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ess's Shield Protects the Kingdom RAW novel - Chapter (233)
제233화
덜컹, 덜컹!
흔들리며 움직이는 수레. 수레에는 수많은 이들이 실려 있었다.
“오빠, 우리 지금 어디로 가는 거야…?”
수레에 실린 여자아이는 불안한 듯 자신의 오빠를 바라보며 끊임없이 보챘다.
“걱정하지 마, 제니. 올리비아 영지라고, 아주 훌륭한 분께서 다스리는 곳이야.”
제이슨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여동생 제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따스함에 안심이 된 건지, 제니의 표정에 담긴 불안감이 조금은 옅어졌다.
“헤헤, 그렇게 훌륭한 분이면… 밥 잘 주고 안 때리면 좋겠다.”
“…그래. 분명 그럴 거야. 걱정하지 마. 이것 봐, 우리 추울까 봐 이렇게 수레에 담요까지 깔아 주셨잖아?”
밝은 표정을 지으며 제니를 달랜 제이슨은 제니가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하도록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여동생이 자신의 불안한 감정을 읽으면 더더욱 불안해할 테니까.
제이슨 역시 어린 나이였기에, 자신의 인생이 이렇게 순식간에 바뀌리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다.
불과 반년 전만 하더라도, 제니와 자신은 오시리스 동부의 작은 마을에서 부모님과 물고기를 잡으며 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군도의 해적들이 쳐들어온 이후 모든 것이 무너졌다.
마을은 불탔고, 어른들은 죽었으며, 자신들을 포함한 아이들은 모조리 어디론가 끌려갔다.
나중에서야 알 수 있었다. 자신들이 끌려간 곳이, 노예시장으로 유명한 샤론 왕국이라는 것을.
하나, 둘. 친구들이 점차 어딘가로 팔려 나갔다.
비록 자신이나 제니가 어리다고는 하나,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는 아니었다.
이곳에서 팔려 간 사람들의 운명이 어떻게 되는지, 남매 역시 귀가 있었기에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불안에 떨던 어느 날, 자신들뿐 아니라 남아 있던 마을 사람들, 그리고 다른 곳에서 끌려온 이들까지도 모두 이동하라는 명이 떨어졌다.
‘지금껏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움직인 적은 없었는데.’
그 흔치 않은 사실이, 제이슨의 마음을 못내 불안하게 만들었다.
자신들이 향하는 곳은 대륙 전체에 소문이 자자한 제롬 폰 카르비어트의 영지, 올리비아라고 들었다.
하지만, 그 사실이 제이슨의 마음을 안심시켜 주진 못했다. 비록 대우가 나쁘지 않다고는 하지만.
그만한 인물이 이렇게 많은 노예를 필요로 하는 일이라면, 절대로 평범한 일일 리가 없었으니까.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이 기분이 좋은지, 제니는 어느새 자신의 어깨에 기대어 새근새근 잠에 빠져 있었다.
제니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제이슨은 하늘에 빛나는 세 개의 달을 바라보며 간절히 기도했다.
‘제발, 들리는 소문처럼 그분께서 영웅이시기를.’
덜컹!
공간마법진을 통해 이동한 이후로 조금도 쉬지 못한 채 움직였기 때문일까.
깜박 잠이 들었던 제이슨은 수레가 멈춤에 따라 느껴진 작은 반동에 놀라 화들짝 깨어났다.
“제니, 제니! 일어나, 얼른!”
“우웅, 오빠…?”
제이슨이 아직 잠에서 완전히 깨지 못한 채 뒤척이는 제니를 깨우는 사이, 수레의 문이 열렸다.
끼이익!
“도착했으니 모두 내리시오!”
수레를 인도하던 병사들이 소리치자, 노예들이 하나둘씩 쭈뼛쭈뼛하며 수레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여기가 그 올리비아인가…?”
“으음, 듣던 거보다 더 황량한데.”
웅성웅성!
제 딴에는 작은 소리로 말한다고 하지만, 수많은 인원이 동시에 입을 여니 그 소리가 제법 크게 울려 퍼졌다.
그 부산스러운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쿠웅!
“!”
“!”
가장 앞에서 수레를 인도해온 거대한 덩치의 기사가 망치의 아랫부분으로 바닥을 내리치자, 번잡한 공기가 일시에 정리되었다.
“모두 조용히 하시오! 지금부터, 그대들의 향후 일정에 대해 알려줄 터이니!”
“!”
기사의 외침에 제이슨을 포함한 모든 이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이름 높은 영웅인 제롬 폰 카르비어트 남작의 영지다.
과연, 자신들을 어떻게 부릴까?
“앞 수레에서부터, 차례대로 영주성으로 들어갈 것이오! 그러면, 관리들이 각자의 특기에 따라 영지민으로서 살 집과 노역을 부여해줄 것이오!”
“……?”
기사의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영지민? 집과 노역을 부여한다고?
‘이게 무슨 소리지?’
하지만 제이슨과 다른 이들이 이해하든 말든, 기사 미르온은 앞 수레의 인원부터 차례대로 영주성으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
“우선 들어가시오! 들어가면, 알아서 올리비아의 영지민으로 등록해줄 테니!”
