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448
제447화
해가 지는 시각, 거기에 더해 평소에는 있을 리가 없는 인기척.
구르쟌트에서 강설 일행이 발각되는 동시에 공격받을 것이 분명했다.
“……군요.”
“……다!”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
강설은 눈을 감고 상대의 어조에 집중했다.
‘…케시이다.’
원정 시작과 동시에 멀리서 마주쳤던 케시이족. 굉장히 호전적이고 난폭했던 것으로 기억되었다.
‘발각되는 즉시 벌집이 되겠지.’
일반적인 조우의 과정이 상대의 신원 확인과 대응 결정이라면, 케시이족은 이 모든 걸 패스하고 공격을 가해왔다.
‘충돌하면 이쪽도 케시이족을 죽이게 돼. 그건 피해야 한다.’
진을 추종하는 무리.
그러나 그들이 악에 가담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오히려 의회 또한 그들의 방해를 받을 수도 있었고.
우군이 된다면 정말로 좋겠지만, 다 떠나서 적이 되는 것만큼은 피해야 했다.
‘대화할 틈도 없이 싸움에 휘말릴 것 같은데….’
이대로 그들을 흘려보내는 게 최선일 듯했다.
‘문제는 반대쪽 일행인데….’
그래도 소란이 없는 걸 보니, 카루나와 카렌이 알아서 잘 처신한 듯했다.
“돌아간다!”
“오!”
두두두두…
거리가 멀어지자, 외곽에 말을 세워뒀던 건지 말발굽의 소음과 함께 흩어졌다.
“하아… 간 것 같군.”
“우리 방금 죽을 뻔한 것 맞죠?”
“이 친구가 있으니 둘 중 어느 한쪽이 죽기는 했겠지. 케시이가 아마 죽이려고 달려들었을 테니까.”
“충돌을 피한 건 정말 현명했어요. 하마터면….”
폐광의 어스름 방문자들은 케시이족으로 밝혀졌다. 강설은 의문이 담긴 눈으로 지안을 바라봤다.
“구르쟌트가 무너졌으니 당연히 인근의 케시이족도 정찰 범위를 넓혔을 거야. 미처 고려하지 못했군. 미안해.”
“구르쟌트를 넘보진 않는 것 같은데….”
“마기가 침습한 땅이니까. 대대적으로 정화하지 않는 이상 머물고 싶지 않겠지.”
지안은 귀를 후비며 마저 대답했다.
“거기다 그들에게 있어서 땅이 갖는 의미는 좀 더 클 테고 말이야. 이렇게 더럽혀진 땅이면… 굳이 품에 안고 싶지 않을 거야.”
한바탕 소동을 치른 일행은 기운이 쭉 빠졌다.
“무사한 거야?”
카렌이 아장아장 걷는 탄시아의 손을 잡고 나타났다.
“그래, 그쪽은?”
“특별히 신호는 없어서 숨어 있었어. 뭔가 수상한 힘을 품고 있던데.”
“진의 힘이야. 일전의 진려처럼.”
“아! 그녀의 힘. 확실히 비슷하네.”
카루나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해가 질 거 같은데, 묵을 만한 곳을 찾아보겠습니다.”
“흩어져서 찾아보자.”
“예.”
일행은 여럿이 나뉘어 주변을 조사했다. 구르쟌트에서 살았던 기억이 있는 지안에게 의지하기엔 그가 이곳에 살았던 시절이 너무도 오래전이었다.
꽤 긴 시간을 찾아 헤맨 끝에, 모두가 함께 묵을 만한 건물을 발견했다.
“먼지가 좀 쌓이긴 했는데, 마법을 이용하면 금방 깨끗해질 거예요.”
“편리하군요.”
“실생활 밀착 마법이라고 해야 할까… 뭐, 아무튼요.”
꼬르르륵…
신디오의 배 속에서 우렁찬 함성이 울려 퍼졌다.
“앗….”
“배가 고프신 거군요.”
“그러…게요? 아직 식사를 못 했잖아요.”
