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haebol's Youngest son RAW - Chapter (140)
141화. 한도영, 만반의 준비 후 귀국하다.
웰스파고.
한도영은 웰스파고 샌프란시스코 본점을 찾았다.
하늘을 찌를 듯 우뚝 솟은 건물을 잠시 바라보던 한도영은 본점 안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
“오, 한 대표님. 반갑습니다.”
한도영을 확인한 국제영업담당이사 찰리모튼은 급히 달려 나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반갑습니다.”
한도영은 환하게 웃으며 찰리모튼과 악수했다.
“자, VIP룸으로 가시죠.”
찰리모튼은 한도영을 안쪽에 위치한 VIP룸으로 안내했다.
“훌륭하군요.”
한도영은 애매한 말로 대화의 포문을 열었다.
VIP룸이 멋지다는 건지, 웰스파고의 소매영업방식이 훌륭하다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찰리모튼은 환하게 웃었다.
“한국경제가 많이 좋아졌다고 들었습니다. 대외적인 지표도 아주 훌륭하고, 주가도 올랐고, 외환보유고도 크게 상승했고요. 무엇보다 IMF의 예상보다 빠르게 부채를 갚고 있고요. 정말 한국은 인상적인 나라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국에 투자할 걸 그랬습니다.”
찰리모튼의 진심에 한도영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때 71.3억 달러를 대환대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정말 큰 금액이었고, 웰스파고에서도 상당히 격론이 일었습니다. 물론 한 대표님이 사재를 담보로 잡혀주신 덕분에 쉽게 마무리될 수 있었지요. 우리 웰스파고로서는 안정되게 큰 이익을 얻고 있으니, 한 대표님이 큰 은인입니다.”
기분 좋게 칭찬 모드 속에 대화가 진행되었고, 한도영이 본심을 털어놓았다.
“긴히 상의드릴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최대한 긍정적으로 검토하겠습니다.”
긍정적이란 표현을 썼지만, 확실한 담보가 없으면 큰돈을 대출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렇더라도 다른 은행에 비해 웰스파고가 한국 특히 한도영에게 호의적인 건 사실이었기에 한도영도 다른 은행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아마도 올해 말에 대현전자를 인수할 거 같습니다.”
“오, 마이 갓.”
백산그룹에 큰 금액을 대출했기에 찰리모튼은 한국경제 정보를 꼼꼼히 분석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대현전자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괜찮겠습니까? TL반도체를 인수해서 부채만 19조라고 들었는데요.”
“인수하더라도 그 부채를 모두 인수할 수는 없고, 일부만 인수할 생각입니다.”
“흐음. 그럼 이번에는 대현전자 부채를 대환대출해야겠군요. 알겠습니다. 꼼꼼하게 조사하여 대출가능금액을 산정하겠습니다. 이번에도 초과되면 한 대표님께서 담보를 제공해주십시오.”
찰리모튼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제안했다.
하지만 다음에 이어지는 한도영의 말에 얼굴색이 홱 변했다.
“현재 나스닥은 거품이라 생각입니다. 터지기 직전이고 터진다면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겁니다. 하여 올해 중으로 나스닥 주식을 정리할 생각입니다.”
“자, 잠깐만요.”
찰리모튼은 급히 손사래를 쳤다.
“한 대표님. 그럼 대출한 금액의 일부는 갚아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대현전자 대출전환도 원하시는 금액을 모두 해드릴 수 없습니다.”
“아마존은 10%를 남겨놓고, 25%를 매각할 생각이며, 다른 나스닥주식은 모조리 매각할 생각입니다. 그 후, 폭락에 대비하여 공매도를 칠 생각입니다.”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군요. 주식이 완만하게 오름세를 이어가거나 횡보하면 한 대표님은 큰 손실을 입을 겁니다.”
“당장은 아니고 올해 안으로 상황을 봐가며 정리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웰스파고와 의논하여 갚을 금액은 갚겠습니다. 우리는 파트너 아닙니까?”
“하하하. 역시 한 대표님답군요. 그렇죠. 우린 파트너입니다.”
찰리모튼은 호탕하게 웃었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저희도 백산그룹과 한 대표님을 믿고 대현전자 대환대출을 논의할 때 최대금액으로 진행하겠습니다. 예의상 드리는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노력하겠습니다.”
찰리모튼은 한도영이란 대형고객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런 고객은 정말 흔치 않았다.
한도영은 그에게 권지훈 연락처를 건넸다.
“제가 한국에 있을 때는 여기 권 대표와 통화하십시오. 샌프란시스코에서 회사를 운영하고 있으니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눠도 됩니다. 그의 말이 곧 제 말이라고 생각하셔도 무방합니다.”
