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0th Regression of the Max-Level Player RAW novel - Chapter 61
만렙 플레이어의 100번째 회귀 61화
61. 데스매치
번외 게임을 시작하기 전.
천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의논했다.
플레이어만이 아니라 자신들도 대표를 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구역이 통합됐으니 우리도 대표로 안내역을 정해야겠지?] [그래. 아까처럼 네가 하느니 마느니 싸울 순 없으니까.]이 중 누구도 안내역을 자처하고 싶은 천사는 없었다.
구태여 일하고 싶지 않은 건 인간도 천사도 마찬가지다.
[혹시 자원할 천사 있어? 있으면 손들어봐.] […….] […….]열 명의 천사 모두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내가 괜한 걸 물었네.] [일하겠다고 나대는 천사가 있으면 걔야말로 변종일걸?]툭 던진 프리실라의 말에 올리브가 눈을 치켜떴다.
[지금 나더러 변종이라고 한 거야?] [뭔 소리? 네 이름은 입도 벙긋 안 했는데?] [좀 전에 내가 나섰다고 비꼬는 거잖아.] [그렇게 들렸어? 푸흐흐흐, 눈치가 전혀 없진 않네?] [뭐어?] [얘들아, 얘들아! 그만 싸워!]서로가 죽일 듯이 노려보자 동료 천사들이 말리고 나섰다.
천사장을 언급하자 두 천사가 입을 다물었다.
그저 ‘흥!’하고 서로 고개를 돌릴 뿐.
[하던 얘기나 마저 하자. 안내역을 하고 싶은 천사가 없다는 건 확인했고……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누구 좋은 의견 있어?]엘렌의 말에 천사들이 저마다 의견을 꺼냈다.
[랜덤 주사위를 굴려서 안내역 한 명을 정하는 건 어때?] [운에 맡겨보자는 거야? 나쁘지 않은 방법이네. 재미는 없지만.] [아니면 순번을 정해서 돌아가면서 안내역을 맡는 건?] [그건 불공평한 거 같은데? 뒤 순번은 자기 차례가 오지 않을 수도 있잖아. 얼마 안 가면 또 구역을 통합할 텐데.] [그것도 그러네.]이런저런 의견이 오갔다.
고작 안내역 한 명 뽑는 건데도 천사들의 표정은 심각했다.
[뭔가 공평하고 재밌는 방식 없을까?] [이건 어때?]여태 가만히 있던 프리실라가 입을 열었다.
[조금 있으면 구역 대표끼리 싸움 붙일 거잖아? 가장 먼저 죽은 인간의 담당 구역 천사가 벌칙으로 안내역을 맡는 거지.] [오오, 그거 재밌겠는데?] [좋은 아이디어야.] [난 프리실라의 방식이 마음에 들어. 나 말고도 찬성하는 천사?] [나 찬성.] [나도 찬성.]천사들이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자 프리실라의 콧대가 높아졌다.
그때 올리브가 손을 들며 반대 의견을 냈다.
[그것보다는 이렇게 하는 게 어때? 가장 먼저 죽은 인간 말고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인간의 담당 천사가 이기는 거로. 그리고 이긴 천사가 왕 노릇 하기로.] [왕 노릇?] [말 그대로야. 다른 천사들은 왕의 말에 절대복종하는 거지. 예를 들어 누군가를 안내역으로 지목하면 무조건 따라야 해. 왕의 명령이니까.] [그러니까 인간이 이기면 우리도 이기는 거네? 이기면 인간들처럼 왕 노릇도 할 수 있는 거고?] [오오오, 이건 더 재밌겠는데?] [왕이라…… 이거 군침이 싹 도는데?] [정말 기발한 아이디어야, 올리브!]천사들이 이번엔 올리브를 찬양했다.
오직 프리실라만 빼고.
자신의 의견이 무시되자 프리실라의 심기가 불편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프리실라의 얼굴에 비웃음이 떠올랐다.
[흥, 이기는 쪽이 왕이 되는 걸로 제안하다니. 어지간히 자신 있나 봐?] [그럼. 자신 있지.] [그런데 이걸 어쩌나? 우리 구역 대표는 만만치 않을 텐데? 여태껏 해당 구역 1위를 놓치지 않은 인간이거든.] [아, 그래?]프리실라의 자신만만한 표정에 올리브가 속으로 비웃었다.
‘바보 같은 새대가리 년. 해당 구역 1위? 고작 그거 가지고 저렇게 비웃는 거야? 우리 구역 대표가 누군지 알면 놀라서 땅으로 추락하겠네.’
다름 아니라 올리브의 구역 대표는 전 구역 1위를 놓치지 않은 괴물이었으니까.
[그래서? 할 거야, 말 거야?]올리브의 물음에 프리실라가 비웃음을 흘렸다.