“주방이 멀쩡한지 확인해보겠습니다. 적당히 먹을 걸 만들어보죠.”
“좋아요!”
신디오는 신이 나서 탄시아를 끌어안았다.
“아앗!”
“말랑말랑… 말랑말랑… 어라? 근데….”
신디오가 고개를 갸웃하고 물었다.
“지안은 어디 간 거죠? 아까부터 발견 못 했는데….”
“…….”
강설의 고개가 구르쟌트의 슬럼으로 향했다.
* * *
“…오랜만이라고 해야 하나?”
지안은 먼지 쌓인 걸로 모자라 벌레 똥이 군데군데 엿보이는 집 안으로 들어섰다.
낡은 가옥이다.
참으로 낡은 가옥이고,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단박에 느껴지는 장소다.
그렇지만 밉지 않았다.
지안은 이 장소가 밉지 않았다.
“종착지인가… 정착지인가….”
이곳은 그 일이 벌어졌던 장소다. 지안이라는 존재가 새로 태어나고 악으로 덧씌워진 장소.
그의 예전 집이었다.
가난한 창부였던 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집답게, 세간살이는 정말로 필요한 것들만 있었다.
십수 년이 지나 돌아온 이곳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가구가 모두 그대로 있네….”
나무는 썩었고, 천은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처럼 오염되었다.
집은 다른 이에게 넘어가지 않은 듯했다. 이곳에서 살인이 벌어졌다는 것과 살인자가 살았다는 소문이 퍼져나간 덕분일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에 마물들의 습격을 받아 탄광촌은 문을 닫았다. 결국, 지안 이외의 사람이 이 가옥에 발을 디디지 못했다는 의미.
이건, 소박한 기적이었다.
단지 그 기적 또한 저주받았을 뿐.
“그래, 여기였지. 모든 게 여기서 시작됐어.”
저벅…
저벅…
지안이 옷장의 문을 열었다.
바스락…
십수년 간 없었던 변화에 화들짝 놀란 벌레들이 흩어졌다.
지안은 놀라지 않고 차분하게 옷장으로 들어갔다. 다리를 모으고 팔로 그것을 끌어안았다.
태어나기 전과 같은 모습.
끼이익…
지안은 옷장 문을 당겨 닫았다.
어렸을 때는 넉넉했던 공간이, 지금은 꽤 작았다. 그래도, 문과 문 사이의 틈만큼은 일정한 간격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 지안, 돌아왔구나.
“…엄마?”
환상일 것이다.
환상이 분명한데도, 대답할 수밖에 없다.
지안은 어머니에게 거역해본 적이 없다.
– 내 아가, 엄마를 보러 온 거야?
“아니야, 난….”
어머니의 환상이 가시질 않는다.
다만, 그 형상이 크게 일그러져 있다는 것쯤은 눈치챌 수 있었다.
폭행을 당해 퉁퉁 부은 얼굴이, 이상하게도 떠오르지 않았다. 흐릿한 잔상으로 남아 존재했다.
– 여전히 엄마 속을 썩이는구나, 지안.
“미안해… 미안….”
– 왜 날 구하지 않았어?
그의 어머니는 이제 와서 지난 일을 추궁했다.
“…뭐?”
– 왜, 왜! 날 그 악마에게 내버려 뒀냐고!
“아니야, 난… 구하려 했어….”
– 거짓말! 이제는 거짓말까지 늘어놓다니! 지안, 어디까지 나쁜 아이가 될 셈이야!
“으… 으으으… 무서워….”
어렸던 기억은 그에게 족쇄였다.
숨었던 옷장은 그에게 심연이었다.
외면했던 그 순간은 그에게 영원이었다.
– 죽어! 지안! 나쁜 아이는 벌을 받아야 해!
“윽… 으으윽… 죽어야 해, 나 같은 건….”
그때, 갑자기 이질적인 소음이 끼어들었다.
“지아아아안!”
콰아아아아아앙-!
문짝이 박살 나는 소리.
