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ess's Shield Protects the Kingdom RAW novel - Chapter (225)
제225화
둥! 둥! 둥!
올리비아의 해변에서 조금 더 멀리 떨어진 바다.
일정하게 울려 퍼지는 북소리와 함께 마스트(배의 꼭대기)에 위치한 이들의 깃발이 바삐 움직이며 신호를 보내자, 배들이 일제히 방향을 바꾸어 크게 선회했다.
일사불란한 배의 움직임은 흡사 오랜 세월을 훈련한 정식 해군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참, 남작님은 재수도 좋습니다. 정말.”
대장선인 씨마리아호에 제롬과 함께 타고 있던 드웨인이 헛웃음을 내뱉으며 말했다.
“설마 올리비아 주민들이 저만큼 배를 잘 몰 줄은 몰랐습니다. 저들이 선임병사(先任兵士)가 되어 올리비아에서 밀려오는 신병들을 가르친다면, 훈련 기간이 대폭 감소할 것 같네요.”
“뭐, 이번엔 정말 운이 좋은 것 같긴 해.”
해적들이 설치는 동네에서 꿋꿋하게 살아가는 이들인 만큼 어느 정도는 배를 몰거나 깡이 있으리라고는 기대했지만, 이 수준은 기대치를 훨씬 넘었다.
아무리 해변가에 살아 어선에 익숙한 주민들이라 해도, 군선의 운용은 엄연히 다른 영역이다. 겨우 며칠 만에 저리 배를 몰 수는 없는 일이다.
저건, 우리가 오기 한참 전부터 훈련해오지 않고서는 절대로 나올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그 모든 게 델로 영감 덕분이지.’
대장선의 지휘실. 델로 영감은 고사했던 게 무색할 만큼 기다렸다는 듯이 주민들 중 자원자를 뽑아 일차적으로 해군을 구성했다.
그리고 저들을 선임병사로 키워, 올리비아에서 살라딘이 보내올 이들의 빠른 적응을 계획한 것 역시 그였다.
“내가, 인복 하나는 확실한 것 같긴 하네. 지금 저기 윗동네에서 고생하고 있을 녀석도 그렇고.”
화제를 살라딘으로 돌리자, 드웨인의 표정에 재차 걱정이 떠올랐다.
“살라딘 공자는 괜찮을까요? 생각보다 알반스 공작을 위시한 메르카도 노예 상인들의 반항이 만만치 않다던데. 지금이라도 전력을 보강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드웨인의 걱정은 결코 과하지 않았다. 실제, 샤론 왕국에서 들려온 급보에 따르면 아인족들이 알반스 공작가에 쳐들어갔다가 된통 당했다고 한다.
내가 분명히, 인간의 악의(惡意)를 조심하라 했건만.
“공작가에서 시간을 끄는 이유는 명백합니다. 분명히 뭔가를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 뭔가는 필시 제국의 원조겠지요.”
높은 확률로 그럴 것이다.
밀리아를 중간에서 납치하고 피터 왕자를 암살하려 했던 27성기사단은 명백히 샤론 왕국 내에 제국의 끄나풀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증거였으니까.
“제국은 바보가 아닙니다. 분명 아인족들을 짓누를 수 있는 강자들을 보내올 터. 그들을 살라딘 공자와 미샤 남매만으로 과연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높은 곳에서 모든 일의 흐름을 내려다보며 확인해야 하는 드웨인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시선이었다.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푸핫.”
드웨인의 이 걱정만큼은,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드웨인, 아직 살라딘을 잘 모르는구나?”
“…예?”
“드웨인, 네 말대로 그 녀석이 비록 얍삽하고 꿀 빠는 거 좋아하는 녀석은 맞지만.”
…아니, 그런 말은 안 했는데요.
“그게, 그 녀석이 약하다는 뜻은 아니야.”
내가 내 얼굴을 볼 수는 없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북쪽을 바라보는 내 시선에 조금의 근심도 섞여 있지 않았음을 말이다.
“메르카도 노예 상인들이 뭘 꾸미든, 제국에서 어떤 지원군을 보내든. 지켜봐. 옥좌에 오른 이들이나 4후작 수준의 적이 아니고서는, 살라딘은 분명히 알아서 답을 찾아 해결할 테니까.”
