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lood Knight's Villains RAW novel - Chapter (363)
나의 악당들 363화
61. 전쟁의 기술(5)
영혼주술사는 그 이름대로 영혼을 부리는 주술사 클래스다. 세 가지 계열의 스킬, 즉 ‘야수’와 ‘동화’, ‘수호’를 다룬다.
몇 개월 전 사투 끝에 처치한 부 캐, 아칸쿠 카라멕이 바로 이 클래 스였다. ‘동화’ 계열을 궁극기까지,
‘야수’ 계열을 궁극기 직전까지 익 힌 상당한 고레벨의 영혼주술사였 지.
“어, 안녕?”
지금 우테콰이의 거구 뒤에 몸을 숨기고 있는 소녀 역시 영혼주술사 였다.
그러고 보면, 내가 가진 캐릭터 중 여성 영혼주술사는 하나 뿐이었다. 아마 이 녀석이 바로 그 캐릭터겠 지.
“lorphia. Ur’ne ahunga nm’oyed, ahunga kanzai.”
우테콰이가 초원의 말로 무어라 타 이르듯 말하자 어린 영혼주술사는 못 이긴 듯 앞으로 나섰다.
붉은 기가 옅게 감도는 피부와 마 력이 느껴지는 연한 청발, 거기에 조그만 깃털장식을 꽂은 머리띠까 지. 이국적인 인상에 신비로운 분위 기를 풍기는 소녀였다.
키가 꽤 큰데 반해 이목구비는 작 고 오밀조밀하여 어린 티가 났다. 정확한 나이는 모르겠지만, 엘렌이 나 뭉치보다도 앳되어 보인다. 끽해 야 열여섯, 열일곱쯤 됐을까.
어,” 흘끗 눈을 마주치며 보이는 망설임 은 경계심이 아닌 수줍음에 의한 것 이다.
싱긋 웃어 보이자 얼른 눈을 내리 까는 모습이 새벽의 물망초를 연상 케 했다. 울카르의 병사들 사이에서 ‘하프엘프’라 불린다더니,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아, 안녕하세요. 저는 리쿠와 부족 의 주술사이자 우테콰이 님의 처제 인 이오피야…… 라고 해요.”
예상과는 달리 굉장히 유창한 밀라 놀어에 난 조금 놀라고 말았다.
“말을 엄청 잘하네? 초원에서 미리 배워 온 거야?”
“네? 아뇨, 아뇨. 항해하는 동안이 랑, 오두엔느에서 지내는 동안에 익 혔어요.”
“왕국에 넘어온 게 언젠데?”
“삼 달- 아니, 삼 개월 전이요.”
“고작 삼 개월 만에 이만큼 말을 익혔어?”
내가 눈을 휘둥그레 떠 놀란 기색 을 보이자 이오피야는 배시시 웃으 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한데? 우테콰이보다 훨씬 낫
다, 야.”
내가 놀리듯 꺼낸 말에도 우테콰이 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다. 아니, 오히려 자랑스럽게 씩 웃어보였다.
“이오피야는 어릴 때부터 영리했 다. 말 익히는 것 정도는 아주 쉽 다.”
“저기, 형부,”
“게다가 여섯 살에는 하늘 읽었다. 리쿠와의 모든 주술사보다 빠르다. 벌써 주술사 된 것도 당연하다.”
“아, 형부우-”
“Ah? Dorwa omnui?”
“Th’ol en jubie rehon……
“Rec’ne? 무엇을?”
“……아녜요, 아무것도.”
이오피야가 얼굴을 감싸 쥐는 동 안, 난 그녀에 대한 정보를 더 떠올 려 보았다.
내 유일한 여성 영혼주술사는 친구 와 듀오를 맞추기 위해 만든 것이었 다. 추후 PvP용으로 키울 계획이었 지만 일단은 ‘수호’ 계열에 스킬 포 인트를 몰빵했더랬지.
하지만 그 친구가 금세 다크월드에 질려버린 탓에 이 캐릭터도 덩달아 잊히고 말았다.
레벨이…… 한 20쯤 되었던가? 아 마 그쯤이거나 더 낮을 거다.
