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ess's Shield Protects the Kingdom RAW novel - Chapter (229)
제229화
파바바바바밧!
현란하기 이를 데 없는 발걸음. 내딛는 걸음걸음에서는 피에 전 비린내가 사방으로 피어올랐다.
그 흉악한 광기와 죽음의 냄새에 몸이 얼어붙을 법도 했건만.
사나운 천재를 상대하는 이들은 위축되기는커녕, 표정에 한 치의 미동조차도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라면 이 흉흉한 기운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겠지만, 생명이 없는 인형은 살기고 뭐고 간에 느낄 수가 없으니 말이다.
덜컥!
사람을 닮은, 하지만 사람이 아닌 인형의 얼굴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푸화악!
네네의 입이 열리며 다가오는 유다를 향해 진녹색의 가스를 뿜어냈다.
시야를 가림과 동시에, 전장을 장악해버린 네네.
오감을 둔하게 만드는 가스 속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네네의 주인 살라딘뿐이었다.
“흥!”
그 공간을 지배했다는 생각이 오만하다 여긴 것일까. 변칙적인 상황에도 코웃음을 친 유다의 검이 번개와 같이 신속하게 움직였다.
슈와아악!
별빛을 담은 은하수처럼 반짝이는 검이 네네의 가스를 불경하다는 듯이 순식간에 흩트렸다.
창졸간에 밝아진 시야. 유다의 검이 지체 없이 미미의 몸통을 수직으로 노렸다.
저 음흉한 이단 놈이 어떤 수작질을 부렸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섣불리 목과 같이 부위가 작은 곳을 노렸다가는 역으로 당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몸통이었다.
아무리 많은 암기를 숨겨 놓았다고 해도, 모든 움직임의 주축이 되는 몸통을 부순다면 인형은 전투 불능이 될 테니까 말이다.
“이따위 장난감, 두 동강으로 만들어주마.”
유다의 눈이 붉게 빛났다. 고작해야 인형을 믿는 것이 전부라면, 녀석은 오늘 이 자리에서 반드시 죽는다.
우선, 너저분한 인형부터 반으로 잘라주지. 유다의 검이 미미의 정수리에 닿기 직전.
“그럴 줄 알았어.”
끼릭! 덜컹!
입꼬리를 말아 올린 살라딘이 중지를 당기자, 미미의 몸이 유다의 말처럼 그대로 반으로 갈라졌다.
다만, 유다의 생각과는 조금 달랐다. 반으로 갈라지는 미미의 몸에서 느껴지는 손맛이 없던 것이다.
아니, 손맛이 없는 수준이 아니라 마치 허공을 가르는 것과 같은 감각이었다.
눈앞의 시야. 스스로 갈라진 미미의 형체가 보였다.
그 갈라진 틈새를 절묘하게 유다의 검이 지나간 것이다.
“뭣?!”
사람이라면 장기가 가득했을 신체 내부는, 피와 내장이 아닌 다른 것들을 뿜어냈다.
투투투투투투!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던 표창, 단검, 쇠구슬과 바늘이 가깝기 그지없는 유다의 목숨을 수확하기 위해 일제히 날아갔다.
‘됐다!’
미미와 네네의 뒤편에서 마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듯 유려하게 손을 움직이던 살라딘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그야말로 초근접의 거리였다.
제아무리 제국에서 차세대 천재라고 칭송받는 기사라도, 이 거리에서 쏟아지는 파쇄(破碎)의 무차별적인 폭격에는 절대로 무사할 수 없으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따다다다다다다다당!
마치 콩을 볶는 것과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쾅!
말은 길었지만, 유다의 몸에 파쇄의 폭격이 쏟아진 것과 콩 볶는 소리는 그야말로 찰나에 이뤄진 일이었다.
그 짧은 소리 뒤, 허공에 떠 있던 미미의 상반신이 거칠게 튕겨 나가며 그 뒤를 혈인(血人)이 뒤따랐다.
세상에, 그 거리에서 파쇄를 정통으로 뒤집어쓰고도 견뎌 내다니.
“더럽게 터프한 놈이네.”
네네가 따라붙기도 전에 살라딘과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혀온 유다가 괴이한 웃음을 흘렸다.
“키히히히히! 제법이구나, 이단 놈! 하지만, 그게 네 한계다!”
