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haebol's Youngest son RAW - Chapter (61)
62화. 한도영의 경영스타일.
백산중공업.
태평양상선 대표 우철희는 백산중공업 본사 건물을 바라보고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입수협상 당시 주로 김혁수와 대화를 나눴고, 상당히 호의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했다.
‘이제 고등학생 나이라고 하던데···.’
우철희는 한도영이 대표지만, 실제로 경영은 김혁수가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잡생각을 떨쳐내고는 본사로 들어갔다.
비서실에 들어섰을 때, 김혁수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 오셨군요. 사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저, 제가 조심해야할 게 있나요? 예를 들어 어려운 용어를 자제하라던가?”
“하하하. 필요한 건 과감하게 요구하세요. 서로 치열하게 대화해야 태평양상선의 미래가 밝아지겠지요. 괜한 선입견을 갖고 그분을 대했다가는 큰 코 다칠 겁니다. 기준을 아주 높게 잡고 대화하세요.”
“괜찮을까요?”
김혁수의 조언에도 우철희는 걱정이 되었다.
한도영의 나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어렸고, 그의 경험상 그 나이의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괜찮습니다. 정말 만만치 않을 테니, 최선을 다하세요.”
김혁수는 가까이 다가와 나직하게 조언해주고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우철희는 옷깃을 여미고는 그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한도영입니다.”
“우철희입니다.”
우철희는 한도영과 악수하면서 묘한 느낌을 받았다.
신체상의 나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카리스마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신선했다.
“이리로 앉으시죠.”
한도영은 우철희를 소파에 앉히고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가져왔다.
“좀 쓰군요.”
우철희는 솔직하게 맛을 평가했다.
“네. 그래서 저 혼자 먹고 있지요. 그동안 법정관리를 받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보다는 직원들의 고생이 심했죠. 매출이 많이 나와도 채권단에서 요구하는 1,500억을 갚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었습니다. 덕분에 직원의 복지나 선박 수리는 물론이고 새로운 선박을 구입하는 건 엄두도 못 냈습니다. 급한 부분은 땜빵처리하는 식이었습니다.”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원래 비참한 법이죠. 이제부터는 백산중공업 산하에 있으니 그동안 법원의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하지 못했던 부분을 정리해서 보고하세요. 예산을 확보하여 최대한 반영하겠습니다.”
우철희는 감사의 표현을 하지 못한 채 눈만 끔뻑였다.
통상 법정관리 기업을 인수하면 어떡하든 비용을 줄이려고 노력하기에, 우철희도 그 부분에 대해 어떻게 반박할지를 고민하여 이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자신의 생각과는 180도 달랐기에 잠시 머릿속이 멍해졌다.
이렇게 전개되리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다.
“혹시 제 말이 이해 안 되시나요?”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말씀이 너무 뜻밖이라서.”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은 해야죠. 그래야 더 열심히 일하라고 요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저와 함께 하시면 정말 열심히 일하셔야 합니다.”
“물론입니다.”
“그리고 당분간 새로 선박을 건조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태평양상선의 규모를 더욱 크게 만들 생각입니다. 지금 264척의 선박이 있는데, 시간을 두고 용선(빌린 선박)하거나 타 회사에서 사용하던 선박을 매입하여 규모를 키울 생각입니다.”
우철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사장님. 적게라도 신형 선박을 구입해야 합니다. 순차적으로 오래된 선박을 매각하거나 퇴역하고, 그 자리를 신형 선박으로 대체해야 합니다. 계속 중고 선박으로 대체한다면 문제가 한꺼번에 터질 수 있습니다. 선박은 언젠가는 퇴역해야 하거든요.”
우철희의 조언에 한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동의하는 부분이었다.
낡은 선박을 계속 운행하다 사고라도 발생하는 날이면 태평양상선의 신뢰도가 한꺼번에 추락할 수 있었다.
대형화물을 운행하는 업계의 특성상 신뢰도가 떨어지면 큰 고객을 잃을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중고 선박을 구입하려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 가장 피해를 본 업계가 바로 해운업계였다.
국내 1, 2위를 다투는 대현상선과 한국해운이 30%까지 오른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대량의 자사선박을 매물로 내놓게 된다.
