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ssassin Monarch RAW novel - Chapter 139
139화
발튼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젊은 왕과 기사들에게 다가갔다.
거대한 덩치에 강철 같은 근육, 오크 뺨치는 인상의 발튼이 다가오자 그들의 시선이 절로 모였다.
“지금 한 얘기, 제대로 듣고 싶은데.”
발튼의 시선이 젊은 왕에게 닿아 있자, 기사 중 한 명이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감히! 이분이 누구신 줄 알고……!”
기사는 말을 다 잇지 못했다. 발튼이 한 손으로 그의 머리를 짓눌러 강제로 다시 자리에 앉힌 것이다.
발튼은 시선을 고정한 채 입을 열었다.
“누군지 관심 없고, 다시 얘기해 보라고.”
스릉, 스릉, 스르릉.
명백한 시비에 주변 기사들이 검을 뽑아 들고 왕의 명령을 기다렸다.
젊은 왕은 포크를 내려놓고 비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이것 보거라. 쓰레기들이 사는 곳에 가까워지니 쓰레기가 붙는구나. 치워라.”
“예, 전하!”
그의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기사 한 명이 검을 날카롭게 뻗었다.
그 방향은 발튼의 목이었다. 한 치의 자비도 담겨 있지 않은 살수였다.
퍼억!
그러나, 발튼의 발이 기사의 배에 먼저 닿았다.
단순한 발길질이었지만 결과는 단순하지 않았다.
기사의 강철흉갑은 우지끈 찌그러졌고, 기사는 발까지 바닥에서 뜬 채로 날아가 그 뒤에 있던 기사 두 명을 덮쳤다.
우당탕탕!
기사들이 나뒹굴며 의자와 테이블이 부서졌다.
그 반대편의 기사가 검을 휘두르려고 할 때 발튼의 주먹이 먼저 그의 흉갑을 때렸다.
콰앙!
주먹을 정통으로 맞은 기사는 멀리 날아가 여관 벽에 부딪혔다.
경악할 괴력에 젊은 왕은 꼬리를 말기는커녕 살기를 돋우며 자신의 검을 뽑았다.
무늬만 왕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듯이 그의 움직임은 간결하고 날카로웠다.
푹-.
발튼은 생각보다 빠른 검에 뒤늦게 반응하여 맨손으로 막았다. 그의 손바닥에 왕의 검이 한 치 박혔다.
발튼은 그 시큰한 통증에 인상을 찌푸리며 다른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쿵!
그때 물 잔이 테이블에 내려지는 소리에 발튼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그 모습에 검을 빼고 공격을 이어 가려던 젊은 왕도 이상함을 느끼고 멈칫했다.
스윽.
가브가 일어나자 발튼이 그에게 고개를 돌리며 한 걸음 물러섰다.
적의 검 끝이 눈앞에 있는 위험한 상황에 어울리는 행동이 아니다.
누가 이 괴물 같은 자를 이렇게 만드는지 의문이 든 왕은 절로 그의 시선을 따라갔다.
그곳에는 가브가 있었다.
착 가라앉은 눈, 여유로운 발걸음, 고요한 마나.
왕은 눈앞에 괴물을 다루는 자가 이자임을 확신했다.
‘어디서 이런 괴물들이 튀어나온 거야?’
저벅저벅.
가브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와 발튼의 손에 박힌 검의 검신을 검지와 중지로 잡아 빼내며 입을 열었다.
“밖에 있는 병사들과. 히스로 가던 중이었나?”
왕은 그제야 2천 명의 병사들을 떠올리며 어깨를 펴고 턱을 들어 올렸다.
“그렇다.”
가브가 그에게 하대하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깨닫지 못했다.
“가브를 죽이러?”
“가브와 그를 추종하는 쓰레기들을 처리하기 위해, 같이 처리되고 싶지 않으면 지금 내 눈앞에서 사라져라, 내 지금까지의 무례는 한 왕국의 왕으로서 자비를 베풀 터이니.”
가브는 조용히 망토를 걷어 검은 비늘로 덮여 있는 오른손을 꺼내며 천천히 한 글자씩 짓누르며 입을 뗐다.
“내가, 네가 찾는, 가브다.”
“무, 뭐?”
가브의 말에 왕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다른 이가 이렇게 말했다면 거짓이라며 욕했겠지만, 지금 그가 풍기는 기운과 그의 부하가 보인 실력은 감히 거짓이라고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왕은 출발하기 전에 보았던 가브의 수배지를 떠올렸다.