유다는 비록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인형의 몸 안쪽에서 폭발한 암기의 폭풍은 그야말로 허를 찌르는 무시무시한 공격이었다. 까닥 잘못했다면 저 차디찬 바닥에 몸을 눕힌 것은 자신이었으리라.
하지만, 이번에도 자신은 살아남았다. 그 험악한 필살(必殺)의 공격을 이겨낸 것이다.
승리의 보상은 달콤하다.
이황자 케일을 마침내 교화하는 데 성공했을 때 역시 얼마나 짜릿했던가.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이단의 사악한 힘 앞에서도 끝끝내 살아남아, 마침내 주의 제단 앞에 자신의 신실함을 재차 증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내 분명 말했을 것이다, 네놈을 젓갈로 담아 주의 제단 앞에 올릴 것이라고.”
유다는 주 앞에서 외친 다짐을 또다시 이룰 수 있다는 사실에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한데 무언가 이상했다.
‘……?’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든다. 어째서일까. 저 이단의 힘을 사용하는 불경한 놈에게 심판의 검을 날려야 하는데.
어째서인지, 녀석과의 거리가 더 이상 좁혀지질 않았다.
또렷하던 녀석의 형체가 기이하게 일그러졌다. 마치 엿가락이 늘어나듯이,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이 녀석의 몸이 흔들거린다.
몸이 점점 무거워져 온다. 힘을 다한 다리가 지면과의 거리를 급속도로 가까이 만든다.
털썩!
“…이, 게 무슨.”
혀조차도 주인의 생각을 배신하고 서서히 굳어져간다. 이윽고, 유다의 시선이 순식간에 암전되었다.
“…….”
저벅, 저벅.
미동도 하지 않는 유다에게 살라딘이 천천히 다가갔다.
쓰러진 유다의 목 뒤. 네네의 손끝에서 뻗어져 나온 작은 바늘 하나가 유다의 목 뒤에 꽂혀 있었다.
바늘의 끝에서 뻗어 나온 보랏빛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유다의 세포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며 자신의 색을 확장하고 있었다.
그 섬뜩한 기운에 살라딘은 자신이 설치했음에도 몸서리를 쳤다.
“…진짜, 무시무시하네.”
-받아. 네가 가장 잘 사용할 것 같으니까. 한번 잘 연구해봐, 어떻게 써먹을지.
발리스타에서 탈출했던 이후, 백익 람팡에게 건네받았던 귀물.
무슨 시장에서 사 온 사탕이라도 주듯이 건넨 그 물건을 처음 봤을 때, 살라딘은 까무러치는 줄 알았다.
독정(毒精).
그것도 무려 그 유명한 흑사자, 독혈사 마틴의 정수가 담긴 것이었다.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어마어마하게 귀한 물건을, 마치 오다 주운 돌맹이라도 주는 것처럼 태연하게 자신에게 내밀었던 것이다.
독을 다루는 인형, 네네의 검지손가락 끝에 이 독정을 갈아 만든 바늘 딱 하나를 설치해봤을 뿐인데.
그 바늘이, 이렇게 엄청난 효과를 보이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아마 독정이 없었다면, 훨씬 더 긴 싸움을 이어갔을 것이다. 게다가 방금 전의 경우, 자신의 전방을 지켜주는 인형들이 모두 돌파되지 않았던가.
최악의 경우, ‘그’ 기술을 사용해야만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길어졌을 싸움을 끝내준 독정이었지만, 독정을 바라보는 살라딘의 시선은 한층 더 조심스러워졌다.
“주의해서 써야겠어.”
그야말로 양날의 검이었다. 겨우 독정의 1할을 사용했을 뿐이건만, 그 바늘이 무려 4후작의 바로 아래로 평가받는 성기사단장의 목숨을 거둬갔다.
그 말인즉, 자칫 잘못 쓰면 아군의 목숨을 허무하게 수확하는 최악의 무기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파삭!
유다의 시신을 순식간에 망가뜨린 독정 바늘은, 자신이 할 일을 다 했다는 듯이 이윽고 가루가 되어 부서져 내렸다.
하나의 ‘생명’을 완전히 거둬간 것으로 독정의 효용은 다한 것이다.
