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ess's Shield Protects the Kingdom RAW novel - Chapter (33)
제33화
거대한 대전.
대리석으로 만든 바닥은 눈부시게 새하얗게 빛나고 있었고, 벽은 구석구석까지 순금으로 장식했다.
그 모습은 화려함을 넘어, 성스럽기 그지없었다.
절로 옷매무새를 정리하게 만들 것 같은 분위기의 대전에는 단 두 명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넓은 대전에 단둘밖에 없었지만, 둘의 존재감은 대전을 가득 채우는 데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대전도, 그 대전에 위치한 이들이 풍기는 분위기도.
이들의 위치가 결코 평범하지 않다는 반증이나 다름없었다.
“실패라?”
대전의 중앙.
아름답기 그지없는 한 여인이 완만하게 휘어진 샴쉬르를 천으로 닦으며 낮게 읊조렸다.
의자에 걸친 다리가 훤히 살색을 드러내어 묘한 색기를 뿜어냈으나.
서늘한 샴쉬르의 날이 그녀의 분위기를 강인한 여전사로 보이게 만들었다.
여인의 반대편에 앉은 남자는 그런 여자의 읊조림에 미친 듯이 웃었다.
“낄낄낄! 그 말 그대로입니다, 이바렐라! 아아, 아-쉽게 되었군요!”
남자의 입에서 터져 나온 이름은 이바렐라. 바로 신성제국의 제삼황녀이자, 미래의 괴물 황제였다.
남자는 웃음을 멈추고 갑자기 하늘을 향해 경건한 자세를 취했다.
“하나, 이 또한 주께서 우리에게 내리신 시련! 아아, 주여! 어째서 우리에게 이런 고난과 역경을 내리시는 것일까요!”
그런가 하면, 통탄함을 감추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는 등, 기괴한 언행을 보이고 있었다.
그런 남자의 작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일까.
한쪽 눈가를 꿈틀거린 이바렐라가 남자를 향해 손질하던 샴쉬르를 집어 던졌다.
쐐애애애액!
“이욥.”
반쯤 정신이 나간 것 같았던 남자는 장난스러운 소리를 내며 손가락을 내밀자.
캉! 키리리리리릭!
반투명한 실드에 막힌 이바렐라의 샴쉬르가 튕겨져 나가 대전의 바닥을 거칠게 긁었다.
“아-아! 황녀님! 위대한 주의 제국을 원하는 세 번째 손가락이시여!”
남자는 이바렐라의 행동에 통탄하듯 외쳤다.
“왜곡된 분노를 이 미천한 신의 종에게 풀려 하다니! 이 몸은 정말이지, 정말이지….”
그런 남자의 모습이 보기 싫다는 듯, 이바렐라는 아름다운 눈가를 찌푸렸다.
“입 닥쳐, 리비아. 네가 분명 신탁을 받았다며? 엘프 공주인지 뭔지, 그걸 납치해오면 대륙을 손에 넣을 기틀이 마련될 거라고.”
리비아. 교단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최연소 대주교이자 미래에 대륙의 연맹에게는 악마 교황이라 칭해지는 자였다.
“그런데 왜 내 충신이었던 하이란과 27성기사단이 괴멸되었다고 하는 이따위 보고를 받아야 하는 거지?”
이바렐라가 이를 갈며 진지하게 되묻자, 리비아 역시 기행을 멈추고 대답했다.
“신탁의 중간, 변수가 끼었습니다. 황녀.”
“변수?”
리비아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어젯밤, 주께서 이르시길. ‘내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할 때가 도래하였으나, 검고 단단한 벽이 나타나 복음이 빛을 잃었노라.’라 하셨습니다.”
“흠….”
리비아의 대답에 이바렐라가 턱을 긁으며 되물었다.
“요컨대, 방해꾼이 있었다는 말인가?”
리비아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여 이바렐라의 말을 긍정했다.
“바로 그렇습니다, 황녀. 주의 신탁으로 볼 때, 이는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튕겨져 나갔던 샴쉬르를 주워와 이바렐라에게 건넨 리비아가 눈을 빛냈다.
“황태자와 이황자를 제치고 이 거룩한 땅을 지배하려는 계획에 큰 변수가 생겼다는 뜻이니까요.”
피식.
“크나큰 변수?”
리비아의 경고에도 신성제국의 삼황녀, 이바렐라는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이봐, 리비아. 내가 왜 제국의 기본 무기인 롱소드가 아닌, 퍼니시 군도의 해적들이나 즐겨 쓰는 샴쉬르를 주 무기로 쓰는지 알아?”
