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0th Regression of the Max-Level Player RAW novel - Chapter 412
만렙 플레이어의 100번째 회귀 후일담 36화
36. 0회차의 세계선
-저, 저 새끼가 나한테 또 무슨 짓을 하려고…….
황용민의 눈빛에 두려움이 떠올랐다.
머릿속으로는 검은 낫에 대한 안 좋은 기억들이 얽힌다.
서아린을 쫓던 자신과 친구들의 팔다리를 자른 기억.
3라운드에서 유물을 공격하게끔 시켜 페널티에 걸리게 만든 기억.
그리고 자신이 검은 낫임을 밝히더니 이용 가치가 다 했다며 가차 없이 목을 베던 기억까지.
그 모든 걸 속마음의 룬으로 읽어낸 류민은 한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이 자식. 전에 봤을 때보다 더 많은 기억이 주입됐잖아?’
그 예로 속마음의 룬이 없었을 당시, 황용민이 무릎 꿇고 빌었던 회차가 있었다.
살려만 주면 완벽한 네 편이 되겠다고, 아직 이용 가치가 있을 테니 자신을 죽이지 말아 달라고.
그 세 치 혀에 속아 넘어간 류민은 곧 황용민에게 뒤통수를 맞고 죽었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리석은 일이었지. 무슨 생각으로 살려뒀던 건지 원…….’
그 이후로 류민은 황용민을 믿지 않기로 했다.
‘어쨌든 그때의 기억을 지금의 황용민도 가지고 있어.’
그 말은 자신이 실패했던 회차의 기억까지도 이쪽에 넘어왔다는 이야기.
‘앞으로 더 많은 세계선 붕괴가 일어날 거야. 그리되면 세상은 지금보다 더 혼란스러워지겠지.’
경각심을 가진 류민은 황용민을 바라봤다.
놈을 살려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쓰레기 같은 성격은 안 고쳐지는 듯했지만.
“시국이 이런데도 보석상이나 털 생각하고 있냐? 황용민?”
“…뭐! 내가 뭐! 나 아무 짓도 안 했어! 그럼 된 거잖아.”
“그래. 사람이 쉽게 변하지는 않지. 너답다.”
-X발, 꼽 줄라고 찾아온 거야? 뭐야?
황용민의 생각을 읽었지만, 이 정도는 애교로 넘기기로 했다.
생각으로는 뭐든 못하겠는가?
저 양아치가 입 밖으로 내뱉지 않은 것만 해도 장족의 발전이라 볼 수 있다.
‘상황이 변했어도 나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히 가지고 있군.’
류민이 셔틀이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황용민은 무시하거나 얕잡아보지 않았다.
검은 낫에게 당한 게 트라우마처럼 박혀 있었기에 함부로 입을 놀리지 못했다.
더 이상 예전의 류민으로 생각하지 않는듯했다.
“…뭐, 뭐야? 나한텐 무슨 볼일이야? 아까부터 말없이 노려보기만 하고…….”
“그냥 네가 뭐하나 궁금해서 찾아왔어. 그런데…….”
류민이 다가오자, 황용민이 당황하며 뒷걸음질 쳤다.
“아직도 나쁜 버릇 못 고치고 쓰레기 짓이나 하려고 들다니. 이거 손목이라도 잘라야 고쳐지려나?”
“…….”
얼어붙은 황용민의 어깨에 류민이 손을 얹었다.
“넌 알지? 내가 한다면 하는 사람이라는걸.”
“…….”
“처신 잘해. 또 낫으로 목이 썰리기 싫으면.”
“…….”
“대답.”
“아, 알았…어.”
툭툭 어깨를 두드려 준 류민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보고도 믿기지 않는 모습에 황용민은 몇 번이고 눈을 깜박였다.
잘못 봤나 싶었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어깨를 짚었던 그 느낌만은 환각으로 치부할 수 없었다.
“하… X발. 제대로 코 꿰였네.”
한동안 보석상을 바라보던 황용민이 아쉽다는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 * *
떠나는 황용민을 하늘에서 지켜보던 류민이 피식 웃으며 날개를 움직였다.
이젠 완전히 둘의 입장이 바뀌었다.