* * *
“뭔가를 기다린다니? 그게 무슨 소린가?”
살라딘의 중얼거림을 들은 애쉬가 되물었다.
“생각해봐. 지금 저렇게 어린아이들을 가지고 협박하는 게, 과연 언제까지 먹힐 거라고 생각해? 단기적으로야 이쪽의 행동을 제지할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이쪽의 감정만 자극하는, 아무짝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방식이란 말이지. 그럼 답은 하나야. 그 단기적인 목표만 이루면 된다는 소리니까.”
살라딘의 눈이 바우칼라크와 애쉬에게 향했다.
“떠올려봐라. 너희가 샤론 왕국에서 드래곤 산맥으로 향할 때, 누구에게 습격을 당했었는지.”
“……!!”
그제야 동족인 어린아이들의 참혹한 죽음에 시야가 좁아져 있던 애쉬와 바우칼라크 역시 상황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크르르. 그럼 어떻게 해야 하겠나?”
“뭘 어떻게 해, 애들 구해야지. 지원군이 없어도 이렇게 얻어터지고 있는 판인데, 이대로 시간만 축내다가 나중에 어떤 꼴을 당하려고?”
살라딘의 말에 바우칼라크가 침음성을 흘렸다.
“크르르… 그걸 모르는 게 아니다. 하나, 구할 방법이 없지 않은가.”
스윽!
바우칼라크가 손바닥을 내밀자, 프란 왕국산 마법 폭탄에 찢어진 상처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놈들도 우리 행동을 제약할 수 있는 게 아이들이라는 사실을 잘 안다. 그만큼 많은 화력을 집중해대비하고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구한단 말인가?”
애쉬와 요른의 시선 또한 살라딘의 입으로 향했다. 그들 역시도 행동을 제약하고 있는 아이들의 구출을 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아니, 애쉬는 그렇다 치더라도. 요른 경, 경은 그러시면 안 되죠….”
하아.
한숨을 내쉰 살라딘이 말을 이어갔다.
“너희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이유는 너희의 상상 이상인 저들의 악의(惡意) 때문이야. 그럼, 해결책은 간단하지.”
살라딘의 눈이 수감된 해적들이 있는 아잔타 궁의 감옥으로 향했다.
“우리도 똑같이 하면 되는 것뿐이야.”
* * *
덜그럭! 덜그럭!
끝없이 이어지는 수레의 행렬은 그 자체로 장관이었다.
어제 낮, 아잔타 궁의 옆 공간이동진을 타고 넘어왔던 대량의 해적들이 일제히 메르카도로 이동하고 있던 것이다.
“와, 이렇게 정리해서 보니까 장난이 아니네.”
“코삭스 경매장 존한테 물어보니까, 오늘 출품되는 해적들 가운데 넵튠 해적단이 있다더라고.”
“뭐? 붉은 두건 새뮤얼이 이끄는 그 대형 해적단?”
어제 낮에 누군가 새뮤얼의 얼굴을 알아보더니, 그새 소문이 퍼진 모양이었다.
“듣자 하니 올리비아에서 제롬 남작이 통째로 사로잡아 올렸다던데.”
“허, 나이도 어린 자가, 걸물은 걸물이구만. 아직 20대 초반 아닌가?”
“내 말이. 오늘은 제법 볼만하겠어.”
한편, 그런 시민들의 반응을 조용히 듣고 있던 살라딘은 남몰래 주먹을 움켜쥐었다.
‘됐다.’
시민들 모두가 보는 가운데, 메르카도로 사로잡은 해적들 모두를 출품했다.
아인족들의 공급이 줄어들면서 메르카도의 위상도 예전 같지 않을 터, 간만에 들어온 이런 대형 건수를 놓칠 리가 없었다.
만약 거부한다면, 그 자체로 메르카도가 과거만 못하다는 반증이었고.
메르카도를 노린다는 알반스 공작의 자질 논란으로까지 번질 것이다.
즉, 저들은 찝찝하든 말든 무조건 이들을 출품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었다.
촤아앙!