“그러죠. 한국인이로군요. 알겠습니다.”
한도영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찰리모튼도 바로 일어섰다.
“이왕 오셨으니 식사라도 하시죠.”
“그럴까요?”
찰리모튼은 직원에게 지시를 내리고는 한도영과 함께 은행을 나섰다.
**
2월 10일.
한도영은 권지훈과 나스닥 주식 매각계획을 논의한 후, 한국으로 돌아왔다.
아마존은 권지훈을 통해 의논하다가 필요하면 그때 시애틀로 이동하여 협상하기로 결정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많은 일을 하고 돌아왔기에 한도영은 뿌듯한 마음으로 한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
한국경제는 활력을 되찾았다고 하지만, 여전히 외환위기가 남긴 그늘은 컸다.
아직도 많은 기업이 주인을 찾으며 법정관리아래 신음하고 있었다.
분명히 나아지고 있지만, 아직은 부족하다는 방증이었다.
백산그룹.
한도영은 부회장실에서 홍건희와 함께 백산그룹을 총괄하여 경영했다.
아성자동차와 미래자동차가 하나로 온건하게 합병되면서 김경철이 BF Motor의 대표가 되었고, 미래자동차 대표를 맡았던 김혁수는 다시 대표자리에서 내려왔다.
“넌 다재다능함이 문제다. 쯧쯧.”
홍건희가 김혁수를 어깨를 툭치며 힐난하듯 말했다.
“왜요? 난 오히려 좋은데. 형은 대표 못해봤죠? 난 두 번이나 해봤어요. 그것도 대기업인 중우건설과 미래자동차.”
“좋겠다. 자식아.”
홍건희는 말을 잠시 멈췄다가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혁수야.”
“무슨 말을 하려고 목소리를 깔아요?”
“부회장님한테 부탁해서 한 자리 달라고 해. 넌 자격이 충분해. 아마 주실 거다.”
“됐어요. 우리 부회장님 또 계속 대기업을 인수하실 텐데, 그럼 구원투수는 누가 맡아요. 내가 바로 구원투수의 적임자입니다. 대현상선이야 태평양상선에 바로 인수되는 바람에 제가 나서지 못해 아쉬웠지만, 또 기회가 있겠죠.”
김혁수는 눈빛을 반짝였다.
그가 노리는 건 대현전자 대표였다.
중우건설, 미래자동차도 대기업이었지만, 대현전자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었다.
특히 반도체까지 아우른 대현전자는 단일 계열사 규모로 백산그룹의 어느 계열사보다 큰 규모를 자랑했다.
“그래서 요즘 반도체 전자분야 공부하고 있냐?”
“그게 제 주특기잖아요. 암기 잘하고, 요점 잘 파악하고. 공부만큼은 자신 있어요.”
“하여튼 넌 특이한 놈이다.”
“나 같은 사람도 있어야 부회장님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잖아요.”
홍건희는 더는 김혁수를 설득하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김혁수는 긴급한 상황에 투입하는 구원투수 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그런 인재는 값으로 따지기 어려울 만큼 귀했다.
부회장실.
“고생하셨습니다. 김 대표님 덕분에 BF Motor가 안정되었습니다. 백산그룹을 대표하여 감사드립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이제 무엇을 할까요?”
김혁수는 옅은 웃음을 지으며 질문했다.
“당분간은 홍 실장님을 도와주세요. 그리고 예상하고 있겠지만,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는 대현전자를 인수할 생각입니다. 할 일이 많으니까 준비하세요.”
“예. 부회장님.”
“이거 자꾸 고생만 시켜서 미안합니다.”
“아뇨. 인정받으니까 좋습니다.”
김혁수는 환하게 웃었다.
한충식을 보좌하면서 백산건설 기획실장으로 근무할 때는 바쁘면서도 뭔가 무료한 느낌이었다.
이후 한도영을 보좌하면서 무료하다는 생각이 들 틈이 없을 만큼 바쁘게 살았는데, 시간이 지난 후에 돌이켜보니 그게 그에게 더 잘 맞았다.
새로운 임무에 적응하려면 매우 힘들었지만, 그것을 성취하면 큰 기쁨이 따랐는데 김혁수는 그게 좋았다.
그렇기에 진심으로 웃을 수 있었다.
“대현전자를 인수하면 꽤 오랫동안 맡으셔야 할 겁니다. 그곳은 할 일이 아주 많으니 단단히 준비하시고요.”
“네. 알겠습니다.”
김혁수는 씩씩하게 대답했다.
**
3월 2일.
