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178)
* * *
“지금부터 B 클래스 C조 공신제 회의를 시작하마!”
마법학부 수업동 오르핀관, 소회의실.
나를 포함한 여러 학생들이 각자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내가 속한 조였다.
앞에는 칠판을 등진 채 자신만만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트리스탄 험프레이가 서 있었다. 녀석의 호기로운 목소리가 회의 시작을 알렸다.
“우선 조장부터 투표로 뽑지! 조장은 나다! 동의하느냐?!”
투표로 뽑자며, 멍청아.
“저기, 나도 조장 하고 싶….”
“나다.”
“응…! 그, 그래…!”
“만장일치로 지금부터 내가 조장이다!”
놀라울 정도로 불합리하네.
나야, 누가 조장이 되든 상관없어서 잠자코 있었다.
회의는 조 이름을 무엇으로 할 것인지,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각자 맡은 종목에서 어떤 전략을 취할 것인지 따위로 이루어졌다.
조장인 트리스탄이 승리를 향한 욕구가 강했기에, 회의는 열정적으로 진행되었다.
뭐, 다들 마찬가지였다. 꽤 즐거운 분위기라 나도 내심 들떴다.
망할 조별 과제면 모를까. 이 회의는 모두가 공신제를 즐기기 위해서 진행하는 거였으니까.
……
교정이 활기를 띠었다. 다들 공신제 준비에 한창이었다.
공신제는 오로지 체육만 하는 행사가 아니라 3년에 한번씩 열리는 성대한 축제나 다름없었다. 이곳은 이곳대로 축제의 열기를 띠는 것이었다.
학생들은 수업동을 비롯한 여러 장소에 장식품이나 구조물을 매달았고.
덕분에 메르헨 아카데미는 평소보다 화려한 인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간 여러 무서운 사건들이 벌어졌던 탓에, 학생들은 이번 공신제를 최선을 다해 즐기려는 듯했다.
부유섬 같은 마족이 출현했을 때 느껴졌던 절망과 공포, 트라우마. 그런 감정들을 원 없이 날려 보내자는 의미 또한 이번 공신제에 담겨 있었으니.
마법학부 학생들로 가득한 오르핀관 앞.
빈손으로 아무것도 안 하고 있기엔 눈치 보여서, 마력 운용력 단련에 도움이 될 법한 일들을 도맡았다. 반짝이는 장식품으로 쓰일 마도구에 마력을 불어 넣고 조작하는 작업이었다.
소모 마력량이 적으며 단순 노동의 반복이었다. 다만, 마도구 안쪽에서 마력을 이리저리 꼬아야 했기 때문에 마력 운용력이 낮다면 이 작업은 어려울 터였다.
트리스탄은 열정적으로 노동에 임했다. 어느새 녀석은 감독자 역할까지 도맡더니 이제는 많은 학생에게 “하! 심미감 넘치는 장식이군! 훌륭하다!” 따위의 품평까지 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심지어 그 품평에 “감사합니다!”하고 진심으로 기뻐하는 학생들을 보니 헛웃음이 튀어나오고 만다.
아카데미를 꾸미는 장식물 하나하나에는 학생들의 노력과 정성이 담겨 있다. 그 사실을 알고서 트리스탄은 들뜬 목소리로 칭찬을 퍼붓고 다니는 모양이었다.
마테오 조르다나는 말없이 공신제 준비에 집중했다.
에이미 할로웨이는 우리의 주인공, 이안 페어리테일과 꽁냥거리며 장식품을 만들거나 옮기는 데 열을 올렸다.
카야 아스트레앙은 크고 무거운 장식품을 바람 마법으로 옮겨 주는 역할을 했다. 말도 안 되게 높은 마력 밀도에 학생들은 감탄하며 박수를 쳐주었고, 카야는 부끄러워하며 뿌듯한 미소를 흘렸다.
문득 카야는 내 쪽을 쳐다보더니 나와 눈을 마주쳤다. 나는 피식 웃으면서 엄지를 치켜세워주었다. 기특한 녀석.
카야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의욕을 불태우며 더 무거운 장식품도 거뜬히 건물 위로 올려댔다.
큰 장식품을 바람으로 휘감은 채 첨탑 꼭대기까지 올라갔을 땐 나조차도 그 마력 밀도와 마력 운용력이 미쳤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더라.
아, 작업 끝났다. 여긴 작업할 마도구가 별로 없네.
“조장, 이쪽은 다 끝냈어!”
나는 여러 마도구에 마력을 모두 불어넣은 뒤, 트리스탄을 향해 소리쳤다.
녀석은 잰걸음으로 다가와 내 앞에 나열된 마도구를 살펴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제기랄…. 흠잡을 데가, 없다…!”
꼭 흠잡을 데가 있길 바랐던 눈치였다. 너무 아쉬워하는 거 아니냐.
“난 이제 안에 있는 거 처리하러 간다.”