메르카도에 입성하여 코삭스 경매장으로 향하자, 과거에 제롬을 막았듯이 경비병들이 핼버드를 교차하며 입구를 막았다.
단, 그때보다 더욱더 살벌한 눈초리로 말이다.
“왕가의 출품 허가를 받고 온 물건인데, 어찌하여 출입을 막는 거요?”
수레를 인도하던 미르온이 우렁찬 목소리로 물었다.
“현재 경매장에는 왕가와 관계가 있는 분들은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올리비아의 제롬 남작님은 국왕 전하와 긴밀한 사이라 알려진 자. 따라서 입장할 수 없습니다.”
“아니, 그런 말이 어디 있소? 이 땅의 모든 것은 샤론 왕가의 것이건만, 그런 망언을 내뱉다니!”
“여하튼 입장은 불가합니다.”
경비병과 미르온의 실랑이가 이어지자 구경하던 시민들에게서도 웅성임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뭐야, 출품 못 하는 건가?”
“왜? 요새 노예 사업 문제로 왕가와 공작가가 알력 다툼 중이라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나?”
술렁술렁!
‘이 공기를 못 읽는 머저리는 아니겠지, 알반스 공작.’
살라딘은 자신도 느끼는 이 공기의 변화를, 오랜 시간 왕국의 노예 산업에 깊숙이 발을 담근 알반스 공작이 못 알아챌 리 없다고 여겼다.
“괜찮다. 들여보내도록.”
아니나 다를까. 입구의 실랑이가 오래 지나지 않아 경매장의 꼭대기에서 확성 마법을 통한 알반스 공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공작의 확고한 목소리에 경비병들이 마지못해 핼버드를 거둬들였다.
“지나가십시오. 단, 인솔자로 오신 요른 경과 당신은 지나가지 못합니다.”
최소한의 안전장치였다. 저들이 혹시나 공작 각하를 노리기라도 하면 어떡한단 말인가?
“뭐, 그 정도는 우리도 감수해야겠지. 알겠네.”
의외로 요른은 경비병의 억지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다른 목적이 있었다면 절대로 저런 반응은 나오지 않을 터.
‘진짜로 출품만 하러 온 건가?’
미심쩍은 반응을 보이면서도 경비병은 군말 없이 길을 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현재 경매장의 주인인 공작께서 들여보내라 하셨으니 자신은 더 이상 판단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덜그럭! 덜그럭!
경매장으로 줄지어 들어오는 마차의 행렬들.
너무나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들어오는지라 제대로 숫자조차 셀 수도 없었다.
“다 해서 총 몇 명이오?”
도저히 안 되겠다 여긴 건지 경비병이 미르온에게 물으니,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미르온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다 해서 2,603명이오.”
그 미소가 매우 불쾌했지만, 지금부터 이 숫자를 다시 세기에는 경매가 시작될 때까지의 시간이 많지 않았고, 경비병들의 쌓인 일또한 적지 않았다.
“…2,603명. 확인되었소.”
끼이익!
노예들로 출품된 이들을 모아두는 경매장의 창고를 향해 마차들이 줄지어 입장하기 시작했다.
하나, 시간이 걸렸어도 직접 세어 보았었다면. 경비병은 지금 미르온의 대답에서 이상한 점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마차에 실린 해적의 총원은, 2,603명이 아닌 2,606명이었으니까.
끼이이익! 쿵!
“얌전히들 있어라, 해적 놈들아.”
경매소의 뒤편. 줄지어 들어온 마차들이 늘어선 채, 경매장의 직원이 창고 문을 닫았다.
남해에 이름을 떨친 해적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창고를 지키는 경매장의 직원은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하나같이 마나를 제어하는 구속구로 몸을 속박해 두었으니, 제아무리 소드 마스터가 포함된 해적단이라고 해도 움직일 수가 없으리라.
“…….”
침묵이 내려앉은 창고. 그때, 천으로 덮여 있던 마차들 중 하나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딸칵, 딸칵!
놀랍게도 붙잡혔던 해적들 중 하나가 구속구를 부순 것이다.
소드 마스터도 부술 수 없는 구속구를 쉽게 벗어날 수 있던 이유는 간단했다. 가짜였기 때문이다.
