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0th Regression of the Max-Level Player RAW novel - Chapter 189
만렙 플레이어의 100번째 회귀 189화
189. 분노하는 마경록
플레이어들은 귀환할 때 같은 시간에 동시다발적으로 잠에서 깬다.
때문에 그들의 가족들은 오매불망 기다릴 수밖에 없다.
자식이 어째서 눈을 뜨지 않는지, 왜 24시간 동안 잠만 자고 있는지, 그 어떤 정보도 알지 못한 채로.
“으음.”
“이, 일어났구나!”
슬며시 눈을 뜬 크리스틴은 고개를 돌렸다가 깜짝 놀랐다.
초췌한 몰골의 아버지가 자신의 침대 옆에서 병간호하듯 앉아 있었기에.
“아버지?”
“무사해서 다행이구나.”
“어, 어떻게 된 거예요? 지금까지 안 자고 기다리신 거예요?”
“너 같으면 잘 수 있겠느냐? 내 딸이 24시간이 되도록 깨어나질 않는데.”
아버지 네이선의 걱정은 당연했다.
가뜩이나 11라운드에서 봉변을 당한다고 들었기에 특히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네이선이 찔끔 나온 눈물을 훔치자 크리스틴이 놀랐다.
아버지의 눈물은 난생처음 보는 장면이었기에.
“설마 우시는 거예요?”
“오해 말거라. 졸려서 나오는 눈물이다. 그나저나 왜 이렇게 오래 걸린 게냐?”
“이번 라운드 제한 시간이 24시간으로 유달리 길었거든요.”
때마침 방문이 열리더니 제프리가 들어왔다.
“아! 살아 있었군요! 크리스틴.”
“어쩌다 보니요.”
크리스틴의 반응은 쌀쌀했다.
쳐다도 보지 않는 게 저번 일로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었다.
얌띠에게 지배당한 뒤로 예언자에 대한 악감정은 이미 사라졌는데 말이다.
“딸아. 그나저나 어찌 된 것이냐? 예언대로 정말 습격을 받았느냐?”
“……네.”
크리스틴은 착잡한 심정으로 겪었던 일들을 털어놓았다.
절망교의 기습과 믿었던 팔라딘의 배신, 그리고 교주인 사령술사의 등장까지.
특히 팔라딘이 크리스틴을 강제로 범하려 했다는 말에 제프리가 분노를 금치 못했다.
“그런 짐승 같은 놈이 있다니! 크리스틴! 그 녀석 확실히 죽은 거겠지요?”
“죽었어요. 제 눈으로 똑똑히 봤어요.”
“그런 사탄 같은 인간을 곁에 두고 있었다니. 널 따라다닌다는 추종자들도 믿으면 안 되겠구나.”
“믿고 말고 할 것도 없어요. 100명 정도 되던 제 동료들은 이미 절망교의 기습에 남김없이 죽었거든요.”
“…….”
“…….”
그 말을 들은 두 사람은 눈치껏 침묵을 지켰다.
크리스틴의 표정이 더할 나위 없이 우울해 보였기 때문이다.
“제 걱정하실 거 없어요. 이제 슬픔은 털고 일어나기로 했거든요.”
“그러냐?”
“뭐가 됐든 20라운드까지 가봐야죠. 동료들의 죽음이 헛되이 되지 않기 위해선 그 방법밖에 없잖아요?”
“소원 말이구나.”
크리스틴에겐 원래 소원이라곤 없었다.
소원이고 나발이고 그저 죽지 않기 위해 여기까지 생존해 온 것뿐.
그런데 지금은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검은 낫님은 내 잘못이 아니라고 했지만 그래도 내 책임이 아예 없다고 볼 순 없어. 그러니까…… 내가 살릴 거야. 죽은 동료들을 위해서라도.’
이번 일로 강한 동기부여를 얻었다.
20라운드까지 가야 할 이유를 찾았다.
달라진 딸의 눈빛을 읽은 걸까?
네이선이 그 어느 때보다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우리 딸은 강하구나.”
“조언을 들었거든요.”
“응? 조언?”
“신경 쓰실 것 없어요. 그보다 절망교라고 들어본 적 있으세요?”
네이선과 제프리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그건 대체 뭐 하는 사이비 종교더냐?”
“플레이어들로만 이뤄진 종교인가 봐요. 미국에 주둔지가 있는 것 같은데 찾을 방법이 없네요.”
“그 녀석들 찾는 건 우리한테 맡겨두거라. 괜히 위험하게 또 엮이지 말고.”
“그보다 크리스틴. 당신을 구해준 사람은 누구입니까?”
제프리의 질문에 네이선이 맞장구치며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그래, 얘기해 보거라. 누가 도와줬길래 그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던 것이냐? 역시 네 약혼자가 구해준 것이냐?”
크리스틴이 도리질 쳤다.
“아니요. 그 사람은 만나지도 못했어요.”
“그럼 누군데?”