“그럼, 3층 다용도실로 가 봐라. 거기라면 도울 게 많을 테니까.”
“역시~. 현황은 다 꿰고 있네. 네가 우리의 자랑이다, 트리스탄.”
“큭…! 친한 척하지 마라, 아이작!”
내가 실실 웃자 트리스탄은 인상을 찌푸리며 질색했다.
이내, 나는 트리스탄의 지시대로 오르핀관 안으로 들어가 3층으로 올라갔다.
다용도실. 밖에서 창문을 통해 안쪽을 내다보자 수많은 장식품의 향연이 펼쳐졌다. 학생들은 즐겁게 떠들어 대며 축제 준비에 한창이었다.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학생들은 “아이작!”하고 반갑게 나를 맞이했다.
“마도구는?”
“저기! 아이작은 저거 해주면 돼!”
B 클래스 여학생이 가리킨 쪽엔 작은 마도구가 상당수 쌓여 있었다. 시간 좀 걸리겠네.
별안간 다용도실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암막 커튼이 걷혔다. 학생들의 시선이 모두 그쪽으로 돌아갔다.
“짜잔! 우리 2학년의 얼굴 간판 등장!”
“와아아!”
“오, 예뻐!”
나타난 건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억지 텐션을 내는 3명의 여학생과 시큰둥한 표정의 루체 엘타니아였다.
암막 커튼 밖에 있었던 학생들은 환호하며 루체의 미모를 감상했다. 진짜, 감탄만 나오는구나.
루체는 마법사 로브를 개량해 만든 옷을 입은 채였다. 몸매가 훤히 드러나는 차림. 아찔할 정도로 각선미가 매혹적으로 드러난 복장이라 절로 눈이 돌아갔다.
실제로 보니 상당히 관능적이네.
남학생들은 얼굴을 붉히더니 넋을 잃고 루체를 쳐다보았다.
화장까지 잘 받아 눈부실 만큼 무척이나 아름다운 모습이므로. 그들의 심정이야 나도 지금 뼈저리게 이해가 갔다.
반면, 루체 주위에 서 있는 세 명의 여학생들은 어째선지 겁에 질린 얼굴이었다. 억지로 웃고 있는 게 대놓고 티 났다.
‘커튼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꼭 살얼음판 걷는 사람들처럼 저러냐….
루체가 저리 꾸며진 연유는 공신제 전통 때문이었다.
각 학부, 각 학년은 가장 아름다운 사람을 선정해 대표로 내세운다. 그녀들은 그 학년의 얼굴 간판으로서 사기를 돋아주는 역할을 수행했다.
공신제 이벤트 중 하나인 미녀 콘테스트에는 자동으로 참가될 예정이었다.
마법학부 1학년은 스노우화이트, 3학년은 도로시가 선정되었다. 쟁쟁했던 경쟁자들 중 무녀 미야나 앨리스 캐럴은 각자 사정이 있어서 제외됐다.
미야는 공신제 때 춤을 출 예정이고. 앨리스는 학생회장이니까. 다만, 그녀들도 원한다면 미녀 콘테스트 정도는 참가할 수 있을 것이었다.
아. 미야는 종교가 다른 데 왜 춤을 추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주신 만할라가 화합을 추구하는 신이라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겠다.
화봉국의 신과 함께하는 축제가 되길 바란다는 의미에서 아카데미는 무녀에게 춤 춰주기를 요청했고, 미야가 받아 준 것이었다.
그리고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선 이맘때 도로시가 없었기에, 3학년 얼굴 대표로 어느 예쁜 학생이 선정되는데.
그 새끼는 여장남자다. 필시 많은 남학생이 그놈한테 호감을 품었다가 진실을 깨닫고서 구토하는 사태가 벌어질 것이었다. 도로시가 살아 있어서 천만다행이었다.
미녀 콘테스트 때도 나타나겠지만, 나의 여신님 도로시가 신적인 미모로 압살해 줄 테니 문제없었다.
“어?”
루체는 뾰로통하게 서 있던 중, 나를 발견하고는 온화한 미소를 머금었다. 극적인 표정 변화였다.
“아이작!”
그녀는 옷자락을 나풀거리며 내게로 뛰어왔다. 남학생들의 부러움이 담긴 시선이 내 쪽으로 돌아갔다. 이제는 익숙했다.
“오, 루체. 괜찮게 잘 꾸며졌다?”
“히히. 그래? 나 예뻐?”
루체가 옷자락을 짚고 몸을 한 바퀴 돌리면서 자기 외관을 뽐내자, 나는 엄지를 치켜세우며 절도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몸을 살랑거리는 루체. 내 칭찬이 기분 좋은가 보다.
“나한테 반하지 않게 조심해야겠네?”
루체는 능청맞게 웃었다.
요망한 것.
나는 피식 웃으면서 루체의 이마에 손가락을 튕겨 가볍게 때렸다.
