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196)
* * *
“뭐, 처음부터 부탁 드릴 생각이었다.”
페르난도 교수는 책상에 놓인 서류에 시선을 돌리며 시큰둥하게 말했다.
“하나 지적하자면, 학문에 열정을 품은 학생을 도와주는 건 교수의 도리가 아니라 책임이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이야기가 빠르게 풀려서 다행이군.”
페르난도 교수의 가치관은 잘 알고 있었다. 방금 전에는 날 떠본 것에 불과했을 뿐. 지금 그가 하는 말이 진심이었다.
“어느 스승이건 마찬가지겠지만 선생님 역시 마법의 재능이 출중한 제자를 좋아하신다. 난 재능이 부족해서 그저 제자 된 정만 받았지만, 아마 넌 깨나 좋아하실 거다.”
조금 전에 벌어졌던 일을 생각한다면 페르난도 교수가 정말로 제자 된 정만 받아왔는지는 의문이 생긴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만.
“그것보다, 뭘 시험하는 겁니까?”
“네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려 드실 거다. 여태 모든 시험이 다 그랬다고 들었고, 나도 그랬다. 무리할 각오 정도는 해 놓거라.”
“뭔지 귀띔이라도 해주시면 안 됩니까?”
“내 조언은 딱히 도움이 안 될 거다. 선생님 마음이니까. 난 3일간 책 수십 권을 전부 외워야 했다. 다른 제자는 3일 이내로 백 획이 넘는 마법진의 해독을 끝마쳐야 했다고 들었다.”
“시험에 통과 못했던 사람은? 많았어요?”
“대부분이다. 전부 범재였지. 나도 범재라고 봐야겠지만, 운이 좋았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서 아리아 릴리아스의 제자가 되는 방법은 없었다.
게임 지식에 구애 받지 않는 루체였기에 내게 ‘아리아의 제자 되기’란 해법을 제시해준 거였지. 나 혼자선 그런 생각은 티끌 만큼도 하지 못했으리라.
그래서 무슨 시험을 보게 될지는 알 수 없었으나, 페르난도 교수가 들어 준 예시만 들었을 땐 난이도가 상당히 높다는 건 자명해 보였다.
‘3일….’
그나마 시험 기간이 3일이라는 게 공통점일까.
“…좋은 기회 얻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수님. 저흰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
나는 예의 바르게 인사한 후 루체와 함께 교수실을 떠나려 했다.
“아이작.”
“예.”
“이 기회에 하는 말이다만, 재능을 훌륭히 꽃 피웠구나. 넌 내 자랑스러운 제자다.”
“…….”
코 쓱.
이 사람한테 훈훈한 소릴 다 듣는구나.
기분이 좋아져서 페르난도 교수에게 환한 미소를 건넸다.
“너라면 마법 기술의 진보에 이바지할 수 있을 거다. 만약 네게도 그런 뜻이 있다면, 다음에 한번 시간을 내줬으면 좋겠….”
“일주일 뒤에 뵙겠습니다.”
루체의 손목을 붙잡고 잰걸음으로 달아났다.
조교 영업하려고 판 까는 걸 내가 모를까. 대학원생이 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아이작.”
오르핀관 복도를 걷던 중, 루체가 말을 걸어오자 발을 멈추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루체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 검지와 중지만 펼쳐 V 모양을 만들고 자기 얼굴 옆에 붙였다.
“빠밤.”
일이 잘 풀린 게 자기 덕이라는 걸 알아 달라는 의미였다.
“고마워. 네가 최고다.”
엄지를 힘껏 치켜세우자 루체는 싱긋 웃었다.
7성급 얼음 원소 마법 중 [빙뢰]와 [만년설]의 습득 조건은 모두 충족했다.
공신제까지 충족하지 못했던 조건인 ‘레벨 120 이상’도 신밀의 에르메토나를 해치우며 해결됐으니까.
그렇다고 마법을 곧바로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습득 조건이란 어디까지나 기본 조건.
[빙벽], [빙결 폭발]처럼 단순히 복잡한 마력 컨트롤과 간단한 연산식 정도만 요구되는 마법은 습득 조건만 충족해도 얼마 안 가 사용할 수 있다. 6성급부터 난이도가 급증하는 거지.마치 학사 과정에서 곧바로 박사 과정으로 껑충 뛴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매우 복잡한 연산식이 요구되었다.
잠재력 최대치인 덕분에 6성급까지는 주변인의 도움과 독학으로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었지만, 7성급은 난이도가 차원이 달랐다.
게임처럼 커맨드 입력하면 곧바로 스킬이 나가는 식이면 좋겠지만…, 이미 그런 불평은 작년 초에 끝냈다. 열심히 공부해야겠지.
이제 헤겔 마탑주가 7성급 마법을 익히는 데 도움만 주면 만사형통이었다.
시험 통과가 먼저? 어떻게든 통과할 거다. 이 악물고 악으로 깡으로 목표를 달성하는 건 내 주특기다.
