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83
제82화
툭.
투욱.
마지막까지 회관을 둘러싸고 위협했던 시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쓰러졌다.
강설은 냉엄한 표정의 카렌을 돌아보았다.
“…잘했어.”
“뭐가?”
“용서하지 않은 거.”
그녀는 아직도 군트에게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강설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진정해. 마을 주민들이 놀란 상태니까.”
“군트가 한 말 기억해?”
“워낙 지껄인 말이 많아서 전부는 기억 못 해.”
“약하면 악해지지도 못하냐는 얘기 말이야.”
“…기억해.”
군트의 환경이 불우했던 것은 맞았다.
하지만, 그것이 그가 저지른 악행을 변호할 수단이 되어주지는 않았다.
그저, 울분에 찬 악인의 외침이었을 뿐.
그러나 단 하나, 그의 말 중 생선 가시처럼 목에 박힌 문장이 있었다면 바로 그것이었다.
– 약하면… 악할 권리마저 박탈당하는 건가요?
– 무슨 소리를….
– 약하니까, 착해야 하고 가만히 주어진 삶을 받아들여야 하나요?
카렌이 이마를 짚었다.
그녀에게는 그토록 약한 자가 끝도 없는 악의를 가지고 일을 저질렀다는 게 꽤 충격인 것 같았다.
“그 나름의 운명에서 꺼내지기 위한 몸부림이었던 걸까?”
“설령 그렇더라도, 군트는 방향을 잘못 잡아 도리어 가라앉은 경우야.”
“그래.”
강설은 그렇게 말하며 죽은 군트의 사체를 뒤졌다.
슥-
다행히, 단단한 병에 보관된 액체는 멀쩡히 그 자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잠이 드는 약을 획득합니다.]
[위선자의 유품이 생성됩니다.]
[제한 시간이 종료되거나 보상을 선택하면, 모험을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강설은 이 시점에서 모험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그는 보상을 확인하지 않고 군트가 머무는 집으로 향했다.
철컥.
평소에도 대범하게 문을 열어놓고 지내는지, 군트의 숙소 문은 쉽게 열렸다.
생각보다 원하는 물건을 찾는 과정은 쉽게 진행되었다.
“찾았다.”
[군트의 가방을 획득합니다.]
강설이 자연스럽게 카렌에게 가방을 넘겼다.
그러면서 소지품에서 투척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단검을 함께 건넸다.
“확인해 봐.”
“잠깐만….”
찌익.
카렌이 가방의 손잡이를 살짝 뜯어내자 천에 둘러싸인 가루가 보였다.
“맞는 것 같아.”
“마을 사람들에게 가자.”
그들은 회관으로 다가갔다.
회관의 문을 사이에 두고 쟈마드와 사람들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으으으… 오지 마! 이 괴물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요정은 환영하고 트롤은 박대하니 조금 섭섭하군.”
강설이 피식 웃으며 쟈마드에게 다가갔다.
쟈마드는 마치 같은 아이가 저지른 잘못을 선생님에게 일러바치는 아이처럼 강설에게 말했다.
“나를 괴물 취급하는데?”
“놀라서 그런 거야.”
“흥, 이래서 나는 인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뭐든 자기중심적이거든. 우주가 자신들을 위해 돌아간다고 믿는 종족이지.”
“그럴지도.”
“뭐, 됐다. 할 일을 마쳤으니 잠이나 자련다. 끝까지 고생해라 요정.”
카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일을 겪고 나서 장난기가 사라지게 된 건지 그녀는 평소처럼 장난을 걸어오지 않았다.
휘리릭-!
쟈마드가 그림자 공간 속으로 사라지자 강설은 마을 주민들이 모여있는 회관의 문을 두드렸다.
“이제 괜찮습니다, 나오셔도 됩니다.”
“정말입니까? 그 괴물들이 더는 없는 겁니까?”
“전부 바닥에 쓰러져서 움직이지 않습니다.”
“군트 선생… 아니 군트는요?”
“…죽었습니다.”
“…….”
끼이익…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시체들.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주민들의 인상을 찌푸리게 만드는 괴물들의 사체를 바라보던 마을 어른이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세상에 이런… 어째서 이런 일이….”