‘스읍, 살 쓸렸네. 에잉….’
탁, 탁!
손목을 탁탁 털며 투덜거린 살라딘이 손가락을 까닥이자, 옆에 조용히 앉아 있던 이들이 살라딘과 마찬가지로 구속수를 부수며 일어났다.
마차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음에도, 그 소리를 들은 해적이 없을 만큼 은밀하기 이를 데 없는 움직임이었다.
‘자, 그럼.’
어디 한번 움직여볼까.
스으윽!
살라딘과 두 인형(人形)이, 조용히 창고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사각, 사각!
코삭스 경매장의 2층 집무실.
늦은 밤임에도 불구하고 집무실에서는 펜대가 종이를 긁어내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왕가에서 보낸 해적단의 목록을 정리하기 위해 정신이 없던 것이다.
‘무슨 생각이냐, 피터.’
주변에서 일하는 경매장 직원들과 달리, 정중앙에 앉아 있는 알반스 공작은 피터의 속뜻을 알아내기 위해 고심 중이었다.
대다수 왕국민들은 모르지만, 피터 국왕과 메르카도는 현재 보이지 않는 전쟁 중이었다.
이 판국에 올리비아에서 인계받은 노예들을 메르카도에 넘긴다니?
이해할 수 없는 행보였다. 혹시, 이쪽으로 이목을 끈 후 본가를 공격하려는 수작인가?
아니었다. 본가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 얼씬하지 않았다는 전갈을 받았다.
그렇다면 혹시나 엘프나 라이칸스로프를 해적들 사이에 섞어, 자신을 암습하려는 수작질인가?
경비병들에게 해적들의 숫자는 확인하지 않더라도 아인족 유무는 반드시 확인하라 일렀다.
하지만 아인족 역시 존재하지 않았다.
‘요른을 숨겨온 것도 아닐 텐데.’
피터 국왕이나, 알반스 공작가나. 전황을 한순간에 뒤집을 만한 강자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랬다면 애당초, 지금처럼 싸움이 생기지도 않았겠지. 강한 쪽이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였으면 그만인 일이었으니까.
그나마 가능성이 있다면 피터의 최측근 기사, 요른이었지만. 요른 역시 단독으로 자신을 암습할 만큼 강한 이는 아니었다.
애초에 실패할 경우 폐위까지도 각오해야 하는 리바운드가 엄청나게 큰 계획이었기에, 알반스 공작은 자연스럽게 이 가정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설마, 발버둥 쳐도 이미 늦었다고 인정한 게냐.’
어쩌면 그럴지도 몰랐다. 데려온 아인족들은 인질들로 인해 완벽히 무용지물이 되었고, 포르투나의 지원군 역시 머지않은 시기에 도달할 것이다. 어쩌면 그 사실을 눈치챈 걸지도 몰랐다.
아니면 선왕의 훌륭한 업적을 뒤늦게 깨달아, 왕국의 오랜 사업을 이어받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은 걸지도 몰랐다. 이 해적들 역시, 메르카도의 활력을 살리기 위해 보낸 화해의 제스처일지도 몰랐다.
허황된 희망 사항일지 몰랐지만, 알반스 공작은 진심으로 그러하기를 바랐다.
‘방황이 있었다 하지만, 마음만 고쳐먹는다면 얼마든지 되돌릴 수 있다. 내가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주마.’
이 젖과 꿀이 흐르는 산업을 유지하며 왕국을 부흥시킬 수 있는 길을 말이다.
스윽!
생각이 너무 고되었기 때문일까. 지끈거리는 눈을 문지르며 알반스 공작이 창가로 바람을 쐬러 나갔다.
“후우, 톨킨. 어찌해야 하는가.”
선왕, 샤론 반 톨킨. 지금은 죽어버린 친우의 이름을 부르며 떠가는 바람에 물었지만, 역시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애초에 대답을 원하고 중얼거린 것도 아니었고 말이다.
“어쩌긴 뭘 어째. 거 사연 있는 척 좀 하지 마쇼.”
“……?”
왜지, 분명 아무 답도 없었어야 하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 탓에, 고개를 치켜든 천장.
기이한 각도로 붙어 있는 세 사람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까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