30레벨 초중반인 나와 동료들에 비하면 낮은 레벨이지만, 동행조차 하지 못할 정도의 격차는 아니었다. 게다가 근접 전투원이면 몰라도 치 유 및 지원을 담당하는 수호 영술이 니 충분히 제 몫을 할 수 있겠지.
“어쨌든, 반가워. 오두엔느 항구에 있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드디어 만 나게 됐네.”
난 빙그레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난 포이닉스야. 너희 형부랑은 친 구 사이지.”
“어……
우물쭈물하던 것도 잠시. 이오피야 는 약간 뻘쭘해 하는 표정으로 히 히, 웃더니 내 손을 맞잡았다.
“안녕하세요, 포이닉스 님. 다른 분 들께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요.”
“다른 분들?”
이야기를 대충 들어보니, 이오피야 는 혈혈단신으로 이역만리 항구까지 여행을 해왔다고 한다.
어린 소녀가 혼자 먼 길을 여행해 왔으니 위험할 법도 했으나, 저 멀 리 서쪽에서 배를 탄 뒤에는 친절한 갑판장의 도움을 받았고 항구에 도 착한 이후에는 우연히 만난 그라니 아 패거리에게서 보호를 받았다고 한다.
“‘바다안개 호’의 갑판장님은 초원 의 사람을 어머니로 둔 분이셨어 요.”
“운이 좋았네. 그라니아는 어떻게 만난 거야?”
“오두엔느 항구의 시장에서 나쁜 사람들을 만났는데, 아르날이 저를 구해줬어요.”
“아르날이?”
내 돌아보는 시선에 아르날이 어깨 를 으쓱거렸다.
“웬 맹한 여자애가 대낮에 강도질 을 당하고 있길래 도와준 것 뿐입니 다. 라이암 경의 명령으로 치안대 노릇을 할 때였거든요.”
순진해 보이는 어린 여행객을 항구 의 건달들의 손에서 구해낸 아르날 은, 소녀와의 짧은 대화를 통해 그 녀가 ‘하탄카 씨’의 처제라는 사실 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너희들이 보호하고 있었던 거구나?”
“뭐, 겸사겸사였죠.”
“겸사겸사?”
“예. 이오피야의 치료술이 어지간 한 사제보다 낫던데요. 우리도 도움 깨나 받았죠.”
“그런 거였구만.”
내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면 이오피 야가 익히고 있는 스킬은 네 개, 즉 ‘보호’, ‘중화’, ‘운신’, ‘반추’ 뿐일 것이다. 수는 적지만 하나같이 알짜 스킬들이니 그라니아 패거리도 적잖 이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그래도 행운이다. 어머니가 이오 피야를 소중히 여긴 것이다.”
“정말 그런가 보네.”
그라니아 패거리에 합류한 이오피 야는 그들의 소개를 통해 아탈란테 와 라이암 경과도 대면했다고 한다. ‘붉은 곰’ 내지는 ‘우레거인’이라 불 리는 우테콰이의 처제이니 관심을 끈 모양이다.
“덕분에 포이닉스 님에 대한 이야 기도 많이 들었어요. 듣던 것과는 달리 선한 인상이시네요.”
“그래?”
난 피식 웃으며 그라니아와 아르 날, 아탈란테를 돌아보았다.
“……‘듣던 것과는 달리’라고? 대 체 나에 대해서 뭐라고 떠들어댄 거 야, 너희들?”
“앗, 저는, 그런 뜻이 아니라-” 딴청을 피우며 시선을 돌리는 세 여인을 더 추궁하고 싶은 마음을 억 누르고, 난 도로 이오피야를 돌아보 았다.
“뭐, 어쨌든. 그냥 편하게 아저씨라 고 불러. 형부 친구라니까, 포이닉스 님이 뭐냐.”
“……아저씨요?”
“어.”
소녀는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지만 딱히 토를 달지는 않았다. 처음 보 는 사람에게 ‘몇 살인데요?’하고 물 어볼 정도로 당돌한 성격은 아닌 모 양이다. 아니면 ‘아저씨’라는 호칭이 익숙지가 않거나.
“그런데, 이 멀리까지는 무슨 일로 온 거야? 형부 찾으러 왔어?”
“아, 그것도 있구요-”
“이 오피야.”
무어라 말을 하려던 이오피야를 만 류한 우테콰이가 내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듣는 귀가 많다. 들어가서 이야기 하자.”