그러니 부디 헤겔 마탑주의 교육 능력이 1타 강사 수준에 버금가길 바랄 뿐이었다.
‘되도록이면 앨리스 토벌전 전까지 익혔으면 좋겠는데.’
2학년 1학기 마지막 파트, 「앨리스 토벌전」의 적은 대부분 인간이다. 도로시로 섬멸하기엔 적의 수가 많기에 결국엔 역할 분담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무슨 변수가 일어날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적어도 내가 팔라딘 상대로 승산을 얻을 정도는 돼야 했다. 그러려면 7성급 같은 고위 마법이 필요하리라.
그리고….
‘무저갱도 대비해야 해.’
3학년 파트의 보스. 섭리조차 초월한 마족, 무저갱. 놈을 묶은 고삐가 벌써 풀려가고 있으니까.
전술했듯 무저갱의 출현은 배드 엔딩 「영원」의 트리거다.
무저갱에게 잡아먹힌 자는 놈의 몸 안에서 영원한 생명력을 얻으며, 무한의 감옥에서 고독하게 살아가야만 한다.
그러다 자아를 잃은 자는 영혼을 빼앗기게 되고, 무저갱은 그 영혼을 평생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게 되겠지.
그 영혼은 영원히 또렷한 감각을 갖고 극심한 고통을 느껴야만 할 터. 그때가 되면 영영 돌이킬 수 없다.
그렇기에 「영원」. 죽음보다 끔찍한 최후.
무저갱을 해치우려면 섭리를 초월한 힘을 퍼부어야만 한다.
이안 페어리테일이 2학년 2학기 즈음에 얻는 빛 속성 전설 무기, 창명검이 그 예시다.
하지만, 만약 이안이 창명검을 얻기 전에 무저갱이 출현한다면 어떻게 될까.
‘…어떻게든 해야겠지.’
무저갱의 고삐를 풀어나가고 있는 놈은 3학년 1학기 파트의 최종 보스이자 악신의 대리인, 계약의 메피스토. 정확하게는 놈이 가진 힘이다.
만약 메피스토가 이름 없는 영웅을 의식해서 이른 시기에 무저갱을 꺼내려고 고삐를 풀기 시작한 거라면.
조금이라도 빨리 무저갱을 쓰러뜨릴 수 있는 화력을 내가 갖춰야만 했다.
“무슨 생각해, 아이작?”
“그냥…, 무슨 시험인지.”
루체의 걱정 어린 목소리에 재빨리 표정을 갈무리하고 미소 지었다. 표정 관리에 제대로 신경 써야 할 듯했다. 이미 늦었지만.
루체는 예리한 시력으로 내 감정 상태를 이미 읽어 버렸다. 말없이 내 옆에 바짝 붙는 걸 보면 말 다 했지.
“나도 껴서 다행이다.”
아이작은 내가 지켜 줄게.
걱정하지 말라는 듯 루체는 그리 속삭였다.
* * *
“무녀 님, 좀 괜찮으십니까?”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들어오지 말라 했을 텐데?”
“하지만 사흘째 아무것도 드시지 않으셨습니다.”
“나도 알아. 상관없으니까 나가라고.”
“…알겠습니다.”
아카데미 병원, 개인 병실. 침대에 앉아서 창밖을 바라보던 메이가 으르렁거리자 호위 마법사가 걱정 어린 표정으로 병실을 나섰다.
다시 쓸쓸한 적막이 병실에 흘렀다. 메이는 제 몸을 내려다보았다.
온몸은 붕대를 칭칭 휘감은 채다. 여전히 격통이 일고 있었다.
메이는 이를 깨물고 이불을 꽉 쥐었다. 왜 상황이 이렇게 되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구미호는 떠나갔다. 그 마수가 진실을 밝히거나 미야를 찾아내는 순간 모든 게 끝이 나겠지.
여기서 자신을 호위하는 병력이 화봉국으로 가 버리면 그들 또한 얼마 안 가 진실을 알게 될 것이었다.
상황이 몹시 좋지 않았다. 미야가 자신을 용서해 준다면 어떻게든 상황이 호전될지도 모르지만, 그리 해줄지는 의문이었다.
애당초 화봉국 자체가 자신을 적으로 돌리는 건 기정사실. 남은 길은 도망치는 것 말고는 없었다.
그렇다, 최악의 미래를 맞이하지 않으려면 외국으로 도주하고 쥐 죽은 듯이 살아가야 했다. 어서 빨리.
“제길….”
손에서 자그마한 불꽃이 튀어나와 점멸했다.
아이작과 싸웠던 날, 마족에게 힘을 빼앗겼던 탓에 마력이 고갈된 상태였다. 호전되려면 아직 1주가 넘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결국, 당분간 이 약해 빠진 몸뚱아리로 어떻게든 해야 한다는 건데.
아카데미는 학기 동안 외부와의 접촉이 차단된다. 그동안 이 섬에서 나가려면 두 가지 루트밖에 없었다. 연륙교와 항구다.