“절 구해준 사람의 닉네임은 검은 낫이에요.”
“검은 낫?”
네이선이 처음 듣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제프리의 반응은 달랐다.
“거, 검은…… 낫?”
“왜 그러느냐, 제프리? 너도 들어본 사람이냐?”
“들어보다마다요. 이미 이쪽 업계에선 유명한 자입니다. 여태껏 랭킹 1위를 놓치지 않은, 현존하는 플레이어 중 가장 강한 자거든요.”
“그래? 미국인인가?”
“한국인입니다. 일반인들 사이에선 CPF의 부대장으로 나이지리아에서 IS 잔존 세력들을 뿌리 뽑은 것으로 알려져 있죠.”
“호오? 그것참 좋은 일을 하는 플레이어구나.”
네이선의 눈이 번뜩였다.
한 번도 만나보진 못했지만 이미 크리스틴을 구해준 시점에서 검은 낫의 첫인상은 합격이었다.
“조만간 한국으로 가 내 딸을 구해준 사례를 해야겠구먼.”
“하지만 만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다른 사람과 일절 연락하지 않고 얼굴도 가면을 써서 철저하게 정체를 숨긴답니다.”
“그래도 만날 방법이 있지 않겠느냐?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사람 하나 찾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했지만, 제프리는 부정적인 표정이었다.
그게 가능했다면 이미 매스컴을 통해 검은 낫의 얼굴이 알려지고도 남았을 테니까.
그때 크리스틴이 끼어들었다.
“제가 한국으로 갈게요.”
“한국으로?”
“가서 예언자님을 만나볼게요. 그분이라면 검은 낫님의 위치를 알고 계실지 모르잖아요.”
“이번에 번호도 교환했는데 전화로 물어보지 않고?”
“그런 얘기를 유선상으로 하기엔 실례잖아요. 직접 찾아가는 성의라도 보여야죠.”
“집 주소가 어디인지는 알고 있고?”
“잊으셨어요? 예언자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 제 약혼자잖아요. 그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을 거예요.”
* * *
잠에서 깬 마경록은 일어나자마자 옆에 있던 스탠드를 던져버렸다.
“으아아아아아! 씨이이이이이X!!!”
손에 잡히는 거라면 뭐든 집어던지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깔끔한 성격 탓에 잡히는 물건이 별로 없었다.
“후우, 후욱.”
마경록이 성난 황소처럼 콧김을 뿜었다.
화가 났다.
다름 아니라 11라운드에서 그의 포인트는 0.
24시간이 다 되도록 미궁의 숲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탓이다.
‘아마 안 실장도 지금쯤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있겠지. 강해지겠다는 의욕만큼은 나보다 높았으니까.’
다행히 검은 낫 덕분에 한국 팀이 1위에 올라서 소멸을 면할 순 있었지만 그뿐.
포인트가 없어서 스페셜 상점이 열려도 이용하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었다.
‘날 때부터 금수저였던 내가 이깟 포인트 하나 없어서 구경이나 하는 처지라니.’
한순간에 빈털터리 거지가 된 기분이었다.
통장에 수백억이 있어도 허탈감만 들었고.
스페셜 상점에 대한 기대감이 컸던 만큼 상실감도 클 수밖에 없었다.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검은 낫을 쫓다가 이 지경이 됐는데 오히려 검은 낫 덕분에 생존할 수 있었다니.’
지금 생각해도 대단하다.
그 녀석은 어떻게 혼자서 2천만이라는 포인트를 모을 수 있던 걸까?
‘아니, 그보다 그 빌어먹을 숲은 어떻게 빠져나간 거야?’
황용민에게 맞고 기절한 마경록은 뒤늦게 눈을 떴다.
남은 시간은 3시간.
1시간 동안 낑낑거리며 나무의 줄기를 자르고 안상철과 함께 미궁을 탈출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고작 2시간 만으로는 탈출하기 역부족이었다.
온종일 미궁 같은 숲에서만 시간을 보냈으니 포인트가 0일 수밖에.
‘어이없다, 어이없어. 0 포인트라니. 항상 랭킹에 오르던 내가 0 포인트라니…….’
분노를 넘어 허탈함을 느끼고 있는데, 삐리릭-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안상철이 들어왔다.
어질러져 있는 방을 본 그가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이해한다는 듯 침착한 얼굴이 되었다.
“대표님. 저 왔습니다.”
“그래요.”
“분풀이는 다 하셨습니까?”
“어느 정도요. 안 실장은요?”
“후우, 저도 참다못해 물건 몇 개 던지고 왔습니다.”
“이게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우리가 0 포인트라니요.”
“그러게 말입니다.”
“안 실장은 원인이 누구한테 있다고 보십니까?”
“으음…….”
안상철이 대답을 주저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검은 낫을 따라가자고 한 마경록이 원인이었으니까.
하지만 제정신이 박힌 이상 눈앞에서 직장 상사를 깔 수는 없는 법.