리비아가 건넨 샴쉬르를 만지며 이바렐라가 되물었다.
“크흠. 거, 거룩한 땅을 지배하실 분께서 왜 자꾸 체통도 못 지키시고….”
리비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지만, 이바렐라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허구한 날 또라이같이 웃는 네가 할 말은 아니지.”
누가 누굴 보고 훈수를 둔단 말인가.
“이유는 간단해. 그 해적들이 쓰는 이 못생긴 칼이.”
휙!
짧게 휘두른 이바렐라의 샴쉬르에.
“대륙 그 어느 국가의 검보다 가볍고 예리하니까.”
리비아의 찻잔이 반 토막 나며 찻물이 흘렀나왔다.
“사람 죽이는 데, 이것보다 효율적인 칼은 없으니까.”
이바렐라가 의자에 몸을 묻으며 말했다.
“신탁? 좆이나 까라 그래. 신에게 무슨 힘이 있나? 다 사람이 하는 일이지. 내가 리비아, 네 신탁을 믿고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거야.”
딸랑!
이바렐라가 의자 옆에 있던 종을 흔들었다.
“엘프 공주 하나 가져오는 데는 하이란이면 충분할 거라 여겼는데, 일의 중요성을 생각지 못하고 그런 애송이를 보낸 내 잘못이지.”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시종이 커다란 지도를 들고 이바렐라에게 조심스럽게 건넨 뒤, 뒷걸음질로 대전을 빠져나갔다.
파라락!
“리비아. 네가 들었던 신탁에 그 방해꾼들이 어디로 향하는지는 나오지 않았지?”
이바렐라가 지도를 펴며 물었다.
“주께서는 지난번 신탁이 실패한 이유만을 말씀해주신 후로 아직 새로운 계시를 주지 않으셨습니다.”
쯧.
이바렐라가 리비아의 대답에 짧게 혀를 찼다.
“그것 봐. 신탁은 결국 참고용이야. 그따위 것만 믿으니까 우리 제국이 아직도 대륙을 정벌하지 못하고 있는 거 아니겠어?”
리비아는 이바렐라의 발언을 그냥 넘기지 않았다.
“잠깐, 황녀. 지금 ‘그따위 것’이라고 하셨나요? 설마 주께? 감히? 정말?”
이바렐라는 리비아의 말을 무시하며 지도를 한 방향을 향해 쭉 그었다.
“봐. 엘프들은 결국 자신들의 고향, 마수의 숲으로 향할 거야. 방해꾼들과 함께 움직인다고 가정하면.”
쿵!
“반드시 이곳에서 대열을 정비할 거야. 많은 인원의 물자를 충당하기에는 이곳만 한 곳이 없으니까.”
이바렐라가 선 위의 한 지점을 샴쉬르로 찍었다.
“호오, 이곳은… 꽤나 먼데요?”
샴쉬르로 찍힌 지역이 궁금했는지 리비아가 고개를 빼꼼 내밀어 지도를 바라보았다.
“거리상 본국에서 추격대를 보내봐야 늦어. 드래곤 산맥 국경 담당자인 카밀에게 연락해서 요격한다.”
이바렐라의 말에 리비아가 짐짓 얼굴을 굳혔다.
“지난번 샤론 왕국에 27성기사단을 통째로 밀어 넣더니. 카밀 공작이 움직인 것이 드러나면 본국 내부에서뿐만 아니라 국제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만?”
리비아의 반문에 이바렐라는 고개를 저었다.
“시간이 없어. 오라버니들처럼 시시한 남자들이 더 이상 후계자라도 된 것처럼 깝치는 걸 봐주는 것도 한계야.”
이바렐라의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
“게다가, 어차피 우리가 다 정복할 땅인데. 굳이 눈치 볼 필요 없잖아?”
이바렐라가 샴쉬르로 찍은 부분을 붉은색 잉크로 표시한 후 시종을 불렀다.
“카밀 공작에게 통신 연결해. 이곳으로 향한 귀쟁이 놈들의 공주를 잡아오라고. 다른 놈들은 잡아봐야 밥만 축낼 테니 죽이든, 잡아서 데리고 놀든 알아서 하라 전하고.”
지도의 색감 때문이었을까.
이바렐라가 표시한 지역의 이름이 유독 눈에 두드러졌다.
지역의 이름은.
광산도시 자운이었다.
* * *
5국 연맹.