그때 선박을 대량으로 매입할 생각이었다.
매입한 후에 다시 대현상선과 한국해운에게 용선으로 빌려줄 생각이었다.
서로의 니즈가 맞으니 계약은 문제없이 진행할 것이고, 그들이 건네주는 용선료는 태평양상선의 재무구조를 크게 개선시켜줄 것이다.
또 제철소와 거대한 조선소가 매물로 나온다.
그렇기에 지금 신형선박건조에 대해 확답을 해주지 않았다.
“일단 1, 2년은 현재의 선박을 잘 수리하여 운행하세요. 선박을 구입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때가 되면 다시 말씀드리지요.”
“예. 사장님.”
우철희는 첫만남이었기에 더는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그런데 힘들지 않습니까?”
“힘들어요? 아, 하하하. 뭐, 그런 시선이 존재하죠. 기업을 경영하기엔 제 나이가 터무니없이 어리니까요. 그 부분에 대답은 제가 하지 않겠습니다. 시간을 두고 우 대표님께서 직접 평가해주시죠. 몇 달 저와 함께 일하시면 지금의 질문이 얼마나 터무니없었는지 깨닫게 될 겁니다.”
“무례했다면 죄송합니다.”
“익숙해져서 괜찮습니다.”
한도영은 담담하게 대답하고는 우철희로부터 태평양상선에 대한 업무보고를 받았다.
재무제표를 비롯하여 해외지사현황, 전반적인 세계경제흐름을 바탕으로 태평양상선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심도 있는 토론이 이어졌다.
날카로운 질문이 연이어 쏟아졌기에 우철희는 대답하느라 쩔쩔 맸다.
‘이거 내가 오판했구나. 나이가 어리다고 만만히 보고 대충 업무보고서를 대충 만들어왔다면 내 모가지가 날아갈 뻔했어.’
우철희는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업무보고를 마치고 나온 우철희는 김혁수의 집무실로 가서 커피를 마셨는데, 훨씬 마음이 편했다.
“어떻습니까? 아직도 사장님의 나이가 어려서 걱정되십니까?”
“아닙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우철희는 질렸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건 숫제 괴물이더군요. 이, 이런. 죄송합니다. 실수했습니다.”
“괴물 맞죠. 절대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이면 그 나이에 그렇게 일 못하죠.”
김혁수는 재밌다는 듯 껄껄 웃었고, 덕분에 우철희는 긴장감이 조금 풀어졌다.
“우 대표님. 너무 긴장하지 마시고 적극적으로 필요한 건 요구하세요. 사장님은 필요한 건 잘해주시는데, 단점이 독하게 일을 시킵니다. 어설프게 일처리하면 불호령이 떨어지고요. 그러니까 필요한 건 즉시 요구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사장님이 혹시 해운업계에 근무하셨습니까?”
“전혀요. 나이를 보세요. 그게 가능한지? 그리고 백산그룹은 해운업과는 관련이 없고요. 왜요?”
“글쎄요. 해운업에 대해 꽤 많이 아시는데 단순히 책이나 보고서를 읽어서 아는 게 아니라, 해운업계의 내부 속사정까지 훤히 꿰뚫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괴물이죠. 자자, 열심히 일하셔야 할 겁니다.”
“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그건 제가 드릴 말씀이죠.”
우철희는 김혁수와 악수하고는 백산중공업 본사를 빠져나왔다.
**
96년 10월 1일.
백산타이어는 전국의 주요 대도시에 32개 서비스점을 동시에 오픈했다.
또한 주요 일간지와 TV에 광고를 실어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다.
충청도를 중심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해나가는 중견기업 타이어팡팡은 백산타이어의 서비스점이 확대되자 바싹 긴장했다.
백산중공업.
태평양상선을 인수하면서, 한도영은 김혁수를 기획조정실장으로, 백산타이어 상무였던 권영길을 대표로 선임했다.
김혁수는 한도영의 지시를 받아 백산타이어와 태평양상선을 조정통제했다.