그러나 풍경은 변하지 않았다.
서걱…
‘…어?’
목이 붕 뜨는 감각.
목이 베인 걸까?
무언가 끊어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머리에 피가 돌았다.
피잉…
보랏빛이 되었던 얼굴이 다시 붉게 물들었다.
쿠우우웅-!
“켁… 케에엑… 케에엑….”
손과 발이 말을 듣지 않았다.
연체동물이라도 된 것처럼 사방으로 뒤틀렸다.
그래, 발작이었다.
바닥을 형편없이 기어서 도달한 지안은 누군가의 신발과 부딪혔다.
“…어?”
“…지안.”
꽤 낯이 익은 신발.
아직 사리분별이 되지 않던 지안은 그것이 최근 함께 다니던 누군가의 신발이라는 걸 눈치챘다.
“아… 아아….”
강설이었다.
스윽…
강설이 그의 몸을 바로 세웠다.
툭…
그리고, 그의 목에 메였던 밧줄을 끊었다. 밧줄은 목을 바짝 졸라 흉측한 멍을 남겼다.
그제야, 숨이 막혔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죽으려는 거냐? 여기가 네 끝인 거냐?”
지안이 목을 매만지며 숨을 거칠게 쉬었다.
허억… 허억…
후우우…
지안의 눈빛이 변했다.
꽤 차분한 눈빛으로 돌아온 그가 씨익 웃었다.
“고마워.”
가면일지, 본성일지 모르는 얼굴로 강설에게 말했다.
“친구.”
강설은 인상을 쓰며 말했다.
“죽지 마라.”
“…그럴 생각이야.”
* * *
지안이 신디오와 일행이 기다리고 있는 숙소로 돌아온 후, 가장 먼저 신디오의 주먹질을 맞이해야 했다.
퍼억…
퍽!
“죽어! 죽어야 해!”
“이상하다! 환상은 끝난 것 아니었나?”
“너 같은 건 죽어! 어째서 죽으려는 거야!”
“하하하! 아프다고! 진짜 죽으면 살인이야!”
신디오가 이를 갈았다.
“이… 이이… 당신 때문에 식사가 늦어졌잖아요!”
“그거 때문?”
“그럼! 또 뭐가 있는데요!”
지안이 신디오의 반응에 히죽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미안, 나 때문에 식사가 늦어서. 잠시 들러야 했던 곳이 있었어.”
“…끝난 거예요?”
“그래… 이제 끝났어. 더는 볼 일 없다고.”
드륵…
강설이 의자를 끌어 지안을 거기에 앉혔다.
“앉아 있어라. 곧 음식을 내올 테니.”
지안은 정말로 오랜만에, 따뜻한 식사를 대접받았다.
음식의 온도를 말함이 아니었다.
그냥, 따뜻한 식사였다.
“…맛있군.”
강설은 그의 목에 난 자국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을 아꼈다.
식사를 마친 후, 신디오의 노력 덕택에 깔끔해진 거실에서 모두가 잘 준비를 했다.
코오오…
코오오오오…
“이 꼬맹이… 코 고는데? 윽….”
음냐냐…
비탄이 검은 용의 품에 안겨 신음을 내뱉었다. 새카만 용이 벽난로 앞에서 비탄을 껴안고 잠이 든 모습은 평범하지 않았지만 평범해 보였다.
타락조차도 그들의 곁에 머물 수는 없었다. 세계의 안식이라도 찾아온 것처럼 평안한 밤.
타닥…
탁…
벽난로를 앞에 두고 지안이 신디오에게 물었다.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거 아니었나?”
“벌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지, 죽었으면 좋겠다고 한 적 없어요.”
“이거나 그거나….”
“달라요!”
“…상냥하군.”
“…다르다고요.”
신디오가 머뭇거리다가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지안, 당신은 과거의 기억 때문에 고통받고 있죠? …난 기억을 잃었어요.”
“…처음 듣는 얘기로군.”
