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280)
〈 280화 〉 체스 (3)
* * *
“그럼, 여기서 수업은 끝.”
“……?”
수업이 끝났다.
마치 재밌는 게임을 몰입해서 한 기분이었다. 수업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가 유달리 일찍 울린 줄 알았다.
론 강사의 수업은 금장을 단 것처럼 화려했다.
한 번도 말을 절지 않았고 수업 내내 학생들의 주의를 간단히 집중시켰으며, 정석적인 내용은 머리에 박히도록 설명해주었고, 응용 단계에선 허를 찌르듯 유용한 노하우를 가르쳐 주었다.
수업 시간 대부분을 포함해 인생을 잠으로 허비하던 시엘조차 론 강사의 수업 중에는 깨어 있었다.
그녀는 ‘네가 얼마나 잘 가르치나 보자’라는 심정이었으나, 기대 이상으로 잘 가르쳐서 놀란 눈치였다.
“그리고 아이작 학생, 면담할 게 있으니 따라오도록.”
론 강사는 날 바라보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심리가 읽히지 않았기에 의도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다. 일단 론 강사를 따라갔다. A 클래스 애들이 의구심을 품고 날 쳐다봤다.
나와 론 강사는 오르핀관에 있는 어느 빈 교수실 앞에 도착했다.
“잠시 화장실 좀 들렀다 가겠습니다.”
“다녀와.”
모서리를 지나 구석에 숨어서 벽면에 등을 기댔다.
‘힐드, 경계 태세.’
[알았다, 주인.]내 셔츠 깃 속에 작은 마력의 형태로 소환되어 있던 빙설룡-힐드에게 머릿속으로 지시했다. 녀석은 무슨 상황인지 대번에 이해했다.
나는 상태창을 열었다.
[ 상 태 ]이름 : 아이작
Lv : 156
성별 : 남
학년 : 2
칭호 : 빙제
마력량 : 169500 / 169800
– 마력 회복 속도(A+)
방학 동안 레벨은 2가 더 올랐다. 현재 레벨은 156이다.
지금 중요한 건 [잠재력] 칸이었다.
[ 잠재력 ]보유 스탯 : 149
◆ 대 종족 전투력
– 대 인간 전투력(A) : 80/100 [UP]
– 대 이종족 전투력(E) : 1/100 [UP]
– 대 천족 전투력(E) : 0/100 [UP]
– 대 마족 전투력(S) :100/100
론 강사, 즉 뷔엘의 심리는 읽을 수 없다.
다만, 뷔엘은 알량한 수로 내게 덤빌 생각은 없을 것이다.
녀석은 계획이 꼬여선 안 되는 처지이고, 날 강자로 오해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해하도록 의도했으니까.’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가능성은 높았다. 내가 보여줬던 건 명명백백한 힘이었으니까. 뷔엘은 내 얼음 마법을 아예 온몸으로 받아보기도 했잖은가.
심지어 내 겉면은 얼음의 원왕. 뷔엘은 날 이기려면 쉽지 않은 전투를 벌여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을 터.
하지만 뷔엘은 일을 크게 벌리면 천신에게 들킬 위험이 컸다. 그리 되면 녀석의 계획은 말짱 도루묵이 된다. 즉, 녀석은 신중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문제는 곧 있으면 아카데미 대항전이 시작된다는 점.
‘「요정 대전」을 대비해야 해.’
「요정 대전」에 필요한 [대 이종족 전투력]에 스탯을 투자할 계획이었는데. 뷔엘의 갑작스러운 난입으로 계획이 틀어져 버렸다.
지금의 뷔엘은 무장 상태가 아니다. 천족은 무장하면 극강의 원소 저항력을 자랑하지만 지금은 해당되지 않는 얘기다.
그런데도 뷔엘이 작정하고 나와 싸우려 들면, 나는 자신이 있었다. 처 발릴 자신이.
하물며 천위 시계가 효력을 퍼뜨리는 ‘그날’이 이르기 전까지 녀석은 무적이나 다름없다. 불사신이기 때문이다.
아카데미 전력이든, 황실 기사단이든, 뒤펜도르프의 병력이든, 누굴 불러와도 지금의 뷔엘은 못 이긴다.
‘다행인 건 녀석의 신념인데….’
