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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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6 멘토 아이작 (1)
‘기어이 입학하고 말았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겨울 추위를 피해 자취를 감추었던 참새 무리가 되돌아왔다.
봄과 아침. 메르헨 아카데미 신입생 입학식 날이었다.
입학식의 막은 성대하게 열렸고.
아카데미 광장에 질서정연하게 모인 교복 차림의 신입생들은 각자의 포부와 각오를 되새기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서 주역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신분이 지나치게 높아 실질적으로 법도 위에 군림하는 불합리한 존재가 세 명. 그녀들은 호위병들의 보호 속에서 학생들과 동떨어진 채 입학식에 참여한 채였다.
황녀, 스노우화이트 폰 카이로스 에펠토.
성녀, 비앙카 앙투라제.
무녀, 미야.
전혀 맞물릴 것 같지 않은 세 명의 주역이 같은 교복을 입은 모습은 학생들이 보기에 꽤나 진풍경이었다.
그녀들이 입학한다는 소식은 제르베르 황국에 널리 퍼져 있었다.
그 탓에 이번 기수는 대부분 긴장한 분위기였으나, 막상 교복 차림의 그녀들이 나타나자 저마다 넋을 잃고 말았다.
그야말로 미의 최고점. 세계의 주역이란 위치에 걸맞게 황녀와 성녀, 무녀는 제각기 엄청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으니.
그사이에서 황녀 스노우화이트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좌절스러웠다.
─ ‘훌륭하다, 스노우화이트! 이 기회에 자립심을 기르고 황족에 걸맞은 훌륭한 인물이 되는 거다! 카하하하하!’
‘황제 폐하….’
걸핏하면 카를로스 황제의 호쾌한 목소리가 화이트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 웃는 얼굴에 대고 대놓고 입학을 포기하면 안 되겠느냐고 설득할 용기가 도저히 나지 않았다.
더 좌절스러운 건.
‘꼴찌….’
자신에게 마법학부 입학시험 꼴등이라는 타이틀이 주어졌다는 것. 체면이 서지 않는다.
나름대로 실력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역시 시험 결과란 건 나와봐야 아는 것이었다.
이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자들은 죄다 뛰어난 재능을 타고난 영재.
대륙 최고의 아카데미라는 위상에 걸맞게 엄청난 기량을 지닌 자들이 화이트의 경쟁자였던 것.
하마터면 입학시험에서 떨어질 뻔했던 것이었다.
아니, 어쩔 수 없이 떨어지는 것도 좋았을 것 같기도 한데…. 아니다. 붙지 않았으면 황실에서 얼마나 눈치를 봐야 했을지 짐작도 안 간다.
화이트는 복잡한 심경이었다.
“다음으로 선언문 낭독이 있겠습니다. 신입생 대표, 미야. 앞으로.”
흑진주빛 머리칼을 땋아 내린 무녀, 미야가 단상 앞에 섰다. 여유롭게 웃는 얼굴. 화이트와는 무척 대조적인 표정이었다.
화이트와 미야 사이에는 1등과 꼴찌라는 극과 극의 간격이 존재했다.
화이트는 눈살을 찌푸렸다. ‘꼴찌’라는 타이틀로, 황국과 세계의 미래를 위해 저 인성이 덜 떨어진 무녀와 어떻게 친해져야 할까….
‘우습게나 안 보이면 다행이지.’
얕보이지나 않으면 다행인 것이다.
…막막할 따름이었다.
한편.
무녀 미야는 선언문 낭독을 마친 뒤, 무대에서 내려오다 황녀 스노우화이트와 성녀 비앙카 앙투라제를 곁눈질했다.
‘제르베르의 황녀, 헬리제 교단의 성녀….’
메르헨 아카데미에선 신분 격차가 완화되는 경향이 있다.
배움을 목적으로 아카데미에 입학한 학생 신분인 이상 서로가 서로를 평등하게 대해야 한다는 관습이 있기 때문이었다.