“……그럴까?”
난 문득 ‘장미꽃밭’ 여관 앞에 모 인 사람들을 돌아보곤 우테콰이에게 질문했다.
“그러고 보니, 헤일라는?”
“2층에 있다.”
“2층에?”
우테콰이를 대신하여, 내 뒤에 서 있던 에손이 작은 목소리로 설명했 다.
“잘은 모르겠지만, 시선을 피하고 싶어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시선? 무슨 시선?”
“귀족들 말입니다, 나리. 뭔가 사정 이 있는 것 같으셨는데……. 아, 저 기.”
에손의 눈짓에 2층을 올려다보니, 커다란 창에 드리운 두꺼운 커튼 사 이로 한 인영이 빼꼼 모습을 드러내 고 있었다.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더니, 인영 의 정체는 다름 아닌 헤일라였다.
그녀는 어째 냉기가 풀풀 풍기는 눈빛으로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 다. 나와 시선이 마주치고 한 차례 깜빡인 눈은, 까만 유리알 같은 눈 동자를 굴려 내 주변을 훑었다.
“……뭐지?”
“ Q ”
그라니아와 아르날, 이오피야 등은 어디선가 느껴지는 한기에 영문도 모른 채 어깨를 떨었다.
아탈란테와 테오도라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다가 헤일라와 눈을 마 주쳤다.
“……또 지랄이네, 쟤는.”
“ O 으” —
그저 미간을 좁힐 뿐인 테오도라와 는 달리, 아탈란테는 기다렸다는 듯 마력을 끌어올렸다.
지잉.
호박색 눈동자가 보랏빛으로 물들 었다. 그녀의 몸에서는 공허에서 비 롯된 괴이한 기척이 흘러나왔다.
이를 내려다보던 헤일라는 가소롭 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 곧이어 막대한 마력이 끓어 넘치듯 흐르더 니 달콤한, 아니, 비릿한 혈기로 화 하여 사위를 내리눌렀다.
여관 앞뜰에 모인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압박감에 몸을 굳히거나 뒷걸 음을 칠 즈음, 우테콰이가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포이닉스. 구경만 할 거냐?”
“……아니. 다 방법이 있지.”
내가 돌아본 건, 프리츠에게 고삐 를 맡겨 두었던 바이콘이었다. 난 놈의 안장을 뒤져 유리병 하나를 꺼 내 들었다.
“그건 뭐냐?”
“술.”
“술?”
롱데일의 선술집, ‘금화와 여관’에 서 사 온 체리브랜디였다.
난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헤일 라를 향해 술병을 들어 보였다.
‘한잔할래?’
소리 없이 입술을 달싹거리자 헤일 라는 어이가 없다는 듯 입을 조금 벌렸다.
그녀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 지만, 맥이 빠진 듯 이내 혈기를 거 두었다.
고급스러운 가구가 들어찬 여관방 안. 자그만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나와 우테콰이, 헤일라가 둘러앉았 다.
헤일라는 내가 가져온 체리브랜디 가 마음에 든 눈치였다. 굳어있던 눈매가 조금 풀어진 것을 보면 틀림 없었다.
예상대로군. 사 오길 잘 했어.
반면 우테콰이는 브랜디를 들이키 곤 두어 차례 쩝쩝거리더니 미간을 구겼다.
“술도 아닌 술이다. 포이닉스, 입맛 이 형편없다.”
놈은 복도에 대고 ‘힉스!’하고 고함 을 질렀다. 그러자 하인 힉스는 마 치 기다렸다는 듯 나타나선 커다란 참나무통을 대령했다.
“여기 점원들, 다 튀었다며. 그럼 여관 일은 너희 부부가 전부 맡고 있는 거야?”
“그건 아닙니다, 나리.” 젊은 부부 힉스와 로웬은 기스톨에 서부터 함께해온 이들로, 나와 헤일 라의 시중을 들거나 부하들을 위해 잡일을 해주는 역할을 한다.
봉급을 나름 후하게-힉스와 로웬 둘이 합쳐 일주일에 은화 한 닢씩을 받고 있다-쥐여준 덕인지 아직도 일행에 붙어있다. 여행을 하며 겪어 온 일들을 감안하면 진즉에 도망치 지 않은 게 고마울 따름이다.