>메르헨의 마법 기사> 내용을 떠올렸다.
뷔엘은 나름의 대의를 위해 천신에게 반역하는 것. 그 신념에 반해 불필요한 희생자를 늘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다만, 방해꾼들은 단호하게 처리할 생각일 터.
사령왕을 토벌할 때 뷔엘이 황야에 있었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뷔엘은 이미 마족과 결탁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서 뷔엘은 아카데미에 온 적이 없었다.
즉.
‘마족 측에선 날 방해꾼으로 지목했고, 뷔엘은 내 목숨만큼은 노릴 가능성이 높다.’
뷔엘이 아카데미에 찾아온 건 날 보기 위해서다.
당장에 다른 사람에겐 피해를 안 주더라도, 내 목숨 하나 만큼은 올곧게 노릴 심산이겠지.
그렇다고 해도, [대 천족 전투력]에 무작정 스탯을 들이부으면 「요정 대전」이 어려워진다.
‘그렇다면….’
만일의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대항하거나 도망칠 힘은 만들어두는 편이 좋으리라.
나는 80 스탯을 [대 천족 전투력]에 투자했다.
[잠재력 [대 천족 전투력]이 E급에서 A급으로 향상되었습니다!]이 정도면 할 만하다.
잔여 스탯은 69. 퍽 안정적이라고 확언할 순 없지만, 나쁘지 않다.
나는 발을 옮겨 론 강사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집무용 책상에 수업 자료들을 놓고 창밖 노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왔군. 차라도 마시겠나?”
“괜찮습니다. 용건부터 말씀해주세요.”
“그러면, 혹시 체스는 좋아하나?”
론 강사는 응접용 테이블에 놓인 체스 보드를 가리켰다. 이미 세팅되어 있었다.
흑과 백으로 이루어진 서양식 장기. 말로만 ‘체스’라고 해석될 뿐, 내가 알던 전생의 체스하고는 엄밀히 달랐다. 물론 비슷한 느낌이었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 미니 게임으로 자주 해봤기에 하는 법은 잘 알고 있었다.
“앉아.”
론 강사는 체스 보드 앞에 앉으며 말했다.
가만히 서서 그의 의중을 꿰뚫어 보려 했으나, 론 강사는 씨익 웃으며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거만하게 턱을 치켰다.
“어차피 내가 인간이 아니란 사실은 이미 알았을 텐데.”
서서히 하얗게 물들어 가는 론 강사의 머리카락. 지나치게 새하얘 이 세상 것이 아닌 듯한 심미감이 돋보였다.
그의 두 눈동자엔 성스러운 기운이 감돌았다. 자신이 범상치 않은 존재임을 드러내기 위해 반쯤 인간의 외형을 푼 것이었다.
인간의 외형을 가질 수 있었던 건 빙설룡-힐드가 익혔던 고위 마법, 폴리모프 덕분임이 분명했다.
뷔엘은 주위에 방음 결계를 전개했다.
“내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지 않나?”
“…….”
나는 안경을 벗고 뷔엘 맞은편에 앉았다.
“할 얘기가 있어서 부른 건 그쪽일 텐데.”
체스판에 놓인 검은색 병사 게임 말을 하나 옮기며 담담하게 말했다. 뷔엘은 입꼬리를 비죽 올렸다.
“한번, 네 마법에 휩쓸린 적이 있다. 훌륭하더군. 가히 명성에 걸맞은 실력이었어.”
하얀색 게임 말을 옮기는 뷔엘.
“그런데 알면서 마법을 날리지 않았나? 마치 날파리 처리하듯, 바로 나를.”
“조약을 어긴 쪽은 너잖아. 와선 안 될 곳에 있던 걸 겸사겸사 처리했던 것뿐이야.”
천족이 인간계에 간섭해선 안 된다는 조약.
인간이 알아선 안 될 정보를 나는 알고 있다.
뷔엘은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를 터뜨렸다.
“조약을 알고 있나? 인간이? …대체 뭐냐, 넌?”
“그 질문은 이 세계에 침범한 네가 받아야 할 것 같은데.”
“…내가 판단을 그르쳤어. 이런 놈이었다니.”
초장. 나와 뷔엘은 게임 말들을 번갈아 움직이며 진형을 짰다.
“그래서, 그런 이유로 망설임 없이 날 죽였다는 건가?”