‘속마음을 들여다보니 나 없는 사이에 문제를 일으키진 않겠어.’
그보다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세계선 붕괴가 생각보다 빨라.’
애당초 이쪽 세계선에 들른 이유도 현재 상황이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여러 세계선의 기억이 엮이며 전 세계가 혼란을 겪고 있었다.
‘당장 데오란트를 막아야 해. 그러려면 압도적인 힘이 필요하고.’
크로노스에게 그랬던 것처럼 엘시스의 환영 감옥 기능으로 함정에 빠트릴까, 싶었으나.
‘통할 리가 없지. 무려 엘시스를 만든 창조신의 자손인데.’
이러면 테라를 끌어올려서 힘 대 힘으로 맞붙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데오란트의 테라는 나를 웃도는 수준이야. 지금으로는 맞대결에 승산은 없어.’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
‘테라를 얻으러 가는 수밖에.’
류민은 시간의 권능을 사용해 다른 세계선으로 이동했다.
여태 이동한 100회차, 101회차의 세계선이 아닌, 0회차의 세계선으로.
* * *
현존하는 세계선은 이랬다.
반복되는 회귀로 만들어진 1회차부터 100회차까지의 세계선.
101번째 회귀 후 공략에 성공하여 각자의 소원으로 나뉜 97개의 세계선.
마지막으로 모든 단점을 없애버린 102번째 세계선.
하지만 간과했던 세계선이 있었다.
바로 0회차의 세계선.
이들 가운데, 류민은 자신이 실패했던 회차의 세계선만은 들리지 않았었다.
딱히 이유가 있진 않았다.
‘어쩌면 실패한 세계선이라 무의식적으로 배제하고 있었을지도.’
하지만 이번에는 이동했다.
자신이 처음으로 실패했던 0회차의 세계선으로.
‘실패한 세계선치곤 생각보다 멀쩡하네.’
인류의 멸망 같은 거창한 아포칼립스를 기대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정상적인 사회는 아닐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막상 와서 지켜본 느낌은 다른 세계선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18억의 인구가 소멸했어도, 세상은 어찌어찌 잘 굴러간다.
‘나라는 존재를 너무 거창하게 생각했나 봐. 난 그저 18억의 인간 중 하나일 뿐인데.’
자신이 지키지 못했다고 세상이 망하는 건 아니었다.
물론 동료들은 지키지 못했다.
서아린도, 민주리도, 크리스틴도.
이곳에선 죽은 사람이다.
생존게임에 실패한 세상이기에 살아남은 동료라곤 아무도 없다.
실패한 0회차의 류민조차도.
이런 곳에 뭐 하러 왔느냐?
‘한가지 가능성을 확인해 보러 왔지.’
류민은 엘시스의 기능을 열었다.
[기능 – 세계선 리와인드]-설명 : 세계선의 과거를 되돌려 볼 수 있다. 이미 지나간 역사이므로 개입은 불가하다.
-1년당 디바인 포스 100,000 소모
한 대상의 과거를 살펴보는 것이 아닌, 세계선의 역사를 살펴보는 기능.
이 기능으로 류민은 살펴볼 작정이었다.
자신이 죽었던 그 시점이 언제인지.
그리고.
‘그 시점의 좌표를 정확히 알고 있다면 시간의 권능으로 이동하는 것도 가능하지.’
즉, 0회차의 류민이 죽는 순간으로 이동하여 힘을 흡수하겠다는 게 류민의 계획이었다.
또 다른 자신이 죽을 때, 같은 세계선에 있다면 힘이 오른다는 걸 확인했으니까.
‘마음 같아선 카오스와 가이아가 살아 있던 시절로 이동해 놈들을 죽임으로써 수백억의 테라를 흡수하고 싶어. 하지만 불가능하지.’
회귀를 반복하여 테라를 쌓는 꼼수는 통하지 않는다.
태초의 신급에 속하는 그들은 회귀의 영향을 받지 않는 법.
회귀해 봤자 새로운 세계선만 생겨날 뿐이다.
테라라는 게 그런 식으로 흡수되지도 않고.
‘결국엔 내 영혼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어. 과거에 이미 죽었던 복사된 나 자신을.’
