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388
제387화
휘오오오오…
유림의 몸에서 그림자가 분리되었다.
인간의 형상을 한 그림자가 신유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머리를 쓸어넘겼다.
“쿨럭… 설아, 강설이야?”
“…듣고 있어.”
“대단해… 아무래도 스승님의 제자 중에 내가 제일 못났나 봐. 나… 엄청 강한 줄 알았는데 말이지….”
“…그런 소리 하지 마.”
“있잖아… 너희와 부딪히면서 알게 됐어.”
“…뭘?”
신유가 강설의 손을 잡았다.
“유림이 아니란 걸. 이곳에서 나가는 방법이… 유림이 아니었단 걸….”
“…뭐?”
“나였어. 히히… 나였나 봐. 환상이 정말이었나 봐. 약의 부작용이 아니었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신유의 환상은 실존했다.
“약의 환상 따위가 아니야…. 꿈의 마수가 내게 깃들어 속삭였어. 유림을 죽여야 한다고… 그래… 처음부터 나는 유림이 아닌 나를 죽여야 했어… 그걸 지금에야 알았어….”
꿈의 마수.
두 번째 관문에 똬리를 튼 간악한 존재.
녀석이 우리를 꿈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던 것이다.
스윽…
“유림… 강설… 끝이야. 꿈에서 깰 시간이야.”
“…….”
“결국엔… 네가 옳았어, 강설.”
야차를 극복한 유림이 없었다면, 결코 경지에 오른 신유를 쓰러트릴 수 없었을 것이다.
최후의 최후, 강설이 옳았다.
“…유림, 미안했어.”
“즐거웠어, 신유.”
“천천히… 와, 기다리고… 있을게.”
투우욱…
[뒤틀린 꿈의 관문에서 전대미문의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추가 보상을 획득합니다.]
[꿈에서 깨어날 시, 꿈에서 획득한 능력을 일부 획득합니다.]
……
셋은 둘이 되었다.
쿠구구궁…
[꿈에서 깨어날 시간입니다.]
[꿈의 세계가 무너집니다.]
……
마치 만상 도서관에서 있었던 일처럼, 수평선 너머의 세계가 붕괴하고 있었다.
그 시작은 강설과 유림에게서 가장 먼 곳에서부터였다.
세계가 시시각각으로 좁아지고 있었다.
대륙이, 허공으로 떨어져 내렸다.
스르르륵…
유림과 강설은 손을 포개고 붙어 앉았다.
“하하….”
“하….”
눈보라가 멈추었다.
눈이 내리는 것이 멈춘 것이 아니었다.
기상이 그대로 멈추었다.
내리던 눈은 공중에 뜬 채,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세상의 심장박동이 정지했다.
곧, 세계가 사라질 것이다.
어쩌면 커튼콜과 함께 장대한 음악이 울려 퍼질지도 모를 노릇이다.
“긴… 꿈이었어, 그렇지?”
“정말로… 그랬지.”
둘은 이야기했다.
끝에 다다른 세계의 이야기는 제법 소탈했다.
“정말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많은 일이 있었어.”
잔혹한 지옥에도 발을 담갔지만, 빛으로 인도했던 수많은 사람.
골런.
산토스.
장막의 인물들과 유현까지.
모두 강설이 가진 영혼이었다.
주마등이란 말이 어울릴 정도로 스쳐 지나간 사람 모두가 떠올랐다.
“설아.”
“응.”
“내게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면… 야차는 탄생하지 않았을까?”
“…아마도.”
하역장의 쓰레기장에서 발견된 소녀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녔다. 그런 존재가 사람들을 죄악에 굴레에 빠트리는 마령이 되다니.
미래를 알고 있음에도, 믿기지 않는 말이었다.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정말 많은 선택을 했고… 정말 많은 후회를 했어.”
“그런데도 마지막까지 선택했지.”
드드드드…
세계가 무너지는 진동이 여기까지 전해졌다.
“이제, 돌아가자.”
“…….”
“…유림?”
유림이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지?”
“설아, 사실은… 마지막 선택이 남아있어.”
“너와 돌아갈 거야. 그게 내 선택이야.”
“아니, 남은 선택은 네 몫이 아니야. 내 몫이야.”
“…무슨,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아아!”
시간이 없었다.
세계의 붕괴는 점점 가속할 것이다.
“야차가 어떻게 탄생한 줄 알아?”
“…….”
“세상을 부정해서야. 야차는 늘 이런 세상이라면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
“…그게 무슨 상관이야?”
“이 꿈을 통해… 그 근원이 무너졌어.”
뚝…
뚝…
유림이 눈물을 흘렸다.
“세상을 좋아하게 된 거야. 더는 미워하지 않게 된 거야….”
“돌아가자… 제발….”
고개를 흔드는 유림.
“야차는 더는 존재할 수 없어. 세상을 부정할 수 없다면… 탄생조차 하지 못한 거니까.”
그렇다면 부정하라고 말하려 했으나, 강설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건, 유림이 아니다.
야차일 뿐.
“내 선택을… 이해하지?”
“…이해해.”
야차로 돌아가는 건 간단한 일이다.
유림의 기억을 전부 없애면 되었다.
그러면 이곳에서 보냈던 일들이 전부 없었던 일이 될 테니까.
다시 세상을 부정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흑… 없었던 일로 할 수 없어, 설아. 우리에게 있었던… 나 유림에게 있었던 모든 일을… 없었던 일로 만들 수 없었어.”
스윽…
강설은 말없이 유림을 끌어안았다.
“헤헤… 그림자에 안기는 기분, 이상해.”
“싫어?”
“생각보다 따뜻해서 놀랐어. 늘… 무서워했거든, 어두운 게 싫었어.”
“…….”
“근데 이젠 아니야.”