실질적인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결국 사람의 위치란 건 변하지 않는 법.
애당초 아카데미에서 무녀 자신도 특별 취급해주고 있지 않은가. 높은 신분이란 평등하게 대할래야 대할 수 없는 것이었다.
황녀나 성녀도 마찬가지. 전 세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여자들이다.
무녀 미야는 그녀들을 주시하기로 했다. 지금처럼 저들보다 위에 서서 화봉국-호란과 무녀의 위상을 드높일 생각이었으니.
“……?”
황녀 스노우화이트는 미야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고개를 휙 돌려 버렸다.
뭘 그리 걱정하는지 덜덜 떠는 모습. 미야는 아, 하고 입학시험 날을 떠올렸다.
계단에서 한 남학생을 발로 찼을 때, 자신을 겁에 질린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지.
황녀와 처음으로 눈을 마주친 순간이었기에 확실히 기억에 남아있었다.
미야는 다시 생각하기로 했다. 황녀는 경계 대상에서 빼도 괜찮겠다고.
……
이미 결과는 벌어졌고, 어깨는 무거웠다.
황녀 스노우화이트는 조국의 미래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해야만 했다. 자신은 황녀니까 당연한 것이라며.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제 다짐은 변하지 않아요, 메를린…! 지금이 적기라구요.”
임무, 첫 번째. 무녀 미야와 친해지기.
오늘은 메르헨 아카데미에 입학한 첫날이다.
조만간 반 배정 평가를 치르고 나면 황녀 스노우화이트는 D 클래스로, 무녀 미야는 A 클래스로 갈 것이 뻔한 상황.
입학 후 초반부에 앞으로 함께 지낼 멤버가 정해지는 법이니, 화이트는 이 시기를 노리기로 한 것이었다.
학생 식당. 기념비적인 입학 첫날이니 만큼 학생 식당에서 식사하기로 한 황녀 화이트는 식사 중인 무녀 미야를 쳐다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이내, 학생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황녀님과 무녀님이 한 자리에…’, ‘살면서 이런 광경을 볼 줄은 몰랐는데’ 따위의 대화가 그들 사이에 오갔다.
황녀와 무녀가 한 자리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역사적으로 진귀한 광경이었으니.
메를린은 학생들 눈치를 보며 화이트에게 가까이 다가가 손차양으로 입을 가리고 말했다.
“황녀님, 식판은 제가….”
“아뇨, 제가 들게요.”
“예?”
“언제까지고 떠먹여지면서 살 순 없으니까요.”
메를린은 아련해졌다.
“…성장하셨군요, 화이트 황녀님.”
“이, 이런 일로 성장했단 소릴 들을 정도로 무능하진 않았는데요?!”
카를로스 황제의 명령. 자립심을 길러라. 화이트도 막상 그런 부분이 싫지는 않았다.
기왕 메르헨 아카데미에 입학했으니 이 시기를 성장의 계기로 삼기로 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고작 식판 드는 일로 성장했다는 소리를 들으니 화이트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동안 사람들은 자신을 어떤 시선으로 쳐다보고 있었단 말인가.
“자, 그럼.”
“알고 있어요…. 같이, 식사를, 해야겠죠…!”
음식이 담긴 식판을 양손으로 든 채, 화이트는 무녀 미야에게 각오에 찬 눈빛을 보냈다.
그러든지 말든지, 미야는 무덤덤하게 호위 마법사를 뒤에 두고 음식을 먹을 뿐이었다.
“…….”
막상 함께 식사하려니 깃털이 가슴속을 간질이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무섭긴 했다. 하지만 막상 새로운 환경에서 직접 친구를 만들 생각을 하니 화이트는 약간 설레는 감정을 느껴서 뺨을 붉히며 입술을 우물거렸다.
아무리 인성이 글러 먹은 사람이래도, 필시 저 무녀가 화봉국-호란 국민들에게 추앙받는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그런 걸 수도 있잖아. 알고 보니 착한 애였다든지.’
