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90
제89화
툭.
유적 사냥꾼 중 한 명으로 보이는 남자는 그렇게 죽었다. 다소 허망한 죽음이었다.
“…아무래도 이들의 추적이 들킨 것 같습니다. 유황 해골이 이를 알아채고 이들을 따돌리려 한 것이겠죠.”
마엘이 침중한 얼굴로 사내의 눈을 스르륵 감겨주었다.
“유미라의 사냥단은 거의 20여 명이 아니었습니까? 이렇게 쉽게 무너졌다고요?”
“모르죠, 이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쟈마드가 강설에게 말했다.
“흐으음… 유황 해골이라면 이들이 분쇄된 것도 무리는 아니야.”
“뭐?”
“유황 해골은 호전적인 부족답게 개개인의 전투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특히 지도층의 실력을 얕볼 수 없어.”
“그들이 나섰다는 거야?”
“아마도. 그들이 전부 나서지는 않았을 거고, 이자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이자가 아직도 숨이 끊어지지 않았던 거는 상대의 전력 중 아주 일부만 나선 것으로 봐야겠지.”
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어찌 됐든 아군이 줄어들었다는 건 기분 좋은 소식은 아니군.”
강설이 남자의 시체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20명의 무리를 도륙할 정도로 강하다…. 유황 해골,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지금 시체가 된 이 남자에게 일어났던 일을 유미라 일행 모두가 경험했을 수도 있었다.
최악의 경우, 추격자 중 생존자가 한 명도 없을 수 있었다.
‘다 죽었을까? 흠….’
마엘도 있고 카렌도 있고 쟈마드도 있다.
하지만, 상대는 어지간한 소규모 부대 정도는 되었다.
4명의 인원으로 요그나툰을 뒤집어엎어야 하는 상황은 아직도 변함이 없었다.
강설이 툭툭 털고 일어났다.
“가자, 요그나툰으로.”
카렌이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그래, 쓸데없이 길바닥에서 시간을 버리지 말자고. 뭐가 됐든 요그나툰에서 생각하는 게 좋겠어!”
“단순해서 좋겠군.”
“명확한 거지, 트롤께서는 큰일을 앞두고 겁이 나시나 봐?”
“흥, 유황 해골 따위야 전부 이 몸의 아래다. 대부족 회의에서 이 몸이 나타날 때마다….”
“그만! 과거 팔이 듣기 싫어!”
“네 몬트라 얘기도 썩 듣기 좋았던 건 아니었다.”
“어라? 그러네. 그럼 우리 사이좋게 서로의 얘기를 들어주도록 하자.”
“그 몬트라 얘기는 포기할 수 없는 거냐?”
“응.”
– 단호.
– 나는 얘기가 하고 싶으니 너의 얘기도 귀담아듣겠다!
– 몬트라 못 잃어 ㅋㅋㅋ
– 소환수들이 죄다 꼰대들이야…
강설 일행은 시시콜콜한 얘기를 하며 계속해서 요그나툰으로 향했다.
이미 되돌아갈 수도 없게 멀리 와 버린 상황. 여기서 국경보다 오히려 요그나툰이 가깝게 느껴질 정도였다.
후우우웅…
[마엘이 주술 : 산들바람의 부축을 사용합니다.]
[열기에서 보호받습니다.]
유황 지대에 들어섰는데도 오히려 쾌적함을 느끼고 있는 이유는 아마도 마엘의 역할이 절대적일 것이다.
“마엘, 주술을 누구에게 배웠지?”
“제 스승은 이 고서들뿐입니다.”
“훌륭하군. 고서들은 죄다 은유적인 표현을 써서 배움을 갈구하는 이들도 성과를 얻기가 매우 어려운데….”
“매일 책을 곁에 두면 자연스럽게 뜻을 알게 되더군요. 쟈마드 님은 주술 고서를 읽지 않으십니까?”