유림이 강설을 바라보았다.
“넌 내게 새카만 빛이었어.”
“…새카만 빛?”
“빛이 흘러나오는 대로 쭉 따라 걸으면… 무섭지 않았거든. 함께였거든. 너는 어때?”
“…뭐가?”
“가면 속의 내가, 이렇게 나약해서… 볼품없어서 혹시 싫진 않았니?”
강설은 입술을 떨며 웃었다.
“가면과는 상관없는 얘긴걸.”
쿠구구궁…
진동이 강해졌다.
붕괴는 어느새 가까워졌다.
“떠나야 해, 설아. 네게 멈춰진 세계는 어울리지 않아.”
“…넌 어떻게 되는 거야?”
“사라지는 거야, 이대로.”
“…….”
“하지만 남아있겠지.”
그녀는 이미 결심했다.
“네 안에서, 이야기가 되어.”
“이야기….”
– 스승님이 말했어. 강해지는 데 목적이 꼭 필요한 건 아니라고.
– …정말이야?
– 응, 대신 이렇게 말씀하셨지. 에헴…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 …이야기?
– 응! 모든 강함은 이야기를 따라온대. 음… 그러니까 내가….
유림이 그때 못다 한 이야기를 건넸다.
전하지 못한 마음을.
“이젠 내가 너의 이야기야.”
“유림… 난….”
부드러운 촉감이 덮쳐왔다.
유림이 강설의 눈에 입 맞추었다.
“이제 네가 날아가 보는 세상을, 나도 볼 수 있을 거야.”
“…….”
쿠궁…
그들이 머물던 집이 저 밑으로 추락했다.
이제 곧 그들 또한 사라질 예정.
“줄곧 빼앗아온 내가… 도리어 나눌 것이 있다는 것에 감사해. 늘 네게 받기만 했으니….”
“유림, 함께인 거지?”
“응! 함께야. 아… 그리고….”
그녀가 웃었다.
“생일 축하해, 설아.”
“…….”
“정말로 행복했어, 나는… 나는 이 꿈이… 정말로 행복했어요….”
“…….”
터져 나오는 감정.
“나는… 으… 나는 너무… 너무 헤어지기 싫지만… 으… 미안해요… 으으으… 내가… 야차여서… 정말로 행복한 꿈이었어요.”
툭…
무너지는 벼랑으로 밀쳐지는 강설.
울고 있는 유림이 이 순간만큼은 애써 웃었다.
“당신에게 나는, 어떤 꿈이었나요?”
세계가 멀어진다.
유림과의 마지막이다.
고작 한 평짜리 공간에, 다시 둘이 남았다.
그녀의 곁에 늑대가 남았다.
늑대는 말했다.
“쓸쓸할 거야. 혼자 남는다는 건.”
“맞아.”
“괴롭겠지. 사라진다는 건.”
“맞아.”
“잊혀질 수도 있어.”
“…….”
유림이 늑대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아.”
“…네 말이 맞아. 그렇겠지. 영원히 간직하며 살아갈 거야.”
둘이 서로에게 기댔다.
“고마웠어, 야차.”
“나야말로. 고마웠어, 유림.”
“사람에게 상처받고, 사람으로 치유하네.”
“세상 모두가 그래.”
“하하! 왜….”
유림이 사라지는 세계를 보며 말했다.
“온 세상이 멈췄는데, 눈물만큼은 멈추질 않는 거지? 으….”
“당연하잖아. 적응해야 해.”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언젠가는… 그가 신이라도 된다면?”
“에이… 그건….”
“믿어, 뭐든 해내던 사람이잖아.”
“…믿어볼까?”
그녀가 울음을 멈췄다.
“그래, 이번엔 야차를 믿어볼래.”
야차에게 기댄 유림의 모습은 사람 인(人)자를 닮아 있었다.
* * *
모든 이가 꿈에서 깨어나려 했다.
[꿈에서 깨어납니다.]
[대장정의 중간 정산이 이루어집니다.]
……
[보상을 책정합니다. 획득한 능력 중 일부만을 가져갑니다.]
그건 야차의 방식이 아니다.
야차에게 패한 세계는 모든 것을 빼앗긴다.
[야차(夜叉) 최후의 힘이 발현됩니다.]
[관문 돌파 중 획득한 모든 능력이 사용 가능해집니다.]
[깨달음! 새로운 능력을 깨우칩니다.]
[지속 : 고통 내성을 깨우칩니다.]
[깨달음! 새로운 능력을 깨우칩니다.]
……
수없이 확인되는 메시지.
강설은 몸의 변화를 느꼈다.
머리가 전보다 길었고, 몸은 다부졌다.
신체 변화뿐만이 아니다.
지금, 그는 야차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야차 상태의 강설은, 밤까마귀가 되었던 유림과 흡사했다.
말단에서 그림자로 추정되는 까만 기운이 흘러나왔으며…
얼굴에 웃는 가면이 씌워졌다.
파지직…
갑자기, 그것의 하관을 제외한 모든 부분이 부서져 사라졌다.
스윽…
가면을 벗고 손에 쥔 강설은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가면은 새하얬다.
강설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지만, 입은 웃고 있었다.
– 당신에게 나는, 어떤 꿈이었나요?
“…나도야.”
스물여덟의 생일을 마지막으로, 꿈이 닫혔다.
“정말로… 행복한 꿈이었어, 유림.”
칠흑의 미궁 제2 관문.
뒤틀린 꿈의 관문 종료.
마침내 꿈에서 깨어났다.
사망자는 없으나, 남겨두고 온 이는 있다.
이젠, 두 번 다시 같은 겨울을 맞이할 수 없었다.
[준비하세요, 위대한 한걸음이 임박했습니다.]
……
또다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