화이트는 성선설을 믿는다. 그 만큼 살벌한 권력 투쟁으로부터 동떨어진 그녀였다.
화이트는 상상했다.
무녀 미야와 함께 식사하면서 안면을 트고.
함께 수업을 듣거나 시험을 치르면서 엮이다가.
어쩌다가 공감대를 찾아서 점점 서로에게 마음이 열리다가.
끝내 무녀 미야도 착한 구석이 있는 사람이었구나, 하고 깨달으면서 거리낌 없이 그녀를 대하게 되는 것.
‘완전 청춘…!’
그런 상상에 이르니 화이트는 급격히 기분이 좋아졌다. 무녀와 친구가 돼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 괜찮을 거야.
황국과 세계의 평화? 그런 거 잠시 내려놓자. 그저 스노우화이트 폰 카이로스 에펠토로서, 미야라는 동기와 친해지는 거야.
그제야 화이트는 근심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겁에 질려 있던 그녀의 표정이 한층 차분해졌다. 여유로운 미소도 입가에 걸렸다.
‘오…!’
화이트의 호위 기사, 메를린 아스트레앙은 감탄했다. 화이트에게서 여유가 느껴지기 시작했으니.
자, 이것이 화이트의 첫걸음이었다.
그녀는 식사 중인 미야에게로 사뿐사뿐 다가갔고.
“으헉!”
철푸덕!
“…….”
“…….”
앞으로 고꾸라져 미야에게 식판을 엎고 말았다.
그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포크를 쥔 미야의 손이 뚝 멈췄다. 뜨거운 양송이 스프가 흑옥빛 머리칼을 타고 뚝뚝 흘러내렸고,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음식물은 미야의 교복에 달라붙어 스스로의 양념과 기름을 덕지덕지 묻혀 버렸다.
학생들은, 화봉국의 호위 마법사는, 메를린은, 휘둥그레진 두 눈으로 믿기지 않는다는 듯 그 상황을 지켜보았고.
넘어진 탓에 고통에 신음하던 화이트는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닫고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버렸다.
묵직한 침묵이 흐르는 학생 식당에서,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화이트는 안절부절못하며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떨리는 팔이 허공을 방황했다.
“저저저저저, 저기, 미, 미, 죄송합니…, 아니, 미안…! 이, 일부러 그런 건 아닌…!”
“음….”
할짝. 미야는 자기 머리에 엎어진 스프를 손가락으로 떠서 살짝 핥았다.
붉은 도화살 화장을 한 순한 눈이 화이트 쪽으로 돌아갔다.
대뜸 피식 웃는 미야.
“…재밌네.”
그 한 마디에, 화이트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호위 마법사는 곧장 일어나 손수건으로 미야의 몸을 닦아주려 했으나 그녀가 손으로 막았다. 괜찮다는 웃음만 내보여서 오히려 보는 이들은 소름이 끼쳤다.
스프를 뚝뚝 흘리면서, 미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인상적인 인사야. 마음에 들어, 스노우화이트.”
저 눈빛.
기회를 봐서 죽이려고 하는 거다. 분명하다.
화이트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짐승 무리에게 내몰린 순록처럼, 학질에 걸린 사람처럼 몸을 덜덜 떨었다.
미야는 호위 마법사와 함께 자리를 떠나갔고.
화이트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했다.
“화, 황녀님이 무녀 상대로 기선제압 했어…!”
“국력의 차이를 보여주시려는 건가?”
“화이트 황녀님…, 보기보다 무서우신 분이군.”
“대국적인 식판 엎기였다…!”
흥미진진해하는 학생들.
화이트는 뒤에 서 있는 메를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도와달라는 표정. 그러나 메를린은 이마를 턱 짚은 채 아무런 말도 꺼낼 수 없었다.
화이트의 눈가에 눈물이 핑 돌았다.
…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