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ess's Shield Protects the Kingdom RAW novel - Chapter (224)
제224화
“감히 받잡기 어렵습니다, 남작님. 부디 그 말씀은 거두어 주십시오.”
델로 영감이 넙죽 엎드리며 내 명을 거부했다.
“해군은 이 바다를 지켜야 할, 남작님의 손과 발이 되어야 하는 이들입니다. 저 같은 무지렁이가 그같이 중대한 일을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무지렁이라….”
어디서 되도 않는 거짓부렁을.
백번 양보해서 진짜 촌로라 하더라도, 무지렁이가 베스킨과 블리자드 기사단을 고전케 했다면 그건 그것대로 대단한 일이다.
“촌장. 난 그대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
“그대가 영지민들을 일사불란하게 훈련시킨 것도, 철저하게 대비책을 마련한 것도. 그 어느 것 하나 평범한 이들은 할 수 없는 일이지. 하나 묻지 않았다. 언젠가 그대와 신뢰를 쌓은 이후에 그대 스스로 말해줄 것이라 여겼기에.”
“…….”
“지금 당장 그대의 과거를 말하라고 강요하는 것도 아니다. 하나, 그 신뢰의 시작으로 일을 맡기는 것조차 거절할 셈인가?”
“…그러나….”
심정은 이해할 수 있었다. 다짜고짜 자신에게 이 영지의 기둥 중 하나를 맡으라 한다면 당연히 부담스럽겠지.
압박을 했으니, 이번에는 풀어줄 차례다.
“설령 해군의 훈련이 어설프더라도 결코 탓하지 않겠다. 정 불안하다면, 이 영지로 입성한 우리의 힘을 믿어라. 그대가 할 일은 영지 전체의 힘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다. 단지, 영지의 톱니바퀴 중 하나를 담당해 달라는 뜻이다. 그조차도 어렵겠나?”
이렇게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양한다면, 더는 권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역량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얼치기라면,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것일 테니까.
다행히도 나는 사람을 잘못 보지 않았다.
“…송구합니다, 남작님. 모자란 이 늙은이에게 막중한 신뢰와 임무를 주신 만큼, 개나 말과 같이 충성을 다하겠나이다.”
씨익!
무릎을 굽혀 엎드려 있는 델로 영감의 주름진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고마워요, 촌장. 아니, 델로 교관.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평범한 어촌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 기사단과 대적하게 만들 수 있는 자.
내 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이자는, 분명 해군 양성에 핵심 중의 핵심이 되어줄 것이라고 말이다.
* * *
대륙 최고의 노예시장, 메르카도.
몇 년 전 엘프 공주가 2만 골드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에 낙찰이 된 후, 여러 이유로 인해 아인족의 출품이 줄어들긴 했지만.
메르카도는 여전히 노예를 원하는 이들에게 압도적인 점유율을 보이는 거대한 시장이었다.
땅땅땅!
“네! 신성제국 국경지대가 좁다 날뛰던 용병 ‘핏빛 늑대’, 천오백 골드에 낙찰되었습니다! 이것으로 오늘의 마지막 경매를 마치겠습니다. 찾아와 주신 모든 분들께….”
마지막 경매가 종료되고 나가는 이들의 표정은 어째서인지 떨떠름한 감정이 가득했다.
“쯧쯧, 메르카도도 예전만 못하군. 요새는 거의 다 제국 놈들 아니면 해적들뿐이니 원.”
“뭐, 그게 어디 메르카도뿐이겠나. 다른 경매장들도 마찬가지인걸.”
“에잉, 재미없구만. 이제 슬슬 노예 수집도 접어야겠어.”
몇몇 참가자들의 으레 있는 투덜거림이라 여길 수도 있었지만, 경매장 2층에서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던 중년인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좋지 않아.”
지금은 열 명 중 한둘이 투덜거릴 뿐이지만, 이렇게 시간이 더 흐른다면 저 인원의 비율은 앞으로 점점 늘어만 갈 것이다.