힉스는 참나무통에 놋쇠 꼭지를 박 으며 헤일라 쪽을 흘긋거렸다.
“아가씨께서 배려해주신 덕에 용병 들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마구간 은 도넬 님과 미텔먼 님이, 장작은 타가트 님과 골만이 맡아주는 식이 죠. 아가씨의 시중은 제 아내와 셰 아가 하고요.”
“그래? 보급은 충분해?”
“예. 늘 그랬듯 에손 님이 잘 챙겨 주고 계십니다. 참 재주가 좋은 분 이에요.”
놋쇠 꼭지를 돌려 술잔을 채운 힉 스는 첫 잔은 양동이에 버리고, 두 번째 잔은 우테콰이 앞에 올려주었 다.
“이 벌꿀술도 에손 님이 구해온 겁 니다.”
“벌꿀술? 고원에서 벌꿀술을 어디 서 구했대?”
“어,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 다, 나리.”
고개를 젓는 힉스를 대신해 헤일라 가 입술을 떼었다.
“루얀한테서 산 거야.”
“루얀 남작한테?”
“응.”
얘길 들어보니, 루얀은 하이캐슬에 도착하자마자 주머니를 털어 사치품 들을 모조리 사들였다고 한다. 마침 피난 준비를 하던 상인과 부자들은 짐을 덜어낼 겸 싼값에 물건들을 처 분했고, 루얀은 그 사치품들을 쟁여 두었다가 동료 귀족들에게 조금씩 팔고 있단다.
“……진짜 골 때리는 놈이야. 무슨 열세살 짜리 애가 전쟁 중에 장사를 하냐. 욕은 안 먹어?”
“그렇게 번 돈으로 병사들의 장비 를 갖추고 있어서 다들 눈감아주는 분위기야.”
“참……. 하여튼 대단하다니까.”
난 헤일라를 통해 도시의 상황을 이것저것 전해 듣다가 우테콰이를 돌아보았다.
“근데 너, 무슨 일 있었다고 하지 않았냐?”
“일貿
“분노할 만한 일이 있었다며.”
“아, 옳다.”
놈은 벌꿀술을 한잔 털어 넣더니 떫은 표정을 지었다.
“적, 초원의 형제들을 부린다.”
“그게 무슨 소리야?”
“부왕의 노예군대 말이다. 거기에 부족 전사들이 끼어 있다.”
“……이교도 노예군대에, 초원의 전사들이 있다고?”
“옳다.”
우테콰이는 비분강개한 듯 씩, 콧 김을 뿜었다.
“수에아탄 부족을 기억하나?”
“……아니, 모르겠는데?”
“그럼 끈적한 안개에서 만났던, 초 원의 전사는?”
“안개에서 만난, 초원의 전사? 아, 슝카슬레 말하는 거야?”
“슝카슬레?”
아차, 우테콰이는 그 전사의 이름이 벼락도끼 슝카슬레인지 모르지. 그저 장식을 보고 부족을 유추했을 뿐이
니까.
“아니, 하여튼, 그 전사가 왜?”
“그의 부족이 수에아탄이다. 지금 도시 앞에서 부왕을 위해 숲 베는 이들 중에 수에아탄의 전사들이 있 다.”
“……뭐, 신기한 일은 아니네. 이교 도 노예군단이라고 했으니 초원에서 잡아들인 전사들도 있겠지.”
“흥, 너 구경꾼처럼 말한다.”
두껍고 커다란 손바닥에 테이블이 쿵, 하고 울렸다. 세게 두드린 것도 아니고, 그저 올려놓았을 뿐인데도 테이블에 살짝 실금이 갔다.
“난 구경만 할 수 없다. 초원의 대 전사로서, 그들을 구해야 한다.”
아, 귀찮은 추가 퀘스트로군.
물론 작은 눈을 활활 불태우고 있 는 우테콰이에 대고 할 말은 아니었 다. 난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 무슨 말인지 알겠어. 초원의 친구들을 어떻게 구할지는 한 번 찬찬히 생각해보자고.”
난 그렇게 우테콰이를 달랜 뒤, 노 예군단에 잡힌 초원의 전사들보다 훨씬 관심을 끄는 주제에 대해 질문 했다.
“그래서. 네 귀여운 처제가 여기까
지 온 이유는 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