“어차피 안 죽는다는 걸 알았어. 넌 불사신이잖아.”
“…….”
뷔엘은 게임 말을 움직이던 손을 멈칫했다. 그는 나를 노려보았다.
“너…, 어디까지 아는 거냐?”
“나가.”
“…….”
“여긴 네가 있을 곳이 아니야. 경고는 한 번이면 됐잖아.”
나는 냉막하게 뷔엘을 쏘아보았다.
뷔엘은 깊은 숨을 내뱉었다.
“안에 무시무시한 걸 품고 있는 게 우연은 아닌 것 같네.”
눈 많은 미지의 생물 이야기일 것이다.
본질 꿰뚫기 따위의 힘은 도로시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원왕이든, 뷔엘이든, 일정 궤도 이상의 경지에 올랐으면 충분히 가능한 기교다.
그 눈 많은 미지의 생물은 내게서 압도감을 드러내는 역할을 해준다. 오히려 상대가 강자일수록 내 강함을 착각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얘기다.
“그런데 말이야.”
뷔엘은 테이블을 짚더니 내게 고개를 내밀었다.
싸늘한 눈빛이 나를 향했다.
“왜 내겐 네놈의 그런 모습이 허세로 비칠까?”
“…….”
입꼬리를 길게 찢으며 희미한 미소를 흘리는 뷔엘.
떠보는 건가.
“내 말이 틀리다면 날 쫓아내 봐라. …왜 가만히 있지? 날 건드려선 안 될 이유라도 있는 게 아닌가, 빙제여?”
촐싹대네, 이 새끼.
뷔엘은 불사신이다. 누굴 데려와도 이길 수 없다.
이놈을 어떻게든 무력화시킨다면? 뷔엘은 그런 점을 우려하고 있겠지만, 전술했듯 그리해도 녀석을 토벌하는 건 어렵다.
뷔엘은 희망이 없다고 판단하면 천신을 개입시킬 우려가 있다. 그리되면 배드 엔딩 「신의 심판」을 맞이하게 된다.
천신을 향한 뷔엘의 모반 행위가 객관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면 위험한 건 내 쪽이다.
이놈과 승부를 봐야 할 때는 아벨의 천위 시계가 효과를 퍼뜨릴 때다.
그때는 나든 이놈이든, 모든 이가 위험해지지만, 적어도 이 녀석의 불사 능력은 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역시. 오히려 많이 알기 때문에 겁쟁이가 돼버린 건가. 이거 참, 웃기는 상황이야.”
혀를 차더니 실실 웃으며 다시 자리에 앉는 뷔엘.
녀석의 심리는 여전히 읽히지 않는다. 하지만 그 말 한마디로 녀석이 무슨 생각을 품었는지는 곧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어떤 이유에선지 아이작은 너무나도 많은 걸 알고 있다. 그렇기에, 오히려 날 건드려선 안 된다는 것까지도 알고 있겠구나.
이런 생각이겠지.
내가 뷔엘을 이길 수 없는 사람이란 생각에는 닿지 못한 것 같았다.
지금은 뷔엘에게 있어서, 나는 파악이 불가능한 미지의 힘을 지닌 지고한 존재로 여겨져야만 했다. 내 밑천이 까발려지면 끝장이다.
“빙제여. 내가 왜 아카데미에 왔는지 알고 있나?”
“…….”
“그래, 너 같은 자가 파악하지 못했을 리 없겠지.”
뷔엘은 게임 말을 움직이고 나를 쳐다보았다.
창밖에서 들어오는 노을빛이 뷔엘의 신비로운 눈동자를 비추었다. 그 눈동자엔 깊은 신념과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내겐 이뤄야만 할 뜻이 있다.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선 널 없앨 수밖에 없어. 미안하지만, 난 널 이 세상에서 지워 버릴 생각이다.”
게임 말을 옮기면서 말하는 뷔엘의 목소리엔 일말의 살의도 스며 있지 않았다.
마치 당연한 걸 해야 한다는 듯 너무나도 담담한 뉘앙스였다.
“가능하다고 생각해?”
얌전한 선전포고에 나는 게임 말을 움직이며 냉소적으로 물었다.
뷔엘은 벌써 내 화법에 익숙해졌는지 여유롭게 웃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