“어디 보자… 저쪽은 좀 어떠려나.”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살라딘의 시선이 공작가 정문으로 향했다. 아직, 싸움은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 * *
3성기사단은 단장인 유다가 부재중임에도 그 기세가 조금도 꺾이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단장의 신변이 어떻든 간에 관심이 없었다.
7성기사단이 전귀라 불렸다면, 3성기사단은 검투사들로 불리는 이들이었다.
단장인 유다가 아인족들을 절멸하라 명했으니, 그 명을 수행한다.
단지 그뿐인 일이었다.
문제는, 그 맹목적인 행동에 쓰러져가는 아인족들의 숫자가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렇기에, 애쉬와 바우칼라크는 전력을 다해 질드레를 몰아붙였다.
“크아아아앙!”
바우칼라크가 발톱을 휘두르자, 달의 기운이 형상화된 늑대의 손톱이 질드레의 목줄을 물어뜯으려 달려 나가고.
꾸우우우욱!
각기 다른 정령들의 기운을 담은 4발의 화살을 한꺼번에 활시위에 건 애쉬의 화살이 하나같이 다른 방향으로 뻗어가 질드레의 빈틈을 노려갔다.
쭈와아아아악!
징그럽게 꿈틀대는 질드레의 왼팔이 바우칼라크의 기운을 상쇄하고.
펑! 퍼펑!
오른팔에서 뻗어져 나온 마법들에 애쉬의 화살이 힘을 잃었다.
“크르르, 저 왼팔. 정말 거슬리는군.”
바우칼라크가 짜증을 숨기지 못한 채 이를 갈며 말했다.
그럴 만도 했다. 슬라임의 특성은 물리 공격 완전 내성. 풍압을 이용한 자신의 기술이나 이빨은 모두 물리적인 공격력을 담은 기술이었다.
“…동감이다. 정말이지 귀찮은 능력이야.”
애쉬의 화살에 왼팔이 터져 나간 후, 질드레는 철저하게 애쉬의 공격은 마법으로, 바우칼라크의 공격은 왼팔로 막았다. 그것이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질드레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아인족 우두머리들을 붙잡아 실험을 하는 데 있었다.
굳이 놈들을 무리하게 쓰러뜨려 걸레짝으로 만들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유다만 오면, 저치들을 금방 처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으니까.
3성기사단이 쓰러지는 것도 자신과는 상관이 없었다. 제 부하들도 아닌데 죽든 말든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러나 애쉬와 바우칼라크의 입장은 달랐다. 지금 이 순간도 동족들이 조금씩이지만 쓰러져가고 있었다.
그렇기에 점차 조급해지는 마음을 숨길 수가 없던 것이다. 그런 차이를, 질드레라고 모를 수가 없었다.
“후후, 왜 그러나. 큰소리치더니, 겨우 이 정도인가?”
뿌드득!
바우칼라크가 이를 갈았다. 몸만 멀쩡했더라도. 시간만 많았더라도.
저 늙은 인간을 한 줌 고깃덩이로 만들어 주었을 텐데.
그런 대치 상황의 공기가 바뀐 것은 얼마 지나지 않은 후였다.
챙!
“이런!”
3성기사단의 기사가 한 엘프와의 거리를 좁힌 채 그녀의 활을 높이 쳐올렸다.
충격을 못 이기고 훤히 드러난 흉부. 그 흉부를 향해 기사가 우악스럽게 검을 찔러 넣었다.
“……!!”
곧 느껴질 격통의 감각을 상상한 엘프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
그러나, 눈을 감은 지 제법 시간이 되었음에도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자 슬며시 눈을 뜬 엘프는 생각지도 못한 광경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신에게 날붙이를 찔러 넣던 기사의 손에 단검이 박힌 채 놈이 거품을 물고 있었으니까.
“정신 차리고 뒤로 물러나. 너희 피해가 크면 또 나만 욕 시원하게 얻어먹을 테니 말이야.”
“가, 감사합….”
엘프의 인사가 채 끝나기도 전, 살라딘은 꼭두각시들을 데리고 바람처럼 다른 엘프들을 향해 움직였다.
“……!!”
살라딘의 등장으로 급변하는 전황을 애쉬와 바우칼라크라고 모를까.
한결 여유를 찾은 애쉬가 질드레를 향해 얄미운 미소를 지었다.