“…다 끝났습니다.”
“이게 전부, 군트 그 악마가 벌인 일이란 말입니까?”
강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회관 밖으로 빠져나오는 인원들을 세어보며 이들에게 아무런 피해가 없었음을 확인했다.
“군트가 해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해약…이라니요?”
“안개 병의 해약 말입니다.”
“…맙소사. 그, 그… 양은 충분한 겁니까?”
“마을 사람들이 복용할 정도는 될 것 같습니다.”
“어… 저기 그러니까 다른 마을은 그러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강설이 고개를 저었다.
“모두 죽였다고 실토하더군요. 이번 왕진을 핑계로 사람들을 모두 저렇게 괴물로 만들어버린 것 같습니다.”
“그럴 수가… 정말 끔찍한 자였구나, 군트 놈은!”
“아무튼, 서둘러 환자들에게 해약을 복용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이보게들, 움직여! 다들 나서서 이분을 좀 도와드리자고!”
그때부터는 일사천리였다.
사람들 중 일부가 나서서 시체들을 수레에 실어 한곳에 모으고 불태웠다.
그리고 그 안에는 군트도 포함되어 있었다.
거대한 솥단지와 그 안을 채울 물.
그리고 깨끗한 천을 긁어모아 상태가 위중한 사람들의 몸을 정성을 다해 닦았다.
퐁.
쪼로로로…
진하고 농밀한 액체가 솥단지 안으로 쏟아져 내렸다. 곧, 솥단지 안의 액체의 색이 뿌옇게 변했다.
강설은 그것을 또 다른 유리병 안에 담아 보았다.
[잠 깨는 약]
등급 : 희귀
적정 레벨 : 없음
무게 : 0.2kg
특정 증상에만 효과를 보이는 약.
군트에 의해 만들어졌다.
잘못 복용해도 큰 문제는 없다.
특수 능력 : 잠이 드는 병에서 회복합니다.
직관적이고 알기 쉬운 효과.
강설은 고개를 끄덕이며 약효가 거짓이 아님을 확인했다.
강설의 검증을 끝으로, 약은 일정 분량으로 나뉘어 유리병에 담겨 환자 모두에게 돌아갔다.
꿀꺽… 꿀꺽…
환자가 약을 도로 토해내지 않게 간병인들이 환자들의 목울대를 움직여 그것을 삼키게 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모든 작업을 마친 마을 사람들과 강설은 그들을 다시 회관에서 지켜보았다.
그리고.
“으… 으으으….”
“흐으으으….”
환자들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저, 정말이야!”
“약이 효과가 있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흑… 흐윽….”
“구원이다.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날 수가 있나!”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는 와중, 카렌과 강설의 관심은 온통 한 여인에게 가 있었다.
강설이 무리 없이 물안개 마을에 정착할 수 있게 도와주고 카렌이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불안했던 마음을 다잡을 수 있게 도왔던 여인.
“세라, 일어나. 잠에서 깰 시간이야.”
카렌이 세라의 차가운 손을 붙잡고 고개를 숙였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기적을 찬양하는 울음소리와 대비되어, 강설과 카렌의 침묵은 더 무거워졌다.
움찔.
“…어?”
움찔… 움찔…
“손가락이 움직여! 세라, 일어나!”
카렌이 호들갑을 떨며 그녀의 손을 꼭 붙잡았다.
“으… 으으… 아파… 언… 니….”
“세, 세라! 일어난 거야?”
“너무 꽉… 쥐었어.”
“어, 그래? 미안. 손 놓을게.”
세라의 눈이 스르륵 뜨였다.
[물안개 마을의 모든 생존자를 치유했습니다.]
[업적 ‘병마의 극복’을 달성합니다.]
[칭호 「돌팔이」를 얻습니다.]
– 성-불
– 이 지옥에서 해방이다 ㅠㅠ
– 진짜 군트 새끼 때문에 이게 무슨 고생이야!!
세라는 삐걱거리는 몸을 어렵게 일으켜 침대 머리맡에 허리를 붙였다.
“저, 결국 잠에 빠졌던 거예요?”