자신은 제롬의 칼이 되고자 하는 이지, 훌륭한 언변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미르온의 그 단순한 말에, 제이슨과 노예들은 오히려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영지민. 영지민으로 등록해 준단다. 노예로 살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와아아아아아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터져 나오는 함성.
그 함성 속에서, 제이슨은 제니를 꼭 껴안으며 외쳤다.
“제니! 이제 아무 걱정 하지 않아도 돼!”
“우웅, 오빠. 숨 막혀.”
“하하하! 미안, 미안!”
제니가 칭얼댔지만, 제이슨은 지금 이 순간 벅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 이렇게 마음 편히 웃어본 적이 있었던가.
소문이 거짓이 아니었다. 제롬 폰 카르비어트. 그는 영웅이었다.
* * *
사판 영지의 뒷골목.
빈민들의 꿉꿉한 향기가 진동하는 그 거리로 한 쌍의 남녀가 들어섰다.
남녀는 긴 로브로 몸을 가리고 있었지만, 그들의 품격과 위엄은 채 가릴 수 없었다.
“흐음, 여기 빈민가는 상당히 깨끗하네?”
여인이 신기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케니아 왕국은 나라 자체가 부유하니까요. 게다가 더들리 자작가는 선정을 베풀기로 유명한 가문이니, 빈민들이라고 소홀히 대하지 않았을 겁니다.”
“헤에.”
대화를 나누며 뒷골목으로 들어선 남녀는 바로 제롬과 람팡이었다.
빅토르와 조우한 이후 카인과 담소를 나눈 제롬은 정보 길드에 대해 물었고, 카인은 흔쾌히 소개장을 써주었다. 그게 지금, 이 둘이 사판의 뒷골목을 누비는 이유였다.
“되게 중요한 사람인가 보네? 사제가 굳이 시간을 들여서까지 찾아야 할 만큼.”
람팡은 내가 얼마나 바쁘게 사는지 잘 알고 있었다.
영지의 안정화에도 부족한 시간을 쪼개서까지 찾고자 하는 사람이니, 내심 궁금할 만도 했다.
“올리비아의 내정을 완벽하게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이죠.”
드웨인은 차후 나와 함께 해전을 보좌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내정에 대한 짐을 덜어주지 않으면 곤란했다.
“그런 사람이 있어? 아니, 근데 사제는 그걸 어떻게 아는 거야?”
람팡의 질문에 나는 그저 빙긋 웃어 보일 뿐이었다.
“다 아는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둘러댈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 같이 있던 조직을 그 친구가 먹여 살렸으니까요.’라는 말을 했다간 미친놈 취급을 받을 테니까.
끼이익!
허름한 주점의 문이 낡은 경첩의 마찰에 듣기 싫은 소리를 내며 열렸다.
“어서 오슈. 뭘로 드릴까?”
주방에서 재료를 다듬던 늙수그레한 노인이 주방 안에서 물었다.
“오늘 갓 잡은 생선을 뜬 회가 좋겠군요.”
주문을 들은 노인의 눈이 반짝인다.
“이런, 오늘은 들어온 생선이 없네만.”
“에이, 그럴 리가요. 분명 오늘 씨 아라파이마가 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는데.”
씨 아라파이마.
대륙에서 가장 단단한 비늘을 가진 물고기로, 남부 연안에서만 잡힌다는 환상의 생선이다.
맛도 맛이지만, 무엇보다도 무엇도 뚫을 수 없을 만큼 단단한 비늘이 특징인 생선으로 이런 빈민가에서 찾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흘! 어떻게 또 그걸 알고 찾아왔는지 원. 그럼 들어와서 직접 부위를 골라보게.”
자연스럽게 주방으로 우리를 부른 노인이 생선을 보관하는 창고로 우리를 안내했다.
쿵!
창고의 문이 닫히자, 외부의 소리가 완전히 차단되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남작님. 카인 공자님께서 남작님의 모든 편의를 봐드리라고 신신당부를 하셨습니다. 과연, 왕국의 떠오르는 젊은 영웅다운 풍모이십니다.”
“…정보 길드원들이 음성 변조에 능수능란하다는 건 익히 들어왔지만, 실제로 들어 보니 정말 신기하군요.”
방금 전까지 외견에 걸맞은 늙수그레한 목소리를 내던 노인의 입에서 생기가 넘치는 젊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바로 눈앞에서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얼굴과 목소리의 괴리가 너무 심해서 인지 부조화가 올 정도였다.
마법이나 오러를 사용한 것이 아닌 순수한 기술로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한 거지.
“정보를 다루다 보면 여기저기서 원한을 많이 삽니다. 살기 위한 잔재주일 뿐이니, 남작님의 과찬은 받잡기 어렵습니다.”
정보원이 허리를 굽히며 넙죽 고개를 숙여왔다.
“임무의 특성상 제 진짜 얼굴을 보일 수 없는 점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어떤 정보가 필요하신지요?”