[나야 안 할 이유가 없지.] [나도 찬성. 이쪽이 더 재미있어 보여.] [나도.] [나도 자신 있어! 우리 구역 대표도 만만치 않다고!]그렇게 이기는 쪽이 왕이 되는 걸로 내기가 성사됐다.
[방식도 정했으니 이제 시작할까? 올리브, 네가 얘기하고 와.] [알았어.]다시 플레이어들이 있는 곳으로 날아간 올리브가 날개를 펄럭이며 이목을 끌었다.
[그럼 지금부터 통합 대표 선정을 위한 번외 게임을 시작하겠어요! 구역 대표들은 모두 제 아래로 모여주세요!]열 명의 구역 대표가 올리브의 발밑에 모였다.
이윽고 날개를 펴며 신호를 보내자.
드드드드드드!
땅이 울리며 언덕이 솟아올랐다.
순식간에 원형의 언덕 경기장이 만들어졌다.
[이제부터 이 안에서 한 명이 살아남을 때까지 죽고 죽이는 데스매치를 하겠습니다. 경기장 밖에서 죽으면 부활이 되지 않으니 죽더라도 이탈하지 마시길. 그럼 시작하세요!]경기가 시작됐다.
하지만 움직이는 사람은 없었다.
원형의 경기장에서 서로 무기를 쥔 채 노려보기만 할 뿐.
의욕이 없어서가 아니다.
보상이 부족하지도 않다.
동기부여는 이미 충분하다.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몇 번이고 죽였을 만큼 흉흉한 분위기.
그런데도 누구 하나 움직이지 않는 건 탐색하기 위해서였다.
구역 대표를 차지할 정도의 상대라면 다들 한가락 한다는 뜻이니.
‘그래도 나보다 강한 새끼는 없을 거야.’
프리실라의 구역 대표, [초사이코인]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여태 해당 구역 1위를 놓쳐본 적이 없는 실력자 중의 실력자.
그게 바로 자신이다.
상대가 강해봤자 자신에 미치진 못할 것이다.
‘무언가를 해체하는 건 내 전문이지. 그게 인간이든 동물이든 몬스터든.’
그가 이렇게 자신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자신이 가진 [해체의 룬]은 사기적인 룬이었으니까.
‘상대의 몸에 칼을 찔러 박으면 신들린 솜씨로 해체할 수 있다니. 어디에도 이런 사기적인 룬은 없을 거야.’
이미 4라운드 때 312명을 죽이면서 검증을 마쳤다.
그의 룬이 PK에서도 강력하다는 것을.
‘일단 내 검이 박히기만 하면 게임은 끝난 거나 다름없어. 몸이 알아서 해체 작업을 시작하니까.’
예를 들어 상대의 팔뚝에 검을 꽂아 넣으면 룬이 자동으로 발동, 나머지 살을 발라낸다.
마치 귀신 들린 듯 검이 알아서 움직이면서 말이다.
‘룬을 얻고 나서 도축 속도도 엄청나게 빨라졌지.’
실제 직업도 도축업자였기에 해체의 룬이 실생활에서 큰 도움이 됐다.
다른 동업자들마저 놀랄 정도.
‘뭐, 현실보다는 당장 이계에서 살아남는 게 우선이지만.’
그렇기에 남을 죽이고 구역 대표 자리를 뺏은 거다.
남을 짓밟아야 살아남기 쉬우니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구역 대표가 된 걸 후회하고 있었는데 이런 기회가 생길 줄이야. 흐흐.’
지배권만 있으면 누구도 자신을 업신여기지 못한다.
흡사 왕처럼 군림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구역 대표가 된 건 잘한 선택이었다.
‘여기 있는 아홉 명만 죽이면 왕이 될 수 있다, 이거지?’
초사이코인이 눈을 번뜩이며 상대 대표들을 노려봤다.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 게 다들 눈치를 보는 모양이다.
먼저 나섰다간 표적이 될지도 모르니까.
[뭐 하는 거야? 왜 안 싸워?] [빨리 싸우라고! 인간들아!]투견판에 돈을 건 노름꾼처럼 천사들이 하늘에서 고함을 질렀다.
‘뭐야? 진짜 돈이라도 걸었나? 왜 저렇게 부추겨?’
굳이 윽박지르지 않아도 상대 대표들을 모조리 죽일 생각이다.
그건 상대라고 다르지 않을 거다.
‘먼저 나서면 손해니까 저렇게 눈치만 보는 거겠지. 서로 싸우길 기다렸다가 마지막에 끼어드는 게 힘을 덜 쓸 테니까.’
자신도 그럴 생각이었지만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수만은 없다.
초사이코인이 패기 넘치게 경기장의 중앙으로 걸어갔다.
‘어차피 나보다 강한 새끼는 없어. 이 기회에 강한 첫인상을 심어주면 오히려 두려워서 덤비지 못할 거야.’