“그래. 잠에 빠져 있다가 지금 막 일어난 거야.”
“…그랬구나. 근데 제가 어떻게 깨어난 거죠?”
“그건….”
순간, 사람들이 대화를 정지하고 강설의 말에 집중했다.
이 모든 일을 끝낸 것도 그였고 그 의미를 정리할 이 역시 그였으니까.
그만이 그럴 만한 자격이 있었다.
“해약을 찾았어.”
“아! 군트 선생님께서 해내신 건가요? 다행이다….”
“…….”
“그런데, 군트 선생님은요?”
강설의 눈앞에 선택지가 주르륵 떠올랐다.
[물안개 마을의 세라가 군트의 소재를 묻습니다.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1. 이 모든 건 군트의 짓이다.
2. 군트는 악마야! 그자가 널 지옥에 떨어트렸다.
3. 마을 사람들이 합심한 덕에 그 괴물을 몰아낼 수 있었다.
4. 군트는 죽었다.
……
강설은, 그녀에게 말했다.
“군트 선생님은 떠나셨다.”
“네? 떠났다고요?”
“세상에 아픈 사람이 이곳에만 있는 게 아니니까.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 작별 인사도 없이….”
마을 사람들이 강설을 쳐다보았다.
군트를 악마라고 매도해주길 바라면서.
하지만, 그것이 모두의 분을 풀게 해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세라에게는 상처를 남길 것이다.
카렌이 강설의 손을 붙잡았다.
그녀는 세라가 이 이상 고통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지금만이라도 세상의 어두운 면은 가리고 밝은 면을 보여주고 싶어 한 것이다.
“세라, 군트 선생님이 너에게 잘 지내라고 하셨다.”
“…다행이에요. 어? 그런데 저기 저 불은 뭐예요?”
시체들을 구덩이에 파묻고 불태우고 있었으니, 마을 어디서든 볼 수 있게 연기가 치솟고 있는 건 당연했다.
“뭐, 이것저것 태우고 있다.”
“아, 환자들이 사용한 물건을 태우는 거구나.”
“대충 그런 것들.”
“보기만 해도 따뜻하네요.”
카렌이 세라의 손을 잡고 말했다.
“이제 나쁜 꿈은 끝이야, 세라.”
* * *
강설 일행은 일을 마무리한 뒤, 다음 날이 되어서 거점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앞선 장거리 모험에서 쓴맛을 보았던 강설이 가까운 도시인 아우데닌으로 이동해 거점과 거점 이동을 이용하려는 것이다.
조금 걷는 데 시간이 소모될 예정이었지만, 어차피 거점에서 마차를 이용한다면 시간을 훨씬 단축할 수 있을 것이다.
카렌은 어제의 일이 기억에 남았는지 강설에게 말을 툭 내뱉었다.
“고마워.”
“뭐가?”
“그렇게 말해준 거.”
“군트가 떠났다고?”
“응.”
“어디로든 떠난 건 사실이잖아.”
– 지옥으로 떠났으니까.
– 솔직히 군트 개무서웠음 ㅡㅡ
– 그게 뭐가 무섭냐? ㅋㅋ 엄마랑 자면 안 무서움
– 뭔가 강하진 않았는데, 상대하기 싫은 느낌.
– 리얼 흑화한 빌런이었어.
– 대화가 더 소름 끼쳐서 ㄷㄷ
– 스노우맨은 멘탈 개짱짱하네. 진짜;;
카렌이 강설의 말에 피식 웃고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1점 줄게.”
“무슨 점수야?”
“점수를 다 채우면 널 진심으로 섬길게.”
“흥미가 생기네. 몇 점 만점이야?”
“100점.”
“지금 몇 점인데?”
“1점.”
– ㅅㅂ 안 해!
– (진지) 이 미친 치킨 게임을 그만두겠습니다.
– 배점 드럽게 짜다 ㅋㅋㅋ
– ㄴㄴ 이거 수련회 메타임 ㅋㅋ 저러다 마지막에 10만 점 줌
– 그리핀도르에 응원 점수 100만 점~!