“어떡하냐, 아무래도 네가 말한 애송이가 이긴 모양인데?”
질드레의 얼굴이 마치 악귀와도 같이 일그러졌다.
“이번에도 또… 저 빌어먹을 애송이 놈이…!!”
저 애송이 놈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다. 부하와 제자들, 실험 결과, 그리고 결정적으로 주인이 주는 신뢰까지도 말이다.
한데, 이번에도 또다시 자신의 앞날을 가로막고 있었다.
뿌드드드득!
질드레의 입가에서 기어코 한 줄기 피가 흘러내렸다.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이를 앙다물어 이가 깨진 것이다.
“…반드시… 복수할 것이다.”
나직이 복수를 다짐한 질드레가 도주하려 했다. 그러자, 저 멀리서 3성기사단을 대부분 정리한 살라딘이 손가락을 움직임과 동시에 미미가 뛰어올랐다.
퓨퓻!
혀, 종아리, 팔꿈치 등에서 튀어 나간 쇠구슬과 표창들이 질드레의 몸을 향해 날아갔다.
철퍽! 철퍽!
하지만 지금까지 그랬듯이, 질드레의 왼팔에 가로막힌 암기들은 별다른 피해를 주지 못한 채 단지 질드레가 주문을 외우지 못하게 약간의 시간을 벌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이면 충분했다.
처억!
어느새 이들의 전장에 도착한 살라딘이 질드레를 보며 말했다.
“여어, 노인장. 오랜만이네. 용케도 아직 살아 있었네?”
“…애송이 놈…!!”
살라딘을 충혈된 눈으로 노려보던 질드레는 이내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러고는 곧바로, 왼팔을 확장하여 온몸을 감싼 둥근 원을 만들어냈다.
-…다음에 보도록 하지. 그땐, 반드시 네놈을 죽여주마.
“응? 뭔 소리야.”
원 안에서 원한을 내뱉는 질드레의 목소리에 살라딘의 고개가 모로 꼬아졌다.
“날 죽이겠다고 칼 가는 놈을 왜 그냥 보내줘? 노인장은 오늘 여기서 죽어.”
살라딘의 위협적인 말에 질드레는 코웃음을 쳤다.
-학습 능력이 없나? 네놈이 유다 단장을 어떻게 이겼는지는 모르겠다만, 그 알량한 인형의 공격은 내게 먹히지 않는다.
맞는 말이었다. 미미의 암기와 날붙이는 저 끈적한 액체를 뚫지 못하고, 네네의 독 역시 슬라임의 강한 산성을 이겨내지 못한다.
그럴 수 있다. 그러니, 저렇게 자신하는 거겠지.
“미안하지만.”
살라딘의 손가락이 움직이자, 지금껏 살아 있는 생명처럼 움직이던 미미와 네네의 몸이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살라딘이 미미와 네네의 몸에서 ‘실’을 거두어들인 것이다.
촤아아아아!
미미와 네네의 몸에 연결되어 있던, 마치 신경과도 같이 가늘고 얇은 강사(鋼絲)가 허공을 아름답게 수놓았다.
이윽고 힘없이 나풀거리던 실은, 살라딘의 손 위에 똬리를 틀며 부드럽게 안착했다.
그대로 주먹을 쥔 채 교차한 두 팔을, 질드레를 향해 있는 힘껏 펼쳐냈다.
열 개의 다른 선들이 직선과 곡선, 전후좌우를 모조리 점한 채 일제히 질드레를 향했다.
그 열 개의 선은, 슬라임의 체액과 질드레가 내부에 펼친 실드를 부드럽게 통과했다. 마치 애초에 무엇에도 걸리지 않았던 것처럼.
허공을 수놓는 것과 같이 아름다운 실의 움직임. 하지만 그 움직임의 끝은 결코 아름답지 않았다.
-이, 이게. 대체, 무슨… 개 같은….
살라딘의 실이 지나간 곳. 당황한 듯이 말을 더듬던 질드레의 몸 곳곳에 붉은 실선이 생겨났다.
그리고 이윽고.
푸화아아아악!
질드레의 몸이, 고깃덩이가 되어 바닥에 흩뿌려졌다.
“나는, 후환을 절대로 남기지 않아. 같은 실수를 반복할 만큼 학습 능력이 없는 사람도 아니고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