“1차 원인은 이상한 숲으로 들어간 검은 낫이고, 2차적으로는 저희를 이렇게 만든 황용민이겠지요.”
“황용민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 녀석은.”
“아, 그렇죠. 실상은 언데드니까요. 따지고 보면 황용민을 조종하던 자가 원인이라고 봐야겠네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합니다. 일개 언데드 따위가 어떻게 그런 실력을…….”
황용민은 두 사람을 완전히 가지고 놀았다.
한낱 소환수라기엔 말도 안 되는 실력이었다.
겉보기에도 언데드라 하기엔 너무도 멀쩡한 인간의 모습이었고.
예언자가 죽었다고 하지 않았으면 영락없이 플레이어라고 믿을 뻔했다.
“그때 예언자가 분명하게 말했죠? 황용민이 죽었다고.”
“예. 확실히 들었습니다. 그를 조종하는 사령술사가 있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면 예언자가 알겠네요. 배후가 누구인지.”
자신들은 황용민에게 당한 것이 아니다.
황용민을 조종하는 누군가에게 당한 것이다.
“복수하실 겁니까?”
“그럼요. 그 개새끼를 찾아내서 사지를 찢어 개밥으로 던져줘야지요.”
“그럼 예언자에게 전화를 걸어볼까요?”
“예. 생존했는지 확인할 겸 제가 직접하겠…….”
그때 마경록의 핸드폰으로 전화가 울렸다.
발신인을 보니 크리스틴이었다.
“크리스틴?”
-안녕하세요. 마경록 씨.
“무사하셨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제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세요?”
반색하는 목소리가 의외였는지 수화기 너머에선 짧은 침묵이 흘렀다.
-걱정해 주셔서 고마워요.
“걱정 안 할 수가 있겠습니까? 미래를 약속한 사이인데. 게다가 이번 라운드는 안 좋은 예언이 있던 라운드였잖아요.”
-그랬죠.
“어땠습니까? 정말 예언대로 무슨 일이 있었나요?”
궁금해하는 마경록을 위해 크리스틴은 차분하게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 줬다.
듣는 이는 차분할 수 없었다는 게 문제였지만.
“절망교 교주한테 죽을 뻔했다고요?”
-네. 미국인인데 죽은 자들을 부리는 능력이 있었어요. 듣기론 사령술사라 하더라고요.”
‘사령술사?’
죽은 자들을 부린다고 하니 직감이 팍 꽂혔다.
이 녀석이 바로 자신이 복수해야 할, 모든 일의 원흉이다.
“그 녀석 이름이 뭐라고 했죠?”
-절망교의 존 델가도예요. 혹시 알고 있으세요?
“아니요. 잘은 모르지만, 저도 한 번 찾아보겠습니다. 감히 제 약혼녀를 건드렸으니 대가를 치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까지 해주실 필요는 없는데…….
“아니요. 이계에서 아무런 도움도 못 줬으니 이렇게라도 도와야죠.”
생색내듯 말한 마경록이지만 실은 개인적인 복수심 때문이었다.
‘확실해. 이 녀석이 황용민을 부린 사령술사다.’
시간대로 보면 아마 미궁의 숲에서 자신을 엿 먹인 뒤 크리스틴을 죽이러 간 모양이다.
‘의아한 점이라면 어째서 우릴 죽이지 않았냐는 건데.’
크리스틴도 단번에 죽이려 했다는 걸 보면 목적을 위해선 살인도 불사하지 않는 놈이다.
그런 놈이 자신과 안상철을 굳이 살려서 나무에 묶어놓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럴 이유가 없었으니까.
‘이유야 직접 만나서 물어보면 되겠지.’
절망교의 존 델가도란 놈을 반드시 찾아내리라.
그리 다짐하던 마경록이 문득 잊고 있던 질문을 떠올렸다.
“아, 그러고 보니 크리스틴을 구해준 사람은 누구입니까?”
-마경록 씨도 아시는 분이에요.
“제가 안다고요?”
-검은 낫이라고 하는 한국 플레이어예요. 그가 절 구해줬어요.
‘검은 낫이?’
마경록의 표정이 떨떠름하게 변했다.
약혼녀의 구세주가 다름 아닌 검은 낫이었다니.
‘그 녀석 때문에 내가 이 모양 이 꼴이 됐건만.’
따지고 보면 그의 탓은 아니었지만 남 탓하지 않고는 도저히 이 분노를 다스릴 길이 없었다.
-그나저나 마경록 씨, 부탁이 있어요.
“부탁이요?”
-저희 아버지께서 검은 낫님을 만나고 싶어 하세요. 그래서 말인데…….
통화 속 크리스틴이 주저하다가 말했다.
-예언자님과의 만남을 주선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예언자님이라면 검은 낫님의 위치를 알고 계실 것 같아서요.
“그 정도야 어렵지 않죠.”
-고마워요. 한국에 도착하면 다시 연락할게요.
“예.”
전화가 끊겼지만, 어딘가 불편한 표정의 마경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