– ㄹㅇ ㅋㅋㅋ
이번 모험에서 얻은 보상 상자를 들고 이동하던 쟈마드가 말했다.
“그만둬라, 스노우맨. 저 요정에게 대꾸해주지 마.”
– 뭐지, 이건? 설마! 미래의 내가 하는 말?
– S…T…A…Y…
– 쟈마드가 진성 국밥 소환수다!
– 이딴 미연시는 때려치우자고!
“거기 트롤은 조용히 좀 해줘.”
“쳇, 그래서 이건 언제 열어보는 거냐?”
“무거워? 가여워라… 들어줄까?”
“…말을 말지.”
보상 상자를 아직도 열지 않은 이유는, 이걸 끔찍한 일이 일어난 바로 그 장소인 물안개 마을에서 여는 건 아닌 것 같다며 멀리 가져가서 열자는 카렌의 제안 때문이었다.
“장난이야. 그럼 슬슬….”
“카렌, 이거 받아.”
“음? 편지?”
“세라가 부끄러우니까 마을에서 벗어나면 너에게 주라던 편지다.”
스윽-
강설이 카렌에게 편지를 건넸다.
카렌과 강설은 그 편지를 함께 읽어내려갔다.
– 안녕하세요, 언니? 스노우맨 님이 제 부탁을 들어주셨을지 모르겠네요.
카렌의 표정이 다채롭게 변했다.
그녀가 그림자가 된 후 처음 만난 접점이었던 세라, 그녀의 편지였기에.
– 두 분 덕분에 저와 마을 분들은 모두 행복해졌어요. 정말 감사해요.
흐뭇해졌다가.
– 사실, 편지를 드린 건 언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예요. 놀라셨나요?
놀랐다가.
– 언니를 처음 본 순간부터, 동경했어요. 제 꿈에 가장 가까운 분이었거든요! 놀랄 만큼 아름답고, 놀랄 만큼 강인하시잖아요. 저는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서 늘 강해지고 싶었어요.
“세라, 넌 충분히 강해.”
– 강해지면, 조금 더 많은 사람이 제게 의지하지 않을까요? 전 약하고 느려서 사람들이 가끔 답답해할 때가 있어요.
“…….”
– 강해지면, 어떤 기분일까요? 세상을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할 수 있을까요? 저는 영영 알지 못하겠지만, 알고 싶어요
카렌이 편지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 언니는 강한 사람이에요. 언니라면 언젠가 제가 궁금해하는 답을 알 수 있지 않을까요? 그때가 오면, 이곳을 지나가더라도 꼭 잠시나마 들르셔서 알려주셨으면 해요.
카렌은, 편지의 남은 글자를 한 자 한 자 힘주어 읽었다.
“언젠가, 모두가 괴로워하지 않는 세상이 올까요?”
“…….”
“하… 참….”
강설과 카렌은 이 편지의 마지막 문장을 읽어나갈 때쯤 누군가의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군트였다.
– 영웅들은 게을러. 날 구해주지 않았잖아. 날… 날….
강설이 카렌에게 물었다.
“무슨 생각해?”
그녀가 편지를 고이 접어 넣으며 말했다.
“대충… 부지런해져야겠다는 생각? 트롤! 내가 부지런해지는 것을 기념해서 당장 그 상자를 열어봐야겠어! 내려놔!”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군. 언제는 예의가 아니라면서 다 죽어가는 얼굴로 나중에 열자고 하더니.”
“어허! 토 달지 마! 새로 얻은 장비를 양분 삼아 쭉쭉 나아가야지! 자, 개방!”
– 야, 야야 우냐?
– (책상 밑으로 고개를 넣고) 야! 얘들아! 이 새끼 운닼ㅋㅋㅋ 울엌ㅋㅋㅋ
– 아, 안 울어!(폭풍 오열)
– 괜히 쟈마드한테 떽떽거리기 ㅋㅋㅋ
– 쟈마드가 인성이 참 좋아
– 트롤이니까… 그 뭐시기… 트성으로 하자
– 그래, 트성이 참 좋아
카렌이 쟈마드가 내려놓은 상자를 발로 차, 열어젖혔다.
철컥-
화아아아아-
[위선자의 유품을 확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