‘검은색에 가까운 잿빛 머리칼, 공허한 흑안, 덩치 큰 오크와 흑발의 미녀를 데리고 다니는…….’
워낙 특징이 없는 얼굴이지만 하나하나 확인해 보니 수배지의 인물과 동일했다.
왕은 자신의 기사들이 이제야 일어나 옆에 자리를 잡는 것을 보며 머리를 바쁘게 굴렸다.
‘저 덩치가 가브의 오른팔이었나? 가브의 실력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일단 이곳을 나가기만 한다면…….’
2천 명의 병사가 있는 곳으로 가기만 하면 승리는 따 놓은 당상이다.
기사들을 희생시키며 뒷문으로 나갈 생각으로 한 발을 움직였을 때, 가브의 손이 뻗혔다.
척.
가브는 그의 흉갑 이음새 부분을 엄지와 검지로 잡았다.
그러자 왕은 마치 바위에 낀 것처럼 전혀 움직여지지 않는 것을 느꼈다.
“지금 이대로 너희 왕국으로 돌아간다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
가브의 묵직한 경고에 왕은 아무런 말도 잇지 못했다.
“가, 감히!”
“이, 익.”
“대체, 몸이 왜?”
한 왕국의 왕이 적에게 붙들려 협박을 당하고 있음에도 기사들은 입만 벙끗거릴 뿐 아무도 움직이지 못했다.
가브의 마기가 그들의 몸을 옥죄고 있기 때문이다.
에르니 왕은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다가 검지로 가브의 손을 톡톡 건드렸다.
“이거부터 놓지.”
“대답부터.”
가브가 조금 더 힘을 주자 집게손가락으로 잡은 부분이 우그러졌다.
그 괴력에 왕은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놔야 가지.”
왕은 자신의 신하들이 보는 앞에서 씻을 수 없는 굴욕을 느꼈지만, 이 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가브가 불시에 손을 놓자 왕은 뒤로 넘어질 뻔했다.
“전하!”
“전하! 괜찮으십니까?”
마기로부터 자유로워진 기사들은 하나같이 왕에게 잽싸게 달라붙었다.
왕은 신경질적으로 그들의 손을 뿌리치며 뒤돌아섰다.
“이거 놔! 돌아가자!”
왕은 여관 문을 나가기 전에 한번 가브를 노려보는 것으로 자존심을 챙겼다.
힐 아슈는 그의 발소리가 멀어지는 것을 들으며 입가에 미소를 걸쳤다.
“말을 잘 듣는 왕이군요.”
“순진한 소리.”
세실리아는 싸늘한 눈으로 멀어지는 왕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식사나 하자.”
성인 몸통만 한 닭을 한 명당 두 마리씩 뜯어먹고 있을 때였다.
철컥, 철커덕.
발튼은 거슬리는 금속 마찰음에 귀를 쫑긋거렸다.
“뭔 소리지?”
그가 소리의 근원을 확인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 가브가 닭에 시선을 고정한 채 손을 휘적거렸다.
“앉아. 다 먹고 나가.”
“아, 옙! 쥬군!”
달그락, 달그락, 찌직, 찌익.
대화도 없이 식사를 하는 소리에는 묘한 긴장감이 배어 있다.
가브와 세실리아는 의무적으로 배를 채우며 감각을 곤두세우고 있었고, 발튼은 단순하게 맛있어서 말없이 빨리 먹고 있었으며, 힐은 해맑게 맛을 음미하고 있었다.
각각 다른 느낌으로 식사가 끝나자, 가브가 먼저 일어섰다.
“나가자.”
“예, 주군.”
세실리아는 기다렸다는 듯이 검을 빼 들며 그의 뒤를 따랐다.
끼익.
여관 문을 열자 아까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졌다.
“오래도 처먹는구나! 아직도 도망을 안 가고 있다니 그 배짱 하나는 인정해 주마!”
방금 전까지만 해도 가브와 눈을 마주하지도 못하고 나갔던 에르니 왕국의 국왕이 자신의 병사들을 데리고 와서 여관을 겹겹이 포위한 것이다.