“권 대표님. 오늘 서비스점을 오픈했고, 대대적으로 광고를 시행 중이니 차분하게 상황을 지켜보세요. 현재 타이어팡팡이 시장을 선점하긴 했지만, 세가 크지 않으니 금방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타이어 하면 백산타이어라는 인식을 사람들에게 심어주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서비스점을 확대하세요. 서비스점이 늘어날수록 타이어는 백산이라는 인식이 강해질 겁니다. 대한타이어, 금광타이어가 가만히 있는 지금이 절호의 기회라는 점을 놓치지 말고 전력투구하세요.”
“예. 사장님.”
권영길은 즉시 대답했다.
적극적으로 밀어주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자금지원해주지 않으면서 사업을 성장시키라고 요구할 때가 문제지, 지금 같은 경우는 대환영이었다.
“사장님. 그런데 계약기간을 단기로 하셨는데 이유가 있습니까?”
대부분의 서비스점 계약기간이 1년짜리 초단기계약이었기에 권영길은 의문이 들었다.
“장기계약을 맺는 게 안정적이긴 하죠.”
“그렇습니다. 만약 1년 후에 지주가 재계약을 포기한다면 새롭게 부지를 알아봐야 합니다. 또 이사비용도 만만치 않고요.”
“일단 1, 2년은 이대로 하시고, 그 후에 결정합시다.”
“알겠습니다.”
한도영이 명확하게 지침을 하달하자, 권영길도 일단 수긍했다.
내년에 외환위기가 닥치면 모든 경제활동이 사실상 올스톱된다.
그때 탐나는 자리를 물색하여 저렴한 가격에 장기계약을 맺거나 부지를 매입하여 서비스점을 개설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었다.
또 서비스점은 H빔을 이용한 조립식건물이었기에 이사하기도 수월했다.
한도영은 사업의 대부분을 외환위기로 한국경제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을 염두에 두고 진행하고 있었기에 실무자와 이렇게 의견차이가 발생하곤 했다.
그렇다고 이 부분을 설명할 수는 없었다.
하여 이런 식으로 대략 얼버무렸다.
“대한타이어, 금광타이어 쪽도 유심히 살피세요. 그쪽에서 백산타이어 서비스점을 보고 시장이 뛰어들지도 모릅니다.”
“초창기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제가 알아본 바로는 현재 서비스점 개설계획은 없습니다. 아무래도 백산타이어의 규모가 두 기업에 비해 작다보니 우습게 보는 것이지요.”
“그렇군요. 잘 됐네요. 상대가 방심하고 있으니.”
“반드시 따라잡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자동차 회사는 아직입니까?”
“솔직히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계속 문을 두드리세요. 백산타이어의 인식을 강하게 심어주면 그들의 생각도 바뀔 겁니다. 일단은 서비스점 확대와 시민들 인식개선에 주력합시다. 여기까지 합시다.”
“예. 사장님.”
권영길은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사장실을 나갔다.
홀로 남은 한도영은 기지개를 켜고는 창가로 걸어가 강남 시내를 바라보았다.
‘당분간은 태평양상선과 백산타이어를 안정적으로 성장시키는데 주력할 것이다. 최대한 힘을 비축했다가 한국에 위기가 닥쳐오면 그때 뛰어오를 것이다. 그때는 모두가 백산을 주목할 것이다.’
한도영은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한충식으로부터 지분 10%를 넘겨주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백산그룹이 품에 안겨옴을 느꼈다.
**
96년 10월 25일.
백산병원.
한강식은 한득병을 만나려고 병원을 찾았다.
한강식은 성큼성큼 걸어가 문을 병실로 향했고,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경호원이 그를 알아보고 허리를 숙였다.
한강식은 손을 들어 인사하고는 병실로 들어가려고 문을 열려다가 심각한 대화소리가 흘러나오자, 멈칫했다.
그는 고개를 돌려 경호원을 바라보고는 입을 열었다.
“자네, 잠깐 담배라도 한 대 피고 오게.”
“사장님. 제 임무는···.”
“5분만 다녀와.”
“알겠습니다.”
경호원은 한강식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고는 잠시 고민하다 고갤 숙이고는 물러났다.
한강식은 가만히 문에 귀를 대고 한득병과 홍건희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대화가 점점 진행될수록 그의 표정은 묘하게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