“마법사가 되기 전 기억이 없어요. 심지어 어떻게 마법사가 된 건지도.”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거야?”
“신기하죠? 사실은… 비밀이 하나 더 있어요.”
“나한테 말해줘도 되는 거야?”
“당신 목에 있는 그 흉을 보니까 말해줘도 될 것 같아요.”
“…동정하지 말라고.”
“뭐래….”
신디오가 먹다 남은 호두를 꺼냈다.
“잘 봐요.”
으지지직…
그녀는 손쉽게 호두를 으깼다.
엄지와 검지만으로.
“…….”
“신기하죠?”
“대단하군… 보통 악력이 아닌데….”
“악력만이 아니에요. 저는 남들보다 힘이 세요. 그러니까… 엄청?”
“어째서 마법사가 된 거지? 용병이 되었다면 떼돈을 벌었을 텐데.”
“그러니까 그게 의문이에요. 왜 난 마법사가 된 걸까? 기억을 잃기 전에는 뭐였을까 하는….”
“아마 대단한 얼간이일 거야. 그 몸으로 마법사나 하고 앉았으니까.”
“호호! 제 생각이랑 같아요.”
신디오가 지안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손을 잡았다.
“…….”
“죽지 마요, 함부로.”
“정인가?”
“정이겠죠. 내가 임무를 맡은 동안엔, 당신… 죽을 수 없어요.”
“그래. 어쩔 수 없지.”
그때, 뒤에서 강설이 말했다.
“말 걸어서 미안한데,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야.”
“깜짝이야! 안 잤어요?”
“큭… 큭큭큭… 음흉하게 다 지켜보고 있었군.”
강설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
– …뭐지 이 새끼들?
– 아빠 안 잔다! 개수작 부리지 마!
– 뭔가 다들 무척 화나 있는데….
강설이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충돌이다. 함정이었나?”
“…뭐?”
“무슨 소리예요?”
“안 들려? 놈들이 돌아왔다.”
그 말에 지안과 신디오가 화들짝 놀라 서로를 쳐다보았다.
“정말이야?”
“그래, 태평하게 벽난로까지 피웠으니 아마 여길 노리고 있겠군.”
“…싸울 거야?”
“아직, 한 가지 수단이 더 남긴 했어.”
저벅…
저벅…
강설이 2층으로 올라가며 예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 북부로 떠나신다고요? 그럼, 이게 필요하겠네!
– …이게 뭡니까?
– 진려 특제, 나지롱 동전!
– …나지롱 동전?
– 케시이족을 만나면 사용하세요. 한 번밖에 사용할 수 없으니 신중하게!
– 케시이족을 만날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 그건 모르는 일! 설령 그런 일이 평생 없더라도 행운의 부적처럼 여기면 되잖아요!
하아……
동전을 손에 쥔 강설이 2층에 다다랐다.
끼이익…
그가, 창문을 열어젖히는 순간.
파아아아아아앙-!
“윽….”
거대한 창이 그의 지척까지 날아왔다. 심장을 노렸으나, 신유가 창대를 붙잡아 멈추었다.
부르르르…
창대가 떨려왔다.
상대의 적의가 선명하게 담겼다.
“놈이 모습을 드러냈다!”
“화살을 쏴!”
주변의 요소에 자리 잡은 케시이족.
“믿어봅니다, 진려.”
티이잉-!
동전이 튕겼다.
[진려의 나지롱 동전을 사용합니다.]
[동전에 담긴 진의 힘이 개방됩니다.]
퍼어엉-!
화아아아악-!
동전이 폭파하며 공중에 작은 구름이 만들어졌다. 구름은 하나의 형상을 만들었다.
엄지를 척! 하고 내민 진려의 모습을 한 구름이었다.
남은 건 케시이족의 반응.
“저, 저건….”
“그녀다! 쿤나를 도둑질한 고양이다!”
“진려다! 공정한 쿤나를 훔쳐 간 여자!”
“생포해라!”
강설이 이를 갈았다.
“…이럴 줄 알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