그러면 끝이다. 5국 연합 중 가장 부유한 재정을 자랑하고 있는 샤론 왕국은 순식간에 몰락할 것이다.
왕국 국민들 대부분은 아직 이 거대한 변화의 물결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었지만, 이 모든 상황을 가장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중년인의 눈에는 훤히 보이고 있었다.
“…피터. 이 미친놈이 정녕.”
이 변화의 물결은 엘프 공주가 낙찰된 후 엘룬하임으로 돌아간 이후부터 시작된 것이다.
엘프들이 제국을 막아낼 만큼 어마무시한 세력인 방패가와 교류를 시작하며 비호를 받게 되니, 과거처럼 노예사냥꾼들이 원활하게 움직일 수가 없게 되었다.
그뿐이 아니다. 반텐은 그 기세를 몰아 라이칸스로프와도 교류를 시작했다.
샤론 왕국은 갈수록 아인족의 수급이 어려워져 산업이 죽어가는데, 반텐은 날이 갈수록 부강해지고 있었다.
중년인은 도저히 용서가 되질 않았다. 이 젖과 꿀이 흐르는 산업을 지키기 위해 반텐과 전쟁도 불사해야 할 판국에, 국왕이라는 자가 오히려 그들에게 동조해서 이 산업을 아예 무너뜨리려 하다니.
차라리 제 놈 혼자 메르카도를 없애겠다고 설쳤다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이기라도 하지, 아예 아인족들을 끌고 와서 난리를 피우는 통에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니었다.
“공작 각하, 여기에 계셨습니까.”
골머리를 앓고 있던 중년인, 알반스 공작의 뒤로 음산한 기색을 풍기는 노인이 다가왔다.
“포르투나인가.”
포르투나. 메르카도를 넘어 전 대륙의 노예 상인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초(超)거대 노예 상인이었다.
“어째 일이 잘 안 풀리시는 모양입니다.”
어조는 정중했지만, 일국의 공작에게 건네는 말투라 보기엔 지나치게 건방을 떠는 느낌이었다.
하나, 정작 놀라운 것은 알반스 공작의 반응이었다.
“끄응, 면목이 없네. 애송이 국왕 혼자만이라면 아무것도 아닌데, 이 작자가 끌어들인 외세의 힘이 제법 만만치 않아.”
오히려 일개 상인에 지나지 않는 포르투나의 눈치를 보는 것 같지 않은가.
“홀홀, 그럴 수 있습니다. 국왕도 지금 자신이 벌이는 개혁에 목숨이 걸려 있다는 걸 모르지 않을 터. 당연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악착같이 달려들겠지요. 그러니… 이렇게 하시면 어떻겠습니까.”
이해한다는 듯이 턱 아래로 길게 난 수염을 쓰다듬던 포르투나는, 이내 긴 눈썹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 않던 눈동자를 반짝 빛내며 말했다.
“제가, 힘을 좀 빌려 드리지요.”
“자네가?”
알반스 공작이 의아하다는 감정을 품은 채 되물었다.
포르투나가 대륙 전체에 거래처를 가지고 있는 거물인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상인은 상인일 뿐이었다.
그가 무슨 힘이 있어 자신을 돕는다는 말인가?
“제가 거래하는 분들 가운데에는, 꽤나 많은 힘을 가지고 있는 분들도 있지요. 그리고 그분들은… 이 메르카도가 계속해서 유지되길 원하는 마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하와 동료라고 할 수도 있겠군요.”
포르투나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알반스 공작은 포르투나가 던진 미끼를 덥석 물지 않았다.
“자네가 원하는 게 단순히 그것만이 전부는 아닐 텐데… 뭔가 더 원하는 건가?”
‘당연히 더 있지요.’
그러나 그건 공작 각하, 당신은 결코 줄 수 없는 것입니다. 오로지 이 왕국의 지배자인, 국왕 전하만이 주실 수 있는 것이지요.