한도영과 백산그룹이 조용하자, 정치권과 재계에서는 법정관리기업을 인수하지 않겠냐며 조용히 문의해왔다.
한도영은 정중하게 그 제안을 거절했다.
대현전자인수만 아니라면 꼼꼼하게 살펴 인수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대현전자는 백산그룹에서 전력투구해 인수해야할 대상이었다.
대현그룹.
조삼영은 김기열에게 재무상황을 정리하여 보고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날 오후.
김기열은 그룹의 재무상황을 정리하여 조삼영을 찾았다.
조삼영은 보고서를 훑어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상구를 욕할 게 못 되는구만.”
심각한 재무제표를 본 조삼영이 무심결에 내뱉은 말이었다.
“그래도 괘씸한 건 사실입니다. 감히 회장님의 지시를 어기고 그런 행동을 했지 않습니까?”
“냅두라우. 그놈 괘씸한 건 사실이지만, 결과적으로 그룹에 이득이 되었어. 그럼 된 거야. 딴 소리 하지 말라우.”
조삼영은 김기열에게 일침을 놓았다.
김기열이 대답하지 않자, 조삼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대답.”
“예. 알겠습니다.”
한참을 재무제표를 훑어보던 조삼영이 지나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상구가 회장이 될까 겁나네?”
“아, 아닙니다.”
“다 알아. 상구와 김 실장의 사이가 견원지간이라는 것도. 김 실장이야 내 지시를 따라 헌구를 밀어줬을 뿐이지만, 그게 상구를 자극했겠지. 상구 눈에는 김 실장이 눈엣가시처럼 보였을 거야. 내가 상구 마음을 알아. 김 실장. 아니, 기열아.”
“예. 회장님.”
“내가 죽기 전에 네 몫은 떼어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라. 특히 상구에게는 알아듣게 설명해 놓을 테니 그리 알고.”
“회, 회장님.”
“감사는 나중에 하라우. 할 일이 많아. 기열아.”
“예. 회장님.”
“대현전자는 매각 말고는 답이 없는 거 같은데, 닌 어케 생각하네?”
“같은 생각입니다. TL반도체 인수가 결국에는 독이 되었습니다.”
“그래. 내가 욕심이 컸어. 그때 구조조정을 했어야 했는데. 이 조삼영이도 늙었구나. 판단력이 흐려지다니.”
조삼영은 눈을 질끈 감았다.
외환위기 전까지 할 수 있다는 구호아래 앞만 보고 달려온 인생이었다.
숱한 위기가 있었지만, 쓰러져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또 달려 재계 1위의 대현그룹을 일궈냈다.
외환위기가 벌어졌지만, 그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미래그룹이 몸을 사리며 구조조정을 언급할 때, 대현그룹은 앞으로 치고 나갔다.
반도체를 인수하면 그룹이 위험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지만, 뚝심으로 밀어붙였다.
하지만 부채 8조의 위력은 엄청나서 대현그룹을 휘청거리게 만들었다.
그는 문득 한도영이 부러워졌다.
‘달러를 가진 놈이 왕이야. 고놈은 어찌 그런 쪽으로 머리가 기가 막히게 잘 돌아갔을꼬?’
“기열아. 대현전자를 계속 보유하고 있을 방법은?”
“대현건설을 매각하면 됩니다. 그룹의 부채는 크게 대현건설과 대현전자에 집중되어 있는데, 현재 그룹을 안정시키려면 둘 중 하나를 처분해야 합니다.”
대현건설은 곧 조삼영이었다.
그렇기에 김기열은 조심스럽게 보고할 수밖에 없었고, 불호령이 내려지더라도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상구 부르라.”
“예. 알겠습니다.”
김기열은 즉각 대답하고는 조상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회장님. 30분 내로 도착한다고 합니다.”
“닌 돌아가서 일 봐라.”
“예. 회장님.”
김기열은 정중하게 목례하고는 회장실을 물러났다.
밖에서 문을 닫으면서 김기열은 생각했다.
‘회장님은 대현건설을 절대 포기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 결국 대현전자가 매각되는 것인가? 참으로 허무하구나.’
김기열은 허무감이 엄습했다.
평생 조삼영의 그림자로 살아온 인생이었고, 그의 뜻에 따라 조헌구를 회장에 올리기 위해 수많은 비난을 받아가며 노력했었다.
조헌구가 회장이 되면 그 역시 큰 보상을 받으리라 생각했다.
그게 성과로 드러날 무렵 한도영과 조상구가 앞을 막아섰고, 그의 꿈도 좌절되었다.
다 끝났다는 생각에 김기열은 고개를 흔들며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