연륙교를 지나려면 삼엄한 경비를 뚫어야만 한다. 자퇴하거나 황명이라도 떨어지지 않는 이상 뚫는 건 어려웠다.
하물며 자신은 치료 받은 뒤 징계를 받아야 하는 처지이므로, 교칙 위반에 따른 합당한 벌을 받기 전까지 자퇴는 신청해도 보류될 것이었다.
남은 건 항구. 방학에는 학생도 승선객으로 받지만, 학기 중에는 항구 이용이 금지사항이었다. 물자 조달용 화물선에 몰래 승선하고 짐칸에 숨는 것이 이곳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겠지만, 그러려면 선박에 펼쳐진 감지망을 몰래 뚫어야만 했다.
즉, 탈출 루트는 모두 막혀 있었다.
이대로는 진실을 안 화봉국이 제르베르 황국에 협력을 요청해 메이의 신변을 넘겨 달라고 하는 걸… 손가락 쪽쪽 빨면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질렸어….”
메이는 도망칠 방도를 궁리하다가 어깨를 부들부들 떨었다.
짙은 회의감이 몰려왔다.
“질렸다고….”
병실 문밖. 호위 마법사는 고개를 숙인 채 메이가 흐느끼는 소리를 말없이 들었다.
……
한밤중.
중년의 남자가 술에 취해 비치적비치적 귀가하고 있었다. 제르베르 황국 변두리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높이가 낮은 주거뿐.
이런 작은 마을의 밤은 무척이나 어둡다. 집 대부분은 불이 꺼진 탓에 남자는 하늘에서 내리쬐는 달빛에 의존하며 걷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알딸딸한 기분 덕분에 주위를 메운 어둠은 딱히 신경 쓰이지 않았다.
히끅, 거리며 딸꾹질하고는 연신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그리 걷다 보니 맞은편에서 비틀거리며 걸어오는 검은 망토 차림의 여성이 눈에 보였다. 저 여자도 술에 취한 걸까, 하고 남자는 의문을 품었다.
어둡지만, 망토가 펄럭이며 여성의 신체가 그리는 아름다운 곡선이 남자의 눈에 띄었다.
술기운에 자제심을 발휘하기가 힘들었다. 치솟는 욕구에 몸을 맡기고, 남자는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우이이, 아가씨이…. 몸이 참 잘 빠졌네, 히끅.”
검은 망토 차림의 여자가 발을 멈추었다. 후드를 뒤집어쓴 채라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이런 참한 처자가, 우리 마을에 있었나…?”
여자는 남자를 돌아보았고.
“어, 어…?”
남자는 후드 속 여자의 얼굴을 보자마자 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뚝 멈추고 말았다.
“으아악!!”
술기운이 달아났다. 남자는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치더니 부리나케 도망쳤다. 여자는 굳이 남자를 쫓지 않았다.
달빛이 후드 안쪽에 있는 여자의 얼굴을 비추었다. 파먹힌 살. 허물어진 눈꺼풀. 새하얀 눈동자. 창백한 피부. 시체의 모습이었다.
여자는 다시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마을을 가로질렀다. 그녀가 입은 검은 망토가 어둠 마력으로 일렁였다.
마을을 벗어나 산을 오르고 어느 폐 교회에 들어서는 여자. 옛적에 반파되어 천장이 없는 건물이었다.
그 안에선 여자와 똑같은 차림의 시체들이 교회 신도들처럼 질서정연하게 서서 제단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풍스러운 제단. 그 위에는 어둠 마력이 흐르는 목관이 놓여 있었다.
[구어어억…!] [그웨에엑!!]교회에 모인 시체들의 입에서 스산한 기운이 토해지며 관으로 밀집되었다.
스르르, 힘을 응집시킨 관이 조용히 열리며 묵직한 마력이 퍼져나갔다.
관에서 무언가가 일어났다. 고급스러운 검은 로브를 걸친 2m가량의 해골이었다. 그는 부자연스럽게 관 위로 떠오르더니 부드럽게 지면을 밟아 어둠 마력을 흩뿌렸다.
그의 텅 빈 안와에서 섬뜩한 마력이 눈동자처럼 빛났다. 오른손에는 어둠 마력이 밀집되며 지팡이의 형상을 갖추었다.
보랏빛 마석이 박힌 커다란 마법 지팡이. 그의 마도무기였다.
[일어나라.]기이하고도 굵직한 목소리.
구우우, 지면이 울렸다. 깨어나선 안 될 존재가 깨어나며 사방에 흉악한 마력을 퍼뜨렸다.
셀 수 없이 많은 인간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땅 밑에 묻혀 있던 무언가가 흙더미를 깨부수며 밤하늘을 향해 솟구쳤다.
그것은 이미 새까맣게 변색된 인간의 사체로 이루어진 검은 용.
천앙의 대마녀와 뇌신조-갈리아에게 패배하고 죽음을 맞이했던, 악룡-오르키스였다.
[경외하라.]시체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여 제 주인을 맞이했다.
죽음의 군주. 마족, 사령의 칼가르트.
그가 깨어났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