“홀홀, 차후 메르카도에서 나오는 아인족 절반에 대한 독점권과 코삭스 경매장의 우선 교섭권을 주시지요. 그 정도 혜택이면 몇 년 안에 투자한 금액 이상은 뽑아낼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뜨거운 열망이 담긴 속마음 대신, 담담하기 이를 데 없는 말이 포르투나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흐음….”
포르투나의 말에 알반스 공작이 고심에 들어갔다.
‘크게 무리한 조건은 아니야.’
아인족 절반에 대한 독점권은, 아인족 자체가 없는 요즘 같은 시기에는 별 의미가 없는 조항이었다. 그리고 코삭스 경매장의 우선 교섭권 역시 노예 산업이 활성화되었을 때나 의미가 있는 것이지, 지금처럼 허접한 해적들이나 제국 병사들만 흘러나오는 시기에는 휴지 조각이나 다름없었다.
즉, 포르투나가 내건 조건은 국왕을 무너뜨려야지만 성립이 가능한 일이었던 것이다.
평소라면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했을 알반스 공작이었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이대로 가면 왕국의 산업이 모조리 쓰러진다.’
-방금 전 경매가 끝난 후 들었던 생각이, 알반스 공작에게서 냉정함과 이성을 앗아간 것이다.
“좋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겠지. 힘을 빌려주게. 이후, 내가 메르카도를 손에 넣는 그날. 자네에게 약속했던 것들을 선사하도록 하겠네.”
씨익!
글쎄. 당신이 메르카도를 손에 넣는 날, 나는 당신에게 약속한 것만 받아갈 생각은 없는데 말이지.
검게 물든 속내를 혹여나 들킬까 두려워 황급히 고개를 숙인 포르투나의 입꼬리는 길게 찢어져 있었다.
“지급으로 연락을 넣도록 하겠나이다.”
* * *
아잔타 궁에 들어간 살라딘은 불길했던 예감이 적중했음에 눈을 질끈 감았다.
‘망할, 그럼 그렇지.’
빌어먹을 제롬 자식이 절대로 자신이 꿀 빠는 꼴을 가만히 볼 리가 없었다.
“크르르, 살라딘. 오랜만이군.”
몸에 붕대를 감은 바우칼라크가 살라딘을 보고 알은체를 해왔다.
담담하게 말하려 하고 있었지만, 축 늘어진 채 흔들리는 꼬리는 민망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이게 말이 돼?”
살라딘은 기가 막히다 못해 납득 자체가 되질 않았다.
비록 드래곤 산맥 내에서는 하탄과 아르게스로 인해 어깨를 펴지 못하고 있지만, 바우칼라크 역시 바나간드로 격을 넘어서려 하는 강자였다. 애쉬 역시 엘프 레인저들의 수장으로 두말할 것 없는 명사수 중의 명사수였고 말이다.
그런 이들이 데리고 온 정예였다. 살라딘이 괜히 꿀을 빨겠다고 생각한 게 아니었다.
이 전력이면 오시리스 왕국이나 이케니아 왕국이면 모를까, 겨우 5국 연합의, 그것도 귀족가 하나에게 밀리고 싶어도 밀릴 수가 없는 전력이었다.
제아무리 공작가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말을 좀 해봐. 뭘 어떻게 해야, 대체 이런 상황이 되는 건지.”
“…크르르.”
입에 담기도 싫다는 듯이 하울링만 내는 바우칼라크를 보며, 애쉬가 대신 입을 열었다.
“…제롬의 말을, 우리가 너무 가벼이 생각했다.”
“뭐?”
“인간이 가진, 저열한 밑바닥의 악의(惡意)를 우리가 너무 가벼이 생각했던 탓이야.”
살라딘이 도착하기 전, 피터 국왕에게 알반스 공작가의 위치를 들은 반텐의 지원 병력은 그날 밤 지체 없이 곧장 공작가로 쳐들어갔다.