완전무장을 한 수백 명의 병사들이 화살촉을 그들에게 향한 채 활시위를 바짝 당기고 있는 모습은 일반인들의 오금을 저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가브는 물론 발튼과 세실리아의 얼굴에도 심각성이나 두려움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힐 아슈는 특유의 평온한 미소를 머금고 있어 상대의 공격심을 누그러트렸다.
저벅저벅.
가브는 검도 뽑지 않고 걸음을 옮겨 여관 계단을 내려왔다.
그는 병사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왕과 눈을 마주했다.
“마지막 경고다. 병사들을 데리고 돌아가라.”
고저 없는 건조한 가브의 경고에 왕의 미간이 확 찌푸려졌다.
“경고는 강자가 약자에게 하는 말이다! 이 범죄자 새끼들아! 쏴라!”
왕의 명령에 병사들의 손에서 활시위가 떠나던 때에, 가브는 여전히 검도 뽑지 않고 입을 열었다.
“세실리아.”
세실리아는 대답 대신 앞으로 한 발자국 나가며 이미 들고 있는 검을 횡으로 크게 휘둘렀다.
검면에 새겨진 문양에서 눈이 멀 듯한 하얀 빛이 내뿜어지며 칼바람이 휘몰아쳤다.
후우웅!
수백 개의 화살은 나아오던 방향에서 역으로 뒤집혀 활을 들고 있는 병사들을 덮쳤고, 그것만으로도 모자라 병사들을 날려 버렸다.
왕은 왕답게 바닥에 발을 단단히 막고는 바람을 버티며 화살을 쳐 냈다.
그러나 그것이 패착이었다. 가브는 그 틈을 파고들어 가 병사들의 아무런 방해 없이 왕의 갑옷 이음새를 잡아끌고 오른팔로 그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푸확!
왕의 머리에 쓴 강철로 된 면갑이 종잇장처럼 찢어지며 그의 머리도 터져 나갔다.
왕의 뇌수와 피가 공중에 비산하며 부채꼴로 퍼져 나가 바닥에 흩뿌려졌다.
왕이 된 지 고작 1년도 되지 않은, 꿈 많고 패기 있던 젊은 왕의 허무한 최후였다.
“아.”
“헉.”
“커헉.”
칼바람은 멎었고, 장내에는 지독한 침묵이 찾아왔다.
왕을 잃었다는 충격보다도 순식간에 왕을 처리한 가브 일행의 압도적인 힘에 짓눌려 사고가 정지된 것이다.
가브는 안에서 보았던 한 기사와 눈을 마주하며 입을 열었다.
“우둔한 왕 때문에 목숨 버리지 말고 돌아가라.”
그와 눈을 마주한 기사는 순간 움찔했다.
가브의 눈동자에서 일렁이는 살기를 간신히 억누르고 있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기사는 2천 명의 병사가 있음에도 두려움에 몸을 떨며 발을 돌렸다.
“귀, 귀환하라! 지금 당장 왕국으로 귀환한다!”
기사의 명령에 가까이에서 가브 일행의 압도적인 힘을 체험한 병사들은 화살에 팔다리가 뚫렸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바쁘게 그곳을 떠났다.
병사들은 물론 기사들도 그 자리를 떠나는 동안, 아무도 머리 없는 왕의 시체를 챙기는 이는 없었다.
목숨을 걸고 가브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던 것이다.
한 왕국의 국왕에게 어울리지 않는 비참한 말로였다.
화악.
가브는 손가락 끝에서 작은 불씨를 일으켜 왕의 갑옷 안쪽 천에 불을 붙였다.
머리가 없지만 워낙 생전에 강한 몸이었기에 정처 없이 움직이며 큰 피해를 끼칠 수 있다.
세실리아는 멀어지는 에르니의 병사들을 가만히 지켜보며 입을 열었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자주 있을까요?”
“아마도.”
“저런 자들이 아이드로 들이닥치면…….”
세실리아의 뒤늦은 걱정에 가브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저것들은 헤딘 혼자서도 충분하다.”
가브의 말에 세실리아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헤딘이 마기를 다룰 줄 알고 시체를 일으킨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 효율이 어느 정도인지는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홀로 저들을 처리할 수 있는가 떠올려 보았다.
가능할지는 몰라도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헤딘.”
헤딘의 능력이 다수에 특화되었기 때문이긴 하나, 세실리아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하고 잠시 오만했던 자신을 반성했다.
“가자, 레브데리언으로.”
“예, 주군.”
“예, 쥬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