그러기 위해선 제물이 필요하다.
‘산 채로 껍데기를 발라버려서 누구도 덤비지 못하게 만들어주겠어.’
자신의 퍼포먼스의 희생양이 될 제물이.
‘아무나 먼저 기어 나와라. 그 새끼부터 조져 버릴 테니까.’
한편으론 미안했다.
곱게 보내도 되는 걸 첫인상을 위해 극한의 고통을 줄 생각이었으니까.
‘어쩔 수 있나. 나한테 먼저 덤비는 놈은 그냥 운이 없다고 생각해야지.’
누가 나설지 몰라도 불쌍하다고 여기고 있을 때.
저벅저벅-
도전자가 걸어 나왔다.
‘드디어 나왔나? 내 첫 희생양이?’
초사이코인이 상대를 자세히 훑어봤다.
자신의 키보다 커다란 낫이 인상적인 플레이어였다.
‘거참 무식하게 큰 낫이네. 그나저나 저런 무기는 흔치 않을 텐데…….’
창이나 곡도는 봤어도 낫을 든 플레이어는 여태껏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낫? 낫이라……. 닉네임에 낫이 들어가는 경우는 봤어도 실제로 낫을 든 놈은…….’
거리가 좁혀지자 초사이코인의 시선이 자연스레 상대방의 머리 위로 향했다.
닉네임을 확인한 그 순간, 초사이코인은 충격에 입을 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거, 검은 낫? 닉네임이 검은 낫이라고?’
익히 들어본 닉네임이다.
집계 결과를 발표할 때면 항상 전 구역 1위에 올라가 있던 그 이름이니까.
‘설마 동명이인? 아, 아니야. 닉네임이 중복되진 않을 텐데?’
초반 닉네임 설정 시 초사이어인이라 지으려고 했지만 중복된다고 거절당한 경험이 있다.
‘그, 그럼 저 사람이 정말로 랭킹 1위에 오르던 그 검은 낫이라고? 레벨 30의?’
초사이코인이 스르륵 들었던 검을 내렸다.
30레벨이라는 숫자는 시작부터 전의를 잃게 했다.
* * *
[저 인간 왜 저래?] [패기 있게 나서나 싶더니 갑자기 왜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어?]지켜보던 천사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장 먼저 나서던 초사이코인이란 인간이 검을 내리며 전의를 상실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
표정도 뭔가 나사 하나 빠진 듯 멍청하다.
[프리실라. 쟤 너희 구역 대표 아니야?] […….]대답할 기분이 아닌지 프리실라는 이만 빠드득 갈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저 병신 같은 인간이. 코앞까지 왔는데 왜 가만히 있는 거냐고!’
낫을 든 인간이 지척까지 다가왔음에도 초사이코인은 여전히 멍청하게 서 있었다.
싸울 의지 자체가 없어 보였다.
짜증이 솟구치는 그때.
[킥킥, 키흐흐흣…….]앞에서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프리실라가 표독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올리브. 지금 상황이 웃겨?] [키흐흣, 미안. 하지만 웃긴 걸 어떡해.] [뭐가 웃긴대?] [저 인간 좀 봐. 우리 구역 대표를 보고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잖아.] [너희 구역 대표라고?]프리실라가 다시 한번 상대를 쳐다봤다.
거대한 낫이 인상적인 인간이었지만 글쎄…….
처음 보고 떨 만큼의 위압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우리 구역 대표가 너희 대표한테 겁먹었다고?] [그렇게 보이는데?] [헛소리하지 마, 올리브. 해당 구역 1위가 장난인 줄 아니? 우리 구역 대표는 1라운드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1위를 놓치지 않았다고.] [키흐흣, 해당 구역? 해당 구역 1위는 아무나 하는 거 아니야?] [뭐?] [우리 대표는 전 구역 1위를 놓치지 않았는데?] [전 구역 1위? 이게 어디서 거짓말을…….] [아직도 눈치 못 챘어? 랭킹 좀 본 천사들은 닉네임 보면 알 텐데?]올리브의 말에 천사들이 그제야 인간의 닉네임을 주의 깊게 쳐다봤다.
뒤늦게 알아본 천사들이 웅성거렸다.
아무리 인간에 대해 관심이 없는 천사들이라도 랭킹 1위가 누군지는 알고 있었다.
프리실라 또한 마찬가지였다.
‘거, 검은 낫이 올리브의 구역 대표라고……?’
프리실라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정말 저 인간이 그 검은 낫이라면 자신의 대표는 상대도 되지 않을 거다.
그때.
[어!?]번쩍하는 반사광이 지나가더니 인간의 머리가 툭 하고 떨어졌다.
초사이코인의 머리였다.
천사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프리실라를 쳐다봤다.
황당한 나머지 프리실라는 화를 낼 생각조차 못 했다.
반격할 새도 없는 허무한 탈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