쟈마드가 요그나툰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고서에서 구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곳에는 선대 주술사들을 죽일 비술도 없었고, 부족의 식량난을 해결할 방법도 적혀 있지 않았으니까.”
“지배자의 삶과 주술사의 삶은 쌓아가야 하는 게 다른 법이죠. 아마도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포기하셨을 겁니다.”
“푸흐흐… 이젠 온전히 주술에만 힘쓸 수 있으니 그림자가 된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란 말이지.”
카렌이 웃었다.
“나도 그 말엔 찬성! 배고플 때 주인을 조르면 맛있는 것도 해주고 세상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해.”
– 이쯤 되면 누가 주인인 거죠?
– 스노우맨 = 식모
– 등급이 높은 소환수들은 모두 이런 건가요?
대화와 침묵이 번갈아 가면서 일행을 찾아왔고, 그 모든 과정을 지나 마침내 그들은 도착했다.
화산, 요그나툰에.
일행은 전부 그 장엄한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봤다.
“오랜만이군, 요그나툰은.”
“이제 다 온 거지? 트롤들은 어딨지?”
마엘이 주변을 살피고 말했다.
“화구 쪽에 모여 있을 것 같군요.”
“그 말이 맞을 거다. 애초에 그들의 계획은 전부 화구에 만든 제단에서 이뤄지는 일들이니까.”
강설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올라가자.”
* * *
요그나툰 화산은 산 그 자체의 영역만으로도 굉장히 거대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런 산을 장비도 없이 오른다는 건 굉장히 고된 일이었다.
“하아… 하….”
“꽤 높군요.”
“요그나툰이니까.”
그들이 힘들어하는 이유 중 또 한 가지는 트롤들이 오르내리는 길이 아닌 정비되지 않은 다른 길을 통해 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부터는 주의해야 한다.’
흔적을 들키면, 그들이 예상하지 못한 때에 유미라 일행처럼 습격을 받을 수 있었다. 절대로 그렇게 돼서는 안 됐다.
‘주도권을 갖는 건 우리여야만 해.’
그들이 가장 방심한 순간, 가장 치명적인 칼날을 유황 해골의 심장에 쑤셔 넣어야 한다.
부족한 공격 인원을 그렇게 상쇄해야 했다.
“드디어… 다… 왔군요.”
마엘의 산들바람 주술로도 쉽게 해소되지 않는 거대한 열기가 화구로부터 흘러나왔다. 카렌을 제외하고는 일행 모두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강설은 화구 끄트머리에 우뚝 서서 전경을 바라보았다.
“저게… 제단이군.”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지만, 어마어마한 규모군.”
화구 전체에 특이한 쇠사슬이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꼭대기가 뭉툭한 피라미드와 흡사한 모습의 제단을 떠받치고 있었다.
거대한 구조물인 제단은 한눈에 보기에도 많은 병력을 수용할 것 같았다.
강설이 화구 근처에 널리 퍼져있는 유황 해골 경계병들을 살펴보고 있을 때, 메시지가 떠올랐다.
[유황 해골 모험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이 모험은 매우 위험합니다.]
[이 모험은 연계 모험이므로 다음 모험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휴식을 건너뜁니다.]
[다음 모험을 시작합니다.]
[열세 번째 모험이 시작됩니다.]
[모험 13. 유황 해골]
모험 13. ‘유황 해골’
노비라에서 유황 해골 부족이 벌인 일은 아직도 생존자들의 가슴 속 깊은 상처로 남아있습니다.
터전은 불태워지고, 생존자 중 일부는 유황 해골 부족에게 끌려갔습니다. 당신은 그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유황 해골 무리를 추격했고 마침내 그 무리를 따라잡았습니다.
아직, 아직 희망이 있습니다.
지금이라면 붙잡힌 생존자들을 모두 되찾아올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 기괴한 구조물에 붙잡혀간 사람들은 아직 염원하고 있을 겁니다.
