 그 정도로는 안 되지.’
자신을 구해주면 아이템을 준다던가, 뭔가 대가를 제시해야 도와줄 명분이 생긴다.
하지만 크리스틴은 당황했는지 거기까진 생각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냥 가던 길 가시게. 저 미친 여자의 말은 신경 쓰지 말고.”
사령술사가 재촉하자 류민으로선 걸음을 뗄 수밖에 없었다.
“그러지.”
“자, 잠시만요. 잠시만…….”
“내가 닥치라고 했지, X발년아! 죽여 버…….”
사령술사는 소리치다가도 류민의 눈치를 봤다.
류민 때문에 죽여버린다는 말도 못 했다.
‘내가 얼른 떠나길 바라는 눈치군.’
그래야 원하던 대로 크리스틴을 죽일 수 있으니.
‘흠, 도와줄 명분이 없으면 곤란한데…….’
고민하던 류민의 머리에 마침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순간 걸음을 멈추고 사령술사를 바라봤다.
무슨 일이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는 녀석을 향해 류민이 미간을 찌푸렸다.
“너 말이야.”
“……?”
“생각해 보니까 말투가 좀 싸가지없네?”
영어엔 존댓말의 개념이 없다.
상대를 존중하는 말투와 그렇지 않은 말투가 있을 뿐.
사령술사와의 대화를 보면 명백히 후자에 속했다.
“네가 뭔데 나한테 가라, 마라, 명령조로 말하는 거지? 네가 내 직장 상사라도 되냐?”
“…….”
동네 양아치처럼 말꼬투리를 잡으며 시비를 걸었다.
다소 치졸한 방법이었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사령술사가 눈에 띄게 당황하고 있었으니까.
“응? 왜 말을 안 해. 죽고 싶냐?”
“……무례하게 들렸다면 사과하지.”
류민의 의도를 파악한 것일까?
사령술사가 자존심을 꺾고 꼬리를 내렸다.
생각을 읽어보니 자신을 보내고 어지간히도 크리스틴을 죽이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렇게 둘 순 없지.’
류민은 뻔뻔하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뭐지……?”
“미안하다면 다야? 성의를 보여야 할 거 아니야.”
대놓고 아이템을 요구했다.
갈취나 다름없었지만 사령술사는 싫은 내색 없이 아이템을 꺼내 들었다.
“이거면 됐나?”
“지금 장난하냐? 어디에 쓰는지도 모를 재료 아이템 하나로 퉁 치자고? 그딴 거지 아이템이나 먹고 떨어지라는 거야, 뭐야? 갑자기 기분이 확 나쁘네?”
“X발!”
“뭐? 뭔 발?”
류민의 갈굼을 참지 못한 사령술사가 기어코 일을 저질렀다.
그어어어어-
“죽어라.”
불현듯 나타난 서른 마리의 언데드가 동시에 류민을 덮쳤다.
사방팔방에서 펼쳐지는 다각도의 완벽한 기습.
하지만 생각을 읽고 미래시의 룬이 있는 류민이 기습을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광역 방출.”
파지지지지지직-!
반구형 형태로 전류가 퍼지더니 30m 반경의 모든 것들이 일시에 사라졌다.
“…….”
한순간에 서른의 소환수를 잃은 존 델가도가 멍한 눈으로 류민을 응시했다.
“너 뭐냐?”
“…….”
“지금 나 공격한 거지?”
류민이 다가가며 물었지만 존 델가도는 말할 정신이 없었다.
살이 떨릴 만큼의 무시무시한 살기에 정신 차릴 틈이 없었으니까.
“내가 웬만하면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안 되겠네. 지나가던 무고한 사람을 이 악물고 죽이려고 들어?”
가까이 선 류민이 입술을 비틀며 웃었다.
“죽고 싶냐?”
이제야 죽여 버려도 되는 좋은 명분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