말이 전쟁이지, 살라딘의 말처럼 전력에서 압도적 우위에 선 이상 이것은 전쟁이 아니었다.
이것은 징벌(懲罰)이었다. 그들의 동족들을 희롱하고, 억압하고, 괴롭혀온 인간들에게 내리는 벌.
그러나 그들은 몰랐던 것이다. 노예시장이라는 가장 거칠고, 추악한 바닥에서 살아남은 이들.
그리고 그들의 정점에 가까운 이들이 어디까지 잔악해질 수 있는지를.
약하지만, 악한 인간들이 어디까지 비겁해질 수 있는지를.
공작가로 들어간 순간, 그들은 자신감 있게 내딛던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정원의 한가운데 묶여 있는 어린 동포들. 그리고 그 아이들의 목에 걸려 있는, 붉게 빛나던 아티팩트.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이들은 없었다.
“이, 이런 비겁한 놈들이…!!”
애쉬는 열이 머리끝까지 올라서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 도대체 어디까지 추악해질 수 있는 건가, 이 인간이란 족속들은!
처척!
어둠 속에서 발걸음이 묶인 엘프와 라이칸스로프들을 일제히 겨냥하는 무기들.
무기로 유명한 달튼 왕국이 자랑하는 석궁이었다.
퓨퓨퓨퓨퓨퓻!
기사들의 갑옷마저 관통한다고 알려진 강력한 화살들이 쾌속하게 날아들었다.
“아아악!”
“크르륵!”
피이잉!
화살이 박혀 피를 흘리는 그들의 사이로 불길한 보랏빛을 흘리는 보석들이 날아들었다.
마나를 가득 담은 폭탄. 프란 왕국이 자랑하는 마법 병기였다.
콰아아아앙!
작열하는 폭풍이 아인족들을 덮친다.
“됐다!”
“천한 노예 놈들! 맛이 어떠냐!”
정원의 뒤편, 어둠 속에 숨어 있던 공작가의 병사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푸스스스스!
휘몰아치는 먼지구름과 돌가루들이 잠잠해지자, 가려져 있던 아인족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러나 그 광경은 공작가의 병사들이 기대하던 모습과 사뭇 달랐다.
가장 앞에 위치한 거대한 라이칸스로프는 피투성이가 되었을지언정, 그 뒤에 선 엘프와 라이칸스로프들 대다수는 생명을 부지할 수 있던 것이다.
“히, 히익!”
“괴물…!”
병사들이 패닉에 빠진 사이, 바우칼라크의 뒤에 서 있던 애쉬가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는 아무것도 안 돼.’
인질극을 벌이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생각지 못한 기습에 바우칼라크가, 그리고 동족들이 받은 피해가 너무 컸다.
“…물러난다.”
퇴각한 다음 날. 공작가의 사업체를 몇 개나 박살 냈다.
그러자 그날 밤. 공작가의 정문에는 몇 개의 머리가 걸렸다.
정확히, 아인족들이 부순 사업체의 숫자만큼. 어린 아인족들의 머리가 말이다.
“…설마, 그런 식으로 나올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분함을 이기지 못한 애쉬의 입가에서 한 줄기 피가 흘러나왔다.
“…….”
애쉬의 설명을 모두 들은 살라딘은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제롬이 저 정도까지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알반스 공작가의 방식은 비겁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지만 지독할 정도로 효과적이야.’
전력에서 밀리는 알반스 공작가 입장에서, 아인족들의 행동을 틀어막는 데 이보다 강력한 방법이 있을까.
그러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싸움은 아인족들을 잠시 틀어막는다고 끝이 나는 싸움이 아니었다.
아인족은 공작가의 인질로 인해 움직이지 못하고, 공작가는 실질적으로 전력 측에서 밀린다.
단순히 시간만 버틸 뿐, 이대로는 알반스 공작가가 이길 수 없단 사실을 모르지 않을 것인데.
‘…….’
고민을 이어가던 살라딘이, 마침내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뭔가를 기다리고, 있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