[기초 보호 마법]을 습관적으로 두른 탓인지 아픔을 느끼는 기색은 없었으나, 그 작은 충격으로 루체는 당황하며 이마를 짚었다.“난 일하러 간다.”
“앗, 나도. 아이작 도와줄게.”
“넌 네 역할 따로 있잖아, 바보야.”
학생들은 루체에게 말을 걸지 말지 곤란해 하는 기색을 보였다. 내가 아닌 타인이 말을 걸면 곧잘 표정을 굳히면서 입을 꾹 닫아버리니까.
제발 도와 달라며 다들 내게 도움을 구하는 시선을 보내오길래, 하는 수 없이 루체에게 확실히 말해주기로 했다.
“일단 서로 맡은 것부터 잘해야지. 루체, 넌 우리 학년에서 제일 중요한 역할이다? 누구보다도 매력적으로 보여야 우리 사기가 올라간다고.”
“…음.”
“뭐, 서로 파이팅하자.”
끝내 루체는 고개를 끄덕였고 학생들은 안도했다. 좋아.
나는 루체의 연약한 어깨를 가볍게 두들겨 주고서 마도구가 있는 쪽으로 걸어가 오르핀관 밖에서 하던 작업을 반복했다. 마도구에 마력을 불어 넣고 장치가 잘 작동되는지 확인한 후, 조작하면서. 하나씩, 하나씩.
그러다 보면 가끔 루체가 등 뒤로 찾아와 내 어깨에 자기 턱을 올려놓곤 했다.
그냥 내 등에 붙어 있는 것만으로 마음이 안정되는 모양이었다.
“아이작.”
한창 작업하던 중, 한 여학생이 다가와 내게 귓속말로 말을 걸었다.
“너 덕분에 루체가 얌전해졌어. 크흑. 진짜, 고맙다…!”
“어? 그래….”
울먹이는 여학생.
얌전해졌다니. 그전엔 어땠는데…?
내게 감사를 전한 여학생은 웃는 얼굴로 암막 커튼 쪽으로 떠나갔다. 그녀가 안으로 들어가자 암막 커튼이 살짝 걷힌 상태가 되었다.
고개를 거북이처럼 빼서 암막 커튼 안쪽을 슬쩍 들여다보았다. 루체는 얌전한 강아지처럼 평온한 얼굴로 여학생들의 치장을 받고 있었다.
황홀해 하는 모습. 내가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 루체는 행복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
“아이작 선배다!”
“잘 생겼어….”
“하악, 아이작 선배…!”
인원수대로 마도구가 맞춰지지 않았다. 아마 학사에서 제공해준 물품 분배 작업에 착오가 있었던 듯했다.
그래서 여분의 마도구를 찾고자 1학년 층으로 내려왔는데, 몇몇 여학생들이 내게 호감 어린 시선을 보내왔다.
예전에 화이트가 얘기하길, 1학년 사이에서 내 이야기가 자주 오간다고 들었다. 무녀와의 대련에서 내가 보여 주었던 모습과 외형이 학생들에게 인상 깊게 다가왔다면서.
무녀 문제와는 별개로, 나를 멋있다고 여기는 학생들이 많다고 했지.
뭐, 썩 괜찮은 기분이군.
후배에게 멋진 선배의 모습을 보여주는 건 선배 된 자의 도리다. 기품을 유지하자.
나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언제나처럼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모델 워킹으로 복도를 가로질렀다. 오늘따라 영 넘어질 것 같은 건 착각인 듯했다.
“친구야, 이거 여분 있어?”
나는 들고 온 마도구 하나를 복도를 지나가던 여학생에게 보여 주며 물었다.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네에, 있어요….”하고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다용도실 쪽을 가리켰다.
나는 그쪽으로 걸어갔고,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다.
“……?”
“……?”
귀여운 여학생이 열린 문 바로 앞에 앉아 있었다.
순백의 머리칼이 소용돌이치며, 송곳처럼 위로 치켜세워진 채였다. 드릴의 형태를 이룬 머리카락이 단숨에 내 시선을 낚아챘다.
1학년 얼굴 대표 역할을 맡은 스노우화이트였다.
나와 그녀는 눈을 마주쳤고.
잠시간 내 머릿속은 상황을 이해하는 데 시간을 소모해야만 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용도실에 있던 학생들은 모두 천장을 향해 솟구치는 드릴 머리를 한 채였다.
그들은 떠들기를 멈추고 내 쪽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선배의 등장에 일단 침묵을 지키려는 분위기였다.
무거운 침묵이었다.
“…….”
…마도구는 그냥 내 돈으로 사자.
그런 생각을 하며 조용히 문을 닫고 등을 돌렸다.
왜 저들이 저런 꼴로 있었는지는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고, 상종하고 싶지도 않았다.
“아, 아이작 선배애…!”
뭐라고 설명하고 싶은 건지, 드릴 머리 제자의 울먹이는 외침이 들려왔지만.
나는 잰걸음으로 그 자리에서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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