모조 류민이 죽었을 때 같이 있으면 힘이 흘러온다는 점에서 떠올린 방법.
류민은 즉시 세계선 리와인드 기능을 이용해 역사를 돌려봤다.
그리고.
‘찾았다.’
자신이 죽었던 정확한 좌표로 넘어갔다.
시간의 권능을 이용하여.
* * *
12월 31일 오후 11시 55분.
제야의 종 행사가 있는 보신각 앞에는 수많은 사람이 모여있었다.
모두가 다가올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추운 밤에도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왔다.
류민도 그중 한 명이었고.
‘5분만 있으면 새해구나. 새해가 됐을 때 소원을 빌면 정말로 이뤄질까?’
그런 기대감으로 밖으로 나온 류민이었다.
간절히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었으니까.
“5초부터는 다 함께 카운트다운을 해주시면 되겠습니다! 5… 4… 3… 2… 1…!”
대앵-!
“새해가 밝았습니다!”
“와아아아!!”
새해가 밝자, 류민은 눈을 감고 소원을 빌었다.
‘올해에는 나와 원이. 우리 가족 모두 아프지 않고 행복하게 살게 해주세요.’
더는 황용민 패거리에게 괴롭힘당하고 싶지 않다.
더는 가난하게 살고 싶지도 않다.
류민은 졸업하면 지금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원이와 함께 행복하게 살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킥킥킥. 인간들은 재미있군요. 자신들이 어떤 처지에 있는 줄도 모르고 새해를 축하한다니.]다짐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천사의 등장으로 이계로 잡혀가는 신세가 되고 말았으니까.
‘뭐, 뭐야? 매달 1일에 뭘 한다고?’
좀 전에 천사에게서 설명을 들었지만,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됐다.
그 탓에 커스터마이징 하는 순간에도 별다른 닉네임을 정하지 못했다.
‘여, 여긴 초원이잖아? 뭐가 어떻게 된 거지…?’
꿈으로 치부하기엔 모든 감각이 너무도 현실적이었다.
[그럼, 마지막으로 ‘인벤토리’라고 말하고 안을 살펴보세요. 선물을 준비해 놨으니 말이죠.]집중해서 설명을 듣던 류민은 천사의 지시대로 따랐다.
‘랜덤 룬조각?’
룬조각을 손에 쥐고 ‘사용’이라고 생각하자 메시지가 떠올랐다.
[랜덤 룬조각을 사용하셨습니다.] [축하합니다! ‘시간 역행의 룬’이 나왔습니다!] [획득한 룬이 플레이어의 신체에 자동으로 각인됩니다!] [시간 역행의 룬]-효과 : 죽으면 1라운드 전으로 회귀할 수 있는 룬. 최대 100번의 기회가 주어진다. 기회를 전부 소진하면 룬은 자동으로 소멸한다.
‘이게 뭐야? 죽으면 회귀할 수 있다고?’
사실인지 알고 싶었으나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정신없는 와중 1라운드가 시작되었고.
캬아아악!
고블린 5만 마리가 개떼처럼 달려들었다.
“으악!”
“저, 저걸 어떻게 잡으라고!”
“카, 칼을 들고 있잖아!”
“끄아아! 살려줘!”
“주, 죽고 싶지 않아!”
“제발 꿈이라고 해줘, 제발!”
싸우는 사람은 소수일 뿐.
대다수가 고블린에 지레 겁먹고 도망 다니기에 바빴다.
류민도 마찬가지였으나….
퍽!
“악!”
누군가 어깨로 밀친 탓에 도망칠 타이밍을 놓쳤다.
“키야아악!”
“키이이잇!”
수많은 초록 물결이 류민을 향해 밀려온다.
‘아아…….’
패닉 상태가 된 류민은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했다.
그저 지금 상황이 꿈이라고, 잠시 후면 생생했던 꿈에서 깨어날 거라고.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푹! 푹! 푹!
수많은 고블린에 둘러싸여 난자당할 때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이건 두말할 것 없는 현실이라고.
[당신은 죽었습니다.] [‘시간 역행의 룬’의 발동 조건을 충족하였습니다.] [1라운드 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갑니다.] [사용 횟수 : 1/100] [1번째 회귀를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