신기한 건 신기한 것이고, 나는 정보원의 물음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성별은 여성입니다. 나이는 지금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쯤 되었을 거고, 가족으로는 밑으로 여동생이 하나 있을 겁니다. 머리카락 색은 잡초를 연상케 하는 연둣빛. 키가 작지 않으며 숫자 계산과 일 처리가 굉장히 빠르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정보원은 예상외로 내 입에서 술술 나오는 상세한 정보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 정도면… 직접 찾으셔도 되지 않습니까?”
내용을 정리한 정보원이 머리를 긁적이며 내게 물었다.
무리도 아니었다. 정보 길드에 찾아와 사람을 찾는 대부분의 경우는 자체적으로 찾을 수 없을 만큼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전문가(?)의 손길을 빌리는 것인데, 제롬의 정보는 너무 자세했다.
다른 곳이면 모를까, 카르비어트 백작가 정도의 가문이라면 이 정도 상세한 정보가 있는데 굳이 자신들에게 맡길 필요가 없었다.
“아! 혹시 이름을 모르십니까?”
정보원이 제 딴에 합리적인 이유를 찾아보려 했지만.
“제가 아는 바로는 제레미아라는 이름을 쓰고 있었지만, 가명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 분명 가명일 겁니다.”
“흐음, 이름을 모른다라… 그렇다면 이럴 수 있죠.”
그제야 납득이 되었다는 듯이 정보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케니아 왕국 출신이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끄럽지만 북부에서는 찾을 수가 없었네요. 그래서 부득불 정보 길드에 도움을 청하게 되었습니다, 하하.”
“남작님께서 알고 계신 이름이 가명이라면, 나라 역시 부정확할 수 있다는 말씀이지 않습니까?”
정보원은 국가 또한 단정 지을 수 없지 않냐며 되물었지만, 나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단언했다.
“아뇨, 나라는 분명 이케니아가 맞습니다. 그 부분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스티그마 용병단의 규칙상, 이름은 숨겨도 나라는 절대로 속여서는 안 되었다.
제국의 첩자가 들어와 용병단의 내부를 뒤흔들어서는 곤란했으니까.
나라만큼은 확실했다. 제레미아는 이케니아 왕국 출신이다.
“흐음… 잘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정보를 기준으로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탁!
“남작님께서 특징을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다고는 하나, 이름이 없어 찾는 데 제법 시간이 소요될 것 같습니다. 이에 금액이 상당히 많이 들 것 같습니다만….”
내용을 정리하여 서류를 덮은 정보원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무래도 카인의 언질이 있으니 다소 눈치가 보이는 거겠지.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습니다. 원하는 금액을 부르시면 맞춰 드리도록 하죠.”
내 호언장담에 정보원의 입이 함지박만 하게 벌어졌다.
하지만, 나는 아직 제안을 끝낸 것이 아니었다.
“한 달의 시간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정보 수집을 하루 당길 경우, 50골드씩을 추가로 더 얹겠습니다.”
“50! 50골드 말씀이십니까?”
열흘이면 500골드다.
과거 반텐의 1년 치 예산이 2,000에서 3,000골드였던 것을 생각하면, 파격적이다 못해 미친 수준의 제안이었다.
“뭐, 어디까지나 제가 찾던 사람이 맞을 경우의 이야기니까요.”
“최선을 다해서 찾도록 하겠습니다.”
정보원의 허리가 다리에 닿을 것처럼 직각으로 구부러졌다.
위험도가 높은 이도 아니고, 평범한 여인 하나 찾는 일이었다.
겨우 이만한 일에 이런 미친 포상금이라니. 당분간 길드 지부 차원에서 모든 일을 멈춰야 할 정도였다.
끼이익!
“아니, 사제 미쳤어? 돈이 막 썩어나? 무슨 사람 하나 찾는 데 하루에 50골드씩이나 더 내?”
카르마를 보살피기 위해 온갖 궂은일을 다 해봤던 서민(?) 출신인 람팡은 제롬의 과한 돈지랄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충분히 그만한 가치가 있으니까요.”
“미쳤어, 미쳤어. 부잣집 자식은 다들 이런 건가?”
람팡은 올리비아로 돌아가는 내내 투덜댔지만, 나는 람팡과 생각이 전혀 달랐다.
쓰러지기 일보 직전의 가난한 집단이었던 스티그마 용병단에게, 순식간에 대륙에서 손꼽히는 초거대 상단인 카를로스 상단을 품에 안겨주었던 황금의 주인.
스티그마 용병단의 부단주였던 살라딘과 마찬가지로, 카를로스 상단의 부단주로 우리를 탄탄히 받쳐주었던 여자.
금산여왕(金山女王) 제레미아를 하루 더 빨리 만나는 데 고작해야 50골드밖에 들지 않는다면, 그 정도 푼돈은 얼마든지 낼 수 있었다.
찾기만 하면, 그보다 수백, 수천 배로 불려줄 능력이 있는 여인이었으니까.
샤론 왕국의 일도 정리되었고, 올리비아의 안정에 모든 힘을 쏟아야 하는 지금.
제레미아의 능력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했다.
‘빨리 나타나자, 제레미아. 이대로 가다가는 드웨인 죽는다.’
작은 바람과 함께, 사판의 공간마법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올리비아로 돌아갈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