누군가 그들을 구해주기를.
네베니아는 그들을 버렸지만, 아직 당신은 버리지 않았습니다.
목표 : 유황 해골의 의식 저지 혹은 생존자 절반 이상 구출.
주의, 이 모험은 매우 위험합니다.
현재 남은 시간 「23 : 59」
– 가슴이 웅장해지는 모험 설명문이다…
– 아직, 당신은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치? 응 그치?
– ??? : 글쎄… 이건 좀….
– 규모 실화냐? 더럽게 크네;;
강설 일행은 화구에 도착하자마자, 숨 고를 새도 없이 전력 분석에 들어갔다.
“경계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 그래서 여기까지 접근할 수 있던 거지만 자신이 있다는 건가?”
“언뜻 보이는 바로는 이들은 유황 해골 중 일부에 불과합니다.”
“그래, 맞다. 유황 해골은 인근에서 손꼽히는 대부족답게 막대한 세를 자랑하지. 제단의 규모가 제법이지만 이곳엔 놈들의 일부만 와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이 허술한 경계도 말이 되지 않아.”
“그렇다면 지체할 시간이 없겠습니다. 인질들을 구출하는 데 있어서 약간의 머뭇거림도 그들의 생사를 가를 겁니다.”
강설이 마엘과 쟈마드의 얘기를 귀담아들으며 작전 회의를 주관했다.
“놈들이 원신제를 펼치기 위한 준비를 해뒀겠죠?”
“그럴 겁니다. 미리부터 푸르가의 주의를 끌어뒀을 테니 적절한 때를 골라 인간들을 제물로 바칠 겁니다.”
쟈마드가 턱을 긁적이며 말했다.
“이래서야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도 확신하기가 어렵겠어. 놈들이 제물의 목숨은 붙여뒀겠지만, 정신 주술이나 고문을 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은 못 하니까. 스노우맨, 뭔가 생각해둔 게 있나?”
강설이 스르륵 눈을 감으며 조용히 읊조렸다.
“있어, 있기는.”
“하긴, 무슨 수가… 뭐? 있다고?”
쟈마드는 놀란 눈으로 강설을 바라보았다.
요그나툰에 도착한 후 얼마 되지 않는 그 짧은 시간 내에 강설은 어떻게 방법을 떠올린 것일까.
– 유황 해골은 납치해간 사람들을 제물로 바쳐 푸르가를 이용할 속셈이다.
사실, 강설은 처음 쟈마드에게서 원신제에 대한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어떤 방법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는 처음부터 원신제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푸르가라는 원시 신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알지 못했다. 그래서 한 차례 검증이 필요했다.
“마엘.”
“말씀하시죠.”
“미리 준비가 되어있다는 건, 진짜 원신제가 끝나는 데까지 얼마나 소요된다는 겁니까?”
“원신제는 준비는 거창하지만, 막상 본 의식은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원신들이 워낙 변덕이 심하고 지루한 것을 못 참기에 제물을 바치고 원하는 것을 요구하는 정도로 끝이 납니다.”
“그 원신제라는 거… 우리도 치를 수 있는 겁니까?”
“네? 그게 무슨….”
쟈마드가 강설의 말에 눈이 커졌다가 돌연 폭소했다.
“크하하하! 기가 막힌 생각이로군. 그래, 너라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쉽지 않을 거다.”
“맞습니다. 푸르가는 제사의 주체가 달라지는 것은 문제 삼지 않겠지만, 제물이 없는 것에는 모욕을 느끼고 우리를 불태워버릴 수도 있습니다.”
“제물… 내가 알기로 원신제의 제물이 꼭 생명일 필요는 없다고 알고 있는데.”
“뭐, 그런 편이지. 보통 구하기 쉬운 인간들을 주로 제물로 바치지만 원신들이 좋아할 만한 보물이나 기물들을 제물로 바치기도 한다.”
“그럼… 이건 어때?”