대륙 전체로 보았을 때, 하나하나 뜯어놓고 보면 신성제국에서 콧바람만 불어도 날아갈 작은 나라들이었으나 생존을 위해 힘을 합친 작은 연맹이었다.
신성제국과 맞서기 위해 남부 대륙 전체를 아우르는 대륙 연맹과의 차이를 두기 위해서, 흔히들 5국 연합이라 불렀다.
아무리 코딱지만 한 나라들이라 하나, 다섯 나라가 하나의 나라처럼 뭉친 데서 나오는 시너지는 결코 작지 않았다.
특히, 5국 연합은 대륙 중앙의 알토란같은 땅을 차지하고 있어서 대륙 곳곳의 주요 물류를 담당하고 있었다.
이런 지리적 특성으로 다섯 나라는 자신들만의 고유한 무역 아이템을 개발하여 부를 쌓고 있었는데, 그 품목은 다음과 같았다.
노예무역의 샤론 왕국.
주류 무역의 야크 왕국.
공산품 무역의 프란 왕국.
식료품 무역의 밀렌 왕국.
밀렌 왕국의 경우 주력 품목이 필라도르 왕국과 다르게 식자재를 가공하여 만든 식품이었기에, 그 결이 조금 다르다 할 수 있었다.
아무튼, 다른 나라들이 그러하듯 달튼 왕국 역시 주요 무역 품목이 있었는데. 그 품목은 다름 아닌.
‘무기’였다.
아무리 5국이 뭉쳤다고 하나, 연합은 영토도 인구도 제국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 말은, 강자의 비율도 그만큼 작다는 뜻.
연합 최북단에서 신성제국과 국경을 바로 마주하고 있는 달튼 왕국이 부족한 화력을 채우기 위해 무기를 고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라 할 수 있었다.
광산도시 자운은 그런 달튼의 무기 사업에서 근간이 되는 장소라 할 수 있었다.
실제로, 자운은 대륙 전체에서도 질 좋은 광물들을 생산하기로 유명했으니 말이다.
“음, 이 도시는 꽤나 불쾌하네요.”
자운에 들어서자 밀리아가 코끝을 손으로 막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밀리아뿐 아니라 엘프 레인저 부대 모두 표정이 그리 좋지 않았다.
‘뭐,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겠지.’
숲과 더불어 공생하는 이들인 엘프들에게 광산도시 자운은 그들의 기질과 완벽히 상반되는 도시일 테니.
딱 봐도 빨리 벗어나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아쉽게도 난 그 소원을 들어줄 수 없었다.
“미안하지만, 조금만 참아줬으면 하는데. 이곳을 벗어나면 반텐까지 보급이 가능한 도시가 없어. 여기서 당분간 식량 보급과 무기를 점검할 시간을 가져야 해.”
금방 떠날 거 같지 않은 내 말의 뉘앙스에 밀리아의 안색이 조금씩 어두워졌다.
미안해라.
“윽. 그러면… 얼마나 더 있어야 하는 걸까요?”
“흠, 글쎄.”
나는 밀리아의 질문에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해 보았다.
자운이 큰 도시가 아니라 하지만, 어지간한 물건들은 근처에서 구할 수 있을 테니.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터.
“신성제국의 추격대가 쫓아오고 있을 테니, 많은 시간을 쓸 수도 없고.”
오래 머무르지 않을 것 같은 나의 말에 밀리아의 표정이 잠시 밝아졌다….
“사흘이면 되지 않을까.”
…만, 내 말이 이어지자 밀리아의 안색이 조금 더 어두워졌다.
“얌마, 무슨 꿍꿍이야?”
“음?”
“뭐가 ‘음?’이야, 이 새끼야. 시치미 떼지 마. 보급 핑계로 벌써 하루 반나절이나 시장 바닥만 돌고 있잖아.”
나와 같이 거리를 돌던 살라딘이 투덜거렸다.
“꿍꿍이는 무슨. 너도 어차피 미미랑 네네 고쳐야 하잖아. 아직 다 못 고친 거 아닌가? 많이 부서졌던데, 재료 있어야 하잖아?”
“뭐, 그야 그렇다만.”
살라딘이 조금 진지한 얼굴로 되물었다.
“근데, 정말 괜찮겠냐? 제국도 바보가 아니야. 분명 추격대를 보낼 텐데, 네 성격상 아무 대책도 없이 시간만 보내지는 않을 거 아냐.”
나는 잠시 살라딘을 말없이 바라봤다.
“뭐, 뭐야. 왜 그래?”
살라딘이 흠칫하며 내게 되물었다.
“아니다, 아무것도.”
인형에 반쯤 나사가 빠져 있는 것 같아도, 의외로 날카로운 모습을 보니 옛날 생각이 났다.
“우리가 자운을 바로 떠나든, 아니면 천천히 움직이든. 어차피 추격대는 마주할 수밖에 없어. 그 삼황녀가 우리 동선을 예측 못 할 리가 없으니까.”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이바렐라, 그 미친년은 미쳤지만 똑똑했다.
아무리 서둘러도 추격대를 마주할 수밖에 없다면, 차라리 보급을 겸해 쉬면서 전력을 끌어 올리는 게 올바른 선택이었다.
게다가.
‘그 녀석은 며칠 늦어지더라도 찾아볼 가치가 있는 녀석이니까.’
광전사(狂戰士), 미르온.
스티그마 용병단의 악귀라 불렸던 핵심 전투원이자, 이종의 힘 ‘광란(狂亂)’을 소유했던 자.
이곳에서 그를 찾으려 애쓰는 것은, 한때 그와 나누었던 대화를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요? 에이, 제가 무슨 귀족 출신이겠습니까. 전 길거리 출신입니다, 길거리 출신. 한때, 달튼의 광산도시, 자운에서 빌어먹던 신세였죠.
-그토록 힘들게 자랐다면, 조국에 대한 별다른 애정도 없지 않나? 왜 굳이 저항군에서 고생을 하는 건가?
내 질문에 미르온은 볼을 긁적이며 말했었다.
-음…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자운에서 힘든 것도 많았지만, 잘해주신 분도 많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신성제국은, 제 가장 소중한 것을 앗아 갔으니까요.
-소중한 것?
내 말에, 미르온은 그저 말없이 웃을 뿐이었고. 나는 그의 반응에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스티그마 용병단에 사연 없는 이는 거의 없었기에, 서로 간의 프라이버시는 지켜주는 것이 원칙이었으니까.
‘이 정도로 돌아다녔는데도 안 보이는 걸 보면, 지금은 진짜 없는 모양인데….’
아무래도 아직은 미르온을 만날 때가 아니었나 보다.
‘어쩔 수 없지. 계속해서 시간만 보낼 수는 없으니.’
슬슬 포기하고 떠나려던 그때.
“이 새끼가!”
와장창!
“뒈져, 뒈져!! 이 쓰레기 같은 새끼, 감히 또 내 사과를 훔치려 들어?!”
퍼억! 퍼억!
도둑질을 하려던 아이 한 명이 가게 주인에게 미친 듯이 두들겨 맞고 있었다.
하나, 그렇게 두들겨 맞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결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하물며 신음 소리조차 하나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몸을 웅크려, 최대한 아프지 않도록 발길질에서 몸을 보호하고 있었다.
“씨발! 이 독한 새끼, 오냐. 오늘 둘 중 하나는 죽어보자, 어디.”
콰지직!!
흥분한 주인이 아이를 향해 상자를 내려찍듯이 던졌다.
상자가 박살이 나고 안에 있던 과일의 과즙으로 아이의 몸이 엉망이 되었지만, 아이의 눈빛은 여전히 시퍼렇게 빛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질린 것일까.
상점 주인이 한마디 말을 뱉었다.
“허억, 허억… 독한 새끼. 누나 년이 병신이라 그런가, 더 지랄이네, 아주 그냥.”
상점 주인의 말이 끝나자, 아이의 눈이 갑자기 돌변했다.
벌떡!
순식간에 일어난 아이가 부서진 상자 파편으로 상점 주인의 발을 찍었다.
푹!
“끄아아아악!!”
상점 주인이 자빠진 틈을 타, 아이는 인파 속으로 후다닥 숨어들었다.
공교롭게도, 내가 있는 방향으로 말이다.
나와 아이가 잠깐 눈이 마주쳤던 순간, 나는 보았다.
파란색 오른쪽 눈과, 붉은색의 왼쪽 눈.
“……?”
그 흔치 않은 눈동자에서 내가 묘한 낯익음을 느끼고 있을 때.
상점 주인의 절규가 들려왔다.
“으아아아악! 미르온 이 개새끼, 다음에 보면 죽여버릴 거야아아!!”
상점 주인의 입에서 나온 절규.
나는 멍하니 달아나는 아이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니.
잘해준 사람들 많았다며.