강설이 소지품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마엘이 안경을 추켜올리며 그것을 살핀 후, 이렇게 말했다.
“이건… 아무리 푸르가라도 혹할 수밖에 없겠군요.”
이로써 계획의 방향이 잡히고 다양한 얘기들이 오고 갔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계획이 완성되었다.
* * *
‘끝이다.’
유미라는 그렇게 생각했다.
스스로와 유적 사냥꾼들의 힘을 과대평가한 것일까.
유황 해골이 그들에게 보낸 단 두 명의 트롤에게 20명에 달하는 인원들이 늑대에게 물어뜯기는 양들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한 점으로 뭉쳐있던 인원들은 전부 찢어졌고, 생사도 알 수 없었다.
‘그 괴물이… 전부 죽였어.’
조(爪), 혹은 클로 형태의 무기를 사용하는 트롤과 거대한 도끼를 휘두르는 트롤.
둘 다 어마어마한 실력자였다.
한 명이었다면 모르겠지만 둘을 동시에 상대하려니 죽을 맛이었고, 실력자가 유미라밖에 없는 무리에서 그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상황이 이 지경까지 오고 만 것이다.
‘심지어 놈들의 대장으로 보이는 트롤은 나서지도 않았어….’
그런데도 패배했다.
이건, 가망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었다.
천에 하나 만에 하나라는 기적이 존재하는 한, 목숨이 위험하더라도 유미라는 제단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키보가 아직, 저곳에 살아있을 것이기에.
“어쩔 거야, 미라야.”
“지르모…. 넌 돌아가.”
“죽을 셈이구나? 제단으로 들어갈 작정인 거지?”
“…….”
“나도 데려가.”
지르모.
키보 무리 중 그녀와 죽이 제법 잘 맞는 남자였다.
무리가 뿔뿔이 흩어졌지만, 다행히 지르모는 그녀와 함께 있었다.
화구 근처에서 한참의 실랑이 끝에, 결국 둘은 제단으로 함께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방법? 수단? 지혜?
가진 게 없는 상황에서는 그마저도 사용할 수 없었다.
오직 정면 돌파만 남았을 뿐.
그런데 그들이 무기를 부여잡고 몸을 일으키던 그때, 인기척이 느껴졌다.
혹시 잃었던 동료인가 해서 곧장 손도끼를 휘두르지 않았던 유미라는 후회했다. 그곳에, 트롤 무리가 서 있었기 때문에.
“이, 이 새끼들!”
“미라야! 안 돼!”
후우우웅-!
유미라가 혼자서 트롤들에게 돌격했다.
그녀의 돌격은 나름 합리적이었다.
놈들은 기껏해야 몇 명 되지 않는, 덩치는 예사롭지 않았지만 기세는 평범한 트롤들이었다.
유미라는 그들이 단순한 순찰조에 불과해 보이니 서둘러 처리할 수 있을 거라 예상했다.
팍-!
하지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어?’
시야가 뒤집히며 하늘이 보였다.
언제, 어느새 당한 건지도 모르게 쉽게 제압당한 것이다.
“미라야!”
“쉿… 모두 죽고 싶으냐?”
“…인간 말을 한다고?”
여태 마주한 트롤들은 알아듣지도 못할 괴상한 소리를 지껄였는데, 지금 눈앞에 있는 트롤은 또박또박 인간의 언어를 사용했다.
유미라가 어떻게 된 일인지 영문을 몰라 하고 있을 때, 무리 중 한 명의 트롤이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유미라 씨, 오랜만입니다.”
“…누구냐?”
그녀를 아는 것처럼 행동하는 트롤의 눈은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유미라는 그 눈빛을 어디선가 마주한 적이 있었다.
“설마… 스노우맨?”
트롤이 어설픈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웃고 있는 듯했다.
“이렇게 또 뵙네요.”
참으로